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노동사회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admin 0 3,608 2013.05.12 04:21

전국철도노동조합,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운송하역노동조합/화물연대 이상 3개 조직의 연대체인 ‘생존권보장, 노정합의이행, 제도개혁쟁취를 위한 운수노동자공동투쟁본부(이하 운수공투본)’는 11월23일 기자회견을 갖고 [표]와 같이 핵심요구사항과 총력투쟁계획을 밝혔다. 이로써 운수공투본은 2004년 말 노정관계의 변수이자, 민주노총의 총력투쟁에도 중요한 영향을 주는 실체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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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흐름에 합류한 운수공투본의 투쟁

물론 운수공투본의 투쟁이 하반기 노동계의 총력투쟁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지 미리 단정할 수는 없다. 사실 운수공투는 운수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서 비롯되는 ‘경제투쟁’의 성격이 강하고, 파업투쟁의 핵심요구에도 민주노총의 요구안이 직접적으로 반영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 운수공투본은 건설교통부라는 정부기구를 공동의 교섭상대로 하여 노정합의 사항 이행과 생존권을 위한 제도개선을 ‘정치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11월26일 이후 진행되는 민주노총의 투쟁에 적극 복무”할 것과 ‘12월 초 전면 파업 돌입’을 투쟁계획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히고 실천의지를 보이고 있다.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말할 수 있기까지

대중교통체계에 속해있다는 공통점 때문에 요구가 만들어진 배경에서는 연관성이 클지 몰라도, 사실 운수 3조직의 개별요구는 [표]에서도 드러나듯 통일성이 별로 없고 조직별로 산만하다. 그럼에도 ‘공동투쟁’에 대한 필요가 생겨났던 데는 2003년 화물연대와 철도파업의 각개약진과 패배의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을 했다. 노무현 정권 집권초기, 상대적 노정 유화국면에서 비슷한 시기에 투쟁을 통해 진전된 합의를 따냈던 화물연대와 철도노조는, 2003년 하반기에는 강경대응으로 돌아선 정부에게 노정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당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쓰라린 패배를 맛봐야 했다.

그리고 ‘그때 함께 했더라면…’이라는 피눈물나는 아쉬움을 공유한 철도와 화물을 비롯하여 택시, 궤도, 버스, 항공 등 운수부문의 노동자들은 2003년 하반기 ‘운수연대’라는 논의 틀을 만들었고 그 속에서 조직간 연대와 2004년 공동투쟁을 모색했다. 그 결과 먼저 확정된 궤도연대의 공동투쟁에 이어 첫째, 시기적으로 하반기 집중투쟁을 할 수밖에 없고 둘째, 건설교통부를 상대로 대정부 투쟁을 하며 셋째, 이미 있는 노정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 민주택시연맹, 철도노조, 운송하역노조/화물연대 3조직이 공동투쟁을 위한 기획단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렇게 6월부터 시작된 운수공투본의 논의와 연대의 작은 경험들은 드디어 10월16일, ‘운수노동자 총력결의대회’를 위해 여의도광장에 모인 1만여명 운수노동자들의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는 함성으로 터져 나왔다. 지금은 연말 민주노총 총력투쟁의 중요한 흐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운수부문에서 공동투쟁이 구체적으로 조직되는 데는 앞서 이야기한 각 조직의 상황적 맥락말고도 ‘역사적 경험’의 영향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약 10년 전 진행되었던 운수산별노조 추진의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1995년 가을부터 운수노동자학교 등의 사업을 통해 교류하기 시작한 운수노동자들은 운수산업노조 대표자간담회 등을 통해 운수산업의 산별노조 건설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은 꾸준히 이어져 당시 운수노동자들의 조직이 민주노총 산하 민철노련, 민주택시연맹, 민주버스노조, 화물운송노련 등으로 정리되고 발전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부터 업종간 임금 등 노동조건의 격차가 극심한데다가, 1998년 공공부문 통합과정에서 민철노련이 조직 내 논란 끝에 운수부문을 떠나 당시의 통합공공연맹 가입을 결정한 이후, 운수산별조직 건설에 관련된 구체적 논의는 중단되었다(1999년 12월, 「민주노총 산별노조건설 전략 정책토론회 자료집」에서 참고). 물론 제법 오래 전이긴 하지만 당시의 경험들은 2004년 현재 공동투쟁의 판이 만들어지는데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할 단계는 아니지만, 활동가들이 공동투쟁의 경험을 어떠한 조직적 발전으로 가져갈 것인가-궤도단일노조 추진 그리고 운수산별 추진과 공공대산별 추진의 관계 등-를 고민하는데도 영향을 주고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공동투쟁의 위력, 눈에 확 띄네

“조경식 동지 분신을 계기로 촉발된 투쟁을 연맹차원에서 6개월이 넘게 끌고 왔습니다. 투쟁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에게 피로가 쌓일만한 시간이었지만, 공동투쟁의 경험, 연대의 경험이 그래도 상당히 힘이 돼주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조직은 제조업 대공장 하고 비슷한 면이 있어서 조합원들에게, 우리끼리 해도 해결되는데 괜히 다른 데가 끼여들면 귀찮다, 하는 생각이 없잖아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작년의 패배와 올해 공동투쟁을 거치면서 조합원들이 ‘연대’가 갖는 힘을 깨닫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반대했던 조합원들이 오히려 더 공동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작년 파업 패배 이후, 현장을 쓸어간 후폭풍의 후유증은 대단했습니다. 그런 후유증을 딛고 불과 1년 새에 이렇게 다시 투쟁을 조직할 수 있었던 데는 공동투쟁이라는 든든한 울타리의 도움이 컸습니다.”
“정부와 협상할 때, 비록 요구사항에서는 진전이 없지만 건교부가 공동투쟁의 위력에 대해서 움찔해 하고 신경을 쓰고있다는 걸 느낍니다. 최소한 자세는 조금 전향적이라는 거지요.”


이는 각 조직에서 운수공투본과 관련하여 실무를 담당하는 간부들의 이야기이다. 당연히 자신들의 일인 ‘공동투쟁의 위력’에 대해서 다소 바램이 섞인 관측을 내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3개 조직 모두 작년과 올해 초 투쟁 등으로 인해 피로감이 상당히 쌓인 상태에서도 현장이 피폐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10월16일과 11월14일 운수노동자 총력투쟁결의대회 등을 통해 직접 보여줬다. 이는 ‘공동투쟁의 시너지 효과’가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현재 운수공투본은 공동요구와 동일한 교섭대상을 갖고 있음에도 공동교섭을 제대로 하지 못 했다. 운수공투본이 공동투쟁은 단지 개별적인 요구들을 가지고 시기집중을 통해 단위조직의 투쟁력과 교섭력을 높이는 낮은 수준의 것이었다. 물론 이는 처음 하는 공동투쟁이라는 점, 요구의 통일성이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절한 것이다. 그렇지만 협상으로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파업에 임박해 있는 지금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조합원들이 ‘뭔가’를 손에 쥐지 못한다면, 이러한 ‘낮은 수준’의 공동투쟁 속에서 지금 간부들이 보고 있는 조합원들의 열기는 꺼지기 쉬운 ‘거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활동가는 그러한 부분을 우려하면서, “이번 투쟁을 통해 각 조직별 투쟁요구를 반드시 쟁취하는 투쟁으로 마무리짓는 것이 중요하며, 승리하는 투쟁을 바탕으로 운수조직과 운수노동자에게 목적의식적 활동과 조직적 전망을 제공하는 투쟁을 동시에 전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첫 공동투쟁, 무엇의 초석이 될 것인가

바야흐로 총파업과 맞물린 운수공투본의 파업은 임박했다. 3조2교대제 근무체계 개편과 주40시간제 시행을 위해 9천명 가까이 증원을 요구하는 노조에 대해, 철도청은 되려 흑자경영을 위해 8백여명을 감축하려 하고 있다. 철도노조는 철도청과의 싸움에서 자기 요구를 얼마나 관철시킬 수 있을까? 경유에 부과되는 교통세를 높이려는 ‘2차 에너지세제개편’ 과정과 그리고 수급조절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화물노동자들의 개별화를 강화하는 ‘개별등록제’가 시행되려 하고 있다. 운송하역노조/화물연대는 그 과정에서 화물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얼마나 제도적으로 방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정오교통 문제는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았고 민주택시연맹은 날로 악화되는 택시노동자들의 생존권과 관련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최저임금제도 개선안 등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이러한 개정안들 입법화를 얼마나 진척시키고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는 사업자들을 강제할 수 있을까? 이러한 핵심요구사항이 얼마나 관철되는가가 결국 조합원들이 이번 공동투쟁의 힘을 평가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투쟁이 설사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과정에서의 신뢰를 축적한다면 그것은 조직적 발전을 포함한 향후 더 큰 연대의 초석이 될 것이다. 투쟁도 마무리되지 않은 지금 그 방향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될지 생각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고 부질없는 일이다. 다만, 보다 원칙적인 모습의 ‘더 큰 연대’가 좀 더 빨리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올해 운수공투본이 가시적인 투쟁이 성과를 내고, 총파업 투쟁에도 위력적으로 복무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