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하며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을 앞둔 요즈음 경제의 화두 가운데 경제 운영상의 미스매치 문제가 으뜸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 용어는 원래 '미스매칭'(mismatching)으로 상거래에서 대금결제가 한 시점에 집중돼 일시적으로 결제가 정체되는 현상을 일컫는 것이다. 원래 의미는 기간불일치라 하여 거래관습 때문에 발생하는 대금결제상의 애로현상을 뜻하는 것일 뿐이다.
이 용어는 점차 넓은 영역에서 사용되어 장단기 자금의 구성비, 외화자금거래의 구성비, 주식회사에서의 지배구조문제 등에까지 사용되고 있고 거의 모든 영역에서 균형적이 아닌 현상을 설명할 때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미 스매치는 IMF 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현상을 설명하는데 안성맞춤이기 때문에 원산지인 선진국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애로(bottleneck), 즉 동맥경화 현상이 잦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경제안정과 이 용어의 확산은 명백한 상반관계를 갖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이 현상을 입증하는 사례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풍부한 시중자금이 생산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을 비롯한 비생산적인 투기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생산영역의 불안정 때문에 자금이 증시나 기업설립에 나서기를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미스매치 현상을 거시경제 현상에서 파악하고 이를 해소할 방법을 노무현 정권 5년 동안의 경제개혁 과제로 제안하고자 한다.
[ 손승길 신임 전경련회장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만나고 있다. ▷ 출처:오마이뉴스 ]
2. 한국경제의 미스매치 현상
1) 재벌의 소유지배구조의 미스매치
증 권거래소의 조사결과(2002년 11월 말 기준)에 따르면 10대 그룹 소속 상장사들의 주식 가운데 재벌 회장들의 보유물량이 2.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김대중 정권의 재벌정책이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30대 기업집단지정제도 폐지, 출자총액제한제도 완화로 급속히 후퇴한 결과 문어발식 확장과 황제 경영이 더욱 심화되었음을 입증한다.
IMF 위기의 원인제공자로서 재벌에 대한 개혁 여론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권과 한나라 민주, 두 보수정당은 대선을 앞두고 재계의 규제완화 요구를 전폭 받아들였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경제 상황의 개선이라는 막연한 꿈을 심어주고 난 후 대선을 치렀다.
불과 2%에 불과한 지분은 선진국 수탁 경영자의 지분 정도 밖에 안 되는데 한국에서는 이것을 바탕으로 황제와 같은 경영권이 파생되고 있다. 심지어 한 주도 없는 계열사들의 경영에 밤 놓아라 대추 놓아라는 식으로 독단적인 경영 판단을 한 대가로 거액의 연봉을 챙기는 한편, 계열사가 망해도 자신들은 오불관언으로 책임지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토대의 미스매치 현상은 바로 재벌의 소유지분과 경영권의 미스매치라 할 수 있다.
현 대 경제에서 가장 주요한 기업 형태인 주식회사의 유한책임주의에 기생하여 대주주 가문이 주식회사의 주인인 주주와 노동자들의 권리를 잠식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재벌체제의 문제점이다. 이는 재벌들이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규제를 완화하라고 주장하는 바로 그 시장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행태이다. 재벌 자체가 시장을 교란하는 반시장적 현상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노 당선자가 재임 기간 동안 확실하게 실천해야 할 과제가 나온다. 노 당선자가 "출자총액제한, 집단소송제, 상속·증여세 완전 포괄주의, 이 세 가지 정책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한 것은 재벌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보아도 무난할 것 같다.
노 당선자가 이 세 가지 정책을 확실히 시행한다면 재벌지배구조의 미스매치 현상은 사라질 것인가.
김 대중 대통령 임기 말에 이루어진 재벌규제 완화책에는 자산 규모에 따른 대기업집단지정제도와 출자총액제한 완화조치가 들어있다. 이 재벌규제 완화책들은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자산 규모에 따른 대기업집단지정제도는 자산 규모에 따라 규제를 함으로써 많은 하위 재벌들이 규제에서 벗어나고 재벌 현상과 무관한 공기업들이 대거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되는 등 실효성이 반감되었다. 또한 공기업 인수의 경우 출자총액제한에서 제외되고 있어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을 확대시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출자총액제한의 유지만이 아니라 완화조치 이전으로 복구되어야 할 것이다.
집단소송제의 경우, 사후 규제장치이기 때문에 사전 규제가 가능하도록 노동자 소유 경영 참가제와 함께 시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재벌들이 반발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인 소의 남발도 방지함은 물론 경영에 대한 노동자의 불신을 없애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기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재벌 지분의 크기와 경영권 미스매치를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개혁 정책인 것이다.
[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분과 위원들이 회의를 갖고 있다. ]
2) 자금시장의 미스매치
한 국은행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2년 11월말 현재 은행, 투신, 종금사의 총수신 783조원 중 만기 6개월 이하 단기 수신자금은 370조원으로 47.2%로 지나치게 높다. 게다가 증가 속도가 매우 빨라 내년 상반기 안에 단기자금 비중이 장기자금을 추월, 경제에 충격이 있을 경우 미스매치 현상이 발생하여 자금시장 혼란이 우려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은행들이 수수료 수입 확대를 올해 주요 과제로 삼으면서 수익증권 판매액이 크게 늘었지만 단기 부동자금인 MMF(머니마켓펀드)에 전체 판매액의 약 90%가 쏠려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자금의 부동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채권시장이 뜨겁게 달구어져 한은이 통화안정채권 3조 원어치를 발행하자 시중 자금이 4조2천억 원이나 몰려 최초로 5%대 이하인 4.78%로 이자율이 떨어졌다.
이러한 자금의 단기부동화 현상은 현재 북핵문제, 이라크전쟁, 가계부채 등과 함께 한국경제를 강타할 미스매치로 꼽히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재벌 개혁을 추진하였다고 하나 실제로는 생산영역, 즉 기업영역에서 재벌의 내부 지분율 증가로 인해 불투명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자금이 생산영역으로 흘러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노 당선자가 자금시장의 미스매치현상을 없애려면 대기업 경영을 투명하게 하고 부동산을 포함한 투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부동산 투기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김대중 정권이 경기 활성화를 위해 푼 규제완화책(분양가 자율화, 분양권 전매 부분제한 등)을 원상복구해야 한다. 보증금 보호라는 부분적인 기능밖에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정하여 장기간 계약갱신을 보장하고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여야 한다. 부동산 투기는 공급부족 때문이 아니라 임대료의 일방적인 고율 인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투기자본이 부동산으로 일시에 몰려 발생하는 것이다.
3) 노동과 임금의 미스매치
경 제위기 이전 이미 40%대를 넘어섰던 비정규직 노동자층이 지금 56%를 차지하고 줄어들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선진국보다 훨씬 위험하고 복잡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은 정규직에 비해 절반 정도 밖에 받지 못하는 노동과 임금의 미스매치 현상 때문이다.
기업이 일시적인 필요로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해서 즉 비용절감 차원에서 고용하는 비정상 고용 구조가 확대·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노동생산성의 증대가 아닌 착취의 증대로 이윤을 확보하는 저급한 기업경영 철학과 노동정책의 반영이자 기술 경쟁력을 후퇴시키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사회의 유효수요를 급격히 축소시키고 빈부격차를 확대시킨다. 청년실업의 증가, 신용불량자의 급증은 바로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노 당선자는 빈부격차의 해소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 정치인이다.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수립하겠다고 발표하였으나, 현실 타당성을 얘기하며 오히려 대기업에서 노동유연성 문제로 말꼬리를 감추고 있어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3. 결론
경제위기 이후 BIS 조기시행으로 기업대출 대신 묻지마 가계대출로 금융부실화가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에 몰려들고 있는 여러 미스매치 현상은 우리 사회를 송두리째 위기로 몰아갈 태세이다.
노 당선자가 이 위기를 진정으로 극복하겠다면 먼저 이 사회에 만연한 미스매치 현상을 올바로 보고 이를 없애는데 정책역량과 행정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위기의 해소방향은 ▲ 노동자소유경영참가를 통한 재벌문제의 해소, ▲ 자본의 단기 부동화를 해소할 투기억제책 등의 생산적 분배방안, ▲ 금융자산으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는 계층에 대한 과세강화, ▲ 비정규직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도입, ▲ 주거비·교육비 등의 부담을 해소시키고 불로소득의 확대를 억제할 빈부격차 해소방안 등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