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세계화는 이미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국경을 넘어선 자본의 착취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노동조합도 자본의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국제화를 목적으로 국제연대를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5월 영국의 GM공장 폐쇄에 맞서 유럽 5개국의 노동자들이 연대 파업과 시위를 벌여 결국 공장폐쇄를 막아내었고, 지난 8월 남아프리카의 다임러 크라이슬러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파업을 하자 다임러 자본이 생산을 독일로 옮겨가려 했으나 독일 다임러 노동자들의 거부로 결국 남아프리카 노동자들이 물가상승률을 넘는 임금인상을 쟁취했던 사례들이 있다. 이렇듯 국제연대는 초국적자본을 무력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노동자들의 수단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제 한국 노동운동도 국제연대를 말이 아닌 실천으로 조직할 때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 국제 노동운동, 특히 제3세계 노동운동에서 한국 노동운동은 명성이 자자하다. 하지만, 밖으로 비쳐지는 모습만큼 우리가 국제연대를 고민하고 있는가. 사진은 회의에 참가한 3국 금속노조 관계자 ]
노동의 세계화를 향한 첫걸음
작년부터 금속산업연맹은 선진국 노동조합들과의 교류를 확대하여 개도국 노동조합들, 특히 남아프리카와 브라질과의 교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선진국 노동조합과의 교류는 높은 수준의 정보와 선진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노사관계를 보기 위함이었고, 개도국 노조와의 교류는 다국적 기업의 경영전략과 노동통제가 선진국과 어떻게 다른지와 노동조합의 투쟁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2001년 초 남아프리카금속노조(NUMSA) 위원장은 한국의 금속노조 출범을 축하하면서 세 나라 금속 조직간의 교류를 적극 제안했고, 지난 9월 이탈리아 금속노조 대회에 참가한 브라질 금속노조 위원장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그 결과 세 나라 금속노조 대표자들은 지난 10월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동안 브라질에서 만나 앞으로 3국 교류를 어떻게 진행해 나갈지를 결의했다.
브라질 회의에는 COSATU 산하 남아프리카금속노조에서 무투투젤리 탐 위원장, 실룸코 사무처장, 오마르 회계감사, CUT 산하 금속노조(CNM)에서는 기바 위원장, 페르난도 사무처장, 국제담당 실비아 및 정책 담당자, 금속산업연맹에서는 문성현 위원장과 필자가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압력 하에서 3국 금속노동조합운동이 무엇을 할 것이지를 논의하고, 공동 실천 계획과 2002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브라질 금속노조 기바 위원장은 "국제 노동운동에서 세 나라 금속노조운동의 공동 행동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3국 교류가 "정보교류 수준에서 나아가 공동 실천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사업으로 다국적기업을 감시·규제 활동의 필요성을 제안했고, 이를 통해 자본의 세계화 속에서 노동자들의 세계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브라질과 남아프리카 상황
회의를 통해 접한 브라질의 상황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웠다. 한국 정부는 그래도 약과라고 생각될 정도로 브라질 경제는 일관되지 않은 외환·통화 정책으로 불안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한국보다 더 심한 대미 시장 의존으로 9·11 뉴욕테러 이후 불황은 더 악화되고 있었다. 이에 더해 아르헨티나의 디폴트 상황이 경제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었다. 임금은 형편없이 낮았고, 2001년 9월 현재 전국 평균 실업률이 17.7%였다.
하지만, 브라질 노동운동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조직률과 노동자당(PT)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통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해갈 태세다. 구조조정으로 정리해고가 대폭 진행되어 조직률이 크게 떨어졌음에도 조직률은 22%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금속 노동자들이 가장 집중되어 있는 부문은 전자, 전기와 자동차로 각각 26만 명과 27만 명의 조합원이 일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노동운동은 과거 인종차별 정권을 물리치고 등장한 ANC 정권이 이전 정권 하에서 고통받았던 흑인의 아픔을 치유하는 정책을 실행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ANC 정권은 지금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빈부격차가 심각해지고 있다. 현재 경제성장률은 4%대지만 불안한 상황이며, 외국인 직접투자율은 초기에 늘어나다가 최근에 다시 주춤하고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 감소는 다시 실업률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국민의 80% 이상이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10% 정도가 경제적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한다.
두 나라 자동차 산업 동향
1992년부터 1997년까지 90만대∼200만대의 자동차 생산을 이뤄내는 등 브라질 자동차 산업은 빠르게 성장했으며, 이 시기 실질임금은 20%나 인상됐다.
그러나 브라질 정부는 자동차 공장을 짓는 다국적 회사에 설비 부지의 무상제공, 3.4%에 달하는 낮은 이자율(보통은 25%), 상환기간을 10년으로 확대하는 등 파격적인 혜택을 주었다. 이 때문에 북미의 주요 자동차기업이 브라질에 투자했다. 유럽 이상의 규모로 성장한 브라질의 자동차 시장 역시 투자자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왔다. 6개가 넘는 외국 자동차 업체가 18개 공장에서 생산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들은 경제 위기로 자동차 수요가 떨어지자 철수하거나 생산 활동을 중단했고, 이로 인해 실업이 늘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자동차 산업은 완성차, 부품, 타이어 등 3대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동차 산업은 남아프리카 경제에서 광업과 농업 다음으로 큰 규모며, 전체 GDP의 5.4%를 차지한다. 자동차 판매를 보자면 세계 18위다. 대략 10만 명의 노동인구가 완성차, 부품, 타이어 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딜러까지 합치면 17만5천 명이 일하고 있다. 인력 구조조정과 고용 감소로 1995년이래 고용 증가는 없으며, 지난 6년 간 자동차 산업에서 사라진 일자리 수는 약 1만8천명을 넘는다. 이는 기술발전, 생산방식 변화, 아웃소싱과 하청 증가, 인수합병, 수입 증가 등이 그 원인이다. 남아프리카 금속노조는 정부가 추진하는 자동차 산업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산업정책을 결정하고 있다. 관세인하와 수출지향적인 자동차 산업정책을 둘러싸고 정부와 노조가 대립하고 있다.
[ 브라질 금속노조 기바 위원장이 금속산업연맹 문성현 위원장에게 브라질 노동자당(PT) 사진첩을 선물하고 있다. ]
통큰 단결을 향해
브라질 사례는 다국적기업에 대한 노조의 대응 전략을, 남아프리카 사례는 노조의 산업정책참여 문제를 고민으로 던져주었다. 이런 점에서 세 나라 노조가 결정한 향후 2년 간의 인적 교류는 한국 금속노조운동에 크게 유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밖에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에 노조가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를 토의했고, 투쟁 전선에 개도국의 노동조합, 특히 세 나라 금속노조가 더욱 적극 결합할 것을 결의했다. 이 연장선에서 3국 금속노조는 1월말 2월초 브라질 포토 알레그레에서 열리는 세계사회포럼에 적극 참가하기로 결정했고, 세계사회포럼에서 노동조합의 독자 포럼을 준비해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에 노동조합의 입장과 요구가 반영되도록 노력키로 했다.
국제 노동운동, 특히 제3세계 노동운동에서 한국 노동운동은 명성이 자자하다. 하지만, 밖으로 비쳐지는 모습만큼 우리가 국제연대를 고민하고 있는가? 이제 한국 노동운동이 국제 연대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세 나라 금속노조운동의 교류는 의미가 있으며, 이런 노력이 외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국적의 다국적기업들의 횡포를 감시·감독하는 사업으로 이어지는데 기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