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안을 어떻게 보십니까?
교섭 상황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안이 아닙니다. 정부가 교섭 과정에서 민영화를 문서상 인정하라고 요구했었고, 이번에 노코멘트를 코멘트한 거라는 얘기가 있습니다만, 합의안은 적절치 않았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민형사상 책임과 징계에서 '적절한 수준'이라고 나오는데, 이 역시 누가 판단하느냐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합의안 전반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전문'의 문제였습니다. 굴욕적인 내용이 많아 수용하기 힘들었습니다.
발전노조에서 조합원 찬반투표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4월2일 합의안이 현실적으로 나올 수 있는 정부측 최종안이라면, 지도부의 원칙은 직권조인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따라서 당연히 조합원 찬반투표에 붙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섭단에서는 그게 정부측의 최종안이라고 했고, 지도부가 판단하는 것보다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치는 게 적절하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조합원 총회를 열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명동성당에 들어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었습니다.
사실 4월2일부터는 합의안 찬반투표보다 이후 투쟁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조합원들의 동의가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4월3일 사측의 대규모 징계가 예정되어 있었고, 342명 해임이 결정된 상태에서 조합원들의 동의 없이 4월3일을 돌파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당시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조합원들이 상당히 흔들리고 있었죠. 그래서 조합원들의 결의를 모으는 과정이 필요했고, 민주노총 총파업이 유보된 상황에서 조합원들을 명동으로 소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총회는 성사되지 못했고, 그 이튿날 동국대에서 총회를 열려고 했지만, 성원이 어려워 업무복귀명령을 내렸습니다. 지금은 민주노총에서 합의안 폐기를 결정했기 때문에 필요성이 없어졌습니다.
합의안이 나오게 된 과정을 말씀해 주십시오.
공공연맹에 교섭권이 위임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3월26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총연맹으로 교섭권이 넘어 갔습니다. 할 얘기는 많지만, 민주노총과 공공연맹의 임원진이 사퇴한 상황이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어쨌든 노조의 원칙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었고, 그 연장선에서 민주노총과 공공연맹이 협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공식적인 창구가 막힌 가운데 물밑으로 협상을 위해 노력했고, 그 속에서 합의안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안은 발전노조가 받을 수 있는 안이 아니었습니다. 교착상태에 빠진 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민주노총과 공공연맹이 노력했고, 이 점에 대해 저희들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4월2일 합의안에 대해 민주노총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큽니다.
합의안이 나왔을 때 저희는 못 받는다고 했습니다. 물론 인간적인 부담은 굉장히 컸어요. 협상단이 정부와 협상하면서 최선을 다했을 테고, 나름의 고민과 어려움이 분명 있었을 테지만, 우리 입장에서 이걸 못 받는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4월2일 합의와 총파업 유보를 둘러싸고 민주노총과 공공연맹 지도부의 오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큰 데, 이를 두고 인신공격까지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총파업의 규모와 위력에 대해 민주노총에서 판단을 했을 거고, 발전노조는 총파업의 진행 여부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여튼 합의안을 우리가 거부하면서 민주노총과 공공연맹의 협상단이 붕 떠버렸고, 그 결과 조직 안팎에서 난도질당하는 안타까운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파업이 종료된 것도 아니고, 계속 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입니다.
자의적인 해석일 수 있지만, 파업은 철회나 종료가 아닌 중단 상태입니다. 이번 파업은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결정된 것이고, 발전소 매각철회, 해고자 원직복직 등 우리의 다양한 요구를 걸고 파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아무 성과도 없는 상태에서 파업 종료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요구 조건이 관철되지 않는 한 투쟁은 계속될 것이며, 투쟁의 마당이 거리에서 현장으로 바뀌었을 따름입니다. 파업 중단은 우리가 파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뜻합니다. 이런 점에서 여전히 파업의 연속선 위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지금 현장 상황은 어떻습니까?
조합원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이 상당히 큽니다. 38일 동안 파업을 하고도 뚜렷한 결과물을 갖지 못한 채 빈손으로 들어간다는 허탈감과 일정 정도의 패배감도 있는 상태입니다. 또한, 사측의 압박으로 다시는 단체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굴욕적인 서약서에 서명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명동성당 농성 지도부의 향후 계획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언제 자진출두 할 것인가와 연계된 문제입니다. 이것은 현장을 수습할 수 있는 틀이 언제 마련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명동성당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입니다. 여기서는 공식 지침만 내리는 상태고, 결국 현장의 활동가들이 어느 만큼 잘 해내느냐가 관건이 될 겁니다.
발전노조는 소산별 체제이기 때문에 현재 본부장들이 다 있는 상태에서 제 역할은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상징성 때문이라면 명동성당에 있는 것이나 감옥에 있는 것이나 다르지 않을 테니 자진출두해서 감옥에 가 있는 게 낫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반면에 명동성당 천막 농성장에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요. 현실적으로 제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없는 게 현실이고, 이 부분을 조합원들이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합 활동을 정상화하고, 현장을 빨리 수습할 수 있는 체제가 무엇인지 지금 고민하고 있습니다.
발전소 민영화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정부는 올해 안에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 왔습니다.
민영화추진위원회가 열릴 겁니다. 정부는 실사, 매각사 선정, 입찰 공고의 절차를 밟아갈 것입니다. 정부가 민영화를 계속 강행한다면 우리는 다시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양대 선거,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 전력수요 폭증 시기, 노동계 일정 등에 맞춰 파업에 돌입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하고, 이를 통해 발전소 매각을 저지해야 합니다. 현장의 조합원들도 같은 마음입니다. 정부가 민영화를 강행한다면, 파업을 또 강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파업의 성과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아직 파업 상황이 완전히 종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는 이후에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합의 파동을 겪으면서 저도 인간인 이상 감정적으로 정리가 안 되는 부분도 있고요. 평가는 나중에 한 발짝 떨어져서 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전제로 몇 가지 정리해보면, 우선 국민들에게 발전소 매각의 부당성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려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번 파업의 성격에는 국부유출 저지와 전기요금 인상 반대 등 국민 생활을 보호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노동자로서의 당연한 권리인 생존권 사수 투쟁이 동시에 이뤄진 측면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후자의 측면은 앞으로 342명의 해고자들을 원직복직시키는 투쟁과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예상되는 고용안정과 생존권 사수 투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투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조합원들이 갖게 된 것도 중요한 성과입니다. 발전산업 노동자들은 단결력에 대한 믿음을 얻었고, 우리도 뭉치면 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한계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죠.
공동파업이 얼마나 힘든 지를 뼈저리게 느꼈고, 노동자들의 영원한 숙제인 연대와 단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답변 드리겠습니다.
38일간 파업을 이끌어온 발전노조의 위원장으로서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에 대해 조합원들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민주노총과 공공연맹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봅니다. 물론 더 잘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비판은 옳고 당연한 겁니다. 그렇지만 스스로의 조직력을 갉아먹는 난도질은 없어야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이번 과정은 상급단체가 갖는 어려움에 눈뜬 기회였습니다. 노동자들의 연대와 단결이 상급단체가 이뤄내야 할 절박한 과제임도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파업에 대한 개인적 소감을 말씀해시죠.
개인적으로 제 자신과의 싸움이자 인내의 과정이었습니다. 또한 공공부문에서 장기간 파업을 진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하는 시간이었고요.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 그리고 그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번 파업은 투쟁해야 할 때 투쟁하지 않으면, 다음에 그것을 다시 역전시키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었습니다. 2000년 12월3일 파업에 돌입하지 못한 후과를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이후 투쟁에서 얼마나 처절하게 싸워야 하는지, 처절하게 싸우고도 상황을 역전시키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이번 투쟁은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노조 간부의 중요성, 또한 이들의 결의와 실천의 중요성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투쟁의 전 과정에서 감당하기 힘든 도전에 부딪혀야 하고, 흔들리는 대오를 추슬러야 하고, 이 과정에서 동지들이 떠나고 조직력이 서서히 깨져 가는 걸 지켜보는 것이 제가 명동성당에서 38일간 감당해야 했던 임무였습니다. 그 와중에 위원장으로 의연하게 당당하게 서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몸으로 느꼈습니다.
노동운동 진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발전노조 파업을 지원했던 민주노총, 공공연맹, 많은 단체들, 각계의 어르신들, 그리고 정말 많은 동지들, 노동자들, 학생들의 연대에 가슴깊이 감사 드립니다. 이후 충실한 연대 활동을 통해 그 고마움을 갚아 나가겠습니다. 조합원들의 기운을 북돋아 발전노조를 바로 세워내고, 이를 통해 앞으로의 투쟁에서 연대와 단결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 각계각층의 도움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노동운동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감옥에서 생각을 정리한 다음, 나중에 발전노조 조합원들과 상의하고 나서 기회가 있다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쉬움이 남는 싸움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력을 다했고, 진이 빠지도록 싸웠습니다. 사생결단의 각오로 싸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투쟁 열의와 의지에 대해 조합원 동지들에게 감사 드리고, 이후 싸움에서도 패배주의에 젖지 말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발전조합원 여러분! 다시 당당하게 일어설 수 있는, 제가 늘 말해왔듯 '자랑스런' 발전 노동자들이 되어 주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발전노조 투쟁에 함께 했던 동지 여러분! 더 큰 우리, 더 강한 우리로 다시 만날 수 있기 바랍니다. 저 역시 늘 힘차고 당당하게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