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단일화 소동과 자유주의 세력의 허약함

노동사회

후보단일화 소동과 자유주의 세력의 허약함

admin 0 3,050 2013.05.08 10:12

 


풍경 1 

9월12일 '개혁과 통합을 위한 노동연대'(공동대표 김영대 김호선 박태주 심일선 장운, 이하 노동연대)가 발족했고, 9월17일 열린 개혁적 국민정당 추진위원회 발족식에서 ‘정당개혁 국민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김영대 민주노총 전 사무총장이 말했다. “엊그제까지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다. 그런데 개혁적 정당이 집권하기 위해서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게 됐다." 그리고 10월1일자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박태주 노동연대 공동대표는 ‘향후에 한국노총과 민주노동당도 조직화 대상으로 삼을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권영길 대표가 어느 인터뷰에서 '노무현과 연대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우리보고 깃발을 내리라는 이야기냐’고 답한 것을 보았다. 그 답은 상당히 편협한 이야기다. 선거는 현실이고 표다. 그 쪽이 표를 만들 수 있는 매력이 있으면 세력과 세력으로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풍경 2 

10월4일 민주당 이종걸, 송영길, 임종석 의원 등 수도권 삼사십대 원내외 지구당 위원장 20명은 공동성명을 내고 “정몽준 의원이 이회창, 노무현 어느 후보와도 단일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라면 누구하고라도 손잡겠다는 구시대 정치를 재현하는 것으로 정치개혁을 열망하는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될 것"이라면서 “최근 제기되는 후보들의 무원칙한 합종연횡 시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10월17일 김민석 의원이 민주당을 나와 정몽준의 국민통합21로 가자, 민주당 임종석 의원을 비롯한 이른바 ‘386’ 세대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당과 국민을 배반하고 야합과 불의의 길을 택했다는 데 분노와 서글픔을 느낀다. … 민주개혁의 대의와 한국정치 혁신의 길에 함께 할 동지의 이름에서 그를 지우고 싶다. 그가 다시는 80년대의 그 뜨거웠던 시대와 함께 했던 동지를 입에 담지 말기를 바란다.” 김민석 의원이 반론했다. “나를 기회주의자라고 하는데 한나라당에 갔다면 몰라도 나는 이기기 위해 (국민통합21에) 온 사람 … 이것은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고 나는 명예라는 기득권을 버린 것 … 정치적 생명을 건 결단을 누가 하라고 해서 하겠는가. 배후가 있다면 단일화를 바라는 민심이다.”

풍경 3 

10월23일 인터넷신문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후보가 “정 의원과 나는 걸어온 길, 함께 하는 사람이 다르다 … 도저히 합쳐질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갈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걸어온 길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런 측면에서 정몽준 의원의 경우 노무현 후보보다 이회창 후보와 더 가까운 측면이 있다. 어떻게 보나’는 질문에 노 후보는 “그렇게 볼 수 있는 측면이 많이 있다. 유사성이 많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앞으로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를 추진할 것이냐,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 지금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좀 곤란하다. 아직도 당내에 단일화를 바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가능성을 봉쇄하는 말을 하는 것은 당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다. 당내 소수의견이라도 여지를 남기고 가고 싶다 … 내 손으로 선을 긋고 싶지는 않다. 원칙을 말할 뿐이지 원칙을 적용할 결과가 어떠냐에 대해 미리 안 되는 쪽으로 내가 먼저 선을 긋고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모두가 원칙을 적용한 결과를 추론해가면서 가는 것이다”고 말했다. 

풍경 4 

10월24일자 『한겨레21』에서 황태연 교수와 강준만 교수의 지상논쟁이 벌어졌다. 황교수는 “이번 대선에서 평화?개혁 세력은 반드시 이겨야 … 이는 승리지상주의가 아니라 중차대한 민족사적?세계사적 변화의 시기에 … 평화를 바탕으로 반도강국을 건설해 통일비전을 구현할 ‘중도개혁정권의 재창출’을 위해 필수적인 것 …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지면 냉전?수구 세력은 천재일우의 민족화합과 민족대도약의 찬스를 다 망칠 것 … 두 후보는 ‘남북평화와 개혁을 통한 민족대도약’의 대국적 관점에서 노선이 일치한다 … 평화개혁과 냉전회귀의 민족사적 갈림길에서 평화?개혁세력은 자민련까지 아우르려는 따뜻한 ‘덧셈정치’로 단일대오를 이뤄야 한다 … 절차적 정당성과 자기 색깔에 사로잡혀 후보직을 고집하면 그것은 97년 당시 후보직을 던진 JP의 내공만도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교수는 “후단협의 논리는 승리지상주의며 … 정태적이며 97년 대선 경험에 함몰돼 있다 … 후단협이 꿈꾸는 정치공학은 DJP연합과는 차원을 달리해 본말의 전도까지 낳은 수준의 것… (2002년 대선의 최대 명분은) ‘깨끗한 정권의 탄생’이며 … 구태의연한 정치공학이 아니라 노무현식 파격과 그 파격에 상응하는 민주당의 환골탈태가 가장 유력한 재집권 카드”라고 말했다.

11월1일 정몽준 후보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대선후보를 단일화할 경우 가능하면 내가 후보가 됐으면 하나,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당선될 수 없고 당선된다 하더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만큼 여론을 존중해서 하겠다 …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와의 후보단일화는 둘 다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풍경 5

11월16일 낮 유시민이 이끄는 개혁국민정당은 대선 결의문에서 밝혔다. “우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협상을 우려섞인 눈으로 지켜보았다. 정몽준 후보는 개혁세력의 대표주자가 아니다. 정몽준 후보에게서는 개혁과 통합의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노무현 후보가 조속히 후보단일화 협상을 종결하고 일관된 개혁 정체성을 유지해주길 바란다. 개혁 정체성의 유지만이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우리 개혁당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가 가야할 길을 거침없이 간다. … 어둠은 빛으로 인해 사라진다. 모든 당원들이 세상을 밝히는 한줄기 빛이 되자.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11월16일 저녁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국민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에 전격 합의했다.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은 “기자회견장은 일순간 열광과 축제의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썼고,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는 러브샷까지 했다. 이날 정몽준 후보는 “낡은 정치의 틀을 깨기 위해 저의 운명을 국민들에게 맡긴다는 데 대해 보람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 단일화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대선에서 절대 다수 국민들이 생각하는 대로 승리로 이끌기 위해 저의 마음을 비우겠다"고 말했다. 이어 노무현 후보는 “여기까지 온 것은 두 사람을 아껴주신 국민 여러분의 성원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우리 운명은 우리를 떠나 국민의 손으로 넘어갔다. 앞으로도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김민석 국민통합21 선대위 총본부장은 민주당 이해찬 협상단장과 힘차게 포옹하며 감격을 나눴다. 『프레시안』에 따르면, “어제의 적이 또다시 오늘의 동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11월20일 열린 민주당 후원회 자리. 정몽준이 말했다. “나는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노무현 후보와 나는 지금 동지이자 경쟁자”라고. 이 자리에서 노무현 후보는 “엄숙한 국민들의 명령을 수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단일화에 합의했다 … 저더러 한발 더 양보하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무엇이든 더 양보할 수도 있다 …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원칙과 신뢰를 금과옥조처럼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풍경 6

『월간 말』11월호와의 인터뷰에서 박태주 노동연대 대표는 ‘노무현은 보수세력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물론이다. 보수세력뿐 아니라 노무현은 구체제, 경제위기 상황 등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당하는 그런 처지에 있지 않다. 무엇보다 민주당 국민경선의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한다. 노무현의 승리는 구체제에 빚을 진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바라는 개혁세력의 힘으로 만든 것이었다. … 김대중은 보수세력에 빚을 질 수밖에 없었지만 노무현은 그 반대 상황에 있다.” ‘끝으로 묻겠다. 만에 하나 노무현이 정몽준과 연대를 모색한다면 어찌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박 대표는 답했다. “미련 없이 갈라설 것이다. 내가 지지하는 것은 노무현 개인이 아니라 노무현의 ‘개혁성’이다. 정몽준과의 연대는 그 개혁성에 위배되는 것이다. … 민주노동당은 정책연합이든, 선거연합이든 노무현과 ‘연대’를 사고해야 한다. 왜냐하면 노무현은 김대중도 아니고, 이회창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노무현과 권영길 사이에는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문제의식이 굉장히 많다고 본다. 권영길은 노무현과 이회창 간의 거리보다 자신과 노무현 간의 거리가 더 멀다고 했는데, 실현가능성 측면에서 보면 크게 다를 게 없다.” 

노무현과 정몽준의 후보단일화를 둘러싼 논쟁과 경과를 지루하게 나열한 까닭은 ‘후단’의 옭고 그름을 가리기 위한 건 아니다. 그리고 ‘풍경’의 시작과 끝을 노동연대 관련 내용으로 채운 게 노동연대 정치노선의 잘잘못을 가리기 위한 것도 아니다. 

여기저기서 말글을 따 글을 채운 속내는 다음을 말하기 위해서다. 한국의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제힘만으론 권력을 장악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하며(민주화 이후 네 번의 대선, 즉 1987년, 1992년, 1997년, 2002년의 경험이 잘 말해준다), 선거연합에서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진보세력보다 군사독재세력이나 재벌세력을 선호해왔다(이는 세력관계에서 진보세력의 취약함과 수구보수세력의 강력함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개혁’과 ‘국민의 뜻’은 갈대와 같아 시시각각으로 흔들려 그 속내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힘들다. 때문에 노동자가 스스로를 정치 계급으로 조직하지 않는다면 노동자를 위한 민주주의는 이뤄질 수 없다. 한국에서 Lib-Lab 선거연합, 즉 노동-자유의 정치연합이 가능하려면 정치적으로 노동이 제 발로 설만큼 강력해야 한다. 

후보단일화 결과가 어떠하든, 또 누가 대통령을 하든 이번 대선과 앞으로 5년은 이 당연한 정치 상식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