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근무제', 레츠(LETS)로 레츠 고(Let's go)!

노동사회

'주5일근무제', 레츠(LETS)로 레츠 고(Let's go)!

admin 0 3,866 2013.05.12 04:30

올해 7월1일부터 주5일제가 시작된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좀더 빨리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의 혜택을 입을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에 달려 있으나, 적어도 노동시간 단축이 대세라는 데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여가 시간을 노동자의 것으로!

여기서 한 가지 따져 볼 것이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들이 오랜 기간 싸워온 결과이기도 하지만,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자본의 새로운 생존 전략의 하나로 추진된 면이 있다는 점이다. 새해 벽두부터 보수 언론에서 이구동성으로 "주5일제 확산으로 여가 및 문화생활에 대한 수요가 확산돼 관련 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로 주5일제를 먼저 실시한 한 기업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대부분(82.4%)이 '주5일제 시행 후 주말 소비지출이 늘어났다'고 응답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주5일제가 시행되면 계층 간 위화감이 새롭게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주5일제 혜택을 아예 못 보거나 현실적으로 초과 근무수당 때문에 주5일제로 생기는 여가를 반납할 수밖에 없는 상당수 노동자들이 느낄 박탈감에 더해, 여가 소비지출을 늘릴 수 없는 대다수 노동자와 일부 고소득 노동자 사이의 여가 소비지출의 양극화 현상도 두드러질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이런 식의 주5일제는 갈수록 느슨해지고 있는 노동자 사이의 연대를 더욱더 뒤흔들어 그 해체를 가속화할 것이 뻔하다. 앞에서 언급한 여가 소비지출에 따른 양극화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각종 소비문화는 노동자들이 삶의 체험에 바탕을 둔 공통의 의식을 고양하고 실천을 이끌어내는 데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쥐어짜는 듯한 노동의 고통에서 잠시 벗어나 할 수 있는 것이 기껏해야 자본이 마련한 돈으로 덧칠한 가짜 안식처에 몸을 기대는 것이라면, 또 그것이 노동자 개개인을 소비문화의 노예로 만드는 계기로 작용한다면 이야말로 가장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주5일제와 함께 우리는 여가 시간을 온전히 노동자의 것으로 만드는 새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ygkang_01_1.jpg새로운 노동자의 무기, 레츠(LETS)

여가 시간을 온전히 노동자의 것으로 만드는 한 가지 유용한 도구로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레츠(LETS)이다. 레츠는 '지방 교환 교역 시스템(Local Exchange Trade System: LETS)'의 약자로서 대중적으로는 지역통화나 공동체통화로 알려져 있다.

생소하게 들리는 레츠는 사실 매우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서로 돕고 살 마음과 능력이 있는데 왜 그렇지 못할까? 돈이 없는 것이 문제라면, 국가가 발행하는 돈을 대신해 새로운 돈을 만들면 될 게 아닌가? 이런 고민을 먼저 했던 캐나다의 평범한 기술자인 마이클 린턴이 1983년에 시작한 레츠는 20여 년이 지난 현재 세계적으로 약 3천 개 정도가 운영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경제 위기로 실업자가 늘고 지역 경제가 파괴된 아시아와 남미의 가난한 나라들을 중심으로 크게 확대되고 있다.

레츠는 지역에 기반을 둔 소수의 사람들이 해당 지역의 고유한 교환 단위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예를 들어 국내 최초의 레츠인 대전의 한밭레츠는 '널리' 또는 '두루두루'라는 뜻이 담긴 우리말 '두루'라는 교환 단위를 만들었고, 2003년에 개교한 녹색대학에서는 '사랑'이란 예쁜 교환 단위를 만들었다. 한밭레츠나 녹색대학의 사람들은 국가가 발행한 돈 외에도 '두루'나 '사랑'이란 지역통화를 하나 더 갖는 셈이다. 이들은 주민들의 혼란을 덜고 국가가 발행한 돈과 통용할 수 있도록 돈의 가치도 정했다. '두루'나 '사랑'은 현재 국가가 발행한 돈과 같은 가치(1천 두루=1천 원)지만, 합의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레츠의 참가자들이 교환 단위와 그 가치를 합의하면, 참가자들은 서로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 목록을 올리고 자발적으로 교환을 한다. 매번 이루어지는 거래 결과는 통상 중앙 관리자에 의해 기록되고, 회원들은 자신은 물론 타인의 계정도 정기적으로 열람해 레츠의 거래 내역을 투명하게 알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레츠에서 거래되는 목록은 매우 다양하고, 참가자들의 면면이나 지역의 특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자동차, 자전거, 의류, 비디오, 컴퓨터와 같은 물품의 수리·수선·보수, 목공일, 건물 보수, 세탁, 다림질, 쓰레기 처리, 장보기, 아이 봐주기, 회계·법률 상담, 한의원 진료, 침술·발 마사지 등 대체 의료 요법, 아이 과외 교습, 외국어 강습, 유기 농산물, 집에서 만든 음식 제공 등등.

애들 소꿉장난 같아 보이는 이런 레츠가 실제로 운영됐을 때, 경험자들은 진짜 마술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증언하고 있다. 최근에 출간된 레츠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책, 『레츠-인간의 얼굴을 한 돈의 세계』에 소개된 평범한 이웃 두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자.

연금을 받으면서 홀로 생활하던 저는 어느 추운 날 장기 여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순간 절망할 수밖에 없었어요. 추운 날씨에 파이프가 터져 온 집안이 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레츠 운영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자 마술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2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섯 명의 남자들이 한 팀을 이뤄 우리 집에 도착했지요. 수도를 차단하고 카펫이며 침구류를 밖으로 내다 놓더니, 가구를 추려내 제게 잠자리를 마련해 줬지요. 그러고는 물기를 닦아내려고 새벽 4시까지 걸레질을 했어요. 그 뒤로도 사흘 동안이나 집안 정리를 도와줬답니다. 하나도 걱정이 안 됐어요. 다 그 사람들 덕분이에요. 마치 기적과도 같았답니다. (마거릿 글로버, 북아일랜드)

사업이 실패한 뒤 빈곤선 이하에서 살아가고 있던 제게 레츠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자동차가 없어도 다른 사람들의 차를 함께 탈 수 있죠. 신을 것이라고는 샌들밖에 없었는데, 지난 해 겨울 부츠 몇 켤레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돈이 없어 살 수 없었던 옷가지들뿐만 아니라 음식물도 시스템을 통해서 구할 수 있었고요. 더구나 저는 그들에게 레츠로 지불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레츠는 삶과 노동에 대한 저의 자존심을 회복해 주었고 결국 다시 일을 시작할 힘도 주었습니다. (샐리 목슨, 영국)


시장에 대항하는 레츠(LETS)

레츠는 특히 불황으로 인해 피폐한 삶을 살고 있는 이웃들이 지역 경제와 공동체를 회복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이것을 노동운동이 잘 이용해 볼 수는 없을까? 노동조합과 그 가족들이 앞장서 레츠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레츠가 조직된다면, 일단 여가 시간을 노동자의 것으로 온전히 가져올 수 있다. 여가 시간에 각종 소비문화를 향유하느라 돈과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들과 레츠를 통한 거래를 하면서 공동체를 회복하고 새로운 삶을 만드는데 동참하는 것이다. 먼저 레츠를 경험한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랬듯이, 계발을 안 해서 그렇지 노동자들이 이웃과 나눌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게 많다. 여기에 가족들과 지역 주민들의 숨겨진 역량까지 더해진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레츠가 일단 정상적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노동자들이 여가를 포기하고 초과근무 수당에 매달리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인 아이들 사교육비도 레츠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실제로 대전 지역의 한밭레츠에서는 상당수의 회원들이 레츠를 통해 아이들 과외 교습을 해결하고 있다. 줄어든 사교육비로 가계 부담을 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할 일은, 여가 시간에 이웃들과 레츠를 통해 더 활발한 거래를 하는 것이다. 우리를 원하는 이웃들은 아주 많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노동자 세상 만들 궁리를 하자

기왕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본 마당에 좀더 욕심을 내보자. 잘 운영되는 레츠 중에는 지역의 학교나 지역 의회가 레츠에 가입해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의 경우에는 등록금의 일부를 지역 통화로 받고, 학교 시설 수리 등에 지출하는 비용의 일부를 지역통화로 지불한다. 지역 의회는 각종 의회 시설이나 지역의 공공 시설의 사용료를 레츠로 받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노동조합과 지역의 지방자치단체나 지방의회(민주노동당이 좀더 힘을 얻는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는가?), 지역의 대학과 지역 주민이 공동으로 레츠를 꾸린다면 시장에 대항한 성(城)을 쌓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2004년, 가벼운 마음으로 레츠 한번 해보자. 설사 레츠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우리 노동자가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노동자의 삶과 세상이 좀더 바뀔 것이다. 그런 중에 레츠보다 훨씬 더 우리에게 적합한 새로운 어떤 것을 생각해낼 수도 있고.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