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103일째 경희의료원 본관 로비인 민들레 광장에서 아침을 맞는다. 103일전, 그 이전 나의 생활, 이젠 어렴풋해졌다는 느낌마저 든다. 나의 별명은 투덜이다. 만화영화 스머프 속의 투덜이 스머프 만큼은 안되지만, 가끔은 병원이 머무나 못마땅해 대책 없이 투덜거리기를 잘한다. 아주 사소한 도구들도 원가절감을 이유로 질 낮은 것으로 교체해 버리고, 창피해서 쓸 수 없는 지경의 물품들도 종합병원, 대학병원의 이름과 무관한 듯 버젓이 버티고 있다. 그것을 쓰는 노동자들에게, 그것을 이용하는 환자들에게 불편과 피해는 고스란히 전해지고 가끔씩 있는 환자들의 불평엔 아무도 대답하지 못한다. 그런 작은 변화가 조금씩 진행되면서 우리는 많은 의문을 품었다. 대체 병원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누구를 위하는 병원인 걸까, 수입을 목적으로 하는 소유주의 이익에만 복무하는 그런 병원이 되고자 하는 걸까….
안 되는 것은 안 된다?
이렇게 근본적인 고민을 깊이 하지는 못하더라도 나와 같은 투덜이는 많다. 그러나 투덜거림은 단지 씁쓸한 자기 기분을 달래기 위해 한번 내뱉어 버리는 공허한 것이라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다. 경희의료원이 어디로 가는지, 그 길에 가장 존중되고 있는 가치는 무엇인지…. 2002년 파업은 이런 고민과 더불어 이번 투쟁을 둘러싼 어려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답을 제공하고 있다.
5월 말 파업에 돌입하고 일주일 뒤 어느 정도 협상의 진전이 있었으나, 그 뒤로 의료원의 태도는 무척이나 단호했다. '되는 것은 되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 경희의료원의 구성원 760여명이 파업에 나섰고, 그로 인해 의료원의 이미지가 손상되고, 환자의 불편이 가중되는 상황에서도 의료원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
우리가 원한 사립대병원 노동자에 대한 사학연금제도의 불리함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가 과연 '안 되는 것'인지, 안 되는 것을 의료원장은 왜 파업돌입 30분전 교섭을 요청해 수용의사를 밝혔다가 그 자리에서 즉시 철회했는지…. 의료원에서 말하는 안 되는 것이란 사학연금제도개선(본인부담금 축소)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그어놓은 선 안에서는 모든 일이 가능할 지라도 그 선 밖의, 그 선을 넘고자 하는 행동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안 되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길들이기였다. 요구사항의 경중은 필요 없다. 단지 노동자들이 단결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 무력감으로 노조를 무너뜨려 보려는 속셈은 너무나 적나라했다.
[ 9월 11일 강남성모병원과 경희대의료원에 경찰이 진입해 파업 조합원을 연행했다. 사진은 파업중인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 ▷ 출처: 보건의료노조 ]
식당 아줌마가 구사대로
시간이 갈수록 의료원의 배짱은 더욱 대담해 갔고, 우리 역시 오기로 뭉쳐갔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세 차례에 걸친 경희대 대학직원들과의 폭력사태. 대학직원들은 평화농성을 하는 우리에게 '단지 자신의 직장을 지키지 위해'왔다고 말하며 여성조합원들에게 따귀와 발길질과 소화기 난사와 소화전을 사용한 물대포 세례를 아낌없이 퍼부었다. 참담함의 극치였다.
누가 누구의 자리를 박탈하는가, 그들의 자리를 빼앗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자신들의 고용주인 고황재단이 될 것이며, 그것으로부터 저항하려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뭉친 자기 자신들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경희대 수원캠퍼스에서 버스를 대절해 타고 온 300여 대학직원들은 어떠한 상황인식도, 어떠한 조직적인 결의도 없이 대학 측의 지시에 맞춰 동원되어 온 구사대에 불과했다.
수원캠퍼스 학생식당에서 근무한다는 한 아주머니는 '의료원 노조원들이 우리 학생들 공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해서 왔지'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젊은 조교는 영문도 모른 채 '출석체크 하겠다,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다'라는 말을 듣고 할 수 없이 버스에 올랐다고 고백했다. 대학직원과의 폭력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모두는 스스로가 얼마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장의 주인이지 못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년 등록금 투쟁으로 몸살을 앓는 학교, 모 단과대학의 경우 학생회장으로 당선되고 나면 학장이 일일이 면담을 하면서 정신교육을 시키고, 교수들은 의도적으로 비운동권을 키운다고 한다.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학원자주화투쟁을 하고 있지만, 대학과 교수의 권위에 진정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의 몸짓은 억눌려 간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일까?
우리 사회는 아직도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구성원이 주인으로 바로 서지 못한 사회, 자본과 권력의 힘으로 억압에 저항하고, 권리를 요구하는 움직임을 짓누르는 사회, 이것이 경희의료원 파업사태를 통해 본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병원의 주인은 누구여야 하는가? 병원을 세운 사람, 병원에서 노동하는 사람,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 이 세 주체의 목소리가 골고루 반영된다면, 모두가 만족하는 병원이 될 것이라는 것은 뻔한 이치인데….
병원을 세운 자는 자신의 경영권을 최우선으로 한다. 필수공익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정권의 엄호 속에 '법과 원칙'에 입각한 노동조합 탄압을 보란 듯 할 수 있고, 그나마 환자보호자 권리를 대변해 온 노동조합이 무력화되면서 그것까지 장악할 수 있다는 그들의 판단, 어쩌면 그 유혹은 매우 강렬할 것이다. 그 만큼 철저히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이다.
8월8일 의료원 측에서 먼저 서로 양보하자며 제안했던 교섭이 있은 뒤, 1주일간의 철야실무교섭 끝에 합의안이 마련되었다. 그런데 8월15일 의료원 측은 합의안 작성을 거부했고, 급기야 8월19일 의료원장이 나서 합의안 자체를 전면 부정했다. 이를 보면서 많은 조합원들이 생각했다. '꼴통 의료원장 잘못 만나 이 고생을 하는구나….'
그러나 조금만 세상을 향해 눈을 돌려보면 그렇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8월25일 제주 한라병원의 용역깡패 난입 사건을 보면서 제주 한라병원장의 모습이 경희의료원장과 겹치고,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CMC의 신부 의료원장의 모습이 경희의료원장과 겹친다. 그럼 이 세 사람의 잘못만 해결하면 보건의료노조의 이 질긴 싸움은 끝나는 것일까?
사회에 만연한 강자의 횡포
이 사회는 아직 어린아이 같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걷고 있는 아이다. 그러나 걷기도 어려운 아이에게 뛰라고 질책해 온지 이미 수십 년이 흘렀다. 남들보다 늦게 산업화 된 우리나라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제대로 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 부모의 사랑이 결핍된 채 키만 훌쩍 커버린 기형적인 모습의 아이가 되어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체벌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자녀를, 학생을 대화의 상대로 보지 않았다. 다스리는 존재, 복종시켜야 하는 존재로 여겼다. 국가권력에게 국민이, 사용자에게 노동자들이 그렇게 여겨졌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걸음마이고, 이런 점에서 우리 노동자를 향한 사용자들의 시위와 국가의 무력 행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정부가 틈틈이 흘리는 병원사업장에 대한 공권력 투입 위협은 우리 사회의 유아적인 한 면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무노동무임금이 적용된 지 3개월을 넘고 있다. 조합비와 임금이 가압류당했고, 그것도 모자라 집이나 자동차 같은 재산 가압류도 이뤄지고 있다. 고소고발에 따라 소환장이 난무하고, 이미 간부 12명 해고, 그리고 줄줄이 전조합원 징계가 기다리고 있다. 대화는 간 데 없고, 일방적 뭇매만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 놓고 대화하자고 한다. 그래 놓고 우리만 문제란다.
이번 파업을 통해 사회 전반에 깔린 지배자와 피지배층의 대립을 본다. 강자와 약자의 대립을 본다. 강자의 횡포 속에 약자의 인권은 유린되고, 우리네 삶은 척박해 간다. 경희의료원장만 문제일까?, 한라병원장, CMC원장만 문제일까?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지키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좀더 인간답게 살게 해달라는 노동조합운동이 이다지 길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인지 신참 노조간부인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만만치 않다.
동지들과 함께
그러나 공권력 투입이 임박하다는 정보에 파업대책본부가 내린 비상령으로 귀가했던 조합원들이 한밤중임에도 속속 민들레광장에 집결하고 새우잠을 청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우리의 투쟁은 본능과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창시절 교사의 부당한 처우에 학생들을 선동해 앞장서 저항했던 학생에게 가해진 것은 억센 따귀 한 대였다. 사회에서 자신이 몸담은 조직 안에서 인정받기 위한 진정 소박하다 할 수 있는 이 투쟁의 길에서 우리 모두는 그 따귀를 각오했던가. 그러나 각자의 인생에서 이미 수 차례씩 겪었을 그러한 대우에 따귀 한 대는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이 없을지 모른다.
자신의 몸뚱이가 그 불에 그을릴 지라도 본능적으로 불을 찾는 불나비같이 우리는 서투르지만 오늘도 날개 짓을 한다. 그 날개 짓이 일으킨 바람은 언젠가 큰 태풍으로 몰아칠 것이다. 그러한 신념으로 우리는 오늘도 농성장을 지킨다. 누구 때문이랄 것 없이. 서로를 믿으며, 자신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