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노동조합협의회(이하, ‘출판노협’)는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의 직종협의회 중 하나로, <고래가그랬어분회>, <돌베개분회>, <보리분회>, <사계절출판사분회>,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창비지부>, <한겨레출판분회> 등 일곱 개 지부/분회의 협의체다.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에는, 출판사 내 지부/분회와 달리, 거개의 출판사가 몰려 있는 서울과 경기(파주시나 고양시 등) 지역을 기반으로 사업장 내 노조가 없는 재직 출판노동자와 출판사 밖에서 출판노동을 하는 외주 출판노동자가 속해 있다.
2014년, 마침내 출판노협이 출범하다
출판노협의 원류는 1990년 출범한 서울지역출판노동조합에서 찾을 수 있다. 서울지역출판노동조합은 출범 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에 가맹했고, 2000년 언론노조가 출범할 당시에는 산하 조직으로 여섯 곳의 출판사 분회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씩 해체되거나 신문 등으로 분류되면서, 적을 때는 세 개의 분회만이 남기도 했다. 한편, 2010년 즈음부터 여러 출판사에서 분회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분회장단회의’라는 이름으로 논의를 진행하며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2014년 4월에 마침내 출판노협이 정식으로 출범했다. 현재 출판노협 산하에 7개 지부/분회가 있고 조합원 수는 260여 명이다.
출판노협은, 작은 규모로 출판사를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직이 잦아 조직화되기 어려운 산업의 특성상, 출판노동자들이 스스로 연대를 강화하고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절박함 가운데 설립됐다. 현재 두 사용자단체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가 통합을 시도하면서 사용자 중심의 출판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이에 출판노협은 출판노동자 실태조사와 일상적 정보 교류를 통해 대응해왔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우리의 노동을 바로 알고, 이를 정책으로 실현하고자 시도했다. 나아가 단결된 조직력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출판산업 단체교섭을 이뤄내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가볍게 쓰이고 쉬이 버려지는 출판노동자들
대부분의 문화산업이 그렇듯, 출판노동의 맨얼굴은 ‘열정 노동’이라는 가면에 가려져 있다. 책이 좋아서 출판계에 들어온 노동자들은 불안한 노동여건과 널리 퍼진 불법적 관행 탓에 자주 이직할 수밖에 없고, 심지어 전혀 다른 직종으로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출판산업의 특성상 많은 출판사가 소규모로 운영되며, 교정교열·디자인 등의 작업을 외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출판계의 노동의식은 매우 미약한 상황이다. 넓지 못한 노동시장과 관례적으로 통용되는 선후배 문화, 여기에 사용자들 간의 네트워크 등으로 인해, 출판노동자 스스로가 노동현실에 어떤 문제의식을 가졌다 해도 이를 표출하며 적극 대응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그간 출판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닌 ‘문화예술인’, ‘연구자’,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강요받아왔다. 사용자는 자신의 역할과 책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기본적인 근로기준법조차 지키지 않고 있음을 거리낌 없이 떠벌리곤 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노동절에 당연히도 출근하며, 연봉에 퇴직금이 포함된 이른바 ‘13분의 1 계약’ 등의 폐단이 아무렇지도 않게 관행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또한 온갖 말도 안 되는 사유로 출판노동자를 부당하게 해고하는 사례들이 출판노동계에 헤아릴 수 없이 만연해 있는 게 현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발표한 『2016 출판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단행본 신간의 매출 비중은 50%가 넘고 이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이를테면 좋은 스테디셀러가 출판사를 먹여 살리는 때는 안타깝게도 지났다. 이러한 산업 환경으로 인해 다른 고정 생산비에 비해 ‘손쉽게 건드릴 수 있는’ 인건비를 줄이는 한편, 노동에 들이는 시간을 줄여 책을 급하게 찍어내는 방식으로 노동자를 굴리는 출판사가 많다. 본질적으로 질 낮은 책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출판노동자들은 그런 현실의 어려움을 메우는 자원으로 갈려서 가볍게 쓰이고 쉬이 버려지게 된다.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인권 침해 사례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출판노동의 열악한 현실을 그려볼 수 있겠다. 재작년 ‘ㅈ’이라는 중견 출판사에서 편집자를 물류창고로 부당하게 전보한 사건이 있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전보로 결정이 난 뒤에도 회사는 말도 안 되게 수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걸었고, 당사자가 복직한 뒤에도 정상적인 업무에 배치하지 않는 등 괴롭히기를 일삼았다.
여러 베스트셀러를 내며 짧은 시간에 출판계에서 주목받던 ㅅ출판사에서는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 17개월의 비정상적인 수습 뒤 정규직 전환을 논의하던 자리에서, 회사 임원이 여성노동자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것이다. ㅅ출판사는 해당 임원을 두둔하며 결국 피해당사자를 퇴사하게 만들었다. 그 뒤 당사자와 노조의 끈질긴 투쟁으로 ㅅ출판사 사용자의 사과를 받아낼 수 있었다.
양질의 철학책과 사회과학서를 펴내던 것으로 이름 높던 ㄱ출판사의 사례를 보자. 노조가 생기기 전 ㄱ출판사에는 높은 강도의 노동이 강요됐고, 권고사직의 형태를 띤 해고가 잇따라 발생했음에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대화를 요구한 ㄱ출판사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했지만, ㄱ출판사 사용자는 대등한 대화·협상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때 투쟁적 운동권이자 저명한 진보인사로 알려진 ㄱ출판사의 사장은 온갖 졸렬한 방법으로 노조를 압박했으며 결국 해산시키고야 말았다.
3년 전 손꼽히는 역사서적 부문 대형 출판사 ‘ㅁ’에서 경영이 어렵다는 사유로 여섯 명의 출판노동자를 해고했다. 해고노동자 한 명이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면서 비난 여론이 강하게 일었고, 결국 ㅁ출판사는 해고를 취소했다. 그런데 어이가 없는 것은 해고는 구두로 통보했으면서도 해고를 취소할 때는 서면으로 통지하고 노동자의 서명도 받으려 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ㅁ출판사는 이들의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손꼽히는 유력 일간지 계열의 대형 출판사 ‘ㅈ’에서도 경영상의 사유로 3분의 1이 넘는 노동자를 잘랐다. 분명 해고였지만 그 방식은 개인 사유의 사직서를 받아 처리했다. ㅈ출판사는 최근 몇 년 새 여러 종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하면서 화제가 됐음에도 사장은 회사가 어렵다는 말로만 일관했다. 한편, 어떤 도서총판에서는 또 다른 대형 출판사 ‘ㄱ’의 책을 사재기 할 것을 직원에게 지시했고, 이를 거부하자 해당 직원을 부당해고하기도 했다.
낮은 노동 의식에서 비롯돼 저질러지는 불법이 자본의 논리를 좇는 대형 출판사에만 국한된 현상은 결코 아니다. 사회 개혁적인 내용의 ‘새빨간’ 책을 내는 것으로 이름난 ㅇ출판사에서도 회사가 어렵다는 말만으로 오래도록 일해 온 직원을 내쫓았다.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 달라”,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동자도 함께 노력하겠다”며 회사와 대화를 요구하던 ㅇ출판사의 남은 직원들도 회사와의 마찰로 곧 퇴사해야만 했다. 학자이자 교육가로 명망 높은, 어떤 ‘공동체’를 이끈다는 ㅂ출판사의 사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여러 출판사의 사장들은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 심지어는 노동 현안에 대해서 급진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상당수 출판사 사장은 과거 운동권 출신으로,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출판업을 이어온 이도 꽤 많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출판사가 성장하여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활동가 단체의 선배’처럼 굴면서 사용자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곳이 대다수다. 회사 밖으로 내고 있는 관점으로 회사 내 노동문제를 보지 못하고 있다. 여타 노동 현장과 달리, 출판노동에서 중대한 쟁점은 거대 자본의 횡포가 아닌 ‘진보인사’연하는 사장들의 위선적인 태도다.
한마디로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책으로는 그 출판사의 노동환경을 짐작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주제로 책을 내는 출판사가 자본에 굴종하는 경우도 많고, 사회 정의를 외치는 책을 내는 출판사라고 사내 정의가 반드시 살아 있다고 할 수 없으며, 페미니즘 책을 내는 출판사의 여성노동자가 차별과 폭력 없이 일한다고 할 수는 없다. 노동 이슈를 주로 다뤄온 출판사가 쉬쉬하며 출판노동자를 탄압하는 사례는 말할 것도 없다.
더난출판사의 부당해고와 ‘보복성’ 손배소
아직 진행 중인 사건도 있다. 앞서 다른 출판사와 달리 머리글자가 아닌 실명을 공개한다. <더난출판사>에서 부당하게 노동자를 해고하고 보복성 손해배상까지 청구했다. 더난은 표지 오자를 빌미 삼아 A 편집자에게 해고 통보했다. A 편집자가 이에 저항하자 2천만 원의 손배소를 걸었다. 해고된 A 편집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내자, 더난출판사는 화해를 시도하는 한편 바로 손배소를 준비한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노동자의 업무상 과실에 따른 해고이며 그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라고 하나, 본질은 부당한 해고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은 노동자 겁박하기일 뿐이다. 곧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돈으로 겁박하며 짓밟으려 한 보복 행위였다.
노조의 성명이 나간 직후 더난출판사는 악화되는 여론을 의식해 손배소를 취하했지만, 당사자 A 편집자에게 공개 사과할 것 등의 노조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이 사건의 시작과 핵심이 부당해고와 보복성 손배소에 있지만 “한쪽의 잘못과 피해만이 아니므로 쌍방 간의 비공개 사과로 마무리하자”고 한다. 사건이 일어나면서 명예가 훼손된 노동자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출판계의 ‘노동자 옥죄기’가 비단 이번 사건만은 아니다. 실수나 업무 능력을 빌미로 퇴사를 강요당하는 출판노동자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렇기에 출판노협은 만연한 전횡을 뿌리 뽑고 출판노동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가고자, 여러 출판노동자와 함께 연대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출판노동자들의 불안정한 노동현실과 일터 괴롭힘에 대한 문제의식을 출판계 전반에 환기시키며 개선하고자 한다.
스스로의 노동현실에 대해 처음으로 살펴보다
현장에서 몸으로 어려움을 느끼고 있지만, 많은 출판노동자가 자신이 속한 출판계 전체의 노동현실에 관해 뚜렷하게 알지 못한다. 지금까지의 출판노동에 관한 인식은 사실 풍문과 친분 관계에만 의존하여 공유되는 경향이 많았다. 그렇기에 수치화된 자료를 통해 출판노동의 실태를 명확히 하고, 문제점을 발견하여 해결책을 모색하고, 나아가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언론노조 출판노협에서 발간한 『2015 출판노동 실태조사 보고서』(이하, ‘실태조사 보고서’)는 그간 정확한 통계자료조차 없던 출판산업 내 노동 여건에 관해 출판노동자가 직접 참여하여 작성한 최초의 실태조사 결과다. 실태조사 보고서는 ‘출판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 등을 보장받으며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고 정당한 조건에서 일하는가’를 알아보려는 취지로 기획되었고, 총 5백여 명의 참여로 이루어졌다.
실태조사 보고서는 출판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가시적으로 드러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교부하지 않는 경우(34%)가 비일비재할 뿐만 아니라, 4분의 3가량이 연장근로·휴일근로를 해도 보상받지 못하고 있으며(75%), 연차유급휴가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도 전체 노동자 중 절반 가까이에(44%) 이르는 등 근로기준법조차 잘 지켜지지 않는 출판업계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출판계에는 5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이렇듯 현실이 열악함에도 법적 보호에 제약이 많은 형편이다.
노동자의 눈과 손으로 처음 실시한 실태조사라는 의미가 크지만, 처음이기에 분명 여러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이후 다시금 출판 노동자 실태조사를 벌여 달라진 그래프를 그려본다면 더욱 값진 작업이 될 것이다. 한편, 지난 시기에는 실태조사로 확인된 노동 문제를 바꿔내기 위한 정책 추진, 입법 투쟁 등의 후속 사업이 거의 이뤄지지 못했기에, 다음에 시행될 실태조사 시에는 이 역시 함께 모색되고 추진돼야 한다.
노동자 아닌 노동자, 외주 출판노동자의 현실
또한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 외주 출판노동자들의 실태다. 다른 분야의 특수고용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외주 출판노동자들은 노동자성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산업 특성상 대부분의 일을 외주로 돌릴 수 있는 출판에서 외주 출판노동의 비율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들은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은 물론, 적은 작업비와 불리한 조건에도 어쩔 수 없이 일을 받아야 하고, 심지어 약속한 작업비용을 받지 못해도 변변히 항변하지 못하는 상황에 빈번하게 처하고 있다. 이들의 노동은 교정교열·디자인·번역·일러스트 등의 형태로 우리가 읽는 책에 녹아 있다.
출판노동의 열악함을 이야기하지만, 재직이 아닌 외주노동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실태는 더욱더 열악하다. 대표적으로 ‘임금체불’을 말할 수 있다. 계약서를 작성한다 해도 책이 출간된 뒤에야 작업비용을 지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정교열·디자인·번역 등의 작업물을 넘긴 직후가 아니다. 민법에 명시된 도급거래의 규정에 반하여, 이미 끝마친 작업에 대한 임금을 ‘출판계 관행’을 핑계로 지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일해서 출판사에 넘겼다 해도 몇 달 동안 아무런 돈도 받는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법적으로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기에 역시 ‘임금체불’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밖에도 여러 해가 지나도 작업비가 오르지 않고, 추가되는 작업을 별도 수당 없이 해줘야 하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사유로 작업평가에 따른 손실을 부담해야 하는 사례도 많다.
단순히 외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이야기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외주노동자들의 권리 찾기에 관해 함께 논의돼야 한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숨은 노동’인 특수고용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다른 산업에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초기업별 조직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확인하며, 출판산업 외주노동자들의 권리 찾기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재직/외주의 이분법적 구분으로 외주노동자의 권리 찾기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 형태를 넘어 모든 출판노동자를 아우를 수 있는 실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출판사 안에서 40대에 접어든 ‘노동자’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이 외주로 내몰린다. 말 그대로 외주 출판노동은 모든 출판노동의 미래다.
차별과 폭력에 맞선 여성 출판노동자들의 삶
앞서 언급한 출판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출판노동자의 비율은 전체의 77%에 달한다. 그렇지만 경력 15년 차 이상에서 여성의 비율은 61%로 줄어든다. 출판계는 통상 ‘여초 직장’이라 알려져 있지만,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경력단절, 임금과 승진에서의 불이익 등을 포함한 성차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2016년 불거진 ‘문단 내 성폭력 사건’을 비롯한 여러 사건에서, 많은 출판노동자들이 자신들 역시 직·간접적으로 일상적인 성폭력, 성희롱 문화에 노출돼 있었음을 폭로하는 데 동참했다. 출판계는 여성노동자 비율이 높은 곳이기에, 여성 출판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이 개선된다는 것은 곧 출판산업 전체의 노동 현실이 좋아진다는 말과 같다.
출판노협 산하 여성위원회는 지난 2년간 『여성 출판노동 실태조사 보고서』를 준비했다. 연차, 직무, 혼인 여부, 회사 규모 등을 고려해 되도록 다양한 조건에서 일하는 여성 출판노동자를 만나고자 했고, 그렇게 25명을 심도 있게 인터뷰한 결과 여성 출판노동자들이 일터 안팎에서 부딪혀온 문제와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이 보고서는 2018년 초 발표를 앞두고 있다. 『여성 출판노동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여성노동자로서 겪는 불평등과 부당한 노동조건의 문제뿐 아니라, 개인적인 삶의 욕구와 동기를 포괄하는 총체적인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담길 것이다.
출판노조가 나아갈 길, 산별교섭과 노사정협의
출판은 사양산업(斜陽産業)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점점 책을 읽지 않는다. 작은 규모의 산업에서 노조 조직률이 낮기에, 계속된 출판 불황의 영향은 출판노동의 질을 나날이 낮추고 있을지 모른다. 게다가 출판노동자들은 독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개개의 노동자의 역량과 열정에 따라 책의 성격과 질이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출판노동자는 저자와 출판사 뒤에 위치한다. 전체 산업의 규모도 작을뿐더러, 각각의 사업장도 자잘하게 나뉘어 있는 것이 출판산업의 현실이다. 그렇기에 출판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삶과 노동을 지키기 위해 자주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그렇기에 지금 출판노협에 절실한 것이 바로 산업 차원의 연대와 단체교섭이다. 출판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요구 내용에 따라, 교섭대상은 사용자단체일 수도 정부기관일 수도 있다. 사실 그동안의 출판정책이란 모두 사용자를 지원하는 데 그쳤다. 그렇기에 정부 지원을 통한 압박을 바탕으로 사용자단체에도 요구해야 한다. 출판산업 단체교섭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선 노사교섭을 시도해야겠지만, 궁극적으로 노사정교섭 테이블을 마련하고 상설화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에 앞서 출판노동자의 핵심 요구사항을 선별해야 할 것이다. 그간 실태조사 등을 통해 보면, △표준노동계약서 도입 △재직노동자 쉬운 해고 근절 △외주노동자 작업비 결제 해결 △성차별과 성폭력 없는 출판 노동 등이 우선적인 요구로 제시될 수 있다. 그렇지만 물론 요구사항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출판노동 리포트 쓰기’ 사업을 이어가고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면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요구사항을 선정할 때에는 ‘교섭을 통해 관철할 수 있는 것’과 ‘출판노동자가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 등이 기준이 돼야 한다.
같은 노동조건으로 안심하고 일하는 내일을 꿈꾸며
사실 교섭대상이나 교섭내용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교섭방법이다. 우리나라의 산별노조나 일반노조는 일부를 제외하고 기업단위로 단체교섭을 해왔다. 실질적인 산업별 단체교섭을 이뤄낸다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실험일 수밖에 없다. 출판노동자들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비슷한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에게 노동현장을 변화시키기 위한 나름의 방안을 제시하는 모델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이를 위해 출판노협 외부에서 여러 단체나 법률 전문가와 함께 고민하고 살펴야 할 것이다. 출판노동자의 산업 차원 연대와 단체교섭을 통해, 출판노동자라면 누구나 같은 노동조건으로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출판산업의 내일을 그려본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출판노동조합협의회는 “행복한 노동이 좋은 책을 만든다”는 기치를 내세우고 있다. 우리는 산업을 이끌어가는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이 안정되고 지속 가능해할 때 출판산업이 더욱 발전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지금도 투쟁을 이어가는 수많은 노동자와 함께, 우리 출판노동자들도 함께 모이고 이야기하며 현실과 싸워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