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를 마친 어느 '초보'보좌관의 소회

노동사회

국정감사를 마친 어느 '초보'보좌관의 소회

admin 0 4,260 2013.05.12 04:06

국정감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기자 한명이 국감 처음 치러본 소감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그 때 내 대답은, “솔직히, 모르겠다”였다.

기자 입장에서는 별로 반갑지 않은 종류의 대답이었을 테고, 언론에 민감해야할 의원보좌관의 답변치고는 그다지 세련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더하고 뺄 것 없이 그때 내 심정이 딱 그랬다.

“솔직히, 모르겠다”

솔직해지는 김에 더 솔직해지자면, 사실 이번 국정감사는 그리 많은 준비를 하지 못했다. 원래 모범생들이 “교과서만 봤어요”라고 거짓말하는 거라지만, 사실이 정말로 그랬다. 교과서밖에 볼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따로 볼 참고서도 없었다.

의정활동과 관련해서는 당도 ‘초보’고, 의원도 ‘초보’고, 보좌관들도 ‘초보’다보니, 무엇하나 쉬운 게 없었다. 17대 국회가 시작되고 나서 낯선 절차들과 낯선 용어들, 낯선 기관들에 대충 적응훈련을 마치고 나니 세상에나, 국정감사가 한달도 채 안 남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급했지만 그때부터 의원실이 국감체계로 전환해 철저한 준비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경제현안에 대한 대응을 마련하고, 의원의 의정활동 지원도 소홀히 할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여전히 국정감사는 제일먼저 생각하면서도 항상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지나간 이야기처럼 말하지만 국감직전에 의원실에서 느꼈던 부담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민주노동당, 말은 많더니 그래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한번 보자’ 하는 식의 다른 당 의원들과 언론의 눈길은 둘째치고, 50년만에 원내 진출한 진보정당 의원들이 어떤 성과를 낼 것인가 잔뜩 기다리고 있는 당원들의 기대는 사명감 하나만으로 돌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부담을 안고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준비수준으로 국정감사를 시작했다. 다른 당 의원들은 ‘영양가 없는’ 기관들을 대충대충 넘기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지만 정책정당을 표방한 우리도 그럴 수는 없는 법. 피감기관 하나하나에 똑같은 노력을 기울이며 20여일을 관통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듯이 보내다보니 다 치루고 나서도, 정작 국정감사 전반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사실은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 대답이 “솔직히, 모르겠다”였다.

다행히 국정감사 이후 언론이 메긴 성적표는 후하게 나왔다. 다른 정당 의원들의 관전평도 칭찬 일색이다. 의원실을 대하는 관료들의 태도도 바뀌었고, 시민들의 격려전화도 부쩍 늘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는데 주변에서 다들 잘했다고 하니까 한동안은 어깨에 힘 좀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이제 국정감사는 끝났다. 민주노동당 의원실의 일은 양으로나 질로나 국정감사 때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래도 지난 20여일간의 전투에 대해 뒤돌아볼 여유는 생겼다. 어깨에 힘 좀 빼고 뒤돌아본 국감은 딱 세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낯설음’, ‘아쉬움’, ‘자신감’. 이제 조금 더 길게 이야기해보자.

713sim_01.jpg
[ 재경위 국감장에서의 심상정의원 ]

갓 상경한 시골쥐 보다 더 컸던 낯설음

초보 국회의원들과 초보 보좌관들이 국회에 처음 들어와 저지른 실수는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다른 당 초선의원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리고 사실 절차나 제도의 낯설음은 한번 배우고 나면 해결되는 것들이다. 정작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그런 자잘한 것들이 아니라 우리가 담당해야할 ‘내용들’의 생경함과 놀랄 만큼 다양한 의제들이었다.

50년 만에 처음 국회에 들어와 봤으니 시골쥐가 서울에 와서 느꼈을 충격 비슷한 것은 예상을 했다. 아마 민주노동당 의원실이 모두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재정경제위원회’이기 때문에 맛봐야 하는 충격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보좌관들이 한국사회에 이런 의제가 있었나, 우리나라에 이런 일을 하는 기관도 있구나 하고 놀랄 정도였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그게 민주노동당의 수준이었다.

한때 정치경제학은 열심히 봤지만 실물경제에는 한없이 소박하기만 했고, 모든 경제 문제는 ‘자본주의의 병폐’, 이 한마디로 해결해버리던 시절과 ‘원내정당’이 되고 난 뒤의 상황은 그렇게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 대한 준비가 우리에게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사실 서민들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조세, 금융 등 경제 분야지만 진보진영은 이 분야에 대해 그동안 ‘그들의 영역’,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간주해 왔다. 우리 스스로를 관련 의제로부터 소외시켜 오다보니 자연스럽게 재경위는 민주노동당에게 낯선 곳이 되어버렸다. 그 오랜 시간의 낯설음을 서너달 동안의 압축적인 경험을 통해 극복해야 했던 것이다.

한편, 일상적으로 마주쳐야 하는 관료사회도 정말 적응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현장의 노사관계는 안 풀리면 욕이라도 하면 됐지만 욕을 하려고 해도 무조건 굽히고 들어오는 관료들은 영원히 어려운 관계로 남을 것 같다.

실질적 경제정책 부족에 대한 아쉬움

이번 국정감사를 앞에서 이야기한 세 단어 중에서도 한 가지만 꼽아서 표현하라면 “아쉽다”는 단어가 가장 적당할 것 같다. “조금만 더했으면 더 좋은 성과가 나왔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모범생’들이나 할 법한 멘트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정말로 아쉽고 안타까운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앞서 볼 ‘참고서’가 없어서 ‘교과서’만 봤다고 했는데, 참고서란 재정경제분야와 관련해 우리의 정책을 풍부히 해주고 지원사격을 해줄 연구자나 단체의 네트워크를 말한다. 그런데, 이번 국정감사를 하면서 경제분야에 대한 진보진영의 정책능력이 급격하게 왜소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도 각종 정세분석의 첫 장은 언제나 세계경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정작 실물경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보적인 대안과 계급적인 해법을 가지고 있는 연구자나 단체는 한국사회에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이번 국감의 성과 중 하나라면 하나다. 한때 진보학계의 기둥역할을 하던 것이 경제학 연구자들이었는데, 도움을 받아 보려하니 상당수는 이미 연구방향을 틀었거나 원론적인 수준 외에는 발언을 꺼리는 형편이었다.

민주노동당 다른 의원실에서는 “그래도 재정경제위원회는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좋겠다”며 부러워했다. 우리 의원실에서도 단체들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와는 차이가 있었다. 시민단체들의 경우 조세 등과 관련해서는 많은 도움이 됐지만 다른 경제분야에서는 당의 입장으로 취하기에는 시각의 차이가 있는 것들도 적지 않았다. 노동조합의 경우 많은 수의 금융계 노동조합들이 기업별조직이다 보니 제도와 관련된 문제보다는 사업장의 현안을 가지고 의원실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노동조합이 사업주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의원실을 찾는 경우에는 난감하다 못해 화가 나기도 했다.

다행히 우리 의원실은 이번 국정감사 과정에 굵직굵직한 이슈들을 몇 개 터트려 언론의 조명을 받긴 했다. 하지만 이 이슈들은 민주노동당 의원만이 제기할 수 있었던 내용은 아니었다. 언론의 주목은 받지 못했지만 이번 국감에서 심상정 의원은 민주노동당만이 제기할 수 있는 문제들, 색깔이 확연한 주제들도 제기했다.

언뜻 생각나는 것만 해도, 한국은행 감사 때 금리의 계급성 문제, 조달청 감사 때 용역노동자들에 대한 최저임금위반 문제, 통계청 감사에서 각종 통계의 계급적 편중문제 등이 있었다. 또, 사회복지예산을 증액했다는 기획예산처 주장이 허구임을 입증한 것과 비정규직근무를 경력에 합산하지 않는 공무원규정의 문제를 중앙인사위원회 감사장에서 지적한 것도 민주노동당만이 제기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정책국감을 소리 높여 요구했던 언론도 국감 때는 기사거리가 되는 내용에만 관심을 가졌고, 막상 의원실도 외형적 성과에 대한 부담이 크다보니 정작 이런 진보적인 이슈들을 당원들과 공유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을 빼놓을 수 없다. 물리적인 시간의 부족함이야 민주노동당 10명의 의원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초선의원들 공통의 제약이었지만 다른 당과 비교할 때 확연히 드러나는 정보력의 부재와 경험의 부족은 노력으로 보충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정말 의혹으로 가득 찬 문제지만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 포기해야 했던 이슈들이 적지 않았다.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자신감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것은 이번 국감을 통해 얻은 것은 자신감이다. “걱정은 많았지만 막상 해보니까 되더라”식의 자신감이 아니라, 우리의 시각과 내용이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데서 오는 자신감이다.

보좌관들 모두 국회에는 처음이었지만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영역에서 나름의 역량을 쌓아온 활동가들이다. 따라서 객관적인 능력에 있어서 다른 당 보좌관들에 뒤질 염려는 처음부터 없었다. 의원과 보좌관들이 보여준 호흡은 다른 당 의원들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우리의 주장과 시각이 어느 만큼 설득력이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국감에 들어가 보니 보좌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민주노동당의 시각은 파괴력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재정경제위원회라고 하는 곳은, 지난 50년 동안 여야의 구분도 없이 오직 가진 자들의 이익만을 한목소리로 대변해 왔다. 그런 곳에서 동일한 사안일지라도 서민의 시각으로, 노동자의 시각으로 보고 이야기한 당은 민주노동당이 최초였던 것이다.

보수정당의 의원들과 관료들의 입장에서는 ‘낯선’ 주장이겠지만, 이들이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것에 스스로도 놀랐다는 후문이다. 여야가 선거철만 되면 서민을 위한 정치를 목놓아 외쳤지만 정작 국가의 경제정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서민은 고려의 대상조차 못되었다는 사실이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입증된 셈이다.

다른 상임위원회의 민주노동당 의원들 모두 활약이 컸지만 진보정당이 국회에 존재해야하는 이유를 재정경제위원회처럼 명확하게 보여준 상임위는 없었다고 자부한다. 국감이 끝나고 우리 의원실은 기관별 시정요구서를 작성해 재경위에 제출했다. 이를 접수받던 입법조사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까지 시정요구서를 제출한 의원은 처음 본다는 것이다. 다들 국감이 끝나면 그걸로 끝이지 뒷일까지 확실히 챙기는 의원은 민주노동당 의원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자신감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 그 자체에 충실하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국정감사 이후 심상정 의원은 조세개혁 10대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2006년 부유세의 본격적인 도입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성격을 지닌 법안이다. 국정감사를 통해 민주노동당 의원이 왜 재정경제위에 필요한지를 증명했다면, 이제는 입법활동을 통해 민주노동당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민중에게 증명할 차례다.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입법활동의 방향은 우리 사회의 진보적이고 실질적인 경제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