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에 속고 돈에 울고

노동사회

행정에 속고 돈에 울고

admin 0 3,589 2013.05.12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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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당 후원회 행사에 선거관리위원회가 총출동했다. 토요일 늦은 오후에 네 명의 직원이 후원회 점검을 위해 퇴근도 하지 않은 채 찾아온걸 보면 바야흐로 선거철이 시작되는가 보다.

선관위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음식이다. 후원회 음식은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은데, 김밥은 되고 초밥은 안 되는 식이다. 선관위에서 후원회 음식을 쭉 촬영하기 시작한다.

“요즘 제보가 많이 들어와요. 위원장님께서도 엊그저께 시장에서 서명 받으셨다면서요.”

학교급식조례제정청구서명을 말하는 것 같다.

“예, 그거는 제가 수임인으로 등록 되어 있기 때문에 서명을 받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죠. 아니, 그런 내용도 선관위에 접수됐나요?”

선관위 직원이 힘들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한다.

“요즘 마포가 난리예요. 열린우리당 경선에 여섯 명이 입후보 한 거 아시죠. 그 중에서 두 명은 벌써 불법선거로 경선에서 탈락했어요. 정신없어요.” 

어디 열린우리당 뿐이랴.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에 잠시 몸담았던 서른 여섯의 젊은 변호사가 한나라당 후보로 유력시되고 있는데 그는 자신의 자서전을 상가에 쭉 뿌렸다는 소문도 있다.

“아, 그 책들이요. 저희가 상가를 돌면서 다 수거했어요. 민주노동당이 제일 깨끗합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마포갑·을의 두 현역의원은 모두 비리 혐의로 감옥에 있다. 이런 구는 대한민국에 마포뿐일 것이다. 현역의원은 감옥에 있고 정치 신인들은 감옥 갈 준비를 하는 것 같다.

‘걷고싶은 거리’를 떠나는 문화예술

“서울시에서 홍대 주변을 문화지구로 지정한다는 계획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홍대 주변의 상가 임대료가 엄청나게 오른 거 있죠. 문을 닫은 가게도 있고, 지금 홍대 주변은 난리입니다. 아니 문화지구로 지정하는데, 정작 문화예술을 볼 수 있는 갤러리나 극장은 다 문닫게 생긴 거죠.”

홍익대 ‘걷고싶은 거리’에 위치한 극장 ‘씨어터제로’ 심철종 대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심대표의 말처럼 홍대 주변의 임대료가 들썩이고 있다. 문화지구로 홍대 주변을 지정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가뜩이나 비싼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솟아오르고 있다.

1998년 11월에 개관해 3,200여건의 실험적인 공연이 상영되어 실험예술무대의 상징처럼 자리매김한 극장 씨어터제로도 예외는 아니었다. 

“건물주는 이익을 많이 남기려고 극장을 헐고 건물을 새로 짓겠다고 합니다. 지난해 11월부터 나가라고 했죠. 지금은 명도소송 중인데, 법원의 판결이 곧 날 것입니다. 4월에는 극장을 비워주고 나가야 하는 처지죠.”

건물주는 지하 2층, 지상 6층의 새로운 건물을 지어 임대를 할 계획이란다. 요즘 들어 지자체가 걷고싶은 거리 같은 것을 만들어 거리 정비를 한 탓에 주변 영세 상인들은 울상이다. 거리가 정비되면서 임대료가 급상승해 하루아침에 생업을 포기해야 할 판이다. 

실제로 록음반을 3천여장이나 소장하고 있던, 지역내 대표적인 록음악 명소인 카페 ‘베레앤세바스찬’도 뛰어오르는 임대료를 견디다 못해 2002년 문을 닫았던 전례가 있다. 동교동에서 당인리 발전소까지 걷고싶은 거리가 조성되면서 한달 70만원 하던 임대료가 200만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젠 문화거리로 지정한다니 더욱더 임대료가 오를 수밖에 없다. 

문화거리 죽이는 문화거리 계획

문화거리를 지정하려는 계획이 오히려 문화거리를 죽이는 결과로 나타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극장 씨어터제로를 살리기 위해 가수 강산에를 비롯해 홍대 주변의 문화예술인 106명이 ‘홍대앞 문화예술협동조합’(홍문협)을 결성한 상태였지만 상업자본에 맞서기에는 상황이 녹녹치 않았다. 

문화예술 공간보다 이익이 더 남는 술집이 들어오는 상황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홍문협은 “씨어터제로의 폐관위기를 문화생산 공간이 천박한 상업소비 공간으로 변질되는 상직적 사건”으로 규정하고 3월중 만장을 들고 누드 퍼포먼스 등 강도 높은 계획을 준비중에 있다. 

홍문협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황신혜밴드 멤버 조윤석 씨도 민주노동당에게 홍대 앞 임대료 문제를 함께 풀어나갈 것을 요청했다. 

“예전에는 볼 수 없던 부동산 중개소가 50미터마다 들어서고 있어요. 홍대 주변의 외진 곳에도 재개발 붐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부동산업자들이 건물주를 부추겨 임대료를 올려 놓는 바람에 이젠 미술이나 음악인들의 작업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마포을 지구당에서는 ‘씨어터제로’측과 대책회의를 갖고, 중앙당 민생보호단과 상의한 후 홍대 주변 임대료를 조사하기로 했다. 임대료 조사를 위해 개별 상가를 방문하고 현행 상가임대차 보호법의 문제점을 알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월 임대료 200만원과 보증금 5,000만원 이상인 점포는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되어 있다. 홍대 주변의 임대료는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법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활동이었다.

당초 목표는 지역내 임대료를 알아보고,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위한 기자회견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홍대 주변 5백여 상가를 돌며 임대료를 알아내는 문제는 초반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다리품을 팔며 상가를 돌아도 자영업자들은 임대료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입을 다물었다. 이유는 단 한가지. 건물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해 당사자가 나서서 임대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들 당연히 비밀을 보장하고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말한들 소용이 없었다.

다만 구체적인 액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범위 밖에 있다는 것만큼은 시인했다. 법개정에 대해서도 동의했다. 그러나 이를 사회적으로 알릴 수 있는 주체적으로 나설 수 있는 상황은 분명 아니었다.

돈이 돈을 낳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물론 전혀 소득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몇몇 자영업자들이 밝힌 임대료 인상폭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아이엠에프 당시 홍대 앞에서 가게를 열었다는 한 젊은 주인은 속삭이듯 임대료 인상 현황을 알려줬다.

“말도 안되죠. 어디가서 얘기도 못해요. 아이엠에프때 처음 가게를 오픈 했는데, 그때는 월 30만원이 임대료였죠. 그러다 해마다 60만원, 80만원, 120만원으로 오르더니 이번에는 196만원으로 올랐어요. 여덟 평 가게 임대료가 무려 196만원입니다. 걷고싶은 거리니, 문화거리니 하는 말들이 나오면서 작년에 120만원에서 196만원으로 이전보다 인상폭이 훨씬 더 심했던 거죠. 저뿐만이 아니에요. 이 동네가 지금 다 그렇다고 알고 있어요.” 

또한 열 평이 조금 넘는 24시간 편의점의 임대료는 한달 3백만원이었고, 자그마한 신발가게도 임대료가 지속적으로 올라 이젠 4백만원에 육박했다. 

“아시다시피 요즘 불경기죠. 그래서 더 이상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가 없어요. 장사를 계속하다가는 빚만 늘 것 같아서,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가게를 내놓으려고 했죠. 그랬더니 주인은 새로 가게를 하러 온 사람들에게 배로 임대료를 올리겠다고 했어요. 그러니 누가 들어오겠어요. 임대료를 보고 아무도 들어올 생각을 안 해요. 꼼짝없이 계약기간 동안 장사를 해야 할 판입니다. 늘어가는 빚을 보면 한숨만 나오죠.”

돈이 돈을 낳는 세상이다. 건물하나만 가지고도 합법적으로 얼마든지 장난을 칠 수 있는 세상이다. 단합을 해서 한번 일을 꾸며 보자고 설득하고 다니지만, 조금 과격한 얘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치며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외면한다. 그저 상가를 나올 때 맥없이 “그러면 국회에 진정서라도 한번 내보세요. 요즘 선거철이니 집단적으로 민원이 들어가면 외면하지는 못할 겁니다.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제도가 개선될 수 있습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실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상을 바꾸는 길이 쉽다면 이미 원하는 세상이 됐을 것. 해답은 두 번 세 번 방문해서 그들을 설득하고 조직하는 일이다. 불합리한 구조를 합리적으로 만들고, 손쉽게 이익을 챙기기 위해 건물로 투자되는 자금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