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정유노조가 다시 일어설 것을 믿는다면!

노동사회

엘지정유노조가 다시 일어설 것을 믿는다면!

admin 0 3,995 2013.05.12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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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10일 오전 9시30분, 순천지방법원 대법정. 9명의 엘지정유 노동자에게 선고가 내려진 순간, 가족들은 탄식했고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김정곤 위원장 징역3년, 집행부 5명 각각 2년6개월, 그리고 전집행위원 1명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되었고, 불구속자 2명에게는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건조한 목소리로 냉정하게 형량을 선고했던 판사는 방청객들이 웅성거리며 황당한 표정을 짓자 선고내용을 친절히 설명하고 있었다.

이렇게 이 땅에서 노동운동을 하려면 적어도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 같은 위태로움은 감수해야한다. 특히 ‘필수공익사업장’이라는 수인번호를 달고 있는 노동자들은….

노조무력화에 희희낙락하는 엘지정유 자본

엘지정유가 파업을 안 했다면 회사는 얼마나 서운했을까? 불행하게도 이 물음은 ‘우문(愚問)’이 아니다. 투쟁일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파업이 끝난 뒤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그토록 안달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그동안 어떻게 참아왔는지 대견스러울 따름이다. 사실 노조를 파업으로 내몬 것도 회사측이었다. 그리고 회사가 용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직권중재제도 때문이었다. 직권중재제도 하에서 대다수 필수공익사업장 사측은 교섭에 있어서 절대적 우위를 가지고 있다. 법률이 제공하는 이 무기를 기반으로 교섭회피, 교섭해태는 물론이고 노조의 무력화를 위해서 거침없이 부당노동행위와 다름없는 짓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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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지정유파업 이후 투쟁일지 

 5월13일 교섭을 시작한 엘지정유는 6월29일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신청과 7월8일 파업찬반투표(조합원 1093명중 742명 찬성 67.9%)를 거쳐서 7월18일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그 후 중요일정들을 되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7월22일: 순천법원, 위원장 외 5명 체포영장 발부
-8월1일: 조선대학교 조합원 장기자랑 중 일명 “김선일 패러디” 공연
-8월4일: LG정유노조, 패러디 관련 사과성명서 발표
-8월6일: 17:00까지 회사 업무복귀명령(4차) → 엘지정유노조, 복귀 결정, 비대위 구성(의장:고병용)
-8월9일: 복귀선언 후 출근하는 조합원 회사가 출입막음(가택대기 후 회사 호출 시 출근)
-8월10일: 확대간부에 대한 징계위원회 개최
  징계위원회 회부 71명, 고소고발대상자 66명중 체포영장 10명
  손해배상 가압류 결정: 위원장 포함 36명, 31억 5천만원(임금 및 퇴직금을 제외한 동산)
-8월23일: 사측이 650여명에 대해 4박5일 교육실시
-9월6일: 인권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엘지정유 인권탄압진상조사위원회 조사단’ 활동 개시
-10월1일: 노조정상화추진위원회가 지방노동사무소에 ‘소집권자 지명 요청’ 민원 접수
-10월8일: 운영위원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서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 결의
-10월12일: 박주암 직무대행체제 전환(전임 인정함)
-10월13일: 인권시민사회시민단체 기자회견 및 실태보고서 발행
-10월21일: 노조정상화추진위원회 임시대의원대회 개최를 위한 요청서 제출(상급단체 변경 건)
-10월22일: 엘지정유 인권탄압 범시민대책위 출범 기자회견(노동, 종교, 시민사회, 문화예술계 등 101개 단체)
-10월29일: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민주노총 탈퇴, 총원42명, 사퇴7명, 사고1명 찬성31명, 기권1명, 반대2명)
-11월11일: 엘지정유 인권탄압 범시민대책위원회 불매운동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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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기에 교섭 당시 엘지정유노조의 요구안은 반드시 파업으로 가야할 만큼 무리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불법파업’ 이후 엄청난 후폭풍을 감수해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노조로서도 파업돌입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결국 파국의 근원에는 자신들이 생각했던 껄끄러운 노조를 어떻게든 와해하거나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손실도 감수하겠다는 사측의 왜곡된 노조관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jslee_02.jpg‘기업재벌’과 ‘언론재벌’의 강고한 연대투쟁

엘지정유사태에서 반드시 짚어야할 것은 보수언론들의 ‘마녀사냥’이다. 엘지정유를 통해서 더욱 심각하게 드러난 언론의 보도태도는 단순히 “수구꼴통신문의 뻔한 소리”라고 치부해버릴 상황이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노동자들의 정당하고 당연한 행위가 마치 ‘공공의 적’ 활동처럼 유포될지도 모르겠다는 심각함을 느끼게 할 만 했다. 당시 엘지정유를 ‘고임금’이라는 폭탄으로 공격했던 그 언론들은 지금 공무원노조의 투쟁에 ‘철밥통’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재를 뿌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명 “김선일 패러디 물의”는 결정적이었다. 물론 고 김선일 씨 사건을 패러디 한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파업기간 중 조별 장기자랑 중에 우발적으로 튀어나온 것이 지역에서 외면 받고 있었던 모 기자에 의해 “엘지정유 노조원 김선일 패러디 물의”라는 자극적인 카피로 만들어지면서 엘지정유의 파업은 “이기적인 파업”일 뿐만 아니라, “고 김선일 씨를 두 번 죽이는 파업”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엘지정유 노동자들이 ‘공공의 적’이 되는 과정에는 보수적인 언론 조·중·동과 경제신문, 방송들 그리고 원색적이고 말초적인 카피로 네티즌을 유혹하는 수많은 인터넷 포털사이트들 모두가 혁혁한 공을 세웠다.

엘지정유사건에서는 이러한 반(反)노동자전선의 확대강화와 시스템화에도 주목해야 한다. 노조의 투쟁에서 정부공권력, 회사, 언론 등이 항상 손발을 맞춰왔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엘지정유의 사태를 보면 아주 일사불란한 연결망을 구성한 것처럼 시스템으로 움직였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회사측의 노조무력화기도와 교섭회피로 시작하여 ‘직권중재→공권력투입→사법처리→언론공격→손배가압류→징계회부→민주노총탈퇴’로 이어지는 과정은 ‘반노동전선’ 속에서 마치 정밀한 제어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처럼 순차적이면서도 오류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정권과 자본 언론은 노동탄압의 비난을 감추기 위해서 항상 노동조합을 “막강한 세력을 갖고 있는 커다란 이익집단”이라고 일부러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아직도 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은 승리하면 ‘본전’, 무승부면 ‘손해’, 그러나 패배한다면 말 그대로 ‘죽음’을 각오해야만  하는 투쟁이다.

“그런데 종교는 아무거나 가져도 됩니까?”

여수지역에서 모범적이고 선진적인 노동운동을 펼쳐왔고 수많은 활동가가 있는 엘지정유노조를 민주노총탈퇴 결정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악랄한 탄압과 기막힌 공갈협박들이 동원되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엘지정유노조의 민주노총탈퇴를 ‘대의원들의 순수하고 자발적인 결의가 아닐까’라고 행여나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것이 엘지정유 노동자들에 대한 또 다른 폭력임을 알아두었으면 한다. 노조가 ‘현장복귀’를 선언한 이후에도, 회사는 ‘가택대기’라는 희한한 방법으로 조합원들의 출근을 막았다. 그렇게 조합사무실 출입조차 정문에서 차단 당한 상황에서 조합원들은 ‘서약서’, ‘반성문’, ‘나의 각오’ 등을 제출하도록 강요받는 등 인간의 기본적 양심마저 침해당했다. 복귀 이후 엘지정유 현장에서 이뤄진 인권침해와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오히려 부끄러울 정도다.

폭력과 탄압이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피해자들은 극도의 불안과 자포자기로 인해 호소조차하지 못하게 된다. 해결방안도 믿을 곳도 없는 상황에서 외부에 고발은커녕, 하소연하는 것조차 또 다른 보복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알기에 자포자기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엘지정유에서 일어난 비열한 현장탄압은 마침내 노조원들이 스스로 노조조끼를 가위로 절단하게 하는 의례(?)를 치르도록 하는 수준까지 갔다.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탈퇴도 부족해서 민주노동당원 색출과 탈당압박 작업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탈당압력을 받은 조합원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민주노동당은 탈당하겠습니다. 그런데 종교는 아무거나 가져도 괜찮습니까?”
사석에서 만난 엘지정유 평조합원들은 “회사가 무섭다. 그동안 다녔던 회사가 이렇게 무섭고 비인간적이었는지 몰랐다”면서 “왜 노동자들이 분신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했는지 이제 이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그들은 고립무원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신음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처지다. 집행부의 다수가 구속되어있고 대다수 활동가들은 더 극심한 탄압과 견제를 받고 있으며 전체조합원들은 징계의 위협 속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 노무관리로 유명한 엘지그룹답게 이러한 탄압은 법률·노무 자문을 통해서 교묘히 행하고 있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법까지 무시하고 과감하게 실천하기도 한다.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지금 ‘엘지정유 인권탄압 범시민대책위원회’에서는 엘지정유를 반지역·반환경·반인권 기업으로 규탄하면서 불매운동을 대규모로 펼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고 씁쓸하게도, 엘지정유의 대의원대회에서 여기에 대항해서 행동하자는 결의를 했다. 노조에서는 최근에 노조가 앞장서는 판매운동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현재 엘지정유현장에서 회사측의 노조무력화 기도는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숨죽이고 있는 조합원들이 조금이나마 위안 받을 수 있는 희망 같은 것들도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나는 엘지정유노조의 정상화를 확신한다. 엘지정유노조의 ‘민주화’과정과 그동안 지역에서 엘지정유노동자들의 꾸준한 활동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비바람이 불면 갈대는 흔들리지만 꺾이지는 않는다. 최근 민주노총을 탈퇴한 대의원대회결의 무효소송이 조합원 2명의 제소로 노동부에 접수되었다. 그리고 아직은 미약하나마 엘지정유 민주노조 쟁취를 위한 조직이 출범하여 소식지를 발행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엘지정유가 언론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받았을 때, 이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나서서 변호하지 못하고 주춤했던 사람들, 지금 이 시간에도 안타까운 마음에 혀만 차고 있는 사람들, 이제 이들이 나서야한다. 민주화를 경험한 국민은 독재를 용인하지 않는다. 엘지정유노조원들은 스스로 민주노조를 되찾을 것이며 나는 그것을 확신한다. 우리는 다만, 그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주저하지 말아야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