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본 최저임금제 현실

노동사회

지하철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본 최저임금제 현실

admin 0 5,680 2013.05.12 04:49

늦은 아침의 전동차 안은 대개 한산하다. 출근 시간처럼 입구 근처서 옴짝달싹 못하다가, 인파에 떠밀려 내리지 말아야 할 곳에서 토해질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강물 위로 철교라도 건널라치면 차창 너머 아침 햇살도 여유롭게 늘어진다. 새벽부터 쫓기듯 성큼성큼 걷는 이들이 입구에서 집어들고 왔다가 전동차 안에 놓고 간, '무료신문'들만 짐칸 위에서 어지럽게 널려있을 뿐이다. 

"대기실에 가면 파스 냄새가 진동해"

"요즘에 전동차 청소하는 우리 엄마들이 까치발하고 그 '무료신문' 꺼내느라 어깨가 다 빠져요. 너무너무 힘들어해. 정거장 하나 지나는 사이에 지하철 열량을 모두 후다닥 돌아야 되거든. 그러면 그것들을 한아름 들고 다녀야 하는데 … 사람 수는 그대론데 일이 한사람 몫 이상 늘어난 거야. 용역 대기실에 가면 정말 파스 냄새가 진동을 해요."

가볍게 꺼내 본 얘기였는데, 전국여성노동조합연맹 지하철차량기지 청소용역지부 이덕순 지부장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전동차 청소용역노동자들은 오전 8시까지 출근해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저녁 12시30분부터 새벽 5시30분 사이를 제외하고는 정해진 식사시간이나 휴식시간도 없이 하루 19시간을 내내 서서 일한다. 격일 근무라고 주말이나 명절 같은 것도 따로 챙길 수 없다. 

이렇게 주당 60시간 이상, 한달 285시간(19시간×15일, 이중 연장근로는 165시간, 야간근로는 45시간)을 꼬박 일하고 받는 월급은 대략 78만3천5백원. 물론 상여금, 연차수당, 월차수당, 연장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까지 모두 포함한 액수이다. 연장근로수당이 제법 되는 덕택에 지하철 건물을 청소하는 노동자들이 받는 65만원보다는 월급이 그래도 더 많다. 작년 11월까지 받던 72만5천원에 비하면 그나마 대략 6만원 정도 오른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일을 하고 있는 도시철도(5·6·7·8호선) 역사 야간반 노동자들이 받는 88만1천원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이 격차는 노조 활동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어쨌든, 올해 지하철(1·2·3·4호선)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임금이 이렇게나마 인상될 수 있었던 것도 여성노조연맹과 청소용역지부의 끈질긴 투쟁과 협상 덕분이다. 그러나 그 인상액은 작년 9월부터 적용되어야 했던 법정최저임금 인상분이 수당에 적용된 것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재계약이 이뤄지는 올해 3월이 되어야만 인상된 최저임금을 적용하겠다고 버티던 용역회사와 지하철 공사에게 노조가 요구한 것도, 단지 '법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총자산 2조8천억원이 넘는 서울시지하철공사를 위해 일하는 이들이 법으로 강제된 최저임금을 받아내기 위해서도 두 달간의 밀고 당김이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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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덕순 지부장     - 출처:민주노총 여성연맹 ]

나이 많은 여성노동자들에게 빈곤이란

"어떻게 자식들만 나쁘다고 욕해, 사회가 이 모양인 걸. 걔네들 먹고살기도 어렵잖아요." 
어딜 가나 시설관리노동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지하철 청소용역노동자들 평균 연령도 꽤나 높다. 대부분이 오십대 중반에서 육십대 초반의 여성노동자들이다. 자식들 교육비 때문에 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국가도, 사회도, 남편도, 자식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노후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돈벌이에 나선 경우가 많다. 

이들은 벌어 놓은 것이 없어서 물려줄 것도 별로 없고, 저 살기도 벅차서 아둥바둥하는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도 뭣해서 지친 몸으로 최저임금도 제대로 못 받는 일에 매달리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서민들이다. 아들 뻘의 젊은 녀석이 술에 취해 침을 탁탁 뱉으며 "아줌마, 내가 이렇게 더럽혀 놓으니까 아줌마가 먹고살잖아"라고 혀 풀린 소리로 지껄이는 것도 참아야 했고, 옷을 새로 사서 입거나 제대로 외식을 하는 것은 일년 내내 엄두를 내기가 힘들다. 함께 일하는 동료끼리 조촐하게나마 회식을 하는 것은 명절이나 돼야 한다. 청소용역노동자들이 회식한다고 용역회사나 지하철공사가 지원해 주는 것은 당연히 아무 것도 없다. 각자 조금씩 돈을 걷어야 한다. 

한편, 이 여성노동자들은 밖에서 돈을 벌어 와도 '엄마'와 '아내'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대부분의 집에서 가사노동은 온전히 이들 차지다. 지하철 청소용역노동자들 중에는 '여성가장'들도 많단다. 이 '가장'들은 밖에서 돈을 벌어 와서 집에서 발 닦고 드러누워 편히 쉬는 사람들이 아니다.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까지의 건물청소가 끝나면, 곧바로 근처 식당으로 가서 저녁 7시까지 허드렛일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밀린 가사노동에 매달리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빈곤이) 정말 여자들을 너무 혹사시켜"라는 한숨 섞인 말의 울림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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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15일 최저임금 제도개선 촉구대회   - 출처:민주노총 여성연맹 ]

경제위기 상처 치료 못하는 최저임금제

누구나 느끼듯 우리사회의 빈부격차는 90년대 후반 이후 매우 심해졌다. 2002년 6월 민주노총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서 조사·발표한 「소득분배구조와 최저임금제 관련 전국민 여론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IMF 이후 실질적인 경제여건이 '악화되었다'고 대답한 사람이 41.3%였고, '변화가 없다'와 '향상되었다'는 대답은 각각 37.0%와 21.6%였다. '악화되었다'고 대답한 사람은 여성, 고연령층, 저학력자, 경제적 하층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서 많았고, '변화가 없다' 혹은 '향상되었다'는 저연령층, 경제적 중상층 이상에서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선택된 대답이었다. 

객관적인 경제지표들도 IMF 이후 우리 사회의 소득분배 불균형이 심각해졌음을 보여준다. 2003년 2월 한국개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95년 8.9%였던 빈곤층 비율은 2001년 12.0%로 치솟았고, 상류층 비중도 97년 21.8%에서 2001년 22.7%로 조금 높아졌다. '1'에 가까울수록 하위계층과 상위계층이 벌어들이는 소득의 차이가 큼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도 95년 0.332에서 2000년 0.389로 늘어났다. 

이러한 조사결과와 경제지표들에 대한 분석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경제위기의 충격은 고스란히 청소용역노동자 같은 하층 서민들의 몫이었다. 가진 것 많은 사람들이야 '강남에 대한 왕따'와 '반기업 정서' 때문에 상처받고, '경제' 때문에 밤낮 없이 머리를 쥐어 싸고 고민하느라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겪었겠지만,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손해를 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가진 것 많은 '경제지도자'들이 경제위기의 해결책이라고 부르짖던 '노동력의 유연화'는 안 그래도 저임금에 시달리던 하층 노동자들에게는 단지 그전과 똑같은 일을 하고도 용역화, 최저낙찰제 등을 통해서 최저임금의 경계선 아래로 끌어내려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어느 지하철 건물 청소용역노동자의 월급 통장에도 그 상흔이 남아 있었다. IMF 경제위기 직전엔 그래도 상여금 2만원이 나오는 달에는 47만원, 최고 52만원까지 찍혀있던 통장의 월급 입금액이 98년 3월부터 2001년 3월까지 3년 동안, 인상이 전혀 없이 39만원에서 43만원 사이, 제일 많이 나오는 달에도 46만원을 넘지 않았다(이는 4대보험료가 자동이체된 액수다). 2002년, 2003년에는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올라서 모든 수당을 다 합쳐서 현재는 65만원 정도를 받는다. 그러나 인상되는 정도는 언제나 법정최저임금의 울타리에 걸쳐있었고, 그동안 물가인상을 생각하면 이들이 IMF 전의 생활수준을 회복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법정 최저임금제도는 소득분배 구조가 양극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생계비 수준에 턱없이 모자란 최저임금의 액수와 협소한 영향력 범위를 봤을 때, '저임금 계층의 일소, 임금격차 해소, 소득분배 구조개선'이라는 본연의 목적과는 달리, 있으나마나 한 상황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부소장이 통계청이 2003년 8월에 실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3년 9월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시간당 2,510원)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단지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2.2%인 29만명이다. 시간당 2,510원 미만을 받는 노동자들은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6.8%(92만명)이지만, 2003년 9월 이전에 적용되었던 최저임금(시간당 2,275원) 미만을 받는 노동자 63만명(4.6%)은 최저임금 적용 제외자 또는 최저임금법 위반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봐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사회에는 합법적·불법적으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청소아줌마'를 당당하게 하는 노조활동 

"이때는 뭐가 어떻게 돼서 통장으로 들어오는지도 몰랐지, 뭐" 통장에 찍힌 99년 월급 39만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덕순 지부장이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지하철공사와 용역회사가 최저임금법을 제대로 지키도록 만든 것은 결국 노동조합이었다. 

2001년부터 시작한 노동조합 활동은 이덕순 지부장이 그래도 당당할 수 있는 근거다. 전에는 감히 그러지 못 했을 텐데, 청소상태가 불량하다며 관리자가 거는 시비에도, "아니, 같은 곳을 두 번 청소하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하며 항의할 수 있었다. 노조활동을 통해 정규직 사원들이 일하는 역무실 안에서 찍어야 했던 출근 카드를 용역 대기실로 옮겨서 하도록 하기도 했다. 법정최저임금 인상분을 용역 재계약을 하는 올해 3월이 아니라, 법이 적용되기 시작하는 지난해 9월부터 소급해서 받아낼 수 있었던 것도 여성노조연맹의 든든한 지원과 청소용역지부의 활동 덕택이다. 

그러나 누구나 잘 알고있듯,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고 단결하는 것은 지하철 청소용역노동자의 경우처럼 굳이 최저임금에 걸쳐있는 나이든 여성들이 아니더라도 매우 힘들다. 그 구조적 어려움이 이덕순 지부장처럼 정말로 어렵게 나선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질곡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상급단체의 살가운 배려와 적극적인 지원일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이야기하듯,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은 앞으로 노동운동의 성패와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로 가느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정규직 중심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노동운동이 대표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제 같은 하층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를 좀 더 실천적으로 담아내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