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택시연맹은 창립 당시 강령에서부터 택시산별노조와 운수산별노조 건설의 지향을 분명히 했다. 택시 노동자들은 근로조건이 비슷해 지역별로 지역노조가 이미 다수 건설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특히 서울, 부산 등을 제외하고 평균조합원이 100명이 채 안 되는 택시노동조합의 영세성과 하루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사납금제의 폐해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정부·대자본 투쟁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절실했고, 그만큼 산별노조 건설의 필요성은 간절했다.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위원장 강승규)은 1999년 산별 건설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여 산별노조 건설의 세부 방침을 확정하였다. 2001년 2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만장일치로 2001년 택시대투쟁과 산별노조 건설을 결의, 발빠르게 움직였으며, 산별노조를 2001년 택시대투쟁 과정에서 힘차게 건설하자고 결의를 모았다.
연맹은 2001년 택시대투쟁의 승리와 산별노조 건설을 위해 1노조 1교육, 지역별 1박2일간의 순회간부교육, 전국단위노조대표자 수련회, 전국대의원대회 2차례, 신임위원장 교육, 중앙강사단 훈련, 선봉대 훈련, 각 지역별 대표자수련회 등 교육과 수련회를 수차에 걸쳐 교육하고 결의해서 조합원들의 마음을 모았다. 또한 단위분회 파업투쟁, 해고자 원직복직 투쟁, 지역별 집회, 중앙집중 상경투쟁 2차례, 택시사업조합연합회 점거농성 등 투쟁의 강도를 높여갔다.
절반도 참여 못한 산별노조
택시노동조합은 '동일한 노동 속에 동일한 노동조건은 당연하다. 혼자서 싸워서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우쳤다. 그래서 1993년 서울지역노조를 필두로 인천, 광주, 경남, 충남 등 택시지역노조를 결성해 지역공동교섭을 정착시키는 등 기업별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해왔다. 때문에 산별노조의 장점과 힘, 그리고 운영상의 어려움 등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택시 노동자들이 지역노조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며 익숙해 있을 때도 사측은 지역노조를 깨고 사업장 안으로 노동조합을 끌어들이려고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을 일삼으며 지역노조 탈퇴공작을 벌여왔다. 노사 양측 모두 일정 정도의 맛을 본 셈이다.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은 연맹 출범 5년이 지난 2001년 7월27일 건설되었다. 연맹의 251개 단위사업장, 3만 명 조합원 중 102개 사업장과 조합원 12,450명이 가입, 산별노조로의 조직 전환률은 조직 대비 40.64%, 조합원 대비 41.5%의 규모였다. 조직률이 50%에 못 미치고 전국 차원에서 보았을 때 지역노조인 광주와 인천지역이 산별노조로 가지 못하면서 아쉬움과 과제를 많이 남기는 출발이 되었다.
그러나 광주지역 택시노동조합이 2002년 4월 11일 산별노조 가입을 결의하고, 지속적으로 신규가입 사업장이 늘어남에 따라 248개 사업장 중 161개 사업장, 가입률이 65%로 확대되었다. 이로써 산별노조가 안정을 찾고 있으며 현재 인천지역에서 2개 노조가 산별노조에 가입하여 조직이 확대되는 추세다.
2002년 파업투쟁의 성과
산별노조는 '조직확대, 재정 안정, 당면 투쟁의 승리'라는 과제를 안고 출범해서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연맹과 함께 힘차게 투쟁을 전개해 왔다. 40%의 낮은 조직률로 출범한 산별노조지만 2001년 택시대투쟁을 산별노조가 중심이 되어 전개했고, 12월11일 사상 첫 노·정 교섭과 합의라는 성과를 얻었다. 그리고 2002년 '월급제 쟁취'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5월24일 전국에서 136개 노조, 1만1천 명의 조합원이 파업투쟁에 돌입했다. 연맹은 핵심 지역으로 인천을 설정하고 투쟁에 적극 결합하여 마침내 승리를 이뤄냈다.
인천은 그때까지 산별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다. 산별노조 건설 과정도 투쟁의 과정이었다면 확대·강화도 투쟁을 통해 이뤄낼 것이라는 결의로 연맹 및 본조는 총력을 인천에 집중했다. 인천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역들이 산별노조여서 본조의 지침에 대한 집행과 결의가 연맹 시기와는 달랐다. 때문에 65일간의 인천 총파업 당시 5차례나 전국택시노동자 대회가 가능했고, 동시다발 지자체 타격투쟁, 투쟁지원 쌀 모으기, 차량시위 등 조직역량을 인천으로 집중시켰다. 아울러 산별노조 출범이전 임단협 교섭이 기업별내지 지역공동교섭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나, 현재는 산별노조가 직접 교섭하거나 주도하는 대각선교섭이 정착됨으로써 월급제 확산의 가능성을 높였다.
한계와 도전들
산별노조를 건설하면서 산별노조 중심으로 사업을 하자고 결의했다. 그러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지 못한 산별노조는 재정문제(조합비), 결의 및 집행의 문제, 연맹과의 문제 등 여러 가지 과제를 남겼다. 그래서 명칭을 민주택시연맹과 민주택시노조 둘 다 사용해 사업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산별노조라는 조직에 맞는 내용이 부족해졌다. 물론 교섭과 체결, 투쟁 등을 본조에서 지휘하고 책임지지만 분회의 요구를 전폭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 산별노조는 말할 것도 없고, 지역노조의 체계도 싫고 오로지 기업별 체계였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않는 사업주들은 산별노조의 활동을 적극 방해했다. 사업주들의 방해로 산별교섭과 같은 산별노조의 사업을 발전 강화시키는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산별노조라는 틀을 지키기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정도였다. 예를 들면, 산별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분회장을 해고하는가 하면 심지어 회사를 분할매각해 버리기도 했다. 단지 산별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그동안 지켜오던 단체협약도 무시하고 노동조합 활동시간(전임 등)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또 총파업이다, 지역투쟁이다 해서 겨우 단체협약이나 임금협정을 본조에서 대각선교섭으로 체결해 놓으면, 자신이 도장을 찍어놓고도 휴지조각 보듯이 하는 것이 산별노조 소속 택시회사 사장들의 행태였다. 탄압은 늘고 교섭은 해태하고, 끊임없이 노-노간 갈등을 일으키며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았다.
산별노조를 건설한 후 1년을 돌아보면 산별노조 사업의 과제와 발전 전망보다는 산별노조의 확대강화와 조직안정이라는 과제가 더 절실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한국노총 소속 전택노련과의 관계에서도 수에서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민주택시연맹 안에서도 산별노조가 압도적 다수를 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민주택시연맹 소속 노조의 산별 전환을 통한 산별노조 중심의 운영체계를 확립하는 게 절실한 과제이다.
우리 연맹은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전인 1998년에 이미 8일간의 전국파업을 통해 중앙노사협의회를 구성, 월급제 단초를 마련한 바도 있다. 그러나 사용자 단체의 조직 장악력이 미비하고, 법적·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사용자단체의 문제, 교섭당사자의 문제 등). 그리고 산별노조 혹은 연맹과 함께 투쟁으로 쟁취한 성과물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분회의 몫으로 남았다. 사측의 탄압에 대한 맞서야 하고, 무엇보다도 전택노련에 비해 조합원수와 노조수의 열세를 극복해야 한다.
법제 개선하고, 사회적 인식 높여야
우리나라에서 산별노조의 위상과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수년간, 아니 더 긴 시간을 투쟁해야 할지 모른다. 현재 전교조, 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 대학노조 등 산별노조는 많으나 전국차원에서 산별 교섭이 제대로 이뤄지는 조직은 거의 없다. 거의 대각선교섭이나 지부 혹은 분회에서 교섭권을 위임받아 기업별로 교섭을 진행하는 게 현실이다. 더군다나 산별교섭 상대인 사용자단체는 거의 꾸려져 있지 않다. 우리 연맹처럼 노사협의회를 통해 이러 저러한 것을 합의해도 지역별·회사별로 합의사항이 얼마나 지켜지느냐의 문제는 별개로 남는다.
전두환 정권시절 법으로 산별노조를 막았던 사회가 우리나라다. 이제 겨우 투쟁으로 그 법을 없앴다. 그러나 지금도 법제도나 사회적으로 산별노조를 정착시킬 조건이 좋지 않다. 그리고 산별연맹이나 개별노조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기에는 도무지 힘이 모자란다. 민주노총 차원에서 분명한 목표를 내걸고 싸워야 한다. 이러한 투쟁 위에서 산별노조에 대한 인식은 사회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당면 과제인 비정규직 문제도 사업장 차원의 개별 투쟁보다는 산별노조가 자기 과제로 투쟁할 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운수산업노조 건설을 향해
민주택시노조는 2003년부터 본격적인 산별 활동에 돌입할 계획이다. 재정문제, 상근자·전임자 문제를 정리하면서 명실상부한 산별노조 활동을 시작한다. 물론 난관이 지금보다 클 것이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다져진 산별노조의 결속력과 투쟁력을 바탕으로 법제도를 점차 개선하고, 사회적으로 산별노조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역할을 해야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운수산업노조 건설을 위해 운수노동자의 단결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고무발통'(버스, 택시, 트럭), '쇠발통'(철도, 전철)이 모여 운수산별노조를 건설했을 때 지금 택시산별노조가 겪는 한계와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택시노조는 2001년 건설 당시 다른 운수업종과의 연대를 강화하여 전국운수산업노조연맹으로 확대 통합하는 방향으로 운수산업노조운동의 발전 전망을 세웠다.
우리 노조는 2002년 월급제 쟁취 투쟁을 전국으로 확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2003년 투쟁을 준비할 계획이다. 불법경영 척결, 운송수입금 전액관리제 등을 제대로 이뤄내기 위해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을 보완하고, 월급제를 전국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명실상부한 산별노조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