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도역 추락사고
7월 23일 오전부터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이날은 바로 오후 1시부터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시청 앞 천막농성 돌입 기자회견'이 세종문화회관 거리에서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기자회견 후 처음으로 '장애인과 함께 버스를 탑시다!' 투쟁을 계획한 날이기도 했다.
그러나, 하염없이 오는 비는 장애인들이 외출하는 것을 가장 힘들게 하는 장애물이었다. 오전부터 봇물처럼 쏟아져 걸려오는 전화에서도 비가 오는데 그대로 진행하는지를 연신 물어댔다. 하지만,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해온 투쟁인데…. 비가 온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힘들고 외롭기는 어차피 마찬가지였다. 비가 와서 몇 명 모이지 못한다고, 아니면 조금 더 많이 모인다고 크게 달라질 것 없는 투쟁이었다.
시청 앞 천막농성을 시도하기까지는 참으로 힘든 과정이었다. 지난 1월 22일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수직형 리프트가 추락하여 장애인이 사망한 사고 이후, '오이도역 장애인용 수직형 리프트 추락참사 대책위원회(이하 오이도대책위)'가 조직되어 △ 보건복지부장관, 산업자원부장관, 철도청장 공개사과, △ 책임자 처벌, △ 장애인의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권 보장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관계당국은 유족에게 1억8천만원이라는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3일만에 전격 합의하고, 사건을 무마하려 했을 뿐 오이도대책위의 요구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이에, 2월 6일 오이도 대책위는 서울역 광장에서 투쟁결의대회를 가진 후 지하철 1호선 서울역을 30분간 점거했다. 그 결과 정부는 철로를 점거한 2명에게 집시법과 철도법위반이라는 실정법위반으로 450만원의 벌금을 내렸다. 또, 조직 내부에서는 대표를 맡았던 서울지체장애인협회가 투쟁노선의 차이로 탈퇴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오이도역 투쟁은 계속되었다. 2월 26일부터 4월 19일까지 세종로정부청사 앞에서 휠체어 1인 시위를 시작했으며, 3월 9일에는 서울역과 청량리역까지 휠체어장애인들이 한 줄로 정렬하여 한 정거장씩 타고 내리는 지하철 연착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장애인 이동권 확보가 사고에 따른 사안별 대응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인식 하에, 대중교통 이용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장기적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지하철 타기 투쟁을 마지막으로 오이도 대책위를 해산하고,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를 발족했다.
조직내부의 어려움
장애인 이동권 쟁취가 당연한 구호임에도 불구하고 투쟁방법과 강도 차이에 따른 갈등은 내부에서 계속 제기되었다.
문제로 제기된 부분은 과연 '쟁취!'라는 말이 장애인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천과제인가 라는 문제였다. 오히려 시혜와 온정의 시각으로 길들여진 일반인들과 특히 착하고 순종적인(?) 장애인, 그리고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 있는 여러 장애인단체들에게 거부감만 일으키고 대중으로부터 고립되어 혼자만 자위하는 투쟁이 되지 않을까 라는 염려가 앞섰던 것이다. 또, 철로점거와 버스점거 등의 투쟁을 80년대 투쟁방식이라 비판하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일반인들의 발목을 잡는 집단이기주의라는 비난의 화살을 받기도 했다. 또, 시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계획했지만 과연 몇 명이나 농성에 함께 할 수 있을 것인지, 재정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도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나 더 이상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누군가 장애인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안 이상 이러한 어려움들은 극복해야 할 과제였다. 이에 서울지체장애인협회 등 대규모 단체들이 천막투쟁에 불참을 밝힌 상태에서 소규모 장애인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천막농성을 이끌어가기로 했다.
시청 앞 천막투쟁
이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철저하게 소외되고 배제되어 있으며, 차별받고 있다. 이와 함께, 장애인들도 그 모순된 현실에 체념하고 순종하여, 마침내 스스로 억압을 자초하고 유지하는 상황을 초래해왔다.
천막투쟁을 준비하면서 나타난 여러 어려움은 모순된 현실과 장애인 의식에 대한 비판을 통해, 무기력한 우리 자신의 저항을 조직하기 위해 치루어야 할 대가였다.
천막투쟁에 소요되는 재정은 우선, 200만원을 빌려 뱃지 2만개를 제작하여 천막농성과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함께 진행하면서 이를 시민들에게 팔아 마련하기로 했다. 또, 투쟁조직으로 천막 농성단을 조직하기로 했다. 수십 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대규모 장애인 단체에 대한 미련은 버렸다. 그들은 정부의 보조금에 단체의 존폐가 달려있기 때문에 행동을 함께 하는 데 선뜻 나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노들장애인야간학교, 피노키오자립생활센터 등 소규모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천막농성단을 조직했다.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천막농성 투쟁을 선포한 7월 23일, 투쟁을 알리는 기자회견 바로 전, 억수같이 퍼붓던 비가 감쪽같이 멈췄다. 그리고 어차피 소수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도 20여명이나 되었고, 함께 하기 위해 온 비장애인들도 생각보다 많았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청까지 '장애인과 함께 버스를 탑시다!' 버스타기 투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청에서 우릴 기다린 것은 전투경찰뿐이었다. 시청 앞에서 쇠사슬로 천막을 묶어가며 이를 설치하려 한 우리의 노력은 방패와 컷트기로 무장한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산산조각 났으며, 이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다치고 연행되었다. 그러나, 부서진 천막뼈대를 옆으로 치우고 그 자리에서 노숙투쟁을 시작했다. 7월 23일부터 29일까지 일주일간 시청 앞 노숙투쟁에서 천막치기를 세 차례 시도했고, 천막에 쇠사슬을 묶어 저항도 해 해보았지만 그때마다 천막은 경찰의 컷트기에 의해 잘리고 압수당했다. 마침내 경찰은 시청 앞에서 60여명을 연행했고, 대신 서울역광장에서 천막농성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서울역 광장 천막농성
7월 30일부터 8월 24일 새벽 경찰과 서울역으로부터 강제철거 당하기 전까지 서울역 광장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했다. 서울역 광장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하루에 3∼4천명의 서명을 받았다. 그 결과 10만 명에 가깝게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쟁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회성의 사업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지난한 과정과 투쟁이 필요한 문제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질긴 투쟁의 과정을 지켜내고, 포기할 수 없는 이동권 쟁취에 대한 절실함을 '백만인 서명운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냄으로써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서명운동의 목적이었다.
8월의 뜨거운 햇볕아래서 버스타기 투쟁, 국무총리 면담투쟁, 시민사회단체연합 서명전,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문화제-버스를 타자!, 그리고 3차 버스타기 투쟁 등 지금까지의 인적·물적 자원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었다.
이제 '무늬만 인간'으로 살 수 없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한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은 사회 속에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집안에서만 살아야 하고, 수용시설에 갇혀 한 달에 한번도 외출하기 힘든 현실에서 어떻게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겠는가. 자유롭고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어야 친구도 사귀고, 교육도 받고, 일도 하고, 결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전체 장애인의 70.5%가 한 달에 다섯 번도 외출하지 못했으며, 37%는 영화도 한번 못 보았고, 60%만이 겨우 초등학교 교육을 받았다. 실업률은 살인적인 수치다. 우리나라는 장애인 문제에 대해 수치스러운 통계치를 자랑하는 비장애인들만의 나라인 것이다. 장애인은 이 사회에서 오직 '무늬만 인간'이기를 강요당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비장애인들에게는 너무나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져 권리라 말하기조차 힘든 이동권을 장애인에게도 보장하라고 주장한다. 이는 장애인에게 피흘려 쟁취해야 할 권리인 것이다.
정부는 지하철 전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지하철을 이용하며 짐짝처럼 들려서 내려가고, 역무원의 눈치를 보고, 누군가의 도움을 쉽게 받기 위해 스스로 착하고 불쌍한 장애인으로 치장하기 싫다. 이제 더 이상 20분∼30분 이상 걸리는 지하철의 리프트를 이용하면서 고장나 시간버리기 일쑤고, 이용하다 떨어져 다치고 죽기도 싫다.
또, 장애인도 대중버스를 탈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감히 버스를 탈 생각을 못하고 살아간다. 버스노선도 모른다. 그러나, 버스가 대중교통인 만큼 장애인도 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장애인들만 탈 수 있는 버스 10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상의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나쁜' 장애인이 되자
장애인이 사회에서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누군가 베풀어주는 시혜나 동정에서가 아니라, 당연히 누려야 할 인간의 권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차별받지 않고, 소외되지 않는 평등한 '인권'의 실현과 사회적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계획, 사회자원의 분배와 집행의 구체적 책임은 바로 정부에 있다. 그러나, 정부는 마치 장애인의 사정을 이해하는 듯하면서 예전보다 나아졌으니 점진적인 변화를 기다리라고 요구한다. 이들은 예전보다 수치상 높아진 장애인 복지실태를 무기로 언제나 무책임한 자신의 행태를 미화한다. 장애인문제를 개인적인 자선의 문제로 변질시키고, 항상 부족한 예산으로 마치 큰 은혜를 베푸는 양 행세하는 것 또한 정부다.
이제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미소를 띠는 정부의 얼굴에 침을 뱉자. 그리고 거짓과 차별의 골리앗 같은 거대한 구조에 저항의 돌멩이를 던지는 '나쁜 장애인'이 되자. 더 이상 '장애를 가졌다는 차이를 야만적인 차별'로 전환하는 이 사회구조와 자본의 모순된 현실에 체념하고 순종하지 말고 저항을 조직해야 한다.
시내버스를 네시간 점거했다. 시민의 발목을 잡았다고 난리치는 이들을 향해, 도로교통법, 집시법을 위반했다고 엄포를 놓는 이들을 향해, 위선적인 미소를 짓는 기만적인 정부관료들을 향해, 돌멩이를 던져야 한다. 이제 이 사회와 정부가 답할 차례다. 계속적으로 장애인을 격리하고 배제하는 이 사회구조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