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등급제’ 논란에서 배워야 할 것

노동사회

‘고교등급제’ 논란에서 배워야 할 것

admin 0 3,755 2013.05.12 05:14
 

gypark_01.jpg지난 8월 교육인적자원부가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2008학년도 이후 대학입학제도 개선방안’(시안) 을 발표했다. 그 이후 ‘고교등급제’와 ‘내신성적 부풀리기’,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권과 고등학교 교사의 평가권, 1학기 수시모집의 문제점, 정부의 ‘3불정책’(기부금 입학제, 본고사 실시 그리고 고교등급제의 금지 정책), 그리고 장기적인 입시제도 개선을 위한 교사, 교수, 학부모를 포함하는 논의체 구성의 필요성에 대한 논란 등으로 전국을 논쟁의 열기로 달구었다.

벌써 16번째, 끝없는 입시제도 고치기

우선 이러한 해묵은 논쟁의 시발점은 되풀이되는 ‘대입제도 개선안’이다. 우리나라 입시제도는 16번이나 바뀌었다고 한다. 교육부 장관이 교체될 때마다 바뀌어 왔다해도 과언이 아니고 이처럼 입시제도가 자주 바뀌는 나라도 전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렇게 입시제도가 자주 바뀌는 이유는 그간의 정부들이 근본적 대책없이 입시제도 개선안을 정권 유지 차원에서 정략적으로 이용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우리 사회가 극소수 명문대학 중심의 ‘학벌주의’에 의해 주도되고 있어서 대입제도의 개선을 통해 이 병폐를 치유하려는 잘못된 처방을 단기간에 내놓기 때문이다.

이러한 처방 때문에 학벌주의는 오히려 점점 더 극심해지고 있다. 그리고 소위 ‘명문 대학’을 가기 위한 입시는 과열경쟁을 불러올 수밖에 없고, 이는 사교육비의 증가, 계급·계층간 갈등 심화 등 온 국민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은 정부가 앞장서 입시문제를 해결해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학벌중심의 사회를 개혁하고 대학의 고착화된 서열구조를 깨뜨리지 않고서는 만들어 질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입제도도 불과 몇 년 전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고득점 위주의 학생을 ‘선발’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창의력과 성장가능성을 지닌 학생을 ‘발굴’하는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바뀐 제도이다. 그럼에도 다시 개정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나 현행 입시제도는 교육부도 지적하고 있듯이 많은 문제점을 파생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내신성적 부풀리기’ 현상으로 정시모집에서 대학의 학교생활기록부 반영비중이 저조해 지고 있으며, 통합교과적인 출제방식을 지향하였으나, 수능준비가 학교수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학원의존도가 심화되고 사교육비는 더욱 증가하였다. 400점 만점의 수능성적이 그대로 발표되어 입시자료로 활용되는 바람에 점수따기 과열 경쟁을 유발하였고, 대학은 대학별 목표와 유형에 따른 특성화된 전형방식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이 밖에도 특수목적고가 설립목적과 달리 입시학원화되어 초·중학교 단계에서부터 진학경쟁 과열 및 사교육비 증가를 초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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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등급제 적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백윤수 연세대입학처장  - 출처:프레시안 ]

논란 발단이 된 ‘입시제도 개선안’의 내용

교육부는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사교육비 경감대책(2004.2.17)’의 후속조치로 지난 8월26일 ‘2008학년도 이후의 대학입학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였다. 이 개선안은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21세기형 우수 인재를 발굴·육성하고,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학생부의 신뢰도를 제고시켜 대입전형자료로서 반영하는 비중 강화, △대학수학능력시험 제도 개선·보완, △학생선발의 특성화·전문화 등의 세 가지를 강화할 것을 핵심적 기본 방향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안은 ‘3대 과제’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첫째 학교생활기록부의 반영 비중 확대와 관련된 것이다. 이 과제의 실현을 위하여 교육부는 △‘성적 부풀리기’ 방지를 위해 원점수표시제(과목평균과 표준편차 동시표기) + 9등급과목별 석차등급 표시제(대입전형에서의 학생부 반영비중이 현재보다 상당부분 높아져 학교교육 정상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도입하고, △학교생활기록부를 충실히 기재하여 내신성적의 비중을 높이도록 하며, △평가의 신뢰성 및 공정성을 확보한다.

그런데, 학교생활기록부가 충실히 기록될 수 있도록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교원 법정정원 및 교과교실을 단계적으로 확보하고, 학생의 진학정보 제공을 위해 ‘대학정보 공시제’를 도입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또 ‘평가의 신뢰성 및 공정성 확보’를 위해 교사의 학습계획과 평가계획·내용·기준을 사전 공개하고, 교사별 평가를 도입하며, 교육청 단위의 ‘학업성적평가방법개선지원단’을 활성화하고, 고교·교육청·대학간 상호 연계체제를 구축하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였지만 이를 실현하는 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을 것이다.

둘째 과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개선·보완책인데, 이를 위해 △지나친 점수경쟁 완화를 위해 ‘9등급’만으로 성적을 제공하고, △기존의 폐쇄형 출제방식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문제은행식 출제로 전환하고(2008학년도 일부영역에 도입, 2010학년도부터는 전영역에 걸쳐), △2010학년도부터 연2회 시험 실시 및 2일에 나누어 시행하는 복수 시행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학생선발의 특성화·전문화 강화 시안을 제시하였다. 이 과제의 실천을 위해 △대입전형의 전문화 체제 강화의 한 방법으로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고, 대학별로 입학업무를 전담하는 입학사정관을 별도로 채용·운영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고 지원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며, △특수목적고 동일계 특별전형을 도입하고, △사회통합을 유도하는 전형을 활성화하는 한 방법으로 소외계층이 대학 진학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정원내 특별전형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망국적인 ‘고교등급제’와 교육부의 솜방망이 처벌

교육부는 현행 입시제도의 개선책이라며 ‘내신9등급제’와 ‘수능9등급제’ ‘대학선발권 강화’를 골자로 한 ‘2008학년도 대입개선안’을 일사천리로 강행하려 했다. 하지만, 교육관련 운동단체들의 반대와 저항에 부딪쳐 확정안 발표를 여러 차례 미루어 오고 있으며 여론 무마용으로 담화문을 한차례 발표하였을 뿐이다. 이 담화문이 교사, 교수 그리고 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논의조직을 구성한다는 원칙을 밝혔지만, 2008학년도 대입개선안이 대대적으로 수술되지 않는 경우에는 얼마 전 일부 소위 ‘명문대학’들이 커다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부활’의 당위성 논쟁을 다시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다.

일부 대학이 ‘부풀려진’ 내신성적을 신뢰할 수 없다며 철저히 내신을 외면하는 마당에, 내신성적을 등급제로 할 경우 대학들이 “학교간 학력격차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변별력 강화”를 이유로 대학 차원의 ‘별도 선발기준 마련’을 요구하고 나설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대학의 학생선발자율권 강화’라는 미명 아래 대학의 자의적인 선발을 더욱 부채질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부모의 재산 정도에 따라 학생을 선발하는 치밀하고 조직적인 입시부정인 ‘고교등급제’(고교등급제는 부모의 재산에 의한 학력의 상습을 의미하기 때문에 기부금입학제와 다를 바가 없다)나 과외 망국론을 다시 불러일으킬 ‘본고사’와 같은 편법이 더욱 기승을 부리도록 만들 것이 너무도 뻔하다. 이러한 것들이 모든 국민과 학부모의 바램인 ‘고교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에 역행하리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고교등급제 사태를 책임지고 처리해야 할 교육부는 대학의 눈치나 살피며 ‘솜방망이 조치’로 일관하고 있다. 지금 당장 ‘1학기 수시모집 무효화’(사실 1학기 수시모집은 학생 선발의 다양한 방법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도입되었지만 고등학교 3학년 교과과정의 필요성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우수학생을 일부대학이 독점적으로 입도선매하는 반교육적인 학생선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를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그리고 2학기 수시모집 과정에서 고교등급제 논란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교육부는 “재발방지 약속만 하면 눈감아 준다”고 한가한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부의 이 같은 방침은 조직적 입시부정행위인 ‘고교등급제’를 적용한 대학에 대해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벌백계의 처벌이 필요함에도 해당 대학들을 봐주기 위한 ‘솜방망이’ 처벌로 무마하여, 이후 대학들이 부정행위에 대한 죄책감이나 두려움 없이 편법·부정 행위를 일삼을 가능성은 너무도 분명하다.

대학 서열을 깨뜨리는 것이 ‘상향평준화’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교육부는 ‘2008 대입개선안’을 2008년이라는 연도에 얽매여서 조급하게 밀어붙이는 식으로 일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이제 교육부는 전체 학부모와 학생을 볼모로 잡고 무모하고 소모적인 밀실행정식 도박을 더 이상 벌여서는 안 된다. 

지금과 같은 입시 부정 행위를 방지하고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고교등급제 적용이 드러난 대학에 대해 당장 특별감사를 단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책임자 문책과 형사처벌 등으로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 또 2학기 수시모집을 둘러싸고 갈등이 재연되지 않도록 ‘고교등급제’ 적용이 사실로 드러난 대학에 한해 2학기 수시모집 일정을 당장 중지시켜야 한다. 그리고 ‘고교등급제’나 ‘기부금입학제’ ‘본고사’ 등 편법이 더 이상 학교현장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이른바 ‘3불 원칙’을 법제화하고, 강력한 처벌 조항을 신설해야만 할 것이다.

또한 ‘2008학년도 대입제도개선안’을 무작정 밀어붙이기 보다 현행 문제점에 대한 확실한 대책을 마련한 가운데 교사·학부모·학생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 나가야 할 것이며, 이제 대학은 입증된 바 없는 ‘우수학생’ 선발에 열을 올리기보다는 잠재력 있는 학생을 우수학생으로 교육시키는 대학간 경쟁에 주력하여 교육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입시 문제는 종국적으로 과도한 학벌주의로 인해 파생되는 것인 만큼, 정부와 교육부는 대학의 서열화를 깨뜨리는 ‘상향식 대학평준화’를 위해 실천적 방안을 모색하고 학벌주의와 학력과 학벌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