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사회협약 모델 해체로 가는가

노동사회

네덜란드 사회협약 모델 해체로 가는가

admin 0 3,898 2013.05.12 04:51

네덜란드 모델이 수난을 겪고 있다. 그 유명한 노사정의 '사회협약'은 올해 상반기에 결렬되었고, 현재 정부가 자신의 계획을 강행하고 노조가 이를 정치파업으로 저지하기로 함으로서 사회협약은 하반기에도 맺기 어려울 전망이다. 우파 언론에서는 네덜란드 모델을 더 이상 유지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말한다. 노조는 더 이상 국가경제를 이끄는 한 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가장 우파적인 정부, 대처와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철학을 신봉하는 정부와 자신들이 이뤄 놓은 사회보장제도를 지키기 위한 노조간의 피할 수 없는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투쟁은 노조만의 투쟁이 아니다. 정부의 계획은 사회복지제도 전반을 축소하는 것이어서, 장애인, 산업재해 판정자, 실업자, 학생을 포함한 저소득층 모두에게 타격을 주는 것이다.

150만장의 무료기차표

지난 10월2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전국에서 기차와 버스를 타고 올라온 30만이 넘는 노동자와 시민들이 결집하여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는 정부의 계획을 국민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보여주는 시험대였다. 집권당의 정치인들은 집회 해봐야 늙은 노동자들이나 모일 것이라며 집회에 신경 안 쓴다고 말했고, 노조는 10만명을 동원하기로 하고, 백 오십만이 넘는 조합원들에게 암스테르담행 무료 기차표를 집집마다 우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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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는 사람으로 넘쳐났다. 전국 방방곳곳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기차는 만원을 이뤄 많은 사람들이 가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정치인들은 이제 집회 참가 인원의 의미를 깎아 내리느라 바빴다. 170만 노조원 중 20만 밖에 모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회 다음 날 경찰은 이날 집회에 30만이 참여했다고 수정해서 발표했다. 30만이면 네덜란드 현대사에서 세 번째로 큰 집회이고, 노조가 조직한 집회로서는 최대 규모이다(최대 규모의 시위는 1983년 55만이 모인 미국 핵무기 배치 반대시위이고, 2위는 역시 같은 주제로 1981년 40만이 모인 시위이다). 그만큼 정부의 계획에 대한 반대가 컸다.

그러나 정치권은 약간의 양보조치로 노동자들을 달래려고 할 뿐, 정부계획에 대한 협상의 여지는 없다고 못박았다. 여론은 네덜란드의 노사정위원회 격인 사회경제협의회 의장을 중재자로 노사정이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조는 부문별 연쇄 파업으로 정부를 계속 압박하기로 하였다. 노조는 지난 10월14일 전국 대중교통 파업을 벌였다. 전국 대부분의 기차와 시외버스들이 멈추었다. 근래에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파업이었다. 노조는 계속해서 11월까지 열 개 부문 이상에서 부문 총파업을 조직하기로 했고, 강경파들은 전국 총파업을 외치고 있다.

정부의 노동정책 개편방향

정부의 계획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수년 간의 임금동결과 노동유연성 강화이다. 그리고 작은 정부를 통해서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속셈이다. 즉 미국식으로 가자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태풍의 핵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네덜란드에 드디어 태풍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사회의 고령화와 고임금으로 인한 경쟁력 약화를 근거로 들고 나왔다. 노동인구는 갈수록 줄고 연금을 타는 노인층은 갈수록 늘어나기 때문에 연금제도를 대폭 수정해야 하고, 다른 나라에 비해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적고 임금은 많기 때문에 노동시간을 늘리고 임금은 동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불황으로 세수가 줄고, 재정적자를 3% 이하로 유지하기로 한 유럽연합의 '안정재정협정(마스트리히트협정)'을 지키기 위해서 의료, 교육, 연금 등의 재정을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다.

조기퇴직제도의 폐지

현행법상 정년 퇴직연령은 65세이지만, 많은 노동자들이 55세부터 65세 사이에 퇴직하는 것이 각 산업부문이나 회사별로 정해져 있었다. 예를 들어 소방관 같이 체력 소모가 많은 직업은 일률적으로 55세에 조기퇴직한다. 이때 사용자와 노동자가 반반씩 추가로 연금을 붓고 정부가 연금에 대해서 과세하지 않음으로서 조기 퇴직은 대부분의 분야에 정착되어 있다. 그런데 정부는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처음에는 조기퇴직을 억제하는 정책들을 내놓다가 노조가 결국 정부안을 거부하자 현행의 조기퇴직제도를 폐지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정부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대체입법인 장기휴가제도를 만들었다. 노동자들 개인이 적금 형태로 붓고, 2년 이내의 장기 휴가 혹은 조기 퇴직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노조측은 현행 제도는 기업별로 노동자 전체가 연금에 의무적으로 가입되어 있어서 노동자들의 부담이 적은데 비해, 정부안은 노동자 개인이 연금보험을 들도록 하여 부담은 크고, 혜택은 적어 실효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이미 영국이 집단연금제도를 해체하고 개인연금제도를 도입하여 엄청난 혼란에 빠졌는데, 노조측으로서는 새 제도가 보험회사의 배만 불려주기 위해서 도입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네덜란드 연금제도는 현재 아주 잘 운영되고 있다. 네덜란드 제도의 특징은 자기가 받을 연금을 자기가 붓고 퇴직 후 다달이 받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고가 없는 한 연금이 고갈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회사마다 전 직원이 의무적으로 연금을 붓기 때문에 기금의 규모가 크고, 그만큼 이자 수입도 커서 연금은 퇴직자들의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해왔다. 정부가 이 제도를 없애려고 하자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연금기금과 전문가들도 정부를 비판하고 나선 것은 정부 계획이 연금제도의 운영에 큰 혼란을 불러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노조와 좌파 야당들은 정부 연금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이기위해 준비중이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것만은 막아보자는 것이다.

산업재해자 판정제도의 개편

90년대 유럽 여러 나라들이 10% 넘는 실업률에 시달릴 때 네덜란드만 실업률이 5% 밑으로 떨어질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산업재해자 제도 덕이었다. 거의 백만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산재 판정을 받았다. 80년대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기보다는 산재 판정을 받도록 유도했다. 기업의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노동자들도 해고되는 것보다 산재 판정을 선호했다. 일단 판정을 받으면 기존 임금의 70%를 정년 때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청년실업자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 제도를 이용했다.
 
그러나 정부의 재정 부담이 늘어나면서 정부는 90년대 초 제도를 개편하여 산재자가 발생하면 기업주도 더불어 부담하도록 하고 판정을 엄격하게 하였다. 이 조치는 성공을 거두어 산재자 발생율은 대폭 줄었다. 그런데 정부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기존 산재자들을 재판정해서 대상자를 줄이기로 했다. 노동 가능한 자로 판정된 사람들을 위해서 직업 교육 및 직장 알선을 약속하고 있지만, 노조는 멀쩡한 젊은이들도 직장을 못 구하고 있는 마당에 산재자였던 사람을 어느 회사가 고용하겠냐고 반문하고 있다. 이들은 결국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여 빈곤층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해고 요건의 완화와 노동시간의 증가

어느 나라나 50대의 노동자들은 해고당하면 새로 직장을 찾기 힘들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해고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정부는 해고는 더 이상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의 엄격한 해고 요건을 완화해서 기업에게 해고의 자유를 주면 기업은 필요에 따라서 인력을 부담 없이 채용할 수 있어서, 오히려 고용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또 노동시간이 너무 짧다며 노동시간의 증가를 주장하고 있다. 중국이나 인도에 비하면 제조업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너무 짧고, 임금은 너무 높다는 것이다. 임금 수준을 그들 나라 수준으로 낮출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노동시간을 늘리게 되면 자연히 기업마다 더 적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업주는 임금이 높은 고령 노동자들을 해고하려고 할 것이다.

실업보험제도의 개편

정부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더라도 충분한 소득이 보장되기 때문에, 재빨리 일자리를 찾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일하려는 풍토를 만들려면 실업보험 혜택을 줄여서 실업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실업보험금 수혜대상을 줄이고, 수혜기간도 단축하기로 했다. 즉 현행 제도는 실업자가 되면 근무 연수에 따라 최저 6개월에서 최고 5년간 최종 임금의 70%를 보험금으로 받고, 그 후에는 이보다 낮은 요율의 수당을 받고, 최종적으로 모든 실업자에게 주는 최저 생계비를 받게 되어 있는데, 새 제도는 실업보험을 받는 기간을 줄이고 그 후에는 바로 최저생계비를 받도록 제도를 바꾸려는 것이다. 노조는 정부가 일자리가 없는데도 무조건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찾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정부는 고학력 실업자는 자기 학력 수준보다 낮은 일자리라도 찾아서 일하는 것이 마땅하고, 샘을 파야 물을 찾는다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 계획의 폭은 이외에도 상당히 넓다. 의료보험제도의 개편으로 만성질환자와 장애인, 노인들의 보험혜택이 대폭 줄면서, 이들의 부담이 늘어났다. 과거에는 보험으로 약값과 치료 비용이 처리되었지만, 이제 비용의 일부를 직접 부담해야 되기 때문에 자연히 이들의 생활은 궁핍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많은 노인들이 가정방문 부양자(일종의 가정부로 노인들 집을 돌며 청소, 식사제공 등 부양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를 더 이상 둘 수 없게 되었다. 정부는 돈이 없으면 가족이나 이웃에게 부양을 요청하라고 말하지만, 서구 사회에서 자식들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kyjang_02.jpg정부 계획 어떻게 봐야 하나

한 나라의 노동정책은 노사정의 힘 겨루기 결과이다. 70년대 노동운동이 강력했던 네덜란드에서 1980년대 초 세계경제 불황 당시에 정부와 기업은 경쟁력 약화와 청년실업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에게 임금인상억제와 계약직, 파트타임 등의 노동시장 유연화를 받아들이도록 요구했고, 그 대신 일자리를 나누기 위해서 노동시간을 단축하였다. 그리고 기업주들과 함께 노조를 정부 정책 수립의 중요한 한 주체로 인정해주었다. 그에 따라 노조는 기업주와 정부를 대상으로 사회정책 전반에 대해서 노조의 요구를 타협을 통해서 추구할 수 있었고, 자연히 파업 같은 수단은 자제했다.

그러나 지금 네덜란드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먼저 시대가 변했다. 사용자나 정부는 더 이상 노조의 눈치를 보려 하지 않는다. 세계화 추세 속에서 기업들은 노조가 계속 강경하게 나오면 더 싼 임금의 나라, 더 싼 세금을 내는 나라로 떠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장기간의 타협 문화로 인해 노조의 투쟁 동력도 많이 약화되었다.

2003년 가을 정부가 사상 최대 규모인 23조에 이르는 재정 삭감안과 2년간 임금동결을 들고 나왔을 때, 네덜란드 최대의 노조연맹인 네덜란드 노총(FNV)은 조직력을 총동원해서 맞서 싸우겠다고 공언했지만, 노동자들의 호응은 크지 않았다. 투쟁을 조직해본 경험이 있고, 정치의식이 높은 노동자들은 대부분 50∼60대의 고령 노동자들인 반면 젊은 층은 투쟁 경험이 거의 없고 의식도 낮기 때문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합의안에 대해 일부 강경파들이 극렬 반대하자 네덜란드 노총은 합의안을 노조원 총투표에 붙였지만, 18%가 투표에 참여하여 56%가 찬성, 42%가 반대하여 합의안은 통과되었다. 노조가 얻은 것이라고는 연금, 산재, 노동시간, 실업 제도 등에 대한 논의를 올해까지 미룬 것뿐이었다.

노조의 약세를 본 정부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정부는 올해 초 경제부장관과 사회정책부장관이 공동으로 제출한 '경제성장을 위한 보고서'에 입각해 대규모 수술에 나섰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독일에서도 슈뢰더 정부가 거의 똑같은 내용의 정책(Hart Ⅳ)을 들고 나왔고, 경제성장은 모든 유럽연합 국가들의 구호가 되었다. 이는 2000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합의한 '리스본 합의' 때문이었다. 이들은 유럽연합이 미국에 비해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2010년까지 유럽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권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성장 우선 정책을 취해야 한다고 정의하고, 성장을 가로막는 노조에게 모든 공격의 화살을 돌리고 기업에게는 더 낮은 세금과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신자유주의 교과서를 따르겠다는 것이다.

갈등의 핵심 '연금제도'

네덜란드는 한국만큼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지는 않다. 새로운 고용은 대부분 비정규직이고, 기업은 정말 탐나는 노동자들만 계약 연장을 통해서 정규직화하고 있지만, 비정규직도 정규직과 동등한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계획대로 노동시장을 개편하게 되면 노조의 힘이 약화되고, 노사관계가 점차 집단적인 관계에서 개별적 관계로 변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되면 지금까지 얻은 성과는 순식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교섭력이 약한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지금처럼 집단적 교섭에 의한 혜택을 못 받게 될 수 있다. 정부가 노동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알면서도 과거처럼 노사정 합의를 거치지 않고, 굳이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고 나오는 것은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다. 즉 노조에게 치유하지 못할 패배를 안겨줌으로써 순탄하게 정부정책을 밀고 나가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금제도 수술이 왜 그리 문제가 되는가? 네덜란드는 세계적으로 노동강도가 높고, 자연히 노동생산성이 높기로 유명하다. 쉴 새 없이 온 힘을 바쳐서 일하고, 일 끝나면 집에 가서 축구중계를 보는 것이 네덜란드 남성 노동자들의 삶인 것이다. 자연히 50대가 되면 노동자들은 한 두 가지 병을 앓게 마련이고, 조기 퇴직제도는 그들을 지옥에서 구출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그런데 정부는 정년을 65세로 못 박겠다고 하니 지금까지 꾸준히 연금을 부어온 노동자들은 정부가 '노동자들의 돈을 도둑질한다'며 강력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부 주장대로 노동자들은 65세까지 일할 수 있을까? 해고 요건이 완화되면 기업들은 고임금의 고령노동자들을 먼저 해고할 것이고, 결국 노동자들은 안정적인 연금자가 되는 대신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실업자들이 받게되는 최저생계비는 조기 연금에 훨씬 못 미친다. 네덜란드 연금제도는 모든 국민이 받는 일반연금과 노동자들이 임금에서 일부를 적립해서 받는 기업연금으로 나눌 수 있다. 국민연금은 우리 돈으로 따지면 노인 부부가 약 150만원, 독신은 100만원 정도를 받아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평생을 실업자로 산 사람은 일반연금만으로 살아야 한다. 노동자들은 일반연금에 기업연금을 더해 200만원 이상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기업연금으로 받는 월 50만원 이상의 돈으로 퇴직 후에도 최소한의 취미와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고령화 추세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노조는 점진적으로 조기 퇴직 연령을 연장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지만 정부는 즉각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현재 한국의 노동운동은 노사정위원회로 대변되는 '사회적 대화' 전략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현재 네덜란드의 사태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네덜란드 모델이 주목 받은 것은 네덜란드가 경제불황과 실업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 나온 경험 때문이라고 본다.

임금 인상 억제와 노동시간 단축은 위기에 빠진 네덜란드 경제가 잠시 숨을 고르고, 산업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그런데 한국과 네덜란드는 상황이 너무 다르다. 네덜란드에서는 복지제도가 바탕에 깔려 있어, 기본적인 주택, 의료, 교육, 실업, 노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그런 바탕이 없다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복지제도가 충족해주지 못하는 부분을 만회하기 위해 한국의 노동자들은 자기 몸을 축내면서까지 돈벌이에 열중할 수밖에 없다. 주5일제가 도입되었지만 제조업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줄고, 고용이 늘어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에 '사회적 대화' 혹은 '사회적 협약'이 논의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사용자 측이 협상을 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노사정위원회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은 정부와 사용자 측이 협상 결과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조 역시 조직되어 있는 조합원만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을 대표해야 한다. 네덜란드에서는 식당에서 접시 닦는 노동자도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다. 네덜란드는 산업별 교섭이 기본이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노동계약을 맺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은 노동법과 단체협약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지금도 이것은 잘 지켜지고 있다. 만일 한국에서도 사회협약이 이루어진다면 모든 노동자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임단협에서 '임금상승'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의 임금정책이 '임금격차 해소' 전략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물론 임금격차는 해소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임금의 하향평준화를 경계하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어 진다. 현재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태풍 속에서 한국 노동운동은 가지고 있는 몫이라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유럽의 모든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응은 지지부진하다. 자본은 시계를 다시 19세기로 돌리려 하고 있다. 노사정이 서로 사는 길을 찾는 것 같았던 네덜란드에서조차 평화의 시대는 끝나는 듯하다. 기업과 정부 눈에 지금은 말 그대로 경제 전쟁의 시대이다. 누가 더 힘이 세느냐에 따라 죽느냐 사느냐가 갈리는 처절한 전쟁터인 것이다. 그 전쟁에서 노동자들은 총알받이가 되어 쓰러져 갈 것이다.

유일한 대안은 이 태풍을 피하려 하지말고, 함께 방파제를 쌓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 노동운동이 세계를 얻고자 투쟁한 결과 지금 이 정도라도 얻었다는 점을 다시 되새겨봐야 한다. 네덜란드 상황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 답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도 10월2일 30만이 모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점은 네덜란드식 경쟁적 코포라티즘 혹은 사회협약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우파 정부가 노리는 것은 노조와의 진검승부이기 때문이다. 온건파로 상징되던 기독 노총 위원장 두클러 테르프스트라는 한 기자가 "기독 노총은 정치파업을 안 하잖아요. 어떻게 정치파업을 하게 되었지요?"라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조합원들이 정치파업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도부는 현장 조합원들의 요구를 따라야 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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