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정권에 의한 인권침해였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자본에 의한 인권탄압이죠. 우리는 개별 기업에서 일어나는 인권탄압에 대해 좀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뷰를 요약하자면 결국 이 말로 압축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추상이 아니라, 인권탄압으로 인해 결국 개인의 정신이 파괴되고 가정 파탄으로 이어지는 구체적 현실이라는 것.
청구성심병원노조 조합원들은 사측의 탄압에 의해 정신질환에 걸려 집단적으로 산재판정을 받은 일이 있었다. 노조 탈퇴를 종용하며, 조합원이란 이유로 자본이 인간의 정신을 망가뜨리는 일이 이제는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공무원노조 조합원에 대한 각 구청의 인격적 모독과 상사의 언어폭력, 얼마전 보도됐던 삼성전자의 휴대폰 위치추적, 경찰청 고용직 공무원노조에 대한 인권침해 등.
이제 여기에 더해 KT 상품판매팀 노동자의 인권탄압 사례가 생생하게 기록된 백서가 출간됐다. 이 백서에 따르면 상품판매팀 노동자 중 명예퇴직을 강요받은 노동자가 96%, 온갖 협박을 당한 노동자의 수가 90%가 넘었고 차별행위로 고통받고 있다고 답한 노동자가 98%였다. 결국 상품판매팀 노동자도 청구성심병원 노동자와 같이 정신질환을 산재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총 17차례에 걸친 KT 상품판매 노동자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작업을 펼친 이해관(42)씨는 95년 KT의 전신인 한국통신 부위원장을 지낸 후 해고 노동자로 살아가며 현재 사이버 노동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노동자에겐 희생을, 해외투자자들에겐 이익을
“KT가 사유화 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정말 그 당시 주장처럼 KT 사유화가 잘된 일인지 한번 되짚어 봐야죠.” 그렇다면 10년이 지난 KT 사유화, 그의 견해는 어떨까. “공기업 시절 국가 통신인프라 유지보수라는 공공성 중심의 경영은 사유화와 더불어 매출지상주의로 변모했어요. 이익은 해외투자자들에게 돌아가고, 이는 KT 노동자의 엄청난 희생 속에서 나온 것이죠.”
구체적으로 들어보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KT 사유화 이후 노동자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의 말의 들어보자. “김천 전화국의 한 노동자는 개인 명의로 무려 1,354대의 휴대폰을 가개통한 사실이 폭로됐었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KT는 직원 명의로 핸드폰을 여러개 만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죠. 직원이 아닌 가족 명의로, 자식 명의로 친구 명의로 본인이 마구 출혈을 감수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영업실적을 강조하다보니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2004년 5월에만 33세에서 42세의 노동자 네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서른세살의 김현중씨의 경우, 핸드폰 판매실적에 대한 정신적 압박 때문에 자신 명의의 핸드폰 9대를 가개통하기도 했고 이로 인해 월 100만원이 넘는 전화요금에 시달렸습니다. 그의 유품에는 심지어 두 살 난 어린이에게도 PCS를 판매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자, 여기서 KT 상품판매 전담팀(이하 상판팀)에 대해 질문해 보자. 오늘 그를 만난 이유가 바로 상판팀에 대한 인권탄압사례 백서이기 때문에.
2003년 9월 KT는 국내 단일기업으로는 최대규모의 명예퇴직을 단행하게 된다. 명퇴자만 무려 5,505명이었고 이는 KT 전체 노동자의 12.6%에 달했다. 명예퇴직을 신청하지 않으면 농어촌으로 발령하겠다는 등 전방위적 압력이 있었고 KT는 상품판매팀을 전격 신설해 명퇴의 주요 표적이었지만 이를 거부한 노동자를 잔류시키게 됐다.
[ 기자와 인터뷰중인 이해관 전 한국통신노조 부위원장 ]
명퇴대신 강요받은 상품판매팀
“KT는 상판팀을 구성해 명퇴를 거부한 노동자를 강제로 배치했죠. 보통의 영업사원은 구역이 정해져 있고 다양한 지원이 있는 반면, 상판팀은 구역없이 영업을 해야하죠. 영업사원은 판매촉진상품이 지급되지만 상판팀은 아무런 지원이 없습니다. 인기있는 핸드폰 단말기도 상판팀이 요구하면 없다고 하고 영업사원이 요구하면 어느새 단말기가 나타나곤 했죠.”
당연히 판매실적은 저조했고 인사고가도 바닥일 수밖에 없다. 이를 계기로 사측은 끊임없이 퇴직을 강요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됐다. 20년 넘게 기술직으로 근무하다 상판팀으로 배치된 노동자는 상품판매에 대한 노하우가 없기 때문에 친척과 가족들에게 상품을 판매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KT의 입장에서 보자면 눈에 가시인 노동자를 모아놓았으니 곱게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있었는지 하나의 예만 들어보자.
이아무개씨의 경우 2001년 체납분사 시 명퇴를 권유받았으나 이를 거부했다. 그 직후 이씨는 2001년 7월 고향인 부산에서 울산, 울산에서 경기도 안성, 수도권강남본부(수원)로 대기발령, 대전, 여주지점, 이천, 대전으로 인사발령. 기술부서 과장으로 사무실에서 주로 근무했던 이씨는 이런 잦은 인사에 적응하지 못해 인사고과 D등급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퇴직 강요가 이어졌지만, 아직까지 버티고 있다고 한다.
3년간 부산-울산-안성-수원-대전-여주-이천-대전 등 낯선 지역에서 KT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 노동자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의 가족들은 또 어땠을까? 그는 당장이라도 회사를 때려치고 싶지 않았을까?
“형편이 되는 사람은 더러운 꼴 안보고 나갑니다.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은 모두다 여기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정신질환에 걸릴 정도로 탄압을 받지만, 생존을 위해 모질게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비참해지고 정신질환에 노출되는 거죠. 상판팀 인원이 약 466명입니다. 2003년 12월과 인원변동이 없어요. 이 사람들이 애초에 명퇴를 거부할 때부터 나갈래야 나갈 수가 없는 사람들인 거죠. 그래서 그렇게 견디며 살고 있는 겁니다.”
감시와 탄압, 개인의 문제인가
상판팀은 한시간대 별로 육하원칙에 의해 일과를 보고해야 했고, 마케팅을 위해 고객을 만나러 간다고 하면 고객의 주민번호를 받아 오라고 시키며 감시하기도 했다.
결국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상판팀 노동자 중 188명이 정신과적 선별검사인 MMPI(다면성 인성검사)를 받은 결과 45%에 해당하는 84명에게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게 됐다.
상판팀 중에는 집에서도 누가 보는 것 같아서 커튼을 치고 생활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강아무개씨의 경우 사측으로부터 언어폭력이나 사진촬영 등 일상적인 감시 외에 단지 차별에 의한 스트레스로 정신질환 판정을 받았다. ‘차별로 인한 정신질환’,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가 생각날 수 밖에 없다. 향후 이런 판정이 어쩌면 줄줄이 쏟아져 나올지 모른다.
KT 상판팀은 사내에서 의외의 효과(어쩌면 의도된 효과)까지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상판팀에 포함되지 않은 걸 위안 삼으며 살게 됐죠. 그 사람들 역시도 작업장내에서 억압을 받는데 말이죠. 상판팀에 포함되지 않는 노동자는 한마디로 ‘나락을 향한 질주’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자신이 그 무시무시한 상판팀에 포함되지 않은 사실만 가지고도 현실의 억압을 견디며 살아가니까요.” 정규직조차도 정규직으로 살아남기 위해 더욱더 힘든 업무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KT가 얼마전 노동부로부터 ‘신노사문화 대상’을 받았다. 당일 이를 항의하던 노동자 네명이 행사장에서 끌려 나왔는데 거기에 이해관씨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KT가 신노사문화 대상을 받은 건 우리사회 노사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다. 파업만 없으면 그게 신노사문화입니까. 노동자가 죽건말건 파업만 없으면 되는 마치 70년대 수출산업탑 훈장을 주는 느낌이었죠.” 감시와 차별은 과거에는 오히려 노동계의 이슈가 됐다. 그러나 지금은 만연화 됐음에도 노동운동의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작업장내에서 벌어지는 감시와 탄압을 개인이 이겨내야 하는 문제로 치부하는 풍토 또한 안타까운 부분이란다. 직장내 감시와 차별문제에 대해 전선을 세우고 싶었다는 이해관씨는 그래서 좀더 노동단체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한다.
“사회는 시민사회단체의 관심속에서 민주화가 진행됐지만, 아이엠에프 이후 기업은 성역이 됐어요. 기업에 사회가 식민화 되고 있는 상황을 주목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죠. 기업의 인사권, 경영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노동조합조차 기업내에 포섭화 되는 구조 아닙니까.”
사유화에 대한 접근이 소유권이 국가있는가 개인에게 있는가에만 매몰되지 말고, 효율성과 공공성의 대립만으로 비춰지지 말고, 이 사유화가 과연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알리고 싶었다고 덧붙인다.
“예전에 리차드세넷이라는 사람이 지은 『신자유주의와 인간성파괴(문예출판사/2002)』라는 책을 보면서 제목이 너무 과장돼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험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피상적으로 접했던 신자유주의가 현실에서 어떻게 보여지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짧지만 강한 어조로 향후 계획을 말했다.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민주노동당과 함께 KT 사유화 10년의 역사를 제 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상판팀을 해체하는 것도 주요한 목표겠죠.” 신자유주의체제의 인간보고서를 꼭한번 읽어보길 독자들께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