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부른 두산중공업 노무관리

노동사회

죽음을 부른 두산중공업 노무관리

admin 0 5,575 2013.05.11 12:26

"오늘 오후 3시에 고 배달호 열사 추모 집회가 노동자 광장에서 열립니다. 조합원들께서는 한 분도 빠짐없이 추모 집회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jojik21_02.jpg지 난 1월10일 두산중공업. 노조 간부가 점심시간을 이용해 추모집회 참석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토요일 오후, 마이크를 든 간부 앞에는 퇴근 버스가 줄지어 서 있다. 버스 안은 얼추 보기에도 퇴근하는 노동자들로 자리가 메워져 있었다. 무엇이 이들의 발길을 추모집회가 열리는 노동자 광장으로 옮기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두산의 노무관리는 노동계에서도 악평이 나있다. 작년 3월부터 노무팀 인원을 세 배로 늘여 조합원들을 밀착 관리하고 있어 조합원들이 위축되고 있다. 사측은 조합원과 개별 면담을 통해 파업에 참여하지 말도록 선도 활동도 하고 있다. 한국중공업 시절 4천8백 명에 이르던 조합원이 지금은 3천7백 명으로 줄었다. 특히 진급 때가 되면 노조 탈퇴자가 많아지는 게 노조가 처한 현실이다. 조합원들이 노조 활동은 물론 집회 한번 참석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두산중공업 지회 정순모 조직1부장의 한탄 섞인 말이다.

현장조직력 와해

두산중공업은 2000년 12월 온갖 특혜 의혹 속에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뒤, 석달 지난 2001년 3월 1,124명을 명예퇴직 시켰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소사장제를 도입하며 노조 무력화 작업을 시작했다.

노 조는 2001년 사측의 단체협약 합의사항 폐기 요구와 소사장제 실시 요구에 맞서 3개월 동안 파업을 벌였다. 이때 사측의 소사장제 철회로 어렵게 파업을 마무리했지만, 이는 전초전에 불과했다. 사측은 노무팀 인원을 3배로 늘여 개별 조합원을 설득하고 회유하며 현장 조직력을 조금씩 와해시켰다. 현장 조직력의 약화는 필연적으로 사측의 대대적인 공세를 낳았다.

사측은 2002년 2·26 민주노총 노동법개악 저지투쟁에 참가한 조합원과 간부 201명을 대량징계 하면서 본격적으로 노조 파괴에 돌입했다. 퇴직금 가압류를 받고 있는 두산중공업 해고자인 조희균 씨(41)는 "사측은 2월26일 파업을 가지고 노조의 눈치도 볼 것 없이 마음놓고 징계를 때렸다"며 분개했다.

굴욕적인 임단협 합의

자신감을 얻은 사측은 2001년 단체협약에서 합의한 집단교섭을 합당한 이유 없이 불참했고, 노조는 47일 동안 전면 파업으로 사측과 맞섰다. 노조가 47일간의 전면파업으로 얻은 대가는 대량징계와 고소고발, 가압류였다.
 
배 달호 조합원도 이 파업으로 구속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3개월 정직, 재산과 임금을 가압류 당하게 됐다. 현장 분위기는 급속도로 위축됐으며, 사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같은 해 11월 단체협약 해지 통보를 노조에 보내게 된다.

결 국 2002년 두산중공업지회는 △ 금속노조 집단교섭 삭제, △ 임금동결, △ 노조 전임자 2명, 산업안전보건위원 축소 등을 골자로 하는 임단협에 합의하게 됐다. 이 가운데 특히 금속노조의 단체교섭권 삭제는 '굴욕적'으로까지 표현됐다.

당시 민주노총 경남본부 이흥석 수석부본부장은 한 지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경영계의 상징성을 갖고 관철시킨 결과"라며 "산별 교섭의 경우 사측의 공동 대응으로 단협 일방 해지가 기업체 노무 전략으로 활용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단체교섭권의 경우 경영계 입장에서는 초미의 관심사였고 노조의 입장에서 볼 때 물러설 수 없는 부분으로 인식됐음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에게는 큰 문제로 인식되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두산중공업 지회 주재석 부지회장은 "현장과 함께 다양하고 폭넓은 사업을 펼치지 못한 결과"라고 전제하며 "집단교섭문제만 하더라도 노조에서 조합원들에게 그 중요성을 충분히 설명하면서 다가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 속노조 김정호 교선실장은 "교섭 마무리 과정에서 바로 잡으려고 했지만 노조와 조율이 안됐다"며 "지회 집행부의 의지가 있더라도 간부들은 현장 조합원의 정서를 외면 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장 조직력 강화가 가장 절실하다"고 말했다.

신종 노동탄압, 손해배상과 가압류

신 종 노동탄압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배달호 조합원 분신의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인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를 사용자측에 권장한 것은 국정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해 5월10일 청와대 비서관회의에서 "불법폭력 노조운동을 용납해서는 안되지만 구속만이 최선은 아니"라며 "불구속기소나 민사소송 등 여러 가지 방안에 대해 검토해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대통령으로서 노동탄압, 특히 구속노동자 수가 전임자에 비해 훨씬 많은 것에 대해 국제적으로 비난 여론이 일자 김대중 대통령은 구속보다는 민사소송 등을 통해 해결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민 주노총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민주노총 산하 39개 사업장에 부과된 손해배상 가압류 금액은 1,264억 원에 달한다.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가 노조 파괴를 위한 새 방법으로 등장한 이유는 노조 활동으로 형사처벌을 할 경우, 그 대상이 노조 지도부와 주요 간부에 한정되지만 손해배상소송과 가압류는 모든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이런 방법을 사용해서 일반 조합원을 위축시키게 되면 조합원에 대한 노조의 장악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노조가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또한 형사처벌에 비해 손해배상소송과 가압류는 신속하게 이뤄져 사측이 선호하게 된다.

김기덕 변호사는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 자체를 문제삼기는 힘들다"며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할 때만이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가 성립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정당한 파업권을 제한하는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불법파업'의 빌미가 되는 직권중재조항 등을 삭제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업무방해죄' 적용의 제한과 민사상 면책의 확대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조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 분신자살 내몬 두산재벌 박용성 회장 퇴진하라"

' 두산재벌 노조탄압 규탄·노동열사 고 배달호 동지 분신사망대책위원회'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로 재벌 천국을 꿈꾸는 박 회장의 기업경영은 혹독한 백화점식 노동탄압 그 자체였으며, 노동자들을 숨쉬기도 어려운 극도의 불안 상태로 내몰아 결국 50대 노동자를 분신자살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노동계의 분노는 뜨겁다. 민주노총 산하 조직은 물론 한국노총 산하 조직에서도 두산재벌의 반노동자적인 행태를 규탄하는 성명이 발표되었고, 창원과 서울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항의 집회가 열렸다. 노동계는 두산중공업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실시와 부당노동행위 처벌, 박용성 회장 사과와 사퇴, 가압류·손해배상청구·해고 중단, 나아가 한국중공업 민영화 과정에서 불거진 헐값 특혜인수 의혹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사태는 두산중공업 개별 사업장의 수준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분신의 근본 원인이 개인이나 개별 사업장에 있던 것이 아니었다. 문제 해결은 개별 노사 차원을 넘어 전국 수준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상급단체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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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