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노동법과 비정규직

노동사회

일본의 노동법과 비정규직

admin 0 7,260 2013.05.12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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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2004년 9월6일(월)
곳: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교육장
사회: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발제: 와키다 시게루 일본 류코쿠대학 법학부 교수
통역: 스즈키 아키라 노동건강연대 성수동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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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오늘 포럼은 일본 대학에서 강의하시면서 한국의 상황을 공부하기 위해 우리 연구소에서 머물고 있는 와키다 시게루 선생님께서 기조발제를 해주시겠습니다. 와키다 선생님은 일본의 사회보장법을 전공하셨고, 교또 지역의 류코쿠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계십니다.

한국 상황을 알기 위해 한국말을 직접 배우셨는데 대단히 열심이십니다. 오늘 특별히 부탁을 드려서 일본의 비정규직 문제가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지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최근에 일본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이와 관련된 자료를 관심을 가지고 찾아봤는데 의외로 가까운 일본의 상황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법제는 일본 것을 가져다 쓴 것이 많기 때문에 일본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미리 아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오늘 포럼이 일본의 실태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통역을 맡아주실 분은 스즈키씨입니다. 지금 보건의료노조에서 일하시는 분과 한국에서 가족을 이뤄 살고 있고, 일본에 계실 때부터 건강연구회 등에서 활동하셨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노동건강연대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일본 문제와 한국 문제를 연결시키고 한국을 소개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십니다. 그럼 포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발제자

2000년 5월에 비정규센터의 초청을 받아서 일본의 비정규문제에 대해서 알리기 위해 한국에 온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한국말과 한국의 상황을 전혀 몰랐는데, 그 후에 관련된 공부를 하면서 여러분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되었습니다. 오늘은 한정된 시간이지만 일본의 노동법제도와 비정규직의 상황을 약간이나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본 헌법 제27조와 제28조
일본 노동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 6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법 체계는 1947년에 시행된 일본 헌법 제27조와 28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7조는 제1항에서 근로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있고, 이는 직업안정법과 고용보험법 등 실업자보호나 국가에 의한 직업안정행정을 정하는 법률의 상위규정이기도 합니다. 27조 제2항은 근로자를 위한 법정노동기준을 정하는 것을 국가의 의무로 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이 최저노동기준을 정하는 노동기준법의 근거 규정입니다. 노동기준법은 헌법과 같은 시기에 개정·시행되어 그 후 법률의 일부가 독립해서 각각 최저임금법과 노동안전위생법 등으로 나뉘었습니다. 또, 재해보상에 대해서는 노동자재해보상법이 사실상 노동기준법을 대신해서 독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28조는 근로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제28조를 기반으로 노동조합법, 노동관계조정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일본이 패전한 직후인 1945년 12월에 노동조합법이 제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2년 동안 노동조합 조직률이 일본 역사상 최고인 50%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큰 힘을 가지고 있었고 공산당 주도인 산별회의가 노동조합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국제 정세동향의 소용돌이 속에서 1948년 2월1일 총파업이 발발하기 직전 점령군인 미군에 의해서 중지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일본의 노동법과 노동운동은 큰 좌절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후 헌법 이념을 왜곡하고 미국의 세계전략에 종속된, 이질적인 반민주적 법규정이 전격적으로 법체계에 도입되었습니다.

일본 노동법의 역사는 최초의 헌법 이념을 왜곡하는 역행적인 관행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본 노동조합이나 진보적인 노동법학자들은 60년 동안 거의 악법하고 싸우는 것이 주임무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후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1985년의 파견법 제정이 이러한 악법 역사의 마무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어쨌건 헌법, ILO 조약 등은 여전히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일본의 노동법이나 고용사회를 비판하는 무기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을 역행하는 노동관계법
미군 점령군은 1948년 총파업 중지 명령 이후, 전후 노동운동을 주도한 공공부문 노동자의 노동권에 대해서 맥아더 총사령관의 총괄 하에 중대한 제약을 가했습니다. 1947년 7월 '정령 201호'는 형사처벌을 동반하며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를 금지했습니다. 그 정령 이후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공영기업체노동관계법에 따라 공공노동자들을 분할하고 파업권을 일률적으로 박탈했을 뿐 아니라, 단체교섭권에 중대한 제약을 계속 가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약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민간기업에서는 1945년 노동조합법이 기본적으로 적용되다가 1949년 노동조합법이 개정되어 이 법률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1949년 노동조합법의 본질은 노동조합이 기업을 넘어서 운동을 전개하고, 기업을 넘어서 연대활동이나 정치활동을 하는 것을 억압하여 기업별노동조합 체계에 자기 활동 범위를 스스로 고정시키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1949년 노동조합법은 공산당 주도의 정치적인 산별회의를 억압하여 노사협조적인 산별회의민주화동맹(약칭, 민동)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후 몇 가지 과정을 거쳐 산별회의가 붕괴되었고 이른바 민동이 다수파가 되어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이하, 총평)이 결성되었습니다.

그 후 1950년대, 1960년대 일본 노동조합운동은 다시 부활하였고, 총평은 '닭에서 오리로'(투쟁하지 않는 조직으로부터 투쟁하는 조직으로) 전환을 단행했습니다. 1955년에는 국철 등 공공노동조합과 중소기업노동조합 등 비교적 전투성을 가지고 있던 부류가 총평의 지도부를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기업별 노동조합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미조직 노동자의 노동조건 인상을 중요한 목표로 '춘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은 기업측의 힘이 강해지면서 이러한 춘투는 그 역할을 잃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공노동자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쟁의권을 회복하기 위해 과감하게 투쟁했습니다. 형사고발, 대량해고, 재판투쟁, ILO 투쟁 등 전후 일본 노동법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이것에 대해 지금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이러한 역사가 있었던 점에 대해서 지적하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1980년대 중반, 당시 나카소네 내각이 총평운동의 중심인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을 약화시키기 위해 국철의 민영화와 분할을 강행했고, 경영형태변경을 핑계로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동탄압 결과 1986년 4월 당시 조합원이 165,403명, 조직률이 68.6%에 이르는 최대의 노동조합이었던 국철 노동조합이 87년 2월에 이르자 10만명 이상이 탈퇴하여 조합원이 60,216명, 조직률이 27.3%로 그 세력이 크게 줄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국가적인 부당노동행위"라고 부르고 노동법을 부정하는 불법행위로서 재판을 지원했습니다만, 반동적인 법원의 부당한 정치적인 판단에 의해 모두 패소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일본 노동조합운동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었던 투쟁하는 세력을 권력이 짓밟아 버린 시기에 파견법이 제정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총평의 중심이었던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약화된 반면 민간 대기업 중심으로 한 노동전선의 통일 움직임은 조금씩 진전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989년 11월에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모두 포괄한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렝고)'가 정식으로 출범했습니다. 이는 조직노동자들의 60%가 모인 조직이었고, 자본, 권력이 기대한 노사협조주의적인 '큰 닭'(투쟁하지 않는 조직)의 등장이었습니다.

집단적 노동관계의 현실
다음으로 집단적 노사관계의 현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표1]을 보십시오. 일본 노동조합은 기업별 조직이고, 수가 많고 규모가 작은 것이 특징입니다. 80년 이후 조직률은 해마다 줄었습니다. 1980년 30.8%에서 2002년 20.2%로 추정조직률이 20년 동안 10%이상 줄었습니다. 특히 렝고가 출범한 1989년에도 감소가 멈추지 않았고, 90년 후반에는 불황인데도 오히려 노동조합 조직률이 심하게 줄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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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 조직이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에 크게 치우쳐 있다는 사실입니다. 1,000명 이상 사업장에서는 57%의 조직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100명 미만 사업장에서는 1.4%, 파트타이머는 2.5%로 사실상 미조직에 가까운 상황입니다. 파견노동자에 대한 조직률 통계는 없습니다만, 저는 등록형 파견노동자의 경우 0%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처럼 하청노동자들의 노조결성을 지원하는 활동도 거의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단체협약의 확장적용제도가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동조합법 17조, 18조, 최저임금법 11조에 이 확장적용제도가 명시되어 있음에도 실제로는 거의 적용되지 않고 있고, 사문화되어 있습니다.

다음으로 쟁의참가자수 및 노동손실일수 현황입니다. 90년 이후 쟁의행위는 매우 줄었습니다. 이제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쟁의행위가 적은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는 파업에 참여함으로써 자각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파업참가자는 최근 일년에 1만명을 넘지 않고 있습니다. 렝고 출범 이후에는 큰 파업이 한번도 없었고, 춘투기간에도 투쟁하지 않아 힘의 열세에 처해 있습니다.

다음은 비정규 고용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1980년대 비정규 고용이 급격히 증가되었습니다. 일본의 비정규 고용의 최대 문제는 집단적 노동관계가 후퇴되어 있는 가운데 비정규 고용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점은 EU의 비정규 고용 도입과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입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비정규 고용을 집단적 노동관계에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에서는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는 가운데 비정규고용이 도입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1985년의 국철 투쟁이 이를 증명하는 사례입니다. 사실상 일본에서는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만 비정규고용이 도입되었습니다.

비정규고용의 확대

일본 정부 통계만을 따르더라도 비정규 고용이 전체노동자의 1/3을 넘었습니다. [그림1]을 보십시오. 이것은 2004년 5월에 사단법인 일본경제단체연합회가 제언한 전략적인 고용정책에 관한 자료입니다. 경영측조차 비정규고용 확대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자료입니다. 그림에서 파트타이머와 아르바이트는 거의 같은 것입니다. 다만 아르바이트는 학생이나 젊은 층을 주로 가리키는 말입니다. 세금법이나 사회보험법에서 피부양자기준이 연간 수입 100만엔 내지 130만엔이기 때문에 이들은 그 범위 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계약사원은 유기고용노동자입니다. 대우는 다양하지만, 사회보험이 적용됩니다. 연간 수입이 200만엔에서 300만엔 정도인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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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비정규고용을 되도록 적은 것처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정부나 경영측의 태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경단협은 비정규고용의 비율을 축소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비정규 고용이 늘어나고 있는데 정사원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 정사원이라는 고용형태를 없애고 전체를 유기고용으로 바꾸자'라고 주장합니다.

최근 일본에서 파견노동자의 증가율은 무시무시합니다. 그 이유는 파견업무를 네거티브 리스트화하는 법 개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극적인 것이었습니다. 후생 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2003년 기준으로 파견노동자가 200만명을 크게 넘었습니다. 1999년 파견업종을 네거티브 리스트화 하는 법개정 이후 파견노동자가 100만명에서 200만명으로 두 배가 늘었습니다. 그 이전의 증가율에 비해 매우 높아졌고 20∼30%의 증가율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증가율이 계속된다면 16년 이후에는 파견노동자가 3,200만명이 되어 전체 고용노동자의 50%를 넘어서고, 20년 후에는 6,400만명이 되어 고용노동자 전체가 파견노동자화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 통계에는 불법파견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공장 등 제조현장을 중심으로 하청 형태의 불법파견이 확산되어 있습니다. 이들과 관련된 통계는 아직 없지만, 현재 300만에서 500만명 정도가 있다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용형태는 정부와 자본의 고용전략에 의거해서 1980년대 이후 확산되었습니다. 1983년 직업안정법 특례로서 '파트뱅크'가 설치되었습니다. 그때까지 노동행정 당국은 동일노동 차별대우에 해당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파트타이머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데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랬던 노동행정이 이 파트뱅크를 설치하면서 차별고용 형태인 파트타이머 고용을 허용한 것입니다.

노동자파견법 19년과 현실

1985년 노동자파견법은 노동법 체계에 반노동자적인 요소를 투입시키는 중대한 악법이었습니다. 당시 일본 경영자는 세 가지 압력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는 직업안정법에 44조를 위반하는 위장도급노동자 공급사업의 적발활동입니다. 저는 법률가로서 여기에 참여했습니다. 두 번째는 남녀평등고용에 관한 국제적인 압력입니다. 세 번째는 컴퓨터 관련 노동자 채용의 필요성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파견법은 불법적인 노동자 공급사업을 일부 합법화했습니다. 그리고 은행 등은 계열사인 파견업체를 만들어 여성사원을 이적시키고, 이들을 다시 파견사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남녀차별이 고용형태의 차별로 형태를 바꾼 것입니다. 세 번째 압력과 관련된 것이 이른 바 '중간 노동시장 이론'입니다. 이는 컴퓨터 관련 노동들을 정사원으로서 내부노동시장으로 고용하는 것도 아니고, 동시에 외부노동시장으로 쫓아내서 직종별 단체를 만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파견업체에 소속시켜 필요할 때만 이용한다는 기업 중심의 이론입니다.

파견법 시행 후 파견노동자의 상황은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한국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론만 말하면 노동법이 없는 세계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최근 상담한 어떤 여성 파견사원의 이야기가 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파견사원은 임신을 했기 때문에 파견업체에서 계약갱신을 거부당했습니다. 이것은 남녀차별재판을 통해서 일본 여성들이 오랫동안 투쟁을 해서 물리친 '결혼퇴직제'나 '남녀차별고용'이 파견이라는 고용형태를 통해서 되살아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비정규 노동자가 증가한 결과 젊은이들의 노동시간 연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연간 3000시간 이상, 한 달에 80시간 이상 연장근로를 하면 과로사 기준으로 인정받는데, 2003년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남자의 경우 주노동시간이 60시간이상인 사람이 675만명 정도가 해당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만, 실제 잔업을 해도 신고를 할 수 없고 잔업 임금도 받을 수 없는 서비스 작업이 만연되어 있는 실태를 고려하면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또한 직장 내 왕따, 성추행, 과로사가 늘어나고 있어 일본 고용사회는 참담한 상황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985년에 노동자 파견제도가 일본에 도입된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독일, 프랑스 등 1970년에 파견제도가 도입된 나라에서는 세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두 번째, 해고 제한의 원칙 세 번째 기업을 넘어서는 노동조합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세 가지 여건이 모두 없었습니다. 기업 간 노동격차가 크고, 노동조합도 기업별 조직이 지배적이고 비정규노동자를 조직대상에서 제외시키고, 단체협약 확산제도도 없는 일본에서 파견노동법을 도입되었을 때 많은 폐해가 발생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파견법은 공공부문 노동자에 대한 단결억압법과 대조적으로 '뒷문으로 하는 단결억압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표하려 하지 않는 기업내 정사원 노동조합의 약점을 이용하여, 노동조합으로서의 정신을 훼손시키고 일본노동자들을 분절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파견법은 일본 노동조합운동을 분단시키고 왜곡한다는 점에서 자본이나 정부가 만들어낸 악성종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운동이 '파견노동 철폐'를 내세우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한 한국사회를 배우면서 일본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것이 제가 쉰 살이 넘어서 한국어를 배우고 여기까지 찾아 온 이유입니다.

질의 응답

질문자 과로사예비군 비율이라는 것은 파견노동자 대상으로 한 것입니까, 아니면 전체 노동자 대상입니까. 파견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과로사예비군 통계는 있습니까.

발제자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통계입니다. 파견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통계는 따로 없습니다. 파견노동자 중에서 과로사예비군의 비율을 추정하는 것은 조금 어렵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상담사례들은 많이 있습니다. 1985년 파견법을 만들었던 당시는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마음 편하게 파견노동을 하는 시기가 잠깐 있었는데, 요즈음 파견노동자들은 심각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질문자 교수님 설명을 들으면 기업별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지 않고, 조직된 노동자들 중심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렝고의 출범과 관련하여 이를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발제자 일본 노동조합의 단결에 대한 인식은 같은 사용자에 대한 것이고, 파견노동자처럼 회사가 다른 노동자들은 단결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민간방송노동조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방송국 정직원은 대부분 고학력자들이고, 이른바 유명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직원들은 조명이나 카메라를 다루는 노동자들과 같은 현장에서 일하지만 이들은 같은 노조에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방송국에서 조명이나 카메라를 다루는 노동자들은 파견노동자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민간방송노동조합이 파견에 대해서 유일하게 문제의식이 있고 활동하려고 하는 노동조합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산업에서는 노동조합이 파견노동에 대해서 문제제기도 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실태조차 파악이 되질 않고 있습니다.

저는 노조가 있고, 노동조건이 높은 업체에 노동조건이 좋지 않은 중소규모의 파견업체가 간접고용되는 방식이 자리잡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은행이나 증권회사 등 도심의 깨끗한 건물에서 일하는 현장에서, 경비나 단순 컴퓨터 업무 등 정규직들이 하지 않는 일들을 위해 파견노동자가 도입되어 있습니다.

질문자 일본의 비정규직이 증가추세이긴 하나 아직은 정규직의 비율이 60% 정도인데, 이것을 일본 노동시장을 특징지었던 종신고용이 무너졌다고 봐야하는 건지, 그렇지 않은 건지 대답해주십시오.

발제자 자료에는 정규고용이라고 적혀 있지만, 여기에는 하청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질문자 하청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발제자 전체 노동자의 10∼20%, 300백만에서 500백만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파견법 제정 이후 노동 행정은 위장도급을 단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중소, 영세업체에는 원래부터 종신고용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또 예전에 종신고용이 가능했던 곳에서도 전반적으로 종신고용은 무너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질문자 렝고가 비정규, 파견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자기 기반인 정규직마저 무너지면 렝고도 위기의식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상황은 어떻습니까.

발제자 렝고의 기반이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1996년 파견이 가능한 직종을 늘리는 파견법 개정이 있었는데 당시 렝고는 여기에 찬성했습니다. 저는 국회에서 사민당 대표로 반대의견을 진술했습니다만, 렝고는 조건부 찬성 입장이었습니다. '다양한 고용형태를 인정하자'는 것이 그 근거였습니다. 그런데 1999년 네거티브 리스트가 논의되었을 때는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 기반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에 전문위원회에서 반대했습니다. 그렇지만 전문위원회에서는 정부나 사용자측의 신자유주의적인 분위기가 지배적 이어서, 렝고가 반대했음에도 사용자와 공익위원의 찬성으로 개정된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1999년 파견법 개정 때는 파견이 자유화된 업무에 대해서 일년 제한을 두자는 규정이 렝고가 주장하여 도입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노동자가 파견노동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2003년에는 경영측이 일년 제한을 완화시키자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999년 이후 국회 전문위원회에서도 렝고의 의견을 무시하면서 악법이 그냥 통과되고 있습니다.

1995년 일본경제단체연합회(일경련)가 '고용 삼분화론'을 제안했습니다. 이걸 계기로 지배층은 노사화합분위기에서 노동배제적 입장으로 돌아섰습니다. 최근 일경련이 '사단법인 일본경제단체연합회'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원래 일경련이라는 것은 사용자측이 노동조합에 대응하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만 이제 대응의 필요성이 거의 없어져서 이를 없애고 새로운 단체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질문자 한국의 아르바이트는 근로계약서를 안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발제자 아르바이트와 관련된 노동상황은 한국과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학생들의 아르바이트는 고용으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법적인 근거가 없음에도 일본 노동부는 학생 아르바이트에 대해서 고용보험을 받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 아르바이트에 대한 명백한 통계가 없습니다.

질문자 최근 일본 파견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노조의 형태와 운영의 실태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발제자 일본 파견노동자의 수는 2백만명이 넘었습니다. 질문자께서는 UI젠센 사례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는 파견노동자가 스스로 조직을 만든 사례가 아니라 UI젠센이라는 노조가 파견노동자를 쓰고 있는 회사에 가서 경영자에게 그 파견노동자들을 자기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인정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상담 사례가 있었습니다. 오사카 치과대학에서는 접수창구 업무를 파견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들을 미조직 노동자라고 생각했고, 그분들도 자신들이 어느 노조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급여명세서를 보니 조합비가 공제되었습니다. 이들이 속한 파견업체에 UI젠센이 가서 '우리 소속 조합을 만들지 않으면 공산당이나 전노협 등 과격한 사람들이 와서 노조를 만들지도 모르겠다'고 하며 UI젠센 노조를 만들어서 유니온샵으로 모두 가입시킨 것입니다. 파견노동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합원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노조는 '전투적인 노조 예방노조'인 셈이죠. 실제 파견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은 일부 기업노조들 뿐입니다.

질문자 일률적으로 말하기 힘들겠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자들 사이 임금을 비롯한 근로조건의 차이는 어떠합니까.

발제자 나이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5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파견 같은 경우 대개 연봉 250만엔 정도를 받습니다. 컴퓨터 관련 30대 남성 파견노동자들은 연간 수입은 400백만엔 정도인데 이는 대기업 남성 정규직에 비교하면 절반 정도입니다. 그리고 파견노동자들의 경우 휴일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또 여성 파견노동자 같은 경우 한때 시간당 1400엔을 받기도 했는데 요즘은 1000엔도 안 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파견노동자들이 늘어나서 경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제일 큰 문제는 정규직이라면 있는 각종 수당이 없다는 것입니다.

질문자 어떤 자료에 따르면 파트타임이나 파견 노동에 대해서 일본의 독특한 노동시장 문화 때문에 특별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발제자 어떤 문화적 차이를 근거로 들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는 연간수입이 100만엔이나 130만엔 정도입니다.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는 연간수입이 130만엔이 넘으면 사회보험법(의료, 연금, 고용, 산재보험)에 따라서 세금을 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것을 스스로 자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문자 일본의 특수고용이 15%가량 된다고 하셨는데, 이는 굉장히 높은 수치인 것 같습니다. 특수고용의 노동권은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어떻습니까.

발제자 여러분이 알기 쉽게 특수고용이라는 말을 썼는데 일본에서는 '비고용'이라는 말을 씁니다. 계약상으로는 노동자이지만 사회보험 적용이 없는 개인사업주로 대우받는 사람들입니다. '야쿠르트'를 팔러 다니는 사람들의 경우 자신들은 노동자라고 생각하지만 일본 노동행정은 노동자로 다루지 않습니다.

질문자 일본에서는 파견법을 확대하고 있는 추세인 것 같은데, 파견법 폐지를 주장하는 선생님의 의견은 일본 사회에서 어느 정도 동의를 얻고 있습니까.

발제자 제가 주장하는 것은 한국의 진보세력이 주장하는 파견폐지론과 질이 다릅니다. 한국에서 파견법이 생길 때 노동조합이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노조가 문제시하지 않았고, 노동법 학자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국회 전문위원회에 공익위원이라고 들어가서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30년 전 노동법학계에서 저는 중도였다고 생각하는데 30년 동안 모두 우측으로 가서 주위에 남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파견법 폐지' 주장은 우선 문제의 본질을 분명히 해서 논의를 만들기 위한 것이 목표입니다. 폐지를 말하면 노동조합이나 노동법학계가 반응을 할텐데 저는 그 반응에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질문자 최근 독일의 '아젠다 2010' 등 노동을 유연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발제자 독일 같은 경우는 정규고용을 파괴하는 파견노동이 아니라고 봅니다. 독일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파견노동을 통해 30∼50%가 정규직으로 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규인력이었던 사람이 파견노동시장으로 내몰리면서 정규직이 파견노동화되는 것이 일본 상황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파견노동과 관련된 세 가지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일본 노동조합이 단체협약 확산적용에 대해 소극적인 것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강조하고 있는 것이 파견폐지와 동일대우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저는 낮은 수준의 파견노동자들 대우를 인상시켜서 동일대우를 만들자고 하는데, 일본 경영자들은 정규직의 수준을 깎아서 동일대우로 만들자고 하고 있어서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자기 노동조건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낮은 수준의 파견노동자 대우를 높여야 한다는 것을 각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자 전후 50%에 이르렀던 일본의 조직률은 현재 20% 정도인데, 또 그 내부를 보면 대기업은 조직률이 60% 이상이고 100명 미만 사업장은 거의 조직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직률 20%대가 무너지면 노동조합이 위기의식을 느낄 것 같은데 상황이 어떻습니까.

발제자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모든 노동자를 대표하려 하고 자기의 노동조건을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해야하는데 현재 일본의 총연맹인 렝고는 기업별 체계에서 정규직만 대표하고 정규직만을 위하는 노동조합들이 주류입니다. 렝고에 대한 평가는 어렵습니다. 1960년대 일본에도 기업별 노조 중에서도 전투적인 노조가 있긴 했습니다. 그 가운데 노동자 일부가 노사협조주의적으로 태도를 바꿨습니다. 그러한 부류가 현재 렝고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는 기업내 다수파 노조와 소수파 노조가 있었습니다. 1985년 국철투쟁 이후 1989년 렝고가 만들어졌는데, 이를 주도한 것이 투쟁하지 않는 다수파들이었습니다. 소수파는 1989년 당시 주요 세력들이 나이를 너무 많이 먹은 상태였습니다. 물론 렝고 안에도 양심적인 활동가도 있지만 현재 렝고 자체에 대한 평가는 어렵습니다.

질문자 1999년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파견법이 바뀐 이후 파견노동자들의 수나 상태는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그리고 현재 일본 정부는 파견노동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까.

발제자 파견법을 만든 이후 노동행정은 불법파견을 단속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법파견이 계속 됐는데 1999년 네거티브 방식이 만들어지고 2003년 이것이 시행된 이후에도 같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불법파견이 너무 확산되어 있기 때문에 네거티브 리스트를 통해서 제조업의 불법파견 일부를 인정하면 불법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노동법학자도 있습니다.

사회자
얼마 전 렝고 간부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한국의 공무원법과 관련해서 바짝 긴장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본의 공무원은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없기 때문에 한국의 공무원법이 훨씬 앞서 있다는 것입니다. 1950년대 이후 정체된 일본 노동운동이 반성해야할 부분이고, 한국 노동운동이 오히려 일본 노동운동을 선도하는 효과가 크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일본의 경황이 바로 우리의 경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은데, 우리가 적극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시사점을 줄 수 있는 토론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수고해주신 와키다 선생과 스즈키씨에게 박수를 보내며 포럼을 마감하도록 하겠습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