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직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국제 조직인 UNI(Union Network International) 한국 노조들의 모임인 UNI-KLC는 지난 3년 동안 스웨덴 사민당의 올로프팔메센터 초청으로 1년마다 스웨덴을 방문하였다. 올로프 팔메는 스웨덴 수상으로 경호원 없이 부인과 영화를 보고 나오다 암살된 사람으로 스웨덴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번이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초청 받아 보건의료노조, 공공연맹, 민간서비스연맹, 체신노조 간부 16명이 2002년 1월4일부터 14일까지 스웨덴을 방문하였다. 비행 시간을 고려하면, 실제 스웨덴에 머물렀던 날은 7일 정도였다.
나는 1994년 병원노련 시절 통일사업의 일환으로 백두산 순례단을 이끌고 중국을 다녀온 적은 있었지만, 연수라는 이름으로 외국을 방문하고 그곳 노조간부들과 토론하는 기회를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연수를 가면서, 돌아와서 지금까지도 밤을 세우며 일하는 동지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스웨덴 사회복지 연수
외국에 갈 기회가 있으면 스웨덴을 가고 싶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스웨덴을 가게 되다니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왜 스웨덴을 가고 싶었을까? 유럽노동운동, 특히 스웨덴의 노동운동과 정치세력화, 사회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다는 사실이 척박한 한국의 노동현실과 사회복지제도를 봤을 때 너무나 부러웠을까? 스웨덴에 대해 '개량주의'라는 비판도 있고 우리 모델이 되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지만, 사회복지가 가장 발달한 나라고, 이를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만들어 낸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스웨덴 연수 동안 관광은 거의 하지 못했다. 스톡홀름 시내가 너무 좁아 가볼 데도 많지 않았고 일정이 빡빡해 개인 일정을 잡을 수 없었다. 스웨덴에서 한국노조 간부를 초청한 목적이 스웨덴의 사회복지 제도 연수였고, 이 기간동안 학습하고 토론하느라 별 짬이 없었다.
연수에서는 스웨덴의 사회상황, 역사, 올로프팔메센터의 역할, 기초 단위 시의회 운영과 정책, 사회복지제도, 의료제도, 연대임금제와 임노동자기금 등을 다뤘다. 그리고 스웨덴 노동복지정책을 입안하고 실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마이드너 교수의 스웨덴 복지모델 강의, 총리실 외교안보수석과의 간담회 등도 있었다.
또한 특강 형식으로 자본가단체에서 일하는 전문가를 불러 스웨덴의 노사관계에 대해서도 강의를 들었다. 자본가단체 교육은 왜 배치했는지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있었고 기분도 썩 좋지는 않았지만 주최측에서 마련한 내용이라 참여했다. 사민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앞으로 사민당이 계속 정권을 잡았으면 좋겠고, 자본가들도 사민당에 우호적이라 하여 어리둥절했는데 현재 사민당이 자본가들의 정책을 잘 반영하고 있어 큰 문제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자본가들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얘기는 우리 모두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노조에 별 관심이 없고 자기들이 잘하면 노조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는 자만심도 드러내었다.
우리는 숙박장소인 웰컴 호텔과 장소를 옮겨가며 세미나를 진행하였다. 주로 방문했던 곳은 스웨덴 노총(LO), ABF(노동자교육협회), 야팔라 시의회, 총리실, 심장박동기기 제작 공장, 박물관, 팔메 수상 묘지 등이었다.
연수단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행된 연수에서 한국노동운동을 대표하는 간부라는 심정으로 일정을 빠짐없이 소화해 내었고, 활발한 토론과 질문을 벌였다. 스웨덴에서는 한국노동운동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은 편이고 1∼2기 연수단부터 이번 연수단까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실종된 연대임금제와 임노동자기금
연수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마이드너 교수의 강연과 총리실 방문, 사민당 당사 방문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연수단 일행은 방문 6일째인 1월10일 루돌프 마이드너 교수를 만났다.
루돌프 마이드너 교수는 스웨덴 노조운동의 자랑이자 성과라 할 수 있는 연대임금제, 임노동자기금 등 스웨덴 노동정책을 입안하고 실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지금은 86세로 은퇴하여 쉬고 있는데 그의 강연을 들은 것은 행운이었다. 그간 1∼2기 연수단이 방문했을 때도 여러 번 부탁을 했지만 만나지 못했고, 스웨덴 사람들도 십 년 동안 강의를 듣지 못했다니 우리에게는 행운인 셈이다.
[ 스웨덴 사회복지 정책을 입안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루돌프 마이드너 교수 강의를 듣고 함께 찍은 기념사진. 가운데가 마이드너 교수다. ]
연대임금제는 대기업에 일하는 노동자든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든 일정한 임금을 받게 하는 정책으로 노동자계급 내부의 편차를 줄이고 연대를 실현하는 핵심 정책이다. 연대임금제는 꽤 오랜 기간 시행되면서 노동자들의 동질성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한 것 같다. 지금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시행되고 있지 않지만…. 아마 시간이 흐르면서 대기업 노동자들의 반대가 커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임노동자기금은 노조에서 기금을 설치하여 기업을 인수하는 것으로 합법적으로 사회주의를 시도한 정책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 정책은 매우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지만, 스웨덴 노총(LO)에서 결정하여 사민당에 제안하였고, 사민당은 마지못해 이 정책을 채택했지만 보수정당들이 반발하자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다.
짧은 방문기간이었지만 내 눈에도 스웨덴의 노동운동이 자본가들에게 끌려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민당의 우유부단한 정책으로 노동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고, 다국적기업이 많은 스웨덴에서 외국으로 진출하려는 기업에 종속되어 고용을 보장받기 위해 저자세로 가는 것이 한 이유가 아닌가 싶었다.
자본가단체에서 나온 사람이나 스웨덴 노총 간부는 강연에서 임노동자기금 정책을 다시 요구할 생각은 없는지, 현재 조직력으로 볼 때 기업을 통제하기 위한 강력한 제도를 만들 가능성이 높은데 왜 그렇지 못하는지 등의 질문을 받고, 그럴 경우 기업이 해외로 나가 고용을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No Vision"
왜 사민당이 노총의 요구를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에 마이드너 교수는 한마디로 "No Vision"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사민당이 전망과 철학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들을 시행하지 못한다는 대답을 하면서 마이드너 교수의 얼굴에서 씁쓸한 표정이 묻어났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자신과 여러 동지들이 힘들여 만들어 놓은 정책을 후배들이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원로학자로서 얼마나 착잡했을까? 강연을 듣고 나서 마이드너 교수야말로 몇 남지 않은 정통 사민주의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같은 날 우리는 총리실을 방문했다. 거기서 우리나라의 외교안보수석과 같은 역할을 하는 관료와 간담회를 가졌다. 사민당의 매우 중요한 간부였다. 이 자리를 안내하러 나온 사람은 뜻밖에도 동양사람이었는데 알고 보니 한국에서 입양된 여자였다. 어려운 환경에서 총리실의 고위 공무원이 된 것을 보고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외교안보수석은 주로 스웨덴의 외교정책과 북한과 관련된 얘기를 했고, 우리들은 북한을 너무 서구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입장이 뭔지 등을 질문했다. 하지만, 답변은 미국이나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별로 차이가 없었고, 두루뭉실해 우리가 사민당에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 노총에서 임노동자기금 정책을 다시 사민당에게 제안할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서도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태도를 보였다.
집권당보다 유명한 노총
1월12일 스웨덴을 떠나기 하루 전 우리는 참 소중한 자유시간을 가졌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갖는 자유시간이라 어떻게 할까하다가 민주노동당 이재영 정책국장이 그 동안 찍은 필름을 분실하여 노총과 사민당사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하여 몇 명이 같이 찾아 나섰다. 노총 사무실은 한번 가봤기 때문에 무리 없이 찾아가 사진을 찍었다. 토요일이라 전부 근무를 하지 않아 사무실 문이 잠겨 있어 사무실 방문은 하지 못했다. 주5일 근무가 되면 우리도 이렇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노총 사무실 앞에 있는, 오늘의 스웨덴 노총이 있게 만든 팜이라는 노조운동가의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팜은 노조운동의 선구자로 재단사라 했는데, 우리나라의 전태일과 같은 사람이다.
[ LO 건물 앞에 서있는 팜 동상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재단 일을 하면서 노조를 세우는 데 앞장섰던 팜은 키가 너무 작아서 사람들이 목마를 태워서 선동했다고 한다. ]
문제는 사민당사를 찾는 것이었다. 대략 위치만 듣고 가는데 찾을 수가 없어 거리방황이 시작되었는데 못하는 영어로 바디 랭귀지를 하면서 사민당사를 물었다. 이리저리 헤매기도 하면서 한 10명 정도에게 물어 본 것 같다. 대부분 잘 몰랐다. 그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우리도 여당이나 야당 당사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놀란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사민당사와 노총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 노총사무실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데 사민당사는 대부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우리와는 너무 다른 현실에서 순간 많이 놀랐다. 아마 오랜 노동운동의 역사와 노동자 대부분이 조합원이라는 현실에서 스웨덴 노총이 스웨덴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매우 높다는 것인데 그만큼 노총이 열심히 활동해온 결과가 아닐까 생각했다.
더욱 절실한 정치세력화
십일동안의 스웨덴 연수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스웨덴을 알기에는 십일은 턱없이 짧은 시간이고, 짧은 경험으로 스웨덴을 얘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짧은 기간 있으면서 우리나라와 스웨덴의 현실을 비교할 수 있었다.
오늘날 스웨덴의 성과는 노동자들과 노동자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만들어낸 것이다.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우리들이 볼 때 무상교육, 무상의료, 노후복지, 싼 주거비(주택) 등 사회복지제도는 우리 현실과는 많이 달랐다. 우리가 스웨덴과 같은 수준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을 투쟁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특히 노조 조직률이 90%나 되는 것은 유럽에서도 유일한 일인데 내가 보기에는 실업기금을 노조에서 관리하는 것이 조직률을 높이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된다. 실업기금을 자본가들로부터 받아내 노조가 관리하면서 실업자가 되었을 때 실업수당을 지급하기 때문에 실업기금을 받기 위해 노조활동을 안 하더라도 노조에 가입은 한다고 한다. 이 부분이 노조의 조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실업기금을 노조가 관리하게 된 것은 사민당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만들어진 것이다.
짧은 기간 스웨덴을 보면서 내가 가장 절실히 느낀 게 정치세력화다. 기본적으로 노조가 잘해야 하지만, 결국에는 노조가 지지하는 정당이 정권을 잡아야 노동자들을 위해 많은 정책들을 시행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척박한 현실을 보면서 이제 막 첫발을 내딛은 민주노동당이 잘 되야 하고 우리들이 힘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 자신도 적극 정치세력화를 위한 일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 동안 현안과 실무에 매몰되면서 운동에 대한 고민을 많이 못했는데 스웨덴 방문은 잠시나마 내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나라의 운동과 내 역할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백년이 넘는 노동운동 역사
아울러 이번 연수를 통해 한국의 노조운동을 고민하는 많은 동지들을 만난 것도 큰 성과다. 3기 연수단은 민주노총, 한국노총 간부들이 별 갈등 없이 화목하게 지내면서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도 노조운동과 정치세력화를 위해 같이 고민하게 될 동지들을 만나게 된 것도 스웨덴 방문이 준 행운이다.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동지애를 느끼도록 하는데는 연수단장을 맡은 조춘화 대학노조 사무처장과 총무를 맡아 돈 관리와 부식준비, 뒤풀이 준비 등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해준 이철우 현대백화점노조 천호점 사무국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춘화 처장은 스웨덴에서 돌아오자마자 시립대투쟁으로 삭발을 하고 농성투쟁에 들어갔다. 제일 연장자로 필자와 십일동안 같은 방을 쓰면서 활기차게 모임을 이끌어준 김두일 체신노조 국장 등 모든 동지들이 잘 해주어 마음 편히 연수를 마쳤다.
연수를 하면서 스웨덴 담당자들이 당혹스러울 수 있는 질문을 많이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들은 "우리는 역사가 백년이 넘는다"는 얘기를 했다. 우리가 "왜 그 정도 밖에 안 되느냐, 이렇게 해야되는 것 아니냐"고 질문했을 때도 그들은 별 내색하지 않고 약점과 단점을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다.
연수 마지막 만찬에서 그들은 "우리는 스웨덴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이러한 현실을 만들기 위해 스웨덴의 노동자와 정당이 어떻게 해왔는가를 보여주려 했다. 스웨덴 모델을 강요하거나 따라 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한국의 운동은 한국 사람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얘기했다.
사실 너희들은 얼마나 잘 하길래 우리한테 이런 질문을 하냐 생각할 수도 있고 기분이 나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내색 없이 성실하게 강의하고 질문에 응해준 스웨덴 노조 및 사회단체 간부들에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