“새로운 ‘사회연대 전선체’가 필요하다”

노동사회

“새로운 ‘사회연대 전선체’가 필요하다”

편집국 0 2,708 2013.05.29 11:19

9회 말 투아웃 민주노조운동의 돌파카드, ‘사회연대운동’

이주환: 취임 일성으로 “민주노총이 사회연대노총으로 거듭날 것”이라 제기했습니다. 여러 인터뷰에서 되풀이해서 대답했을 질문이지만, 왜 지금 ‘사회연대’입니까? 그리고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모인 ‘통합 집행부’ 내에서 이에 대한 공감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합니다. 

jhlee_02.jpg임성규: 민주노총이 중심이 돼서 끌고 왔던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상황에 대한 돌파 카드로 사회연대운동을 제기했다고 보면 무난할 것 같습니다. 올해 초 모 특위위원장의 성폭력사건 등으로 지도부가 총사퇴한 상황에서 제가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는데, 2월18일 비상대책위가 소집한 첫 번째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제가 그 화두를 꺼냈죠. 그리고 4월1일 잔여 임기를 위한 위원장 선거 유세에서 어느 정도 정리된 형태로 제기했고요. 사실 유세 전까지는 누구하고도 이 문제를 상의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어쨌든 사회연대를 화두로 던졌을 때 생각보다 반향이 컸고, 또 민주노총이 성폭력 사건이라는 괴로운 국면에서 전환해 활로를 찾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통합 집행부라고 하셨는데, 저는 지금 상황을 통합 집행부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통합 집행부이려면 민주노총 내 다양한 정파세력들이 지금의 위기상황을 돌파해보겠다는 공동의 책임감을 갖고 정말 중심 되는 사람들을 후보로 내놓고 흔쾌한 동의를 보여야 하는데, 지난 과정을 보면 그렇지를 않았다는 거죠. 지금 임원 자리가 세 자리나 비어 있습니다. 게다가 비대위원장이었던 제가 위원장 후보로 나올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임성규가 무슨 파냐” 하는 소리가 나오고, 또 사무총장 후보를 두고도 “임성규가 무슨 파하고 연합한다” 소리가 나오고…… 아직 위기의식을 뼈저리게 느끼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이주환: 지난 5월1일 119주년 노동절대회에서는 ‘사회연대선언’을 통해 “사회연대헌장 제정운동 실천하자”고 조합원들에게 제안했습니다. 또한 5월19일에는 사회적 요구를 중심으로 ‘대정부 교섭안’을 제시하며 정부가 나서지 않을 시 6월10일 이후 ‘사회연대 총파업’까지 포함된 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조직적 방향을 결정하기까지 어떤 고민과 논의를 거쳤고, 그에 대한 임원 및 총국성원들의 합의 수준은 어떠합니까?

임성규: 제가 공약사항 비슷하게 사회연대운동을 제안을 한 다음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토론을 거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보니까 사회연대운동에 우려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도 소수 있지만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사무총국에서는 지속적으로 구체적인 토론이 이뤄지면서 현재 담론 수준에서는 전체적인 동의가 만들어졌습니다. 또 제가 3~4월에 시민사회단체, 종교단체 등을 두루 만나보니까 “정말 잘 던진 카드다”라는 이야기부터 “공허한 담론이 되지 않도록 잘해야 한다”는 염려까지 다양한 반응이 있었지만, 어쨌든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장이죠. 현장에서는 사회연대운동이 뭔지,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이 뭔지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현장에서 관심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 과제입니다. 그게 만만치는 않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노동운동이 호황시기 토실토실한 자본의 허벅지에 빨대를 꽂고 잉여이윤을 빨아먹으면서 성장한 결과라고 봅니다. 그러다보니 최근 자본이 나눠줄 수 있는 물적 기반이 부실해지면서 발생한 위기에서는 기존의 임단투 중심의 운동으로는 극복할 방법이 안 보이는 거죠. 그런 노동조합운동에 익숙해 있는 현장에서 사회연대운동으로 의식전환을 만들어내는 일은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이주환: 민주노총이 사회연대운동을 중심에 놓고 사업을 벌이기 위해서는 형식적이든 내용적이든 조직 전체적으로 재편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취임 후 총국 내에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는 어떤 구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임성규: 4월6일 선거가 끝나자마자 사회연대전략을 기획하기 위한 초동 모임을 만들었고 지금도 그 모임이 사회연대헌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총국 성원이나 구조에서의 변화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사실 지금 사무총국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을 잘했든 못했든, 비상대책위원회를 거치면서 어떤 비판을 받은 거죠. 교과서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인적 교체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지금 민주노총의 실질적인 환경이 사람을 수혈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또 저를 포함해서 민주노조운동 안에 혁신 대상이 아닌 사람이 없기도 하고요. 해서 있는 사람이 변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취임 초에 지금 사무총국 성원들에게 사회연대운동을 함께 만들어나가자고 이야길 했습니다. 물론 사회연대운동이 본 궤도에 오르면 거기에 걸맞게 기구도 만들고 적극적으로 조직재편을 해야겠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무총국 성원들도 모두 동의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조운동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이주환: 기존 민주노조운동의 담론 내에서도 사회연대를 강조하는 흐름은 늘 존재했습니다. 현재 민주노총이 제기하고 있는 대정부 교섭안의 내용도 사실 기존 민주노총의 사회공공성 요구안들의 연장선상에 있고요. 임성규 집행부가 제기하는 사회연대운동은 기존의 흐름들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고 또 스스로를 어떻게 차별 짓고 있습니까?

임성규: 이수호 위원장 시절 ‘무상의료 무상교육’(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제기했는데, 저는 거기에 대해서는 비판을 했습니다. 비판의 핵심 내용은 기둥 두 개만 덜렁 세워놓고 어떤 집을 세우려는지가 불분명하다는 거였죠. 사회연대를 전략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면, 적어도 현실에서 몇 걸음은 걸어 나간 ‘새로운 사회’에 대한 최소단계 밑그림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럴 때 교육과 의료에 대한 대안도 더욱 명확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거기에 기반할 때만이 현재 거의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비정규직 등을 운동의 주체로 포괄하기 위한 방안들이 만들어질 수 있고요. 지금까지 사회연대와 관련된 민주노총의 전략들은 그런 부분을 채우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주환: 보다 구체적인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 전노협의 지역연대, 노동법 개정투쟁, 1기 민주노총의 사회개혁운동, 1997~98년 경제위기 때의 노동시간 단축투쟁, 이후 민주노총의 사회공공성 담론 등을 현재의 사회연대운동과 연결해서 평가해 주십시오.

임성규: 말씀하신 그런 경험들을 다 묶어서 보다 명확하게 법전처럼 만들자는 게 지금 추진하고 있는 사회연대헌장의 핵심입니다. 어쨌든 제 평가를 말씀을 드리면, 우선 전노협의 지역연대는 복원해야 합니다. 전노협은 지역 노협이 골간이었죠. 이를 계승한 민주노총은 산별로 기본 골간을 갖추고 지역연대의 중심인 지역본부는 실권이 별로 없는 상태이고요. 저는 전노협 시절의 지역 노협에 버금가는 지역연대가 빨리 복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산별운동이 방해된다면 산별운동을 바꿔야죠. 지역 산별로 가야 합니다. 더 나아가 민주노총을 하나의 노조로 만들고 골간을 지역 차원으로 재편하는 것까지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산별운동을 실패로 평가하는 것은 성급하죠. 그렇지만 어쨌든 지역연대를 강화하는 게 더 중요하고, 여기에 산별운동이 협력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다음으로 1996~97년 노동법 개정 투쟁은 대단한 성과를 가져온 파업투쟁이었죠. 문제는 잘 싸우고도 결국에는 제도정치에 놀아났다는 점이었습니다.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전선운동만으로는 부족하고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계급정당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실하게 깨닫게 해준 경험이었고, 결국에는 권영길 위원장을 대선 후보로 세우고 민주노동당을 건설하는 길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성과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분열되었고, 이는 노동법 개정 투쟁의 역사성을 소실시킨 것이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새로운 노동법 개정 투쟁이 필요하고, 이는 전면적인 근로기준법의 개편, 인권과 차별에 관한 법 개정, 노조법 관련 개정 등을 포괄해서 장기적이고 종합적으로 정치화된 투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기 민주노총의 사회개혁운동은 지금보다 주체 역량이 훨씬 좋았던 시기에 지금보다도 더 떨어지는 수준의 요구를 제출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잘못 선택된 컨텐츠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지금도 끊임없이 해나가야 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을 다 묶고, 그래도 빈 지점이 있겠지만, 종합해서 현재의 노동자 서민에 상황에 맞도록 정리하는 것이 사회연대헌장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추진하는 것이 사회연대전략이 될 겁니다. 이를 위해 자기 사업장의 배타적인 영역을 넘어서 활동할 수 있는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 이후의 과제가 될 테고요.   

이주환: 임성규 위원장님 개인의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활동해온 공공운수연맹 또는 공공노조에서의 사회공공성운동 경험들이 사회연대운동 구상의 틀을 잡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떻습니까? 

지대한 영향을 받았죠. 사회연대운동은 사회공공성과 정확하게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저는 사회공공성의 핵심은 고임금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임금을 줄이는 게 아니라 세금을 더 내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 그리고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를 막고 요금 올리는 것을 막아서 간접임금을 지켜내고 사회임금의 비율을 늘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공공부문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운동 차원에서 벌여내는 것이 사회연대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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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양보론’에 양보할 수 없다

이주환: 87년 대투쟁으로 태어난 민주노조운동이 ‘어용노조’와 대립전선을 쳤던 것처럼, 민주노총이 사회연대운동은 중심 전략으로 만들어가겠다는 선언 이면에는 ‘비(반)연대적 노동조합’의 모습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겠다는 의중이 어느 정도는 포함돼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는 현재 조건에서 산하 조직인 공공부문 및 대기업 노동조합들과 민주노총 중앙과의 관계에서 긴장 요소로 나타날 수도 있을 텐데요. 

임성규: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의 임금이 높은 거라고 생각하면 사회연대운동은 실패합니다. 그게 정상이라고, 그것에 가깝게 모든 것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그렇지 않고 평균 수준 생각하면서 평균보다 조금 더 가진 사람들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 그러니까 소위 ‘정규직 양보론’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소리와 같습니다. 국가가 아무 책임질 필요가 없다, 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얘깁니다. 이는 글만 쓰는 사람들의 논리로나 가능한 얘기죠. 정규직이 반성할 부분은 자기 임금을 올리느라 제도를 바꾸는 것을 신경 쓰지 못 했고, 어려운 사람들을 자기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하지 않았던 부분이죠. 

그리고 물론 양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면 양보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가 먼저 있어야죠. 이를 테면 대기업 노동자 상당수가 기업에서 학자금을 지원받는데, 교육제도가 개선돼 무상교육에 가깝게 실시된다면 과감하게 내놔야죠. 그렇지만 교육제도 개선이 선결조건이라는 겁니다. 노동자 전체를 위해 어떤 제도를 개선할 때 이를 위해 세금을 올리는 거라면 양보를 고려할 수 있지만, 그런 것 없이 양보 먼저 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정확하게 대안이 제출되고 세금을 더 낼만 하다 하면, 이는 공기업이나 대기업 노동자들에게도 양보나 압박으로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사실 누진세제를 적용하면 노동자들이 더 내야 할 세금도 별로 많지 않을 거고요. 세금은 정몽준, 이명박 같은 사람들이 더 내야죠.       

‘사회연대 총파업’은 노동자와 시민의 가투 확산 전략

이주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애도 기간이 정리되면서, 이명박 정부와의 직접적인 충돌이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건설노조 파업과 박종태 열사 관련 화물연대 투쟁, 쌍용자동차 직장폐쇄, 금속노조의 중앙교섭 결렬 등 서서히 6월 투쟁을 구성하는 조각들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부터 임단협 사이클에서 벗어나 있는 사회연대운동과 같은 방침에 대해서는 늘 “현안투쟁을 방해한다”는 비판이 따라붙었는데요. 이를 어떻게 돌파할 것입니까? 또 6월 투쟁과 사회연대운동은 어떻게 통일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을까요?  

임성규: 그런데 올해는 사실 상황이 사회연대운동의 의제를 갖고 요구 목표를 정해 파업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니까요. 특별하게 현안투쟁과 사회연대의제가 충돌할 일은 없다고 봅니다. 제가 언론에서 ‘사회연대 총파업’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사회연대라는 말을 좀 더 널리 알리려는 목적의식적인 부분이 큽니다. 어쨌든 사회연대 총파업의 전술과 관련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먼저 ‘총파업’이란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고, ‘사회연대’란 노동자 투쟁으로 시민들이 자기 요구를 외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즉, 현장에서 파업을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고 또 그런 조건이 안 되는 노동자들도 파업 대오와 함께 거리로 나와서, 시민들과 어울려 가투를 하면서 투쟁을 확산시켜내겠다는 전술인 거죠. 

이러한 투쟁들의 의제로는 제조업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혹은 지키기가 될 것이고, 공공부문에서는 공공부문이 실업자들을 흡수하는 사회안전망으로서의 역할하게 하기 등이 될 겁니다. 이런 문제들은 사실 서로 연결돼 있는 거잖아요. 민주노총이 조직별로 흩어져 있는 이 의제들과 투쟁들을 묶어서 종합하는 역할을 해야겠죠. 6월 투쟁을 무리하게 진행하지는 않을 겁니다만, 6월13일 이후에는 가투가 예년보다는 좀 더 활발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반-이명박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파업 분위기를 예열하면서 6월 말까지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와중에 돌발적으로 무슨 일이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박종태 열사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도 매우 돌발적인 거였고요. 예측 불허긴 하지만 이 정도로 계획을 갖고 가려고 합니다. 뭐, 워낙 반-이명박 전선이 명확하니까요. 민주노총이 그 중심에서 사회연대헌장에 담길 만한 요구를 갖고 부딪쳐 가겠다는 거죠. 

이주환: 이 외에도 사회연대운동을 진행함에 있어 경험하거나 듣게 되는 장해물과 우려지점이 많을 텐데요. 어떤 것들이 있었으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해주십시오. 

임성규: 의식변화를 어떻게 만들어낼까 하는 게 가장 고민이죠. 운동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준비가 안 돼 있어요. 운동하는 사람들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다른 거는 큰 고민 없습니다.

솔직히, 정규직 장년남성이 움직여야 성공할 수 있어  

이주환: 사회연대운동이 또 다시 되풀이되는 상층 중심의 당위 담론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장과의 소통이 중요할 겁니다. 이를 어떻게 조직해나갈 수 있을까요?  

임성규: 현장과의 소통은 총연맹 위원장이 어디 가서 악수하고 다닌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조직체계의 문제죠. 지금처럼 산별연맹과 지역본부 사이에, 그리고 산별연맹들 사이에, 지역본부들 사이에 높은 벽이 처져 있는 상황에서는 소통이 어렵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잘 안 풀리는 문제들만 총연맹으로 떠넘겨져지는 상황에서는 소통이 더욱 꼬이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사실 대의원, 중앙위원, 중앙집행위원들이 자기 역할만 제대로 하면 상당수 풀릴 수 있습니다. 이런 역할을 맡은 분들이 ‘개인’으로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대표하는 단위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활동한다면 소통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크게 줄 겁니다.      

이주환: 사회연대운동은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적 정당성을 담론 수준에서 쇄신하기 위한 운동이고, 새로운 주체들을 형성하는 과정이며,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변화시켜가기 위한 전망으로 제기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중에서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주체들의 형성’일 텐데요. 현재 민주노조운동은 정규직/남성/장년 중심의 운동이라 비판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회연대운동의 중심 주체는 어떤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정규직/남성/장년 노동자들이 중심 주체가 되어야 해요. 이들이 중심 주체가 되지 못하면 사회연대운동은 피상적으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비정규직 등을 새로운 주체들로 발굴하는 작업도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지속적으로 해가야 할 테지만요. 어쨌든 사회연대운동의 주체를 조직 내에서 형성하려면 소통구조를 재건해야 하고, 소통이 잘되면 민주적인 절차가 지켜지면서 현장이 다시 살아날 겁니다. 그럴 때만이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모여 집단적인 요구로 완성될 수 있을 테고요. 그런데 이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먼저 위로부터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언론을 활용하고 또 시민사회단체와 진보민중진영 등과 일차적으로 결합해서, 그것이 거꾸로 현장에서 바람을 일으키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진보진영, ‘사회연대전선’으로 재편해야”

이주환: 구체적인 구상을 듣고 싶습니다. 사회연대운동이 보다 파급력을 갖기 위해서는 민중단체와 시민단체 등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세력들과의 열린 소통이 필요할 텐데, 이에 대한 구상이 있으신가요.

임성규: 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고 어려운 과제입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연대운동을 ‘전선체’로 만드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진보연대와 민생민주국민회의가 전선체로서 존재하고 있지만, 이를 발전적으로 해소하고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던 단체들까지 포괄해서 새로운 사회연대 전선체를 만들자는 것이죠. 이를 바탕으로 민주노총을 포함한 대중운동, 그리고 전선체운동, 계급정당운동 이렇게 ‘삼각편대’를 형성해서 보수세력들을 밀어내고 제대로 된 진보운동을 펼쳐보자는 겁니다. 이러한 전망 속에서 앞으로 다가올 총선과 대선의 정치적 계기에서 성큼성큼 나아가자는 거죠. 물론 쌓인 감정도 있고 해서 연대가 쉽지 않겠지만 반드시 해나가야 하리라 봅니다. 

이주환: 요즘 너무나 소통이 안 되는 권력 아래, 너무나 큰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후배 활동가들이 활력을 잃는 모습을 보게 될 텐데, 이에 대해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선배세대 활동가로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임성규: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를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은 아니지만 이미 뚜껑은 열렸고, 거기서 나온 것들이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해악이죠. 이제 우리가 맞이해야 할 것은 희망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후배 활동가들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요. 자기가 운동을 하면서 세운 목표에 충실해라, 설사 한 평생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꿋꿋이 가겠다는 자세만 있다면 판도라의 상자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희망을 잡을 수 있을 거다, 라고요. 더 나빠질 건 없으니까 뚜벅뚜벅 걸어가라는 거죠.

이주환: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