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차 산업혁명?
언젠가 로봇이 내 일을 대신할까? 기계는 어디까지 우리 일자리를 가져갈까? 쉽게 답변하기 어렵지만 일자리 상실의 두려움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마트 구석구석을 누비며 재고를 파악하고 물건을 옮기는 로봇. 패스트푸드 햄버거를 만드는 로봇. 주차 안내와 경비 로봇. 전화상담 로봇과 운전사 없는 택시까지. 기계는 이제 우리들의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4차 산업혁명’은 그 표현에서 드러나듯 대중들의 관심과 호기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요즘 서점에 가면 4차 산업혁명 서적들이 가장 눈에 들어온다. 한때 출판계의 불황에도 4차 산업혁명을 다룬 책들은 30% 이상의 판매 증가를 보였다. 아마도 언론 매체들의 과잉 기사들이 위기감을 부추긴 측면도 있을 것이다. 기업과 학계의 ‘묻지 마’ 강좌나 토론도 한 몫 했다고 봐야 한다. 한국에서는 애초 취지와 무관하게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국이 4차 산업의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기술의 발전이 사회 전반에 파급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언론은 인간의 패배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는 불확실한 미래를 제시했다. 일부 언론은 세상이 뒤바뀔 거라고, 거의 위협적인 분위기까지 조장했다. 그 후 우리 사회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낯선 단어가 일상을 휩쓸고 있다. 인공지능AI이 내 일을 대체할 것이고, 인간과 로봇의 일자리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문구까지 나왔다. 4차 산업 관련 비즈니스 환경은 매우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특히 공유경제나 디지털 경제는 그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4차 산업혁명의 실체는 있는지 궁금하다.
2. 4차 산업혁명인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인가?
4차 산업과 4차 산업혁명
개념적으로 4차 산업혁명은 소위 ‘4차 산업’에서 출발했다고 봐야 한다. 4차 산업의 어원은 2000년대 초 독일 정부가 실시한 ‘제조업 강화 연구’로부터 나왔다. 그 사이 2007년과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실물 경제의 중요성이 재인식되었고, 2011년 하노버 산업박람회에서 ‘산업 4.0’(industry 4.0)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공론화되었다. 이듬해인 2012년 독일 정부에 권고안이 제출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이다. 이후 독일은 각 하위 산업과 부문별로 4차 산업 준비를 노사정이 함께 모색하고 있다. ‘공공 4.0’, ‘서비스 4.0’, ‘유통 4.0’, ‘금융 4.0’, ‘보건 4.0’ 등과 같은 형태다.
독일에서 4차 산업 홈페이지에서 보여주는 핵심은 작업장의 변화다. 독일산업 4.0에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전통적인 작업장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작업과정과 노동의 변화다. 작업장에서 여성과 남성은 자동화된 일터에서는 누구나 동일한 일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 작업장의 노동과정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과 가상물리시스템CPPS 등이 융합된 작업이 나타날 것이다. 결국 새로운 생산과 작업과정에 숙련이 형성된 노동자들만이 일터에 남아 있게 된다.
한편,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지난 2016년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처음 제기된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와 산업을 논의하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은 매년 주요 의제를 채택한다. 2007년 주요 의제는 “권력 이동”이었고, 2012년은 “거대한 전환”이었으며, 2016년 주요 의제가 “4차 산업혁명의 이해”였다. 4차 산업혁명은 지난 2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전 사회적 이슈로 자리 잡았다.
다보스 포럼에서는『일자리의 미래』The Future of Jobs라는 167쪽의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보고서에는 4차 산업혁명으로 7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00만 개가 새롭게 생겨날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언론들은 “로봇이 500만개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공장에 사람 대신 로봇노동자 파견사업 시작”과 같은 내용들을 기사화했다. 국책연구기관과 기업부설연구소에서는
다보스포럼의 4차 산업혁명 내용을 비판적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여 각종 자료와 보고서들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4차 산업혁명 보고서에서도 2030년까지 172만 명의 고용 변화가 있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 발전의 주요 현상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제조업과 비제조업에서 IT 기술이 접목되어 산업과 고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이 작업장과 일상생활에까지 침투하고 있다. 특히 4차 산업과 관련하여, 기존 생산방식에 IT 기술이 접목되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online to offline: OTO 혹은 융합(옴니채널 omni channel)으로 생산작업 현장의 자동화, 무인화, 모듈화,모바일화, 플랫폼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과거 산업화 시기 한 공간(장소)에 모아 놓고 일을 시키는 생산과 작업방식에서 새로운 작업과 통제방식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금융(은행, 법률), 유통(소매, 통신, 물류), 보건의료(병원) 등과 같은 국내의 대표적인 4차 산업 도입 영역은 지역과 공간을 벗어나 온라인 네트워크 확장이 가능한 곳들이다. 이 산업들은 정보통신기술과 가상물리시스템이 극대화된 곳으로 4차산업과 디지털 플랫폼 노동이 확산되는 영역이다.
특히 4차 산업 시대 경제흐름은 ‘개발 – 공급 - 이동 – 판매 - 서비스’라는 가치사슬 과정에서 나타나는 리드타임Time-To-Market 축소가 핵심이다. 이로 인해 자본과 기업은 △생산성 향상 및 자원 절약, △인력 부족 현상 극복, △자동화 통해 높은 노동비용 부담에서 벗어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4차 산업 시대에 거대자본과 대기업 중심의 독과점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디지털 플랫폼 기술 발전과 불평등 심화
문제는 4차 산업 시대 디지털 기술의 도입 확산 현장에서 확인되는 일자리 변화와 노동의 성격변화다. IT, 어플리케이션(앱·APP) 등 새로운 기술이 접목되는 업종의 고용은 기존 표준화된 고용관계standard employer relationships: SER나 표준고용계약standard employer contract: SEC이 아닌 비표준화된 고용과 계약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산업현장 변화에 따라 노동자는 비공식노동자informal worker 혹은 일반적인 자영업자self-employed workers in general, 자유직업 종사자those who practise liberal professions, 독립계약자independent contractor와 같은 ‘집단’으로 구분/분류된다. 이들 노동자는 기존 한국 사회의 법제도(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법, 사회보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실제로 4차 산업 시대 디지털 ‘플랫폼 노동화’는 고용상 지위와 무관하게 보편적 사회적 제도와 노동권 등 다양한 사회정책의 보호로부터 벗어난 혹은 배제된 사회집단을 발생시키고 불평등을 양산·심화·가속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대표적으로 여성, 청년, 고령, 이주, 소수자, 장애인, 초단시간 노동자, 독립사업 계약자가 주된 타깃이 된다.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아마존>과 배달 어플의 사례다. 미국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Amazon은 점원도 계산대도 없는 매장Go, 메뉴 없는 바Bar, 서점Books까지 끊임없는 실험들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 실험 단계들이다. 자동화나 디지털화는 우리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지 오래다. ‘우버’, ‘에어비앤비’와 같이 정보기술과 네트워크를 활용한 산업은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카카오 드라이버’나 ‘요기요’처럼 온라인으로 일을 수행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 플랫폼 노동이 대표적이다.
3. 4차 산업시대 디지털 노동의 대응
기술 발전은 우리에게 빠름과 편리함을 준다. 그러나 기술 발전이 우리 사회 전반에 향유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4차 산업은 기존의 노동자 보호규정을 밀어내는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들을 만들어 낸다. 때문에 전통적이고 표준화된 일자리들은 도전에 직면한다. 대표적으로 스마트공장, 디지털 노동과 플랫폼 노동은 숙련된 노동력의 부족을 불안정 저임금 일자리들로 대체할 것이다. 일하는 모습만 보아서는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는 전통적인 노동자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 같은 직업, 작업방식, 기술수준도 다르지 않다. 오로지 계약관계가 다르고, 그로 인해서 사회적 관계가 달라질 뿐이다.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는 자영업자 형태인 개인 사업자로 분류된다. 때문에 디지털 플랫폼 노동은 노동법이나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그러나 빠른 기술 발전에 비해 우리 제도는 매우 지체된 상태다. 따라서 우리도 독일의 『산업 4.0』과 『노동 4.0』처럼 백서와 녹서 발간을 통해 미래의 변화하는 산업과 노동에 대한 정책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특히 노동조합은 5개 핵심영역을 토대로 다양한 제도적 검토가 논의되어야 한다. 주요 내용은 △비고용기간의 사회적 보호 접근의 구체화 △사회적 재생산 위한 소득 안정성과 교육훈련 제공 △고용 위계구조 속 공정한 대우 확보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 노동 존중 확보 △노동자 발언 및 대표 권리 확보다.
첫째, 4차 산업 시대 노동조합은 변화하는 사회경제 상황과 기술발전 과정에서 디지털 플랫폼 노동과 변화하는 사례들을 검토하여, 향후 한국 사회와 노동조직이 직면할 수 있는 다양한 고용 양상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준비해야 한다. 특히 각 산업과 사업장의 다양한 사례 분석을 통해 플랫폼 노동의 대응과제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노동조합이 플랫폼 노동자들 위해 혹은 현재의 유사 업종·직종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과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둘째, 4차 산업 시기 디지털 플랫폼 노동의 증가가 사회구조, 기업조직, 작업장 및 개별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판단하고자 준비해야 한다. 특히 4차 산업과 디지털 노동은 기술편향 중심이 아닌 노동 중심적 사고와 판단이 중요하다. 때문에 노동조합은 향후 작업장 변화와 노동의 형태가 미칠 영향에 대해 조합원들이 어떤 사고와 인식을 갖고 있는지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사업장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요구된다.
참고로 독일의 통합서비스노조ver.di는 ‘디지털 시대 좋은 일자리’ 8대 원칙을 제시하고 노사정 논의를 시작했고,「 디지털 사회의 좋은 노동을 위하여」라는 ‘노정 공동 선언’(2015. 3)을 했다. 게다가 「디지털화와 함께 서비스산업의 미래를 만든다」는 ‘노사정 서비스 4.0 공동선언’(2015.4)까지 발표했다.
4차 산업이 서비스, 지식, 노동 등 사회 전체에 큰 변화를 불러온 것은 사실이다. 특히 자본 편향적 기술발전은 사용자 없는 고용과 부의 편향을 초래한다.『 노동의 종말』의 저자인 제레미 리프킨도 “자동화로 인한 실업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기술의 혜택은 우리 모두에게 분배되어야 한다. 로봇의 이득을 나누고, 플랫폼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목소리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인공지능(AI)이 ‘장밋빛 미래’ 보장할까? 거대 기술기업이 지배하는 세상, 다수 직업 사라지며 불행해질 수도 …… ‘노동’이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면 ‘일’은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것, 정부는 ‘일의 윤리’ 재정립하고 로봇세를 도입해야 한다!” (팀 던롭, 『노동 없는 미래』)
이미 국제노동기구ILO나 유럽연합EU은 “보호를 필요로 하는 노동”의 개념과 규제를 제시한 바 있다. 최근에 독일은 ‘노동 4.0’을, 프랑스는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이들 모두 노동의 관점에서 4차 산업을 접근한다. 대체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해법들이다. 이제 우리도 노동의 인간화를 위해 미래를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사회적 대화와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