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민주노동당

노동사회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민주노동당

admin 0 3,912 2013.05.08 09:40

 


사회경제적 계급·계층 분열을 정치가 제대로 반영할 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가진 자와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정당들끼리의 경쟁만 존재하는 한국 정치는 아직 제대로 된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이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을 표방하고 나선 진보적 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의미는 정치사적으로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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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나빠진' 한국 사회

2002년 대선은 3김 시대로 대표되는 1987년 정치체제의 종언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1987년 이후 이뤄진 민주화는 민주주의의 전진보다는 자유화의 진전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진행된 자유화가 군사독재체제와 비교할 때 의미 있는 발전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성숙시켰다고 보기는 힘들다. 정치의 자유화는 보수정당들의 정치적 독점을 확대했을 뿐 진보정당의 정치 참여는 여전히 배제되고 있다. 경제의 자유화는 재벌의 급속한 확장과 더불어 물신주의 조장으로 이어졌다. 사회의 자유화는 다원주의와 개인주의의 허울 아래 공동체의 해체와 사회 붕괴로 치닫고 있다. 언론의 자유화는 조선·동아·중앙으로 대변되는 언론재벌의 성장을 낳았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부를 기준으로 한 독점과 배제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 15년 동안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는 어느 정치학자의 지적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치 영역에서 찾는다면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지속 때문이다. 21세기 첫 대통령을 뽑는 12월 대선의 의미는 다름 아닌 여기서 찾아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번 대선은 2004년 총선의 전초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대선에서 얼마나 의미 있는 성과를 얻느냐의 문제는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몇 석을 차지하느냐와 바로 연결된다. 진보정당의 의회진출 성공 여부는 향후 10∼15년 동안의 한국 정치판도를 규정짓는 중요 요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선전 여부는 1987년 이후 시작된 민주주의로의 이행(transition)을 민주주의의 공고화(consolidation)로 연결시킬 수 있을 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보수의 정치독점을 깨야 

지난 6월13일 지방선거 정당투표에서 민주노동당은 130만 표(8.1%)를 얻으면서 자민련을 제치고 3당의 지위를 확보했다. 이번 대선에서의 득표 목표는 6월 지방선거에 이어 제3의 정치세력으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지는 데 있다. 9월 추석 전후로 1%대에 머물렀던 권영길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10월을 거치면서 차츰 상승해 지금 4%대에 달하고 있으며, 당 지지율은 5% 안팎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현재 권영길 후보와 당을 지지하는 핵심층은 연령별로는 삼사십대, 직업별로는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노동자, 지역별로는 수도권과 영남이다. 이번 대선의 승패는 이들 핵심층을 바탕으로 지지층을 얼마나 넓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 대선의 조직적 목표는 전국적 대중정당으로의 도약이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2002년 10월 현재 3만 당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당비를 내는 당원을 가장 많이 둔 정당이다. 매달 수십 수백의 신규당원이 민주노동당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2000년 1월 창당해 2년을 갓 넘긴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당원 5만, 핵심 지지자 10만을 둔 전국정당으로 발전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운동의 측면에서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선을 통해 진보진영의 정치적 대표체로서의 위상을 확보할 것이다. 창당이래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와 민중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 평화통일과 민족자주를 이뤄내기 위한 반미투쟁에 앞장서왔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공세에 맞서 노동권과 인간다운 삶을 지키려는 노동자 투쟁의 현장에 민주노동당은 늘 함께 했다. 농산물 시장 개방의 압력에 맞서 농민들의 생존권을 지키려는 투쟁에 민주노동당은 함께 했다. 주거권과 생존권을 지키려는 도시빈민들의 투쟁을 민주노동당은 지지해왔다. 이번 대선은 민주노동당이야 말로 노동자·농민·도시빈민을 위해 투쟁하는 정당임을 전국에 알리는 마당이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명실상부한 진보적 대중정당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궁극적인 목표는 보수정당들간의 권력투쟁에 식상한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를 바꿔내고 한국 정치의 미래를 개척하는데 있다. 민주주의는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계급들의 이해 갈등과 의견 차이를 조정하는 정치체제'다.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한국 정치판도를 가진 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수정당들끼리의 경쟁구도에서 가진 자와 일하는 자의 경쟁구도로 바꿔낼 때만이 가능하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 민주당, 국민통합21 등 보수정당들끼리의 정치 독점 체제에 균열을 내고 보수-진보, 가진 자-일하는 자, 예속-자주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내야 한다. 

도전과 과제

민주노동당은 '일하는 사람들의 대통령'을 핵심 슬로건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세상을 바꾸는 길'을 보조 슬로건으로 내걸고, 부유세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여론 쟁점으로 만들었다. 부족한 점은 있지만, 다양한 공약 개발을 통해 이번 선거를 정책 경쟁의 장으로 만들려 애써왔다. 

대선을 정책경쟁의 장으로 만들기 바라는 민주노동당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선거 환경과 여건은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정치권과 방송계에 포진한 보수세력은 TV 토론에서 민주노동당을 배제하고, 보수정당들끼리의 잔치로 몰아가려 했다. 1997년 대선의 경우 주요 후보 TV공동토론의 시청률이 50%를 넘었지만, 권영길 후보는 초청 받지 못했다. 권영길 후보의 TV 토론 참가는 국민들에게 진보정치의 필요성과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알리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기득권 세력은 돈의 장벽으로 진보세력의 대선 참여를 방해하려 했다. 현행 5억 원의 대선기탁금을 20억 원으로 올리려 한 것이다. 이 역시 민주노동당과 진보세력의 투쟁과 국민들의 비판 여론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 등의 언론기관에서 권영길 후보와 민주노동당에 관한 소식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언론매체들은 보수정당들끼리의 이합집산과 이전투구에는 많은 화면과 지면을 할애하지만, 각당의 정책과 공약에는 큰 관심이 없다. 대선 관련 보도 방향으로 '정책 선거' 운운하지만, 실제로는 보수정치판의 권력투쟁과 내부갈등에 초점을 맞출 뿐이다. 

'사이버' 선거에 제대로 대응할 여유가 없는 점도 문제다. 언론매체와 더불어 인터넷은 국민 여론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큰 바다다. 보수정당의 후보들은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수준을 넘어 사이버 세계에서 영향력이 큰 사이트를 공략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민주노동당은 당과 후보 사이트를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민들의 정치 무관심도 큰 도전이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국민들의 인식은 민주노동당에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정책과 공약에서 보수정당과의 차별성을 뚜렷이 부각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조직 민주주의와 정당 활동에서도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진보진영의 연대와 통일도 중요하게 고려할 문제다. 일부 단체들이 주장한 대선공동투쟁본부는 무산되었고, 사회당은 따로 후보를 냈다. 반대 편향으로 노동연대 등에서 노무현 지지 움직임도 있다. 민주노동당의 기반인 민주노총의 조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국노총 조합원, 농민, 도시빈민 등의 토대를 굳건히 하면서 당의 지지층을 넓혀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민주노동당의 인적·물적 자원을 집중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 필요한 금액을 40억 원으로 정해놓았지만, 이를 채울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보수정당들은 실제 사용된 선거자금 규모를 줄여 보고하느라 문제인데 반해, 민주노동당은 목표로 한 예산을 마련하는 게 문제다. 지금 선거대책본부에 50여 명이 일하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해 여러 조직에서 파견된 인력도 늘고 있지만,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대선을 '재창당'의 계기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회창 후보 지지자 가운데 찍겠다는 사람의 비율은 75%로 가장 높다. 권영길 지지자 가운데 찍겠다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인 60∼65%정도다. 8월 이후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층의 질이 좋아지고 있다. 핵심지지층인 노동자와 청년층에서 지지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며, 이탈율도 적다. 후보단일화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권영길 후보 지지도가 주춤하기는 하지만,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12월3일, 10일, 16일로 예정된 대선후보 합동토론회를 거치면서 지지율은 더욱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화이트칼라, 블루칼라, 30대 고학력층을 중심으로 한 핵심지지층은 12월19일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결속력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당의 잠재적 지지계층인 비정규직, 농민, 여성, 저소득, 저학력층의 지지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들 계층이 언론·교육·사회활동에서 각종 정보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러 정보를 두루 접하고 그것을 취사선택하기보다는 언론매체 한 둘, 특히 TV가 뿌려대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처해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창당이래 '재창당 논의'가 끊임없이 있어왔지만, 사실 당원 대중의 요구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당 안팎의 정파들끼리의 논의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번 대선은 일반 당원의 참여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대중의 관심을 바탕으로 '재창당'을 현실화하고, 이를 통해 민주노동당을 범진보·노동자 단일정당으로 세워낼 수 있는 좋은 계기이다. 역사는 짧고 경험은 얕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민주노동당의 어깨 위에 짊어져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