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노조를 세우기까지
직장협의회에서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 발전연구회(전공연)'와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전공련)'으로 이어졌던 공무원노조 설립 시도가 마침내 그 결실을 맺었다. 2001년 10월22일 전공련 대의원 대회에서는 공무원노조 출범 시기와 노조의 형태를 결정했다. 출범일은 3월24일로 정했는데, 이 날은 지난해 발전연구회에서 전공련으로 조직체계를 바꾸면서 최초의 위원장 선거를 치른 날이었다. 당시 정부는 서울대 강당의 전기까지 차단해가며 전공련의 출범을 막으려 했고, 대의원들은 촛불을 들고 숙연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자리를 지켰다.
이미 2001년 6월9일 창원대에서 차봉천 위원장은 2001년에 노조 입법을 정부가 확실히 약속하지 않을 경우 2002년에 법외노조인 공무원노조로 가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출범일은 6월 전국지방선거와 월드컵, 그리고 노동계 춘투 등을 고려하여 3월24일로 정했다.
노조 형태는 전국 단일노조 형태로 결정했다. 국가공무원, 지방공무원의 특성을 살리면서 본부 체계로 구성하여 본부 단위의 교섭도 위임받을 수 있도록 했다. 즉 기관별 특수성도 살리는 동시에 전국 단일 소산별의 특성도 살리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노동3권을 모두 보장받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2001년 11월 교수노조, 공무원노조, 자치단체노조, 전교조가 공동으로 입법 청원안을 제출했고, 12월에는 공무원노조 추진기획단을 만들어 규약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공무원 노조 규약안은 12월 중순부터 2월 중순까지 지역별 대표를 한 명씩 추천받아 지역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토대로 논의한 후, 다시 지역에 가서 내용을 보충·보완하여 만장일치로 만들었다. 이는 모든 조합원의 목소리를 수렴해서 만든 민주적이며 자주적인 노조 규약안이었다.
이 안을 확정한 2월24일 대의원 대회에서는 3월24일 공무원노조 출범을 위한 직장협의회 차원의 노조 전환 방법을 정한 '공무원노조 건설 프로젝트'를 통과시켰다. 이 프로젝트의 골자는 연대서명 형태로 모든 조합원에게 노조 가입서를 받고, CMS 방식으로 노조건설기금(노조투쟁기금)을 월 1만원 이상씩 모금키로 하는 것이었다. 창립대의원은 조합원 가입 서명자 150명 당 1명씩으로 했고,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2월24일부터 산하 조직 전체가 노조가입 서명과 CMS 가입을 늘려 갔다. 현재 CMS를 통해 한 달에 8천만원 정도의 노조투쟁기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으며, 노조에는 65,715명이 가입했다.
노조 출범일이 다가오자 지금까지 전공련을 불법단체로만 보았던 행자부 기획관리실장이 대화 요청을 해왔다. 정부는 노조 출범을 연기하거나 결의대회로 치러달라고 요구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며 탄압을 경고했다. 하지만 전공련에게 공무원노조 설립은 지금까지 차근차근 준비해 온, 조합원과 국민에게 약속한 사항이었기에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었다.
3월14일까지 노조 가입을 1차 마감했으며, 3월17일까지 위원장을 비롯한 임원 후보 등록을 마쳤다. 이어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묶어 한 주 동안 지역별 합동유세를 진행했다.
마침내 출범한 공무원노조
3월22일부터 조합원들은 상경하기 시작했고, 행자부는 이날 공문을 보내 계장급 이상 간부들에게 직장협의회 회원들을 설득하고 회유해서 대의원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대의원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에게는 일대일로 경찰이 밀착 동행하도록 했다. 3월23일 경찰은 서울 전역에서 검문검색을 실시하여 공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무조건 경찰서로 연행했다. 지도부는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3월24일 대의원대회를 정상적으로 치를 수 없다고 보고 3월23일 기습적으로 고려대에서 대의원대회를 개최했다. 전체 대의원 456명 중 268명이 집결했고, 공무원노조의 규약과 강령을 채택하여 노조 출범을 알렸다. 마침내 공무원노조가 출범한 것이다.
그러나 임원 선출 투표를 앞둔 상황에서 뒤늦게 도착한 경찰은 대의원대회가 열리던 강당 문을 부수고 들어와 110명을 연행해갔다. 당시 현장에서 연행된 김병진 서울지역대표와 설남술 전 전공련 부위원장이 구속되었고, 다른 사람들은 이틀 후 풀려났다. 그후 바로 차봉천 전 위원장, 정용천 비대위 위원장, 고광식 전 사무총장, 김영길 전 경남지역연합대표, 노명우 전 노조추진단장, 이용한 전 부산지역연합대표에게 체포 수배영장이 발부되었다. 현재 구속자는 설남술, 김병진, 고광식, 노명우 등 4인이다.
한편 공무원노조 지도부 구성을 방해하기 위한 감시를 따돌리고 4월3일 새벽6시부터 전국 지역별로 대의원들이 지역별 임원선출 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전체 456명 대의원 중 361명(79%)이 참여하여 차봉천 위원장과 이용한 사무총장이 199표(55%)를 얻어 당선되었다. 이들과 함께 6명의 부위원장이 선출되었다. 그리고 4월4일 임원 선출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인천 부평의 산곡성당에서 열었으며, 차봉천 위원장과 이용한 사무총장, 김영길 전 경남대표와 정용천 비상위 위원장은 4월3일부터 산곡성당에서 구속동지 석방과 지도부에 발부된 체포영장 취소, 그리고 공무원노조 사수와 공직사회 개혁, 공무원 노동3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거점농성을 시작했다. 노조는 거점농성을 전개하면서 집행부 구성 등 나머지 조직체계를 정비하고, 이후 일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본부와 지부로 구성된 단일노조
공무원노조는 본부와 지부로 구성되어 있다. 본부 구성체계는 크게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으로 분리되는데 국가공무원은 중앙행정기관본부, 사법부본부, 입법부본부, 헌법기관본부, 교육기관본부 등으로, 지방공무원은 광역시도별 본부로 나눴다. 본부 아래 공무원 직장협의회가 지부로 있다.
직장협의회가 세워질 수 있는 단위는 2,400개라고 하지만, 아직 직장협의회가 없는 곳이 많다. 이런 점을 감안해 이미 직장협의회가 있는 곳은 지부와 병행하도록 하며, 직장협의회가 없는 곳은 아예 노조 지부를 세워 바로 지부 활동을 할 방침이다. 정부는 공무원노조에 300여 개의 직장협의회만이 지부로 가입해있는 점을 들어 10%도 안 되는 조직률로 어떻게 노조를 세울 수 있으며, 다른 공무원들을 대표할 수 있냐고 주장하지만 이는 통계상의 의미일 뿐이고, 실질 회원수로 따지면 많은 수가 가입해 있다.
전체 공무원은 90만 명인데, 이 가운데 교원 35만명과 군인, 경찰, 소방 등을 제외하면 공무원노조의 실제 조직 대상은 43만여 명이다. 이 중 공무원노조의 조합원은 3월14일 1차 집계 결과 65,715명, 조직률 15.3%이며, 현재 계속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상근 간부는 현재 5명이며, 임시로 3명이 더 일하고 있다. 집행부 승인절차를 거쳐 8명의 상근 간부를 확정할 예정이다. 공무원 신분을 갖고 있는 간부들은 소속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노조 일을 병행하고 있다.
대정부 교섭의 최전선에 서서
노동운동에서 공무원노조가 차지하는 위상은 중요하다. 철도, 발전, 가스 3사 노조 파업에서 드러났듯이 지금 노동운동에서 공공부문의 투쟁이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이는 공공부문이 국가경제나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민영화나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심한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제조업이 노동운동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공공부문이 상당히 성장하여 공공부문에서도 노동운동의 방향과 원칙을 세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힘을 더해가고 있다. 우선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최일선에서 방어하는 역할을 공공부문이 책임져야 하며, 공공부문 노동운동이 올바른 관점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일환으로 건강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공무원노조는 40만 명이 넘는 조직대상이 있기 때문에 노동운동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경우 정부의 예산이라든가 인사 문제에 가로 막혀 교섭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합의사항 이행을 약속 받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공무원노조는 정부와의 노사관계에서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최전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식으로 공무원노조가 건설되느냐에 따라 전교조와 다른 공기업들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공무원노조가 건강하게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무원노조는 교섭권뿐만 아니라 단체협약 체결권까지도 확실하게 담보해낼 수 있도록 노동3권 관철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다.
공무원노조의 2002년 활동계획
공무원노조는 출범했고,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는 공무원노조의 합법화를 둘러싸고 정부와의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정부는 껍데기뿐인 노조를 만들고자 할 것이고, 우리는 가능한 알맹이를 담고자 할 것이다.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누가 우위에서 논의를 앞장서 이끌어 가느냐가 관건이다. 공무원노조는 위원장도 무사히 선출했고, 4월 안에 본부나 지부결성을 완료할 것이다. 그리고 4월 말, 5월 초 전국 규모의 공무원 기본권 보장 촉구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편으로 공무원 노조와 관련한 정부쪽 입법 내용의 허구성과 부실함을 여론에 알려내고, 국회의원들에게 공무원노조 합법화의 내용을 알려 동의를 구함으로써 의원입법안 형태로 노조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이다. 물론 정부도 자기 일정에 따라 정부안을 내놓을 것이다. 정부안을 내놓는 데에 있어 노조와 함께 논의하자고 제안할 수도 있겠지만, 정부와의 논의에서 노조 입장을 반영한 내용을 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국제노동기구(ILO),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권고안마저 부정하는 정부 태도를 볼 때, 같이 논의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노조가 강력한 투쟁으로 정부를 압박해 관철할 문제다.
물론 공무원노조는 대화에 적극 나설 것이다. 하지만,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생색내기 대화가 아닌 실질적인 대화를 우리는 원한다.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내세워 다시 대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공무원 노조 지도부에 대한 탄압, 구속, 수배, 징계가 철회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정부를 믿고 대화할 수 있나. 정부가 진정 대화를 원한다면, 노조 인정과 상호 공존의 자세를 먼저 갖춰야 한다.
또, 상반기 중에 입법화 과정의 또 다른 축으로 선거 부정 감시 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내부자의 자기개혁 과제로서 선거부정 감시운동을 적극 전개하고, 공직사회 안에서 선거분위기에 편승해 특정 후보에 줄서기 한다거나 특정 후보를 홍보하는 것을 뿌리부터 차단하는, 명실공히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해 나가는 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게이트 비리'와 같은 권력형 비리도 공직사회 개혁 프로그램의 일환인 부정부패 추방운동본부를 통해 내부 고발을 활성화하는 교육을 강화하여 노조가 앞장서서 이를 고발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민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도 개발할 계획이다.
공무원노조의 과제와 방향
정부는 여전히 공무원노조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구속자가 4명이며, 앞으로 4명이 더 구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공무원노조를 연내에 입법화하겠다고 공언하면서도, 발전노조를 필두로 한 노정 대립 국면에서 공무원노조를 탄압하고 있다. 하지만, 나라 안팎에서 공무원 노조를 거부, 탄압하는 김대중 정부의 처사에 대해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국제적인 공공부문 노동단체인 PSI를 비롯해 국제노동계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에 힘입어 공무원노조는 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으며 노조 출범과 임원 선출, 본부 구성 등 노조 활동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공무원노조보다 일주일 앞서 출범한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하 공노련)과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원칙은 갖고 있다. 그러나 통합에 앞서 공노련과 시급하게 논의해야 할 문제는 공무원노조 입법에 관한 노조측 단일안을 만드는 것이다. 정부는 정부안을 내놓은 반면, 노조측에서는 공노련안과 공무원노조안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단일안을 만들어낼 필요성을 공감하면서 여러 부분에서 절충점을 찾아내야 한다. 노조 합법화를 위한 사업을 공유해 나간다면, 이후 자연스럽게 세부적인 통합논의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상급단체 문제는 조합원의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로 결정하도록 규약에 명시되어 있다. 민주노조를 지향하는 조합원들의 기본 의식이 어느 만큼 성숙되어 가느냐에 따라 상급단체 문제가 결정될 것이다. 판단은 조합원들이 직접 할 것이다.
공무원노조는 민주노조 차원에서 건강한 노조를 만드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합법화를 하더라도 건강한 민주노조 운동에 결합할 수 있도록 조직을 보다 건전하게 만드는 과정, 그리고 역사 발전에 기여하고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는 주체로서의 노동자 의식을 갖도록 하는 조합원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과 연대해서 공무원 운동도 부문운동이라는 종합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
또, 그 동안 정권에 휘둘려 잘못된 역할을 해온 관행을 우리 스스로 개혁하고, 뿌리뽑음으로써 국민을 위한 공무원, 국민에게 신뢰받는 공무원이 될 수 있도록 노조가 개혁 과제들을 스스로 실천해 나가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양대 선거를 맞아 부정부패 추방운동과 선거부정 감시운동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