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대선과 함께 한해가 저문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경선 레이스는 막을 내렸지만 이번 선거는 마치 누군가 연출해낸 드라마와도 같은 것이었다. 국민경선제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불이 붙은 대선 레이스가 마지막까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만큼 파란과 굴절을 거듭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모습들이 나타났다. 이를 굳이 모아 본다면 아마도 국민들이 지닌 '변화에 대한 바람'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다.
파란과 굴절을 거듭한 대선
우선, 어느 기자가 지적한 것처럼 '바꾸자'가 후보들의 슬로건으로 등장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다만 바꾸는 대상이 이회창은 정권, 노무현은 정치, 권영길은 세상으로 갈렸고 국민들은 그 중간치인 '정치 바꾸기'를 선택한 것이다.
둘째, 국민경선제 또는 당원에 의한 후보선출에서 나타난 정치과정의 민주화이다. 이는 지역감정에 기댄 위로부터의 보스 밀실 정치의 위력이 무너지고 밑으로부터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틈새가 열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셋째, 전체적으로 보수와 개혁·진보의 대칭이 선명해졌고 국민들은 변화를 지향하는 개혁·진보 쪽을 지지하였다. 최근 선거에서 연이어 압승을 거두었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보수적 회귀 경향을 거부하고, 기득권세력으로부터 노골적인 기피대상으로 지목되면서 개혁의 지속을 주장한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 보수세력인 정몽준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킨 것, 그리고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 대한 지지도를 높였다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6월 지자체선거에서 8.1%의 지지율을 확보한데 이어 이번 대선에서는 진보정당의 위상과 차별성을 확실하게 각인시켰고 제3당의 위치를 분명히 하였다.
아무튼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이미 정치권에서는 권력이양과 배분, 그리고 정치판도의 재편을 둘러싸고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해집단들도 새 정권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두고 나름대로 주판알을 열심히 굴리고 있을 것이다. 노동운동 진영 역시 예외가 아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느 세력이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노동운동은 많은 영향을 받기 마련이고, 따라서 노동운동 진영은 활동 방향을 정하는데 새 정부와의 관계를 어떻게든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정치구조는 대통령중심제이다. 제왕적 행태라는 지적에서 풍기는 것처럼 통치의 권한은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고, 그 범위와 위력은 참으로 넓고 막강하다. 따라서 대통령이 노동문제에 대해 어떤 관점과 사고를 갖고 있는가에 따라 노동정책은 달라질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와 그 가족은 국민의 대다수를 점하고 있으며, 노동운동은 정치·경제·사회 변화의 중요한 축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통치 대상이다. 더욱이 대선 과정에서 노동조합 조직 내부에는 각 후보에 대한 지지를 둘러싸고 분쟁과 갈등까지 있었던 터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권력이 일방적으로 노동운동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권력의 노동정책은 여러 가지 환경변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정치정세와 경제정책의 기조, 자본측의 대응방식, 지지기반, 정당의 구조와 성격 등이 그것들이다. 특히 결정적인 것은 노동운동이 어느 정도의 역량을 갖고 있고 국가권력의 정책변화에 대응하여 어떤 전략을 선택하고 어떤 전술을 구사하는가에 따라 노정관계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노정관계는 환경변화를 배경으로 한 국가권력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상대적인 힘 관계에 의해 변화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권에서의 노정관계
노무현 당선자는 누구보다 노동문제와 노동운동에 정통한 것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인물이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 '일할 맛 나는 사회'라는 노동정책 기조 아래 '보람 있는 일자리의 창출', '사회통합적인 노사관계의 구축', '삶의 질 향상'을 실현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하였다. 또 노사화합과 협력증진에 직접 나서겠다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의 이런 약속이 실현되기를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지만, 우선은 현재의 어두운 노정관계를 개선하는데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기의 노정관계를 보는 노동운동진영의 평가는 매우 어둡다. 바깥 연구자의 분석도 장기간 심각한 대립과 갈등 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노정관계의 한 축인 민주노총의 단병호 위원장이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는 현실이 이를 단적으로 상징해준다. 어느 누구보다 노동문제를 잘 알고 노동자들처럼 억압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노동문제를 누구보다 잘 풀어갈 것으로 기대했던 김대중 정권 아래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잘 알려진 대로 김대중 정권은 IMF 경제위기를 떠안고 출범하였다. 김대중 정권은 IMF가 요구한 재정긴축과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그대로 수용하였고,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동계를 설득하고 위기 극복에 동참시킨다는 명분 아래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어 '사회적 합의주의'를 추진하였다. 김대중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전면적인 개혁 조치를 약속하는 한편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일방적으로 밀어 부쳤다. 구조조정은 인원감축에 집중되었고, 공공부문에서 민간부문으로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노동조건이 파괴되고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하였으며, 비정규직의 급증 등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급격하게 진전되었다.
노동조합운동 내부에는 구조조정 대응을 둘러싸고 심각한 조직적 혼란이 야기되었다. 그에 비해 정부가 약속했던 개혁 조치들은 대부분 미진하였고, 합의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정부의 구조조정이 신자유주의 정책이라고 강하게 반발하였고, 특히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를 나가버렸다.
신자유주의와 합의주의의 충돌
이처럼 김대중 정부는 처음부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추구하는 한편으로, 노사정위원회 등 '사회적 합의주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두 가지 정책은 서로 모순되어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노동조합 진영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한국노총마저 정책연합을 포기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김대중 정부는 집권 후반기로 올수록 점차 합의주의 정책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 정책 쪽으로 방향을 잡아감으로써 노동운동의 저항을 자초하였다. 노동조합의 저항에 대해 김대중 정부는 포섭과 배제, 사탕과 채찍의 분리 전략을 교묘하게 구사하면서 정책 목표를 관철시키고자 하였다. 노사정위원회에서는 한국노총만을 파트너로 하여 주5일 근무제와 같은 중대한 개혁과제를 논의하였고, 노사정위원회를 뛰쳐나가 정면대결 태세로 대항하는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법치의 잣대를 적용하였다.
그 결과 인권정부라고 자처하는 김대중 정부에서 김영삼 정부보다 훨씬 많은 노조간부들이 구속·수배되었다.
이처럼 김대중 정부가 강경책을 휘두르는 이면에는 노사관계의 민주화와 실업대책 및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작용하고 있었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는 과거 노사관계의 걸림돌이었던 전교조와 민주노총의 합법화를 승인하였고, 공무원노조 인정을 약속하였다. 실업대책을 위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고, '생산적 복지'를 의욕적인 사회복지정책의 지표로 내세워 추진하였으며, 주5일 근무제 도입에도 강한 의욕을 보였다. 실업대책은 많은 문제를 드러냈지만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추진한 것치고는 경기회복과 함께 실업률이 줄어들면서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펑가되었다. 또한 생산적 복지도 오래동안 '선성장-후분배'의 정책기조에 매몰되어 방치되었던 삶의 질 향상을 시혜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리로서 인정하려는 특징을 보였다. 그리고 각종 사회보험과 최저임금 적용을 모든 사업장에 확대하고, 저소득자들을 대상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을 법제화한 것은 획기적인 조처로 평가될 만 하였다.
하지만, 실업·복지정책은 구조조정과 서로 모순됨으로써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로 실업자를 양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로부터 발생하는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김대중 정부가 내세웠던 생산적 복지는 구조조정과 고용조정에 따른 실업의 발생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신속한 구조조정과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하여 경제를 성장시키고 이를 통해 고용 창출을 촉진해 복지를 증진시킨다는 논리에 서 있었다.
또한 주5일 근무제에 대해 김대중 정부는 스스로 마지막 개혁과제라고 의욕을 보이면서도 실제 추진과정에서는 안건 제출자의 처지에서 조금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오로지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합의만을 요구하였고, 정부안은 잘해봐야 노사간의 주장을 절충한 수준에서 마무리하려 하였다. 그 결과 노사 양측으로부터 입법 반대의 협공을 당하게 되었고, 국민의 70%가 지지한다는 주5일 근무제 논의는 다음 정권으로 넘겨지게 되었다.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에 강한 의지를 갖지 않고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노사합의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노동시간 단축은 대다수 국민의 삶의 질을 바꾸고 고용을 창출하지만, 자본에게는 비용 증가와 이윤 감소를 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노동 유연화와 비정규직 확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노동 유연화를 급속히 확산시켰다. 경영의 합리화 방편으로 제기된 노동 유연화는 대량실업을 줄여 사회적 안정을 찾아야 한다는 정책적 고려를 배경으로 더욱 현실적인 대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마침내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섰고, 정규직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불과 2∼3년 사이의 일이었다. 비정규직들은 정규직에 비해 절반 정도의 임금을 받으면서 언제든지 직장을 잃을 수 있는 불안한 처지에 놓여 있으며, 사회보험 적용에서도 대부분 배제되어 있다. 한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방인과 같은 존재로 추방된 것이다. 빈부 양극화나 20대 80 사회의 도래는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노동자 증가 때문이다.
IMF위기와 신자유주의 정책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정권 말기까지 이어졌다. 경제특구법과 기업연금제 도입을 추진한 것 등이 그것들이다. 경제특구법은 지역을 지정하여 외국자본이 들어와 자유롭게 활동하게 보장해주는 법이다. 이미 30년 전에 만든 자유무역지역을 확대하여 부활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자유무역지역은 외국인 외국기업의 투자유치를 촉진하기 위해 특별히 정한 경제자치구이다. 여기에 입주하는 기업들은 다양한 금융 세제상의 혜택이 주어진다. 취득세, 등록세, 종합토지세 등 지방세는 15년 동안, 법인세, 소득세 등 국세는 7년 동안 100% 감면된다. 공장 용지도 거의 무상으로 임대해준다. 기계·자동차·금속·첨단기술 업종과 1천 만 달러 이상 투자하거나 외국인 지분이 30%이상일 경우는 50년간 무상으로 부지를 빌려쓸 수 있다.
경제특구는 자유무역지역보다 훨씬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외국인 투자 지분이 10% 이상일 경우 기업활동 뿐 아니라 주거·연구·교육 등 지역전체의 생활환경이 외국인들이 들어와 불편 없이 살수 있을 정도로 조성된다. 국제고등학교와 외국대학이 설립되고 외국인을 위한 병원·금융기관·방송 등 편의시설도 갖추게 된다. 특히 외국기업들은 10%이상만 투자하면 각종 노동기준을 적용 받지 않는다. 파견근로자를 무제한 쓸 수 있고 월차휴가나 생리휴가를 주지 않아도 된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도 면제된다.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헌법상 기본권인 근로권과 평등권을 완전히 박탈해버린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자본의 세계화가 범람하는 상황에서 IMF 위기 극복을 지상과제로 안고 등장하였다. 김대중 정부는 IMF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충실히 추진하였다. 그 과정에서 거대재벌과 기득권세력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였고, 노동 쪽으로부터도 세찬 저항에 부딪쳤다. 정치적 소수정권으로서 '원조 보수'라고 자처하는 자민련과 연합한 김대중 정부는 끝내 재벌개혁에 대하여 절충과 타협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노동 쪽에 대해서는 강경한 대응으로 일관하였다.
김대중 정부는 대외개방은 저항할 수 없는 세계적 대세이며, 여기에 순응하는 것을 정책기조로 설정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며, 외국자본의 유치가 국가경제 부흥의 필수조건으로 강조되었다. 경쟁력 강화는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는 논리에 다름 아니었고, 노동자의 양보와 희생은 국가 대계를 위한 일시적이고 불가피한 대응으로 치장되었다. 따라서 노동정책은 경제정책의 하위 체계에서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었고, 이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은 제 밥그릇만 챙기는 집단이기주의의 발로로 매도되었다.
여기에 자본가들의 집요한 공격은 노동자들을 계속 자극하고 있다.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이유로 생리휴가, 연월차휴가를 폐지 또는 축소함으로써 전반적인 노동조건의 악화를 추진하는 한편, 각종 부당노동행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업무방해를 빙자하여 노조간부들에 대한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청구가 노조탄압의 새로운 수단으로 등장하였다. 거기다가 두산중공업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단체협약 효력에 대한 해지통보를 통해 단체협약을 무효화시키는 횡포도 서슴지 않고 있다.
노동운동의 조건과 상태
이제 새해가 밝고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 김대중 정부의 정책기조를 규정했던 환경요인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리고 악화된 노정간 대립과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풀 것인가? 아마도 이것이 새 정부의 노동정책의 행로를 가늠하는 첫 번째 시험이 될 것이다.
노동조합운동은 김대중 정부 5년 내내 치열한 움직임을 보였다. 임단투는 1년 내내 이어지고, 한해도 거르지 않고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민주노총은 후반부로 올수록 일체의 교섭이나 타협을 거부한 채 더욱 완강한 저항의 모습을 보였다. 그 이유는 구조조정과 노동의 유연화로 집약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에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사업장별로 또는 업종에 따라서는 전투적 조합주의에 걸맞은 치열한 투쟁을 펼쳤고, 민주노총은 정권퇴진으로까지 전선을 확대하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더러는 구조조정의 속도를 늦추기도 하고 요구의 정당성을 입증해내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깎였던 임금 및 노동조건을 회복시키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조합 진영은 운동 상황을 위기 국면으로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개혁의 주제는 기업별노조의 극복과 산별노조의 건설, 운동이념의 정립, 조직운영의 혁신, 정치세력화 등으로 집약되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해법을 찾기 위한 논의들이 이어졌다. 민주노총의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와 한국노총의 '21세기위원회'가 그것이었다. 한국노총의 경우, 최근 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에 나서기도 하였고, 정치방침을 바꾸어 독자적인 정당으로서 '민주사회당'을 발족시키기도 했다. 조직 형태와 관련해서는 산별노조 건설운동이 진척되어 보건의료노조, 대학노조, 택시노조, 금융노조, 금속노조 등이 출범하였다. 특히 교원노조는 법률상의 산별노조로 인정받게 되었고, 대부분의 산별연맹들이 산별노조 전환을 최대의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한편 정치적으로는 민주노동당이 6월 지자체선거에서 8.1%의 지지를 받아 제3당으로 부상함으로써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진보정당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그 여세를 몰아 대선에서는 민주당과 한나라당 후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TV공개토론에 나서 진보정당의 면모를 국민들 뇌리에 깊숙이 각인시킴으로써 다음 총선에서의 기대를 한껏 높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노동조합운동 진영은 한시도 쉴새없이 권력과 자본의 도전에 대응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싸워왔다. 그 과정에서 현장의 동력이 완전히 소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완강한 투쟁의지가 노동자들 사이에 강인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이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는 조짐은 발견하기 어렵다. 어쩌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우선 투쟁 면에서 전체적으로 구조조정을 저지하거나 그 방향을 근본적으로 선회시키지 못하였으며, 노동조건에서도 과거의 것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것으로 일관하였다. 또한 전체적으로 투쟁이 그 궁극 목표라 할 수 있는 조직력의 확대 강화에 얼마나 기여했는가에서도 회의적이다.
노조 조직률은 12%대에 정체되어 노동자계급의 대표성을 위협하고 있으며, 조만간 조직확대가 진전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확인해 주는 요소는 극히 적다. 이 때문에 기업별노조체계가 지속되는 한, 노동조합은 중소영세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소외시킨 채 공공부문과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만을 주인공으로 섬김으로써 '노동귀족'의 무대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여전히 기업별노조의 틀과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새로운 전환점을 찾느라고 고뇌를 거듭하고 있고, 한때 열심히 모색되었던 이념 정립은 종적을 감추어 버리고 이심전심에 의존하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게다가 조직 내부에는 정체성이나 위상, 역할이 명확하지 않은 정파 또는 파벌간의 대립과 갈등이 조직의 결합력과 집중성을 갈수록 약화시키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노동자의 소박함과 순수함으로
새해를 맞는 노동운동의 모습은 어쩌면 명동성당의 들머리에서 한겨울 찬바람에 맞서 7개월째 버티고 있는 보건의료노조를 통해 표현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권력과 자본 이외에 가톨릭 세력이라는 예상치도 못한 새롭고도 거대한 도전에 맞서 나아가기도 어렵고 물러설 수도 없는 형국이 마치 전체 노동운동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외로운 자, 쫓기는 자의 최후의 피난처, 민주화의 성지라는 명동성당도 계급적 이해관계에서는 자본의 논리에 선다는 냉엄한 진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앞으로 뛰쳐나갈 수 없는 힘의 한계가 어쩌면 오늘의 운동정세를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한계가 있지만 노동기본권이 과거에 비해 신장되었고, 노동자들의 의식도 크게 높아져 있음에도 왜 노동운동은 이처럼 힘든 발걸음을 할 수밖에 없는가 하고 많은 활동가들이 울분을 토하지만 쉽사리 해법을 찾지 못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새 정부 들어서서도 이같은 어려움이 쉽사리 해소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 어려워질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형세다. 노동자계급이 세운 정권이라 해도 자본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노동운동의 발전을 담보해주기란 만만치 않을 텐데 하물며, 완강한 보수 기득권세력에 둘러싸여 있는 새 정부와는 원하든 원치 않든 부딪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본은 눈부실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노동기본권의 보호장치를 무력화할 만큼의 정교한 통제·억압·지배수단을 마련하면서 정부와 노동을 압박해 올 것이다.
문제의 해결점은 노동운동의 주체역량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노사관계든 노정관계든 궁극적으로는 노동운동이 어떻게 주체역량을 키워 대응해 가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운동 주체는 중장기 전망을 세우고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가를 다시 점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운동이 처한 상황을 차분하고 겸허하게 진단하는 일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운동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구조와 관성이 무엇이며,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를 찾아내서 고쳐야 한다.
또 다시 당면 과제를 둘러싼 투쟁이 불가피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 사람이 깃발만 들면 대중은 열심히 따라가는 식의 투쟁은 되풀이하지 말자. 투쟁목표에 대해 광범한 대중토론을 거치고 조합원 대다수가 투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서 투쟁에 나서자는 것이다. 투쟁의 성과가 조직력의 확대 강화라는 기본 목표에 기여하고 중장기 발전 전망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운동방식을 바꾼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위기극복의 역사도 일천하거니와 거의 50년 동안 독재정권과 독점자본의 억압아래 누적된 조직체계와 활동의 관성을 하루아침에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운동은 한편으로는 현실운동이기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뛰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상황 변화는 보이는데 생각과 실천방식을 바꾸어 대응하려 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대비하는데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 노동조합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운동의 혁신이 다시 지지부진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비관해 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운동이 지닌 모순과 시행착오는 운동의 발전을 위해 겪어야할 과정이기 때문이다. 길게 낙관성을 갖고 착실하게 준비해 가자.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서 바느질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것은 노동자계급이 지닌 소박함과 순수함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하나로 가려는 열정이다. 아무리 현실이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노동자의 심성과 바람을 잃는다면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가 되려고 아래로 흐른다
류영국
물은 합치려는 의지로 흐른다
돌부리에서, 가랑잎 틈새에서 스며 나온 물은
흐르다가 바윗등이 줄기를 갈라놓으면 옆으로 비켜서 만나고
둑을 쌓아 막으면 틈새로 새어 나와 다시 만난다
그렇게 만나고 합쳐서 강이 되어 흐르고
강물은 다시 합쳐 바다에서 하나로 된다
물소리는 서로가 그리워서 울부짖는 외침이다
그리움 끝에 만난 물줄기인지라 포구에 다 와서는
웃음 짓는 만월을 띄우고 흐른다
물의 여정은 하나로 되어 가는 과정이다
나뭇가지는 자라면서 갈라지지만 물은 갈수록 합쳐진다
하나가 되려고 아래로 아래로만 흐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