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파업 평가와 노조의 과제

노동사회

철도 파업 평가와 노조의 과제

admin 0 3,958 2013.05.08 10:43

2월27일 합의의 핵심 사항은 어떻게 요약할 수 있습니까?

합의에서 핵심 쟁점은 네 가지, 즉 △ 민영화 저지, △ 노동조건 개선, △ 해고자 원직복직 등 3대 요구안과 더불어 조합원 및 조합간부에 대한 징계와 사법처리의 최소화였습니다. 집행부 요구안이 완전히 관철되지 못했습니다. 

jyoung_01_8.jpg민영화는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이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완전 철회를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완전 철회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정면돌파와 분쇄를 뜻하며, 나아가 김대중 정권의 간판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전략 목표였다면, 전술 목표는 민영화 관련 법안의 연내 입법 저지였어요. 신자유주의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라는 큰 그림 안에서 우선의 전술 과제는 관련 법안의 연내 입법 저지였던 것이죠. 

민영화는 교섭 대상이 아니며, 이걸로 파업할 경우 불법으로 내몰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었고, 노조 입장에서는 합의문에 민영화 법안 철회를 담아야 했는데, 협상 대상인 철도청은 권한도 없거니와 이미 국회로 법안이 넘어갔고, 권한을 가진 데가 국회밖에 없던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를 노조가 고민하게 되었어요. 결국 '국가 주요 공공 교통수단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향후 철도산업의 공공적 발전에 대해 공동 노력한다'는 수준에서 합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여러 조합원들이 반발했습니다. 투쟁 주체였던 조합원들의 반발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노동조건 개선 요구는 어떻습니까? 

핵심은 24시간 맞교대, 연중 휴일 없이 일하는 장시간 노동, 열악한 근무환경과 과로에 따른 순직을 끝장내자는 것이었어요. 해방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었던 24시간 맞교대를 철폐하는데 합의했고, 기관사들의 경우 휴일 없이 일했던 것을 주휴일을 보장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각종 수당도 확보했습니다. 물론 부족한 점도 많아요. 3조2교대로 하고, 휴일을 보장하면 당연히 인원이 늘어날텐데 증원될 인원 규모를 명시하자는 노조 입장을 관철하지 못했습니다. 

해고자 원직 복직도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가장 뼈아픈 문제입니다. 이것도 미완의 과제로 두고 9월까지 노사정위원회에서 대책을 내온다는 것으로 합의했어요. 해고자 복직 부분은 이미 노사정위원회에서 인도적 차원에서 복직시키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1988년, 1994년의 파업이 불법일 수밖에 없었음을 노사정위원회에서도 공감하고, 해고자 복직을 권고했는데도 철도청이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정부도 들어주기로 했던 약속을 막판에 뒤집었죠. 정치적 배경이 있다고 봅니다. 공무원 복직 사례를 남기지 않겠다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노사정위원회가 권고했던 안을 정부 기관이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죠.  

노조 지도부는 해고자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경우 자본·정권·보수 언론이 대대적인 공세에 나설 것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해고자 문제로 전선을 지켜가기가 힘들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이는 조합원들로부터 비판받을 지점일 수 있습니다. 당시 지도부의 판단이 옳았는지 여부는 시간이 좀더 흐른 뒤 평가될 것으로 봅니다. 

2월27일 합의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철도노조의 3대 요구안을 완전 관철시킨 합의문이 아닙니다만, 앞으로 노정·노사간의 힘 겨루기에서 무기가 될 수 있는 근거라고 봅니다. 한편으로 이는 민주철도노조 1기 집행부의 역할이자 운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번의 투쟁으로 모든 걸 얻을 수는 없습니다. 이번 합의문은 이후 조합원들의 투쟁 근거이자, 다음 지도부의 무기라는데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평가에서 한계와 오류는 분명히 구별해야 합니다. 못 얻어낸 게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오류가 아닌 한계였습니다. 미완의 과제를 다시 정리·제기하고, 2기 지도부가 움켜쥐고 투쟁의 근거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합의를 두고 철도노조 안팎에서 비판이 있었습니다. 

합의 내용과 과정 모두 조합원들에게는 불만스러웠다고 봅니다. 조합원 각자가 결단을 내려 투쟁에 동참했는데 결국 '직권조인'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죠. 직권조인이 아니기 위해서는 규약에서 이를 명시하고, 단협에서 보장해 놓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한데, 철도노조의 경우 이 둘 다 없었습니다. 지난 54년 동안 비민주적이었던 규약과 단협의 굴레에서 벗어나 민주적이고 선진적인 방식을 도입하려 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섭위원을 비롯해 핵심 간부에게 사전영장이 떨어진 상황에서 합의안의 찬반을 묻는 총회를 소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어요. 명동성당의 지도부는 오랜 토론 끝에 '직권조인'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서 직권조인이란 밀실합의가 아닌 위원장이 서명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위원장 서명 이후에 총회를 통해서 조합원의 의견을 묻자고 결정을 내렸는데, 이 결정은 조합원들과의 사전 교감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것이었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소지는 있다고 봅니다. 

2월25일 발전노조와 함께 파업에 들어갔던 철도노조가 사흘만에 파업을 접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점에 대해 문제제기가 많은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3사 노조 투쟁을 준비하면서 공동투쟁은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누구도 3사 노조가 동맹 파업으로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쉽게도 끝까지 같이 가지 못했습니다. 철도와 발전은 공동 타결을 결의했지만, 내부 사정으로 양쪽이 이해하는 선에서 철도부터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힘이 남아 있던 상황에서 사흘만에 접은 것은 비판받을 측면도 있지만, 당시 시점이 조직의 상태를 점검할 때였고, 서울과 지역의 동력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내린 차선의 선택이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도부는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합의안 이행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습니까?

불행하게도 합의문 이행은 원천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고소고발과 사법처리, 징계를 최소화하기로 노력한다고 했는데, 오히려 정부는 대량의 고소고발과 중징계 요구, 조합비 100% 가압류, 노조 간부 8명 구속 등 노조의 목을 조르고 있어요. 사측이 현장 권력을 장악하고, 노동조합을 통제 하에 둠으로써 합의문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자 하는 공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걸 돌파하지 않으면 다른 합의사항도 보장되지 않을 겁니다. 

현장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이번 투쟁을 통해 조합원들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옆에 있던 동료가 이제 동지가 되었다는 것은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걸 어떻게 조직적 성과로 튼튼히 하느냐가 노조의 고민이죠. 

합의안은 조합원 총회에서 70%가 넘는 찬성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조합원들이 지도부에 보낸 분에 넘치는 지지이자, 민주노조를 사수하겠다는 조합원 스스로의 결의라고 봅니다. 부족한 합의안이지만 조합원들은 "약속은 지킨다"는 지도부에 신뢰를 보낸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합의안에 대한 지지라기 보다는 민주노조에 대한 지지라는 것이지요. 또한 현장에서 합의안 부결 운동도 있었습니다. 부결 운동도 큰 틀에서는 노조 강화에 힘이 될 것으로 봅니다. 

이전과 비교할 때 조합원들의 의식이 성장했다는 말씀입니까. 

1988년, 1994년 두 차례 파업을 했었습니다. 1994년은 전기협 공동파업이었고요. 이는 전노대, 전노협, 민주노총으로 이어지는 시점에서 궤도 노동자들의 연대파업이었어요. 1994년 파업은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돌입했던 파업입니다. 그 때는 김영삼 정권이 신자유주의 공세를 시작할 때였고, 이를 막기 위한 선도 투쟁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희생이 너무 컸고, 따라서 조합원들의 패배주의와 사측의 엄청난 현장탄압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이후 합법 노조가 아닌 조건에서 무려 6년 이상 노조민주화 투쟁을 했습니다. 이번 파업을 통해 패배주의와 무력감을 극복했다고 봅니다. 기관사들뿐만 아니라 차량, 운수, 시설, 정비 등이 파업에 함께 했고, 이전과 비교할 때 많이 달라진 것은 분명합니다. 

이번 파업의 성과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습니까?

이번 파업은 직종을 뛰어넘는 전체 철도노동자의 총단결을 통해 이뤄낸 전평 이후 최초의 철도노동자 총파업이라는 데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성과를 정리해 본다면, 첫째, 조합원들에게 민주노조의 상을 심어준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지도부가 조합원과의 약속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조합원들은 투쟁을 통해 노조의 주인으로 나섰던 것이죠. 조합원 스스로 투쟁을 결의하고, 파업에 동참함으로써 노조의 주체로 자리잡았습니다. 철도 공무원이 아니라 철도 노동자임을 선언한 것이죠. 

둘째, 공공부문 민영화가 선이라는 독단적 이데올로기를 깼습니다. 민영화를 막연하게 좋은 것으로 보던 국민들의 시각이 바뀌었죠. 이번 파업은 민영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느냐, 아니면 노동자의 구조조정 저지투쟁이 나라를 살리느냐는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었습니다. 그 중심에 노동조합이 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투쟁이었다고 봅니다. 
셋째, 투쟁 전술에서 물론 한계는 있었지만 5개 거점투쟁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한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안 해본 투쟁이었습니다. 5개 거점 투쟁을 하면서 얻은 성과는 첫날 파업에 불참했던 동지들을 바로바로 끌어낼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서울로 다 모였을 경우 첫날 용기가 없어 참여 못한 사람들이 오기 힘들었을 텐데, 5개 지역에 분산된 거점이라 그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죠. 동력을 결집하는데 유효했다고 봅니다. 

넷째, 공공부문 노동자 연대투쟁의 위력을 보여주었어요. 지금까지 민간부문의 대기업 노동자들이 투쟁의 주력이었다면, 이번 파업은 공공부문 노동자도 대등한 주력군으로 나섰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국민적·사회적 의제를 갖고 싸울 수밖에 없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의 주변부에서 벗어나 그 핵심에서 함께 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계는 무엇이었다고 보십니까?

첫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완전 철회시키지 못했습니다. 민영화 철회를 비롯해 요구안을 관철하지 못하고 투쟁을 접으면서 노사·노정간의 쟁점은 여전히 과제로 남았습니다. 

둘째, 3사 노조의 파업이 각계의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으로 확산되는 성과는 있었지만, 이것이 국민적 역량을 모아내는 대중적인 전선으로 확대되지는 못했습니다. 

셋째, 투쟁 전술과 관련해서 지도부가 명동성당에 거점을 잡음으로써 상징거점이 되었고, 이는 지도부와 현장거점의 의사소통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위원장이 직권조인했을 때 밀실협상처럼 보이게 된 것이죠. 지도부는 조합원과 함께 하거나 가까운 데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도부가 조합원의 동력을 확인하면서, 그 동력으로 교섭하고 결단을 내리는 과정을 밟아야 했는데, 조합원의 동력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채 명동성당에 고립되었던 측면이 있습니다. 

향후 노조의 과제는 어떻게 잡고 있습니까?

우선 합의문에 명시된 성과를 사수하고 실현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 사측은 합의문을 무시하고 조합비 가압류, 조합원 징계, 노조탈퇴 공작을 계속하고 있어요. 이를 저지하고 노사간에 대등한 입장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것은 철도 노사관계의 전근대성을 일소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합의문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노조 탄압이 계속될 경우, 철도노조는 2차 파업을 준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기적으로 현장탄압 분쇄투쟁에 집중할 방침입니다. 조직 내부로는 규약의 비민주적인 부분을 고치고, 제대로 된 단협을 쟁취하는 과제도 남아있고요. 

장기적으로는 이번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붙이는 현행 법체계의 부당성을 알려내고 이를 바꿔내야 합니다. 김재길 위원장을 비롯해 8명 동지들이 며칠 전 기소되었는데, 혐의는 노동관계법 위반이 아니고 업무방해였어요. 이번 철도파업은 쟁의의 주체, 목적, 방법에서 합법적이고 평화적이고 정당했습니다. 

그리고 민영화 저지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정권과 사측은 민영화 철회 요구는 단체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주지하듯 민영화는 고용과 근로조건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에 당연히 단체협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민영화 철회는 정당한 요구이고, 끝까지 투쟁할 수밖에 없는 과제입니다. 

크게 볼 때, 공공철도 건설의 상을 세우는 작업이 남아 있습니다. 현행 철도청 체제의 개혁을 비롯해 향후 남북경제통합을 대비한 공공철도 건설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노조의 정책과 대안 개발이 시급합니다. 

이번 파업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언론에 대해 한마디하고 싶습니다. 제도권 언론의 왜곡편파 보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이번에도 기승을 부렸습니다. 파업 원인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이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집중 보도했습니다. 이번 파업에서 언론이 부각시켰던 해고자 문제를 예로 들면, 노사정위에서 복직을 권고한 바 있고 전교조도 이미 다 들어주었으며 철도만 미해결로 남아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를 제대로 알려준 제도권 언론은 없었습니다. 길게는 13년 넘게 해고된 사람이 있는 현실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제도권 언론은 여전히 노동운동의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노동운동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이번 파업은 노동운동의 전략적 과제인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두 가지 과제는 노동조합운동의 활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번 투쟁이 노동운동의 전진과 한국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지금 노동운동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부터 솔직하고 당당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조건과 처지를 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위축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실력과 능력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이를 토대로 돌파할 지점을 명확히 제시해야 합니다. 투쟁이 마무리 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돌아보고, 부족한 것을 채우고 모자란 것을 메워나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정작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