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환경노동위원회(위원장 이경재)는 지난달 4일부터 22일까지 약 20일 동안 노동부 및 산하기관에 대해 국정감사를 진행했다. 이번 국정감사는 참여정부 2년차를 돌아보고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처음으로 진출한 속에서 열려 더욱 주목을 받았다.
환노위 국정감사에 대해서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이경재 위원장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을 제외한 환노위 의원 14명 가운데 12명이 초선인 만큼, ‘노련미’는 부족했지만 소신껏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정쟁보다 대안을 모색해보려는 노력에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정부 비정규법안 국감 내내 ‘뜨거운 감자’
4일 노동부 국정감사 첫날.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은 배정된 모든 시간을 비정규직 법안 추궁에 활용하는 등 김대환 노동부 장관과 설전을 벌였다. 그 동안 노동계가 문제로 제기한 내용들을 공론화시키겠다는 의지였다.
 [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중인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 - 출처: 매일노동뉴스 ]
단 의원은 “정부의 법안은 비정규직의 대폭 확산 등 고용체계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며 자신이 제시한 비정규직 보호 방안을 정부가 반영해서 추진할 수 있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할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단 의원은 또 “장관은 역사적 사회적 책임을 지겠다는 발언만 하고 있지 노동계 의견은 무시했다”며 “더구나 교수로 재직할 당시 수량적 유연화는 비정규직 증대를 가져온다는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완전히 뒤집은 내용을 주장하는 등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장관은 “노동계 의견을 수렴했고 전체적으로 비정규직은 급속히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하며 “단 의원이 이 법안을 객관적으로 보기 바란다”고 맞받았다.
단 의원은 노동부에 대한 추궁과 함께 국내 노동법 교수를 대상으로 설문조사까지 진행하며 법안의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알려내는데 집중했다.
물론 정부의 비정규직관련 법안에 대한 문제의식은 단 의원만의 ‘홀로된 생각’은 아니다. 제종길, 김영주, 우원식, 이목희 의원 등 법안 통과에 ‘열쇠’를 쥐고 있는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손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속속 내놨다. 결국 이목희 의원(열린우리당 제5정책조정위원장)은 지난 7일 노사정위, 노동위 대상 국정감사에서 법안이 국회로 넘어오면 “정부 파견법안을 대폭 손질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우원식 등 일부 의원은 아예 법안 처리를 내년으로 미루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등 법안 처리방향을 둘러싸고 그야말로 ‘난맥상’이다. 어쨌든 정부 법안이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은 큰 성과로 볼 수 있다.
우원식 “삼성 너 딱 걸렸어”
17대 첫 국정감사에서 단연 돋보인 국회의원은 열린우리당 우원식, 김영주 의원과 민주노동당의 단병호 의원이다. 시민사회단체, 노동계 등은 주저 없이 이들을 ‘환노위 베스트 의원’으로 꼽았다.
우원식 의원은 ‘근로시간을 통해 나타난 우리나라 노동 현실과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과제’라는 자료집을 통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했다. 이 과정에서 우 의원은 장시간 노동으로 과로사한 삼성SDI 노동자의 실태를 알게 됐으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삼성SDI 근로시간 미준수,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시작으로 삼성전자 불법하도급 등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으며 결국 ‘무노조 신화’를 내세우고 있는 삼성을 상대로 첫 노동부 특별조사를 이끌어 내 일약 ‘환노위 스타’ 의원으로 부상했다. 국감 증인 채택이 무산돼 한 숨 돌렸던 삼성이 ‘우원식 복병’을 만난 것이다. 우 의원은 철저한 자료 준비를 바탕으로 한 ‘송곳질의’로 ‘야당 같은 여당의원’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영주 의원의 산업재해 정책 자료집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철저히 분석한 조선업종 산재 실태조사 자료를 들이밀며 “비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가 산업재해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는 점을 생생히 보여줬다. 자료집에 따르면 직영노동자의 질병재해발생 비율을 100으로 봤을 때 사내하청노동자의 발생비율은 2001년에는 23, 2002년 7, 2003년 7, 올 6월말 16을 기록하는 등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사내하청노동자의 비율이 은폐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이에 노동부는 11월부터 두 달간 조선업종 직영·하청업체 100여 곳을 대상으로 사업주와 노동자 면담, 설문조사 등을 통해 △조선업체 산재발생 형태 △산재발생 원인 △직영업체와 하청업체 재해율이 현격히 차이가 나는 원인 등을 중점적으로 파악할 계획이다. 이번 조사는 김영주 의원의 문제 제기가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은 비정규, 이주노동자, 장애인, 장기투쟁사업장 등 소외받고 열악한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의 문제를 공론화시키는 한편 산재 통계 정확성, 노동위 구제 실효, 노동부 역할론 등 노동행정까지 조목조목 짚어내는 등 ‘차별화된 국감’과 성실함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다른 상임위 민주노동당 의원도 마찬가지지만 홀로 노동문제 전반을 감사하기는 사실상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노동’의 관점으로 노동정책과 현안을 지적, 이슈화시킨 것은 값진 성과다.
단 의원의 국감 활동과 관련, 모니터에 나선 노동부 공무원직장협의회 서성모 회장은 “단병호 의원은 자신의 질의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의원들이 질문할 때도 신중히 경청하는 모습을 국감 내내 보여줬다”며 “감사 내용도 중요하지만 (단 의원 같은)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가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고 평가한 점은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이 밖에 장복심 의원(열린우리당)이 유시민, 김영춘 의원과 공동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 자동차보험, 건강보험 진료비 심사평가 체계일원화’에 대한 정책 제안을 했다. 또한 김형주, 조정식 의원(열린우리당)은 나날이 악화되는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고용서비스 선진화 방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등 대안마련에 집중하는 모습도 보였다.
호텔리베라·지하철 ‘질타’
환노위 국정감사에서 가장 어이없는 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호텔리베라 모기업인 (주)신안그룹 박순석 회장. 7일 서울, 경인, 대전지방노동청 대상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나온 신 회장은 집요하게 위장폐업을 추궁하던 단병호 의원에게 “국회의원이 깡패집단도 아닌데, 왜 이렇게 윽박지르냐”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국회 모독죄’로 고발 위기까지 몰려 있다. 이날 국감에서 대다수 환노위 의원들이 호텔리베라 문제를 집중 추궁했지만 아직까지 위장폐업, 노조 인정 등을 둘러싼 현안 문제는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 7월 궤도연대 파업 직전 두 지하철공사 사장이 정부에 직권중재를 요구한 사건이 국정감사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22일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은 증인으로 출석한 강경호 서울지하철공사 사장과 제타룡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에게 청와대, 노동부 등에 공문을 보내 직권중재를 요구한 일을 질타했다. 의원들은 “대화보다 불법파업을 유도하고 보복성 징계를 남발하는 등 두 공사의 행위들 때문에 노사관계가 불안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으며 김대환 노동부 장관도 “공사들의 행위는 문제가 있다”고 답변했다.
“아쉽지만 그래도…”
매년 반복되던 구태가 올해도 피해가지 못했다. 노동부 국감에서도 본질과 상관없는 ‘좌파정부’가 논란이 되는 등 정쟁은 여전했다. 배일도 한나라당 의원은 4일 노동부 국감에서 “기업이 이윤을 내겠다는 것을 반노동자적으로 몰아붙이는 분위기로 봐서 외형적으로 참여정부가 ‘좌파정책’을 펴는 것 아니냐”고 포문을 열어 여야가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일부 의원들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동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 “캐리와 부시 가운데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은가” 등 준비 부족으로 노동정책과 별 상관없는 질문이나 너무 포괄적인 질의를 매번 던지는 등 ‘대충 시간을 때우려는’ 경향도 포착됐다. 중복 질의, 사안에 대한 대안 제시 부족, 재탕·삼탕 질의, 심층성 취약 등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수의 피감기관을 감사하기 위한 구조적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매년 환노위를 모니터하고 있는 경실련 차은상 간사는 “자리이석, 준비부족, 하나마나한 질문 등 아직까지 일부 의원들은 문제가 심각하다”며 “하지만 대체로 “(환노위 특징상) 언론에 크게 부각되지는 못하는 속에서 상당수 의원들이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차 간사는 “일부 의원들은 주요 의제를 꾸준히 집중적으로 추궁해 성과를 얻어내는 등 나름대로 효율적인 방안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며 “점수로 매긴다면 환노위는 80점 정도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20일의 짧은 기간동안 진행된 국정감사.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환경노동위원회는 다른 상임위와 차별적이다. 또한 의원들이 추궁하는 사안 하나하나가 1천만이 넘는 노동자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국감에 앞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그런 만큼, 아쉬움도 컸지만 이전에 비해 가능성도 봤던 기간인 것 같다.
특히 비정규직 산업재해, 장시간 노동 등 노동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어두운 현실’을 고발한 깊이 있는 정책 자료집, 산재통계를 둘러싼 새로운 논쟁, 고용서비스에 대한 대안 모색 등은 모래 속에 감춰진 값진 진주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단병호 의원의 ‘성실한 국감’ 태도로 진보정당의 모범적인 이미지를 만들었으며 노동부 역할론 등 그 동안 들을 수 없었던 진보적인 메시지들이 국회 차원에서 논의됐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지난 7일 호텔리베라 증인 심문과정에서 김영주, 장복심, 조정식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충분히 질의하라”며 각자에게 주어진 5분의 시간을 단병호 의원에게 양보한 미담은 환노위 국감에 훈훈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여야를 뛰어넘어 ‘제대로 된 감사’를 위해 마음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국정감사가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20일 동안 제기된 사안들을 피감기관이 어떻게 이행하고 있는지도 17대 환노위 의원들이 꼼꼼히 따져봐야 할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