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섭에 들어가며
전국금융산업노조(이하 금융노조) 2001년 산별 임단협이 8월16일에 끝났다. 이는 금융노조가 4월19일 22개 은행장 앞으로 2001년도 단체협약개정안을 제출한 이래, 4개월 동안 수 차례에 걸친 노조측 임단협 담당 실무자회의와 대표자회의, 6차에 걸친 노사 대표자교섭과 2차례의 노사 실무자합동회의의 결과였다.
올 임단협은 시작부터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이는 지난해 파업으로 인한 금융노조 지도부의 구속과 자본의 계속되는 노동권 유린,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확산 때문이었다. 구체적으로 공적자금 투입 은행인 한빛·경남·광주·평화·서울·제주은행 등 6개 은행의 경우, 3급 이상 직원은 1/4분기까지 계약연봉제, 4급 이하 조합원은 4/4분기까지 집단성과급제를 강요당했다. 이중 한빛은행은 이미 계약연봉제를 3년 전부터 도입했고, 집단성과급제 도입을 위한 정부와 사측의 압박도 만만치 않았다.
뿐만 아니라 위 6개 지부의 경우, 공적자금특별관리법에 근거하여 계약연봉제 등 노동조건과 관련된 계속적인 개악이 예상되었다. 금융노조는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교섭권이 본조에 있음을 사용자에게 주지시켰다. 또, 지부사업장에서 사용자가 노사협의회에서 교섭할 것을 요구할 경우, 합의를 거부하고 2001년 임단협과 연계시킬 것을 권고하였다.
국책은행(산업은행, 기업은행) 지부는 배정된 예산이 있으므로 임금부문을 미리 지부에서 교섭할 수 있도록 교섭 위임을 요청해옴에 따라 3월 20일 위임했다. 국민-주택지부는 합병이 진행 중이어서 노사가 본격적인 교섭을 전개하기 힘든 상황에서 당해 지부들의 교섭권위임 요구로 어려움도 있었으나 무리 없이 산별 통일교섭을 함께 이루어냈다.
2. 산별교섭의 목표와 투쟁원칙
올 임단협의 주요 목표와 방향은 △ 산별 체제 확립과 산별 교섭체제 정립, △ 금융구조조정에 대한 공세적 방어와 고용안정 강화, △ 연봉제(계약연봉제)·성과급제(집단성과급제) 확산 등 임금체계 및 고용형태 변경요구 대응, △ 각종 복지제도의 축소 등 실질임금 감축에 따른 대응, △ 주5일 노동제 쟁취, △ 경영참여를 위한 제도구축이었다.
이를 위해, 금융노조는 △ 선단협 후임금, △ 산별 중심의 임단투 및 산별 강화, △ 전 조합원 참여와 단결력 집중을 통한 명실상부한 산별단협 쟁취, △ 구조조정 저지와 고용안정 병행 투쟁 등의 투쟁원칙을 세웠다. 이와 함께, 조기교섭·조기타결의 원칙을 준수하되, 지난해와 같이 연대투쟁을 위한 교두보 확보와 정부의 제2차 금융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활동의 발판으로 교섭을 활용하고자 했다.
금융노조의 교섭방식은 사용자 단체가 없어서 불완전하긴 하지만 산별통일교섭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교섭방식은 산별통일교섭의 기조를 유지(5∼7인의 교섭위원 구성)하면서 필요에 따라 대각선 교섭을 고려하고, 실무단위 교섭위원회를 운영하는 것이다. 금융노조는 산별교섭 기조를 끝까지 유지했으며, 현재 구속으로 신분유지에 문제가 될만한 제39조(해고의 제한)에 관해서는 대각선 교섭을 고려하고 있다. 임금은 산별에서 공통 기본률을 정하고, 각 지부에서 +α를 정하도록 노사가 합의하여 회의록에 명기하였다. 작년과 같이 2차례에 걸친 실무자합동회의에서 주요 사안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안은 의견접근을 보았다. 또, 교섭단위를 대표자교섭회의(노조대표 23인: 사용자대표 22인), 대표단교섭회의(노조대표 5인: 사용자대표 4인), 대대표(노조대표자 1인: 사용자대표자 1인)교섭회의, 임원급교섭회의, 실무자교섭회의 등으로 다양화하여 교섭의 탄력성을 높였다.
3. 단체교섭 진행과정 및 주요 요구사항
금융노조는 2001년도 임단협을 시작하면서 임단협 담당 실무자회의를 통해 임단협 실무자회의를 상시화하고, 4월10일 대표자회의, 4월20일 사측에 요구안 제출, 4월27일 임단투 승리 결의대회 개최를 거쳐 5월부터 교섭회의를 시작하고, 6월말에 타결하기로 계획했었다. 이는 노총의 '5월말 6월초' 임단협 투쟁에 시기를 집중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 사용자들의 교섭해태로 일정이 늦어져 6월 말이 아닌 8월16일에야 마무리될 수 있었다.
임금 및 복리후생비 인상관련
금융노조는 6월25일 임금인상 요구안을 사측에 제출했다. 요구서 내용은 노총이 지도한 임금인상 공동 요구율 12.0%와 복리후생비 인상이었다. 복리후생비의 구체적인 내용은 △ 중식대 정액화 및 통상임금화, △ 사원복지연금 지급기준을 통상임금에서 평균임금으로 변경, △ 교통비 정액화, △ 가족수당 정액화였다.
이에 대해 금융노조는 공적자금 투입사업장은 3.6%, 정부예산을 받는 국책사업장은 6.4%, 기타 나머지 사업장은 12%로 임금인상률을 검토했지만 교섭과정에서 공통 임금인상에 대한 사측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6월말 한국노총 산하 임금타결 사업장 평균인 7.4%를 공통으로 하고, 사업장 사정에 따라 +α를 덧붙일 수 있도록 요구했다. 복지에 관한 사항은 사업장 상황에 따라 각 지부에 위임하기로 했다.
단체협약 개정 관련
2001년도 단체협약에서는 본 협약 개정안 38개 조항(부칙 2개)과 신설 6개 조항, 고용안정에 관한 협약 개정안 3개 조항(부칙 2개)과 신설 2개 조항, 회사발전협의회에 관한 협약 제목을 비롯한 개정안 4개 조항(부칙 2개)과 신설 2개 조항, 교육훈련에 관한 협약(14개 조항과 부칙 2개 조항) 제정을 요구했다. 부칙을 포함해서 총 51개 조항 개정과 10개 조항을 신설하고, 교육훈련에 관한 협약 제정을 요구했다. 이 가운데 중점사항은 다음과 같다.
① 교육훈련에 관한 협약 금융노조는 전 종업원 10%이상 상시 교육훈련 참가 및 총예산의 5%이상을 교육훈련예산으로 편성, 교육훈련위원회 설치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14개 조항의 교육훈련에 관한 협약을 제시했다. 그러나 은행측이 교육훈련사항은 경영권의 문제며, 노조와 협의할 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고용안정 협약에 내용 일부를 첨가하는 데에 그쳤다(첨가내용: 전직 및 창업교육을 희망할 경우 사용자가 이를 지원하며, 세부사항은 조합과 별도 합의하에 정하도록 한다).
② 이익배분제 및 종업원지주제 사용자가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배분제를 도입할 수 있되, 세부사항은 조합과 별도 합의하며, 종업원 지주제를 법제화할 때에는 각 기관의 실정에 적합한 제도를 도입하도록 노력한다는 조항이 신설되었다.
③ 주5일 노동제 주40시간 1일 8시간 요구안은 철회되었으며, 노사정위원회의 '근로시간단축 특별위원회'의 활동을 반영하여 노사간 특위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특위는 노조측 5명(금융노조와 조흥, 한빛, 산업, 신한)과 사용자측 5명(주택은행장, 산업은행총재, 조흥, 한빛은행장, 금융결제원장)으로 구성될 것이며, 9월중 첫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④ 여성할당제 '남녀기회균등부여' 조항을 신설하여 채용, 승진, 교육에 있어 여성에게 균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여성할당 등을 실시하기로 했으며, 남녀고용평등과 관련된 고충을 처리하는 기관도 설치, 운용하기로 했다.
⑤ 비정규직 문제 금융노조의 요구안이 철회된 대신, 노사정위원회의 '비정규직 노동자 특별위원회'의 논의결과를 반영하도록 노력하는 데 합의했다.
여성할당제 도입 및 이익배분제와 종업원지주제에 대한 조항 신설, 주5일 노동제 시행관련 노사간 특위를 설치하기로 한 것은 성과라 할 수 있다. 또, 제정되지는 않았지만, 노조 자체에서 교육훈련에 관한 협약을 제시한 것도 지금까지의 임금중심의 교섭에서 그 범위를 넓힌 주목할 만한 시도였다. 그러나 노조의 경영참가 강화, 취업규칙 제정·변경시 조합과 사전합의, 해고제한 사항 중 '정당한 조합활동으로 형을 받은 자'를 '조합활동으로 형을 받은 자'로 변경, 비정규직 보호 및 정규직화 등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구속자 문제는 해당 은행별로 계속 교섭하기로 했다.
개정안은 2차례 걸친 실무자교섭회의에서 가벼운 사안에 대하여 합의를 한 뒤에 대표자교섭회의에서 추인하고, 중요한 사안은 대표자교섭회의장에서 논의하거나 임원급교섭회의와 대대표교섭 등을 거쳐 노조측 5명(금융노조, 조흥, 신한, 산업, 한빛)과 사측 4명(산업은행총재, 주택, 한빛, 조흥은행장)으로 구성된 대표단교섭에서 결론을 냈다.
4. 교섭을 마치고
2000년에는 산별협약을 제정했고, 올해는 그 내용을 개정했다. 작년이 단협의 기본뼈대를 만드는 단계였다면, 올해는 뼈대를 튼튼히 하고 살을 붙여나가는 단계였다. 작년에는 단체교섭 중 7.11 파업과 사전 집회들이 있었지만 이런 대회들에서는 임단투가 잘 부각되지 않았고, 작년 파업으로 지도부 구속과 간부들이 사법처리 되는 과정에서 본조의 약화와 사업장의 만성화된 구조조정으로 인한 조합원들의 피로가 조직력의 이완을 불러온다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 임단협에서는 금융노동운동의 장기적 발전과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에 전반적 향상을 꾀한 것이 사실이다.
올해는 4월19일 노조의 교섭요구로 시작하여 대표자교섭회의 5회, 대대표교섭회의 1회, 임원급교섭회의 2회, 실무대표교섭회의 5회, 그리고 수 차례의 실무접촉을 통하여 마무리되었다. 교섭 결과, 2001년 임금인상은 한국노총 상반기 타결사업장 평균인상률인 통상임금기준 7.4%+α로 합의하도록 권고하며, 각 기관별로 지부와 합의하여 결정하도록 했다. 단체협약은 본 협약 108개 조항과 부칙 7개 조항, 고용안정에 관한 협약 11개 조항과 부칙 2개 조항, 회사발전협의회에 관한 협약 7개 조항과 부칙 2개 조항으로 정리되었다. 또, 비정규직의 운영, 주5일 근무제, 육아휴직기간 임금지급, 종업원지주제 도입에 관하여는 별도 합의했다. 그러나 단협 제39조(해고의 제한)와 관련 한빛, 국민, 주택은행지부는 조합과 계속 협의토록 했으며, '교육훈련에 관한 협약'은 끝내 제정하지 못했다.
조합원의 관심과 참여를 끌어내야
올 임단협을 평가함에 있어서 우선 교섭단의 교섭위주로 끝냈다는 반성이 필요하다. 단체교섭은 소수 간부들에게 하청을 준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노조는 투쟁조직일 뿐 아니라 대중조직이므로 일상 투쟁에서 조합원의 불만과 요구를 수렴하고, 교섭과정을 제대로 알려 조합원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번 임단협에서도 정부의 제1차 구조조정의 실패를 부각시키고, 제2차 구조조정의 저지를 위한 강력한 공동투쟁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산별의 중요성을 인지시키고 투쟁역량을 강화하려 했으나, 조합원의 관심과 참여를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교섭위주의 협상에 머무르고 만 한계가 있었다. 이는 본조와 지부의 일상 투쟁 부재에서 오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제 단협체결 후, 금융노조에서 실행해야 할 주5일 노동특위 등 후속작업과 각 지부에 내려간 임금과 보충협약을 마무리짓는 과정에서라도 노조활동의 원칙을 충실히 지켜야 한다.
일상 활동에서 임단협을 공동의 문제로
임단협 담당자 토론에서는 오랫동안 임단협에 조합원들의 관심이 없었다는 의견이 나왔다. 임금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 조합활동과 관련한 규범적인 내용은 조합원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는 것이다. 임금인상을 제외한 다른 새로운 방법을 찾기 전에는 조합원 관심 끌기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조합활동에도 문제가 있다. 항상 임단투에 임박해서 투쟁 전략전술에 조합원을 끌어들이려고 하면 이미 늦다. 평상시 일상 활동을 통해서 임단협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내년부터 임단협 교육위원을 구성해 사전 지역별로 순회교육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 산별공동 노보는 불가능하더라도 중요 사안만이라도 공동노보를 통해 홍보해야 한다. 지역별 순회교육과 공동노보는 각 지부별 임단협에 대한 인식 차이를 조절할 뿐만 아니라 임단협을 사업장간 공동의 문제로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다.
30%이상이 비정규직
이번 교섭에서 노사정위의 비정규직 특위 결과를 반영하기로 했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다. 사실 이제는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고 정규직 중심의 운동에 안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은행 종사자 가운데 30%가 넘는 비정규직 문제는 조합원인 정규직의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등 직접 근로조건에 영향을 끼친다는 현실적인 문제와 함께,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차별대우를 받는 인권문제가 서로 중첩되어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조직화는 단순히 조합원 수를 늘리는 것으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금융노조는 이 문제를 오래 전부터 논의해 왔으나 본조나 지부단위에서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 이미 여러 회의에서 비정규직 조직화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논의했다. 대표자회의에서는 비정규직 지부설치를 결의한 바도 있다. 금융노조가 주춤거리고 있는 사이에 농협중앙회에서는 비정규직노조가 자생적으로 조직되고 있다. 금융노조는 현재 비정규조직화에 대한 간부들의 인식 공유와 확산, 실천을 위해 산하 지부 전간부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IMF 관리 경제체제동안 한국경제는 이미 국제경제 속에 편입되었다. 이제 계획적으로 편의상 붙이는 1차, 2차 구조조정이란 말은 없어질 것이다. 금융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에서 자본위주의 구조조정은 항상 일어나고 있다. 자본위주의 구조조정에 대응하는 노조의 자세와 개입이 더 중요해지는 때다. 어떤 어려운 여건에서라도 사업장의 구조는 물론 제반 노동조건 구조를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바꿔가야 한다. 이것은 사회구조를 바람직하게 바꾸는 기반을 노조에서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조는 이러한 자본위주의 구조조정 흐름을 큰 시각에서 바라보고 이를 차단하여, 전체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 투쟁으로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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