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동떨어진 이념의 지역주의 넘어서기

노동사회

현실과 동떨어진 이념의 지역주의 넘어서기

admin 0 3,265 2013.05.12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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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임원 선거 정책 토론회에서 두 후보진영이 손을 맞잡은 모습   - 출처:참세상 ]

L형, 오랜만입니다. 
안팎의 높은 관심 속에 진행됐던 민주노총 임원 선거가 끝났습니다. 2번 후보 진영이 '싹쓸이'를 했더군요. L형은 당선자 진영에서 열심히 뛰었지요. 우선 축하드립니다. 

신문과 방송도 민주노총 선거에 적지 않은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겨레, 조선, 동아 등 대부분의 주요 신문들은 사설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민주노총 임원 선거가 갖는 사회적 의미와 중요성을 알려주는 객관적 지표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겠죠. 

거의 모든 신문들이 "'대화와 타협'의 노선을 내건 온건파 지도부가 강경 투쟁 일변도의 기존 지도부를 물리치고 승리한 것"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기대를 표시했더군요. 더 나아가서 어떤 신문은 제조업 공동화 노조 책임론 등을 들고 나오면서 노사정위 즉각 참여를 촉구하기도 했고요. 

보수 언론들의 이 같은 기대와 요구는 현실 속에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언론이 민주노총 새 지도부의 '온건 노선'에 기대를 거는 것은 자유겠지만, 자본과 권력의 노조 다루기, 노동정책의 실질적인 변화가 없는 한 그들의 일방적 기대는 배반당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변화가 어디 쉬운 일입니까. '온건'해진다고 그게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노동계 안팎에서는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일치된 전망을 내놓고 있으며, 그 변화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L형, 그런데 새 지도부 '온건' 노선 맞습니까?

'최선'의 투쟁에 대한 냉정한 평가 

저는 이수호 위원장 쪽의 당선이 2번 후보 진영에 대한 적극 지지라기보다 지난 3년에 대한 냉정한 평가의 결과라고 봅니다. 특히 당락에 영향을 준 대의원들의 경우 더욱 그러했겠죠. 그런데 지난 3년이라는 기간은, 소위 범좌파 진영의 '오류'가 아니라 '최선'이었다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계를 보여준 노선, 벽에 맞닥뜨린 최선'이라고나 할까요. 이는 그대로 민주노총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최선'은 주관적 판단으로서가 아니라 객관적 사실로 인정돼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최선이 비판으로부터의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니죠. 

그러나 저는 투표를 통해 나타난 대의원들의 평가 내용이 L형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자주 얘기하는 '무리한 총파업 투쟁의 남발'에 대한 비판이라고만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어려운 여건에서나마 주체적 역량을 최대로 동원한 투쟁으로도 성과를 낼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변해야 된다'는 절박한 인식에 이번 선거결과가 근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지금보다 더 조직적이고 더 준비가 된 투쟁이어야 하며, 투쟁의 성과를 제도화하고 대중적으로 반영하는 틀로서 교섭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뜻이 함축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느 누가 강력한 투쟁 또는 배수진으로서 투쟁 역량 없이 '대화와 교섭'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런데 지난 5년여 동안 민주노총을 끌고 왔던 이른바 좌파 연대 진영은 이 같은 고민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고 대의원들에게 모든 것을 투쟁으로만 환원시키는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중요한 것은 지난 3년을 비판과 공격이 아니라, 냉정하게 평가 해야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자세라고 봅니다.

'이념의 지역주의' 극복해야

저는 좌파 연합 진영의 오류는 투쟁 노선에서 발생된 것이 아니라 주로 상대 진영을 '투항주의자' 같은 단어로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매도하는 태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2번 진영이)노동자계급의 투항을 선동하여 총노동 전선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더군요. 이는 더불어 함께 할 수 없는 집단으로 규정할 때나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투쟁의 당위성만 내세운 채 조직 상태를 무시한 과도한 투쟁 주장만을 내세우는 경향에 대한 반성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바로 L형 진영이 상대 진영을 비판할 때 사용하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바로 좌파 연합 내부에서 나온 평가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상대방에 대한 일방적 '딱지 붙이기'가 현실의 역동성과 전술의 다양성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대중조직의 기본적 태도를 용납하지 못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비판에 대해 L형은 자유롭습니까? 서로 싸우다보니 어느 새 닮아있지는 않습니까? 

저는 선거 이전 좌파 연합 쪽이 모여서 현 단계 노동운동에 대해 평가하고, 반성하고, 대안을 찾기 위한 토론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전해듣기도 했죠. 제가 그들의 토론 내용을 보고 든 의문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들 내부에서도 투쟁과 교섭 전략, 정치 노선 같은 아주 중요한 대목에서 매우 커다란 차이가 있음에도, 별 차이가 없다며 좌파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묶일 수 있도록 만든 게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혹시 민주노총 내부 권력투쟁의 한 수단으로 도구화된 측면이 없었나 하는 의구심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의구심이 L형이 함께 하고 있는 진영에는 해당이 안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저는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짐작을 하실 것입니다. 양비론을 말하자는 게 아닙니다. 대중 조직으로서 민주노총 안에 현재 형성돼 있는 내부 전선의 현실 괴리적 성격, 과도한 이념성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누구나 다 분열과 대립이 발전적으로 극복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천 영역에서는 '이념의 지역주의'가 창궐하여 분열과 대립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극복되지 못한 채 감정적인 거리만 넓고 깊게 구조화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민주노총을 감싸고 있는 이런 덫에 신임 지도부가 빠져들지 않도록 L형도 신경을 많이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어려운 일일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부드러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왼쪽 오른쪽 끝의 비대중적 노선을 제외시키고 -아주 없앨 수도, 그럴 필요도 없지요- 새로운 주체와 노선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솔직한 저의 바램입니다. 잘만 따져본다면, 이념적 지역주의에 빠지지 않고 실사구시의 입장에서 셈을 해 본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아주 작은 단초로 사무총국의 인선에서부터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고 기대합니다. 아웃사이더의 순진한 생각이라고 탓할 수도 있겠지만 저의 생각은 분명 그렇습니다. 

L형, 저는 민주노총이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조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부드러워지는 것을 두려워말자"는 거죠. 외유내강은 자신감의 다른 표현이며, 이런 자신감은 역량과 준비가 밑바탕이 없으면 생길 수 없죠. 그러나 지금까지는 일반 대중과 적지 않은 조직 내부 구성원들에게도 그 반대의 인상 또는 인식을 심어준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선거가 끝난 후 이곳저곳에서 민주노총 새 지도부에 대한 당부의 목소리가 많이 나왔습니다. 다 옳은 얘기고 필요한 얘기더군요. 그래서 저는 집안 얘기를 중심으로 말씀드렸습니다. 노선과 노선은 토론회에서 만나는 것보다는 실천의 영역에서 만나야 됩니다. '외유'하지만 '내강'한 실천으로 민주노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기를 바라면서, 무엇보다 건강에 신경 많이 쓰세요, L형.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