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활동으로 재정자립과 조직력 강화 이뤄내

노동사회

복지활동으로 재정자립과 조직력 강화 이뤄내

admin 0 4,100 2013.05.12 05:03

초기 노동조합 활동이 상호부조와 복지 공제회 활동에서 시작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조합의 복지 활동은 조직활동과 더불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비록 복지활동이 노동조합 활동 중에서 덜 중시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 활동을 제대로 해낸다면 조합원들의 생활 조건 향상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조직력 강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그래서 노동조합 복지활동의 의의는 첫째 조합원들의 실질적인 생활조건의 개선, 둘째 노동조합의 조직강화, 셋째 조합원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생활공간의 확보라는 세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노동조합에서의 복지 활동은 식당, 교통편의, 기숙사, 사택, 현물급여, 휴게실을 비롯한 각종 복지시설, 도서실 운영이나 혹은 협동조합, 매점 운영 등 다방면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러한 복지활동은 1997년 노동법 개정 이후 과거 활동에 더하여 노동조합의 재정자립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즉 개정 노동법에 의하면 2002년부터 노조전임자의 임금 지급이 전면 금지되고 이를 어길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처벌까지 받게되기 때문에 3백명 미만 사업장은 사실상 노조활동이 불가능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우려의 소리가 높았다. 97년 당시 전체 노조의 약 87%가 3백명 미만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노동조합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이 규정은 재개정을 거쳐 2006년 말까지로 유예되었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법조항이다.

97년 노동법 개정과 더불어 많은 사업장에서 조합원들로부터 조합비 이외에 별도 기금을 갹출하여 재정자립 기금으로 적립하고 여러 가지 재정사업을 앞다투어 전개한바 있다. 7년이 지난 지금 단위 노동조합의 재정자립 활동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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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게실 '터' 개소식   출처: 벽산노조 ]

복지활동과 재정사업의 결합

재정사업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 지, 어떻게 복지활동과 유기적 연계를 맺으면서 운영되어야 할 지에 대하여 벽산노동조합의 사례는 눈여겨 볼만하다.

사무직과 전국 건설현장 노동자를 포함해 5백여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벽산노동조합은 98년부터 재정자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2년 이후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현실화된다는데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조합원들의 결의로 기금을 적립하기 시작했다. 벽산노조 조합원들은 연간 6백프로의 상여금을 받았는데 매번 상여금을 받을 때마다 2만원씩 공제하여 기금으로 적립하였다. 원래 이 기금 적립은 2003년 말까지만 할 예정이었으나 조합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2006년까지 계속할 예정이다. 당초 5억을 목표로 추진되었지만, 6억원을 넘어 현재는 약 7억원 정도 적립금이 모아진 상태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98년도 회사가 워크아웃 기업으로 선정되면서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놓였지만 조합원들은 묵묵히 이를 실천에 옮겼다.

노조에서는 이를 종자돈으로 삼아서 재정복지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재정복지센터의 운영 목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첫째는 노동조합의 자주성 확보를 위한 재정 측면, 둘째는 조합원들의 복지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재정사업 초기에는 노조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사업들을 벌였으나 지금은 대부분 정리하고 핵심사업만을 하고 있다. 이중 재정사업과 관련하여 가장 큰 사업은 보험대리점 사업이다. 보험사업은 노조에서 보험관련 전문담당 인력을 채용하여 공식 대리점 허가를 얻어 운영하고 있다. 운영자금 3천만원으로 시작해 현재 화재보험, 자동차보험, 근재보험(노동자가 산재를 당할 경우 사용주는 산재보험법상의 책임 이외에 민사상의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되는데, 이와같은 민사상의 손해배상금 및 제반손해를 보험회사가 보상하는 보험)을 주로 취급하고 있다. 건설회사이다 보니 협력업체들의 화재보험 등 여러 가지 보험을 취급할 기회가 많다는 것도 보험 사업을 하게된 배경이었다. 

둘째로 중요한 사업은 전국 아파트 현장에 있는 식당(일명 함바 식당)을 노동조합에서 직영하거나 위탁 경영하고 있다. 현장 식당 운영은 재정 사업의 측면도 있지만 영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여타의 식당과는 달리 현장의 조합원이나 노동자들에게 양질의 식사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복지 사업의 의미를 갖고 있다. 위생적이고 영양가 있는 식단으로 질을 향상하는 한편 운영권을 둘러싼 불필요한 마찰을 해소하여 호응을 받고 있다. 

셋째는 조합원들의 긴급자금을 대출해 주는 소액대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조합비를 1회 이상 납무하면 대출자격이 주어지는데 소액자금대출 한도는 총 5천만원 한도에서 1인당 최대 1백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이자는 월 0.5%이고 6개월 안에 현금상환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밖에 노조는 장기적으로 건설회사의 특징을 살려 조합원들을 위한 사원주택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이미 두 번에 걸친 사원주택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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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산 조합원들이 '터'에서 회의를 하는 모습    - 출처:벽산노조 ]

외부단체 지원을 비롯해 영역 확대

복지활동 사업으로는 휴게실(재정복지 센터 ‘터’) 운영이 대표적이다. 전담직원을 두고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운영하는 휴게실은 조합원이면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백원이면 자판기에서 따끈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빔프로젝트와 음악 시설을 완벽하게 갖추어 매주 토요일에는 영화 상영도 하고 외부 강사를 초청하여 매월 조합원들의 흥미를 유발할 만한 강좌를 개설하기도 한다. 

20여 좌석을 갖춘 휴게실은 부서별 회식이나 회의에도 활용되며, 한편에는 연간 480만원의 운영자금으로 도서, 비디오, DVD를 비치하여 조합원들이 자유롭게 빌려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건설노동자답게 내부 인테리어부터 조합원들이 직접 구상하여 꾸몄으며 운영과 관련해서는 인터넷을 통해 조합원들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밖에 3개의 콘도 구좌를 구입하여 조합원들의 가족들에게 대여하는 등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여러 가지 많은 혜택들이 주어진다. 그러다 보니 임원급을 제외하고 모든 직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렇게 재정사업을 통해 확보된 재정은 기금으로 적립되는가 하면 외부단체 지원에도 사용된다. 매월 일정액을 떼어 전태일 기념사업회, 비정규노동센터, 추모연대, 민중연대 등 진보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는 단체에 회비나 지원금 형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양형승 벽산노조 위원장은 1999년 「노동조합의 재정자립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로 논문을 냈을 정도로 노동조합의 재정 자립과 관련하여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고 있다. 특히 양 위원장은 최근 전태일 기념사업회 이사로 선임되고 난 후, 월 150만원으로 운영되는 전태일 기념사업회의 열악한 재정현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자고 하면서 너무 무책임했던 것이 아니냐는 반성과 함께 전체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관심과 각성을 촉구한다. 아울러 재정사업은 단순히 노동조합 재정을 확대하는 것에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의 다양한 복지 욕구를 충족해야 하는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려서부터 노동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방학 기간에 부모와 함께 하는 캠프를 운영하는 것 등이 필요하고 주5일제와 더불어 노동자들도 각종 취미활동이나 여가활동에서 건강한 문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그런 의미에서『노동사회』2월호에 실린 ‘지방교환교역시스템’(LETS)에 관한 제안은 좀더 연구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전국의 노동조합 중에는 벽산노조의 사례보다 더 모범적인 사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정 사업은 단순한 돈을 모으는 사업이 아니라 조합원들과 함께 조합원들의 복지를 위한 사업이 되어야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