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은 2004년 2월3일 열린 회원조합 대표자회의에서 2004년도 공동 임투지침을 확정하였다. 지침에서는 다음과 같은 5대 목표를 설정하였다. 주40시간 노동시간 단축 및 일방적 구조조정 저지와 고용안정 확보, 비정규직 차별 철폐 및 보호입법 쟁취, 생활임금 확보를 위한 사회개혁(제도개선)투쟁과의 결합,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4·15 총선과의 결합, 모든 조직의 시기집중 공동투쟁 전개.
임단투 기조는 2003년도와 크게 차이가 없다. 단지 2004년도에는 주5일제 교섭이 병행된다는 점, 그리고 비정규직을 비롯한 취약계층 노동자를 위한 단협 지침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예년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총선 직후부터 공동 임단투를 시작할 것이며 예년처럼 6월에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6월을 총력 투쟁기간으로 설정하여 투쟁을 조직해나갈 방침이다.
임금교섭 환경 급변과 교섭여건 악화
임금교섭 환경은 그간 세 가지 측면에서 변화가 있었다. 첫째는 경제불안과 불확실성의 상존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추세로 인해 그리고 투기적 자본들의 농간으로 인해 어느 나라 경제든 불안과 불확실성이 본질적 속성으로 자리 잡았다. 경제에 대한 일국적 대응력도 약화되어 계획성을 갖기도 어렵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소비심리, 투자심리 등도 영향을 받아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임금교섭이 부정적 영향을 받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두 번째, 고실업 가능성이 상존하고 고용불안이 날로 가중되어 노동시장은 구매자 시장으로 변모하고, 노동자들은 고용을 더 중시하는 경향성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노총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산하노조의 41%는 고용과 임금을 같은 비중으로 보고 있고, 임금보다 고용을 더 중시하는 비중은 30% 가까이 된다. 이에 비해 고용보다는 임금을 더 중시하는 비중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의 의식이 임금보다는 고용을 중시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소득격차 또는 임금격차의 확대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격차, 중소기업과 대기업 노동자간 임금격차가 계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 그리고 기업별 중심의 노동운동이 지배적인 가운데 이런 확대 경향은 그대로 방치되어 왔다. 이러한 격차확대가 사회뿐만 아니라 경제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격차문제는 국민적 과제로서 노사정이 합심하여 해결해야 한다.
날로 심화되는 고질병, 임금격차 확대
경제위기 이후 급속하게 확대된 소득격차는 2003년 들어 더욱 확대되고 있다. 상위 20%에 속하는 가구의 평균 소득과 하위 20%에 속하는 가구의 평균소득의 비율을 보여주는 소득 5분위 배율은 5.16으로 전년도의 5.12보다 높은 배율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격차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임금소득 불평등도를 보면 상위 10%는 하위 10%에 비해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 2001년 5.2배, 2002년 5.5배, 2003년 5.6배로 격차가 점점 확대되고 있으며, OECD 국가 중 임금소득 불평등도가 가장 높은 미국(4.3배)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저임금 계층은 OECD 기준(상용직 평균임금의 2/3이하, 2003년 8월 기준 월 120만원)으로 전체 노동자의 절반인 722만명에 이르고, 2001년 46.9%, 2002년 47.5%, 2003년 50.0%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저임금 계층은 주로 여성과 비정규직 근로자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2002년 현재 저임금 계층은 상용직의 경우 7%에 그친 반면 임시직 및 일용직은 각각 36%, 48%에 달했고, 남성보다는 여성 임시직 일용직의 저임금 비중이 높다. 규모별 임금격차도 계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비정규직 임금, 정규직의 85% 이상 요구
임금수준에 관해서는 한국노총은 예년처럼 생계비를 근거로 요구안을 산출했다. 가구 규모별 생계비는 [표2]와 같다.
생계비를 완전 충족키 위해서는 21.7% 임금인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불능력의 현실과 산하조직의 의견을 고려하여 생계비 91%를 충족하는 수준에서 월고정임금총액(월정액임금 + 상여월할금)기준으로 209,255원, 10.7%를 요구하였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하노조들은 한국노총이 11%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할 것을 의견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편 비정규직과의 임금격차 완화를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확보를 목표로 격차가 큰 곳에서는 우선 정규직 임금의 85% 이상으로 끌어올리도록 하는 지침을 내렸다. 산하조직들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임금은 유사직무 정규직의 70% 정도로 잠정 집계되었다. 따라서 평균적으로 보면 비정규직의 임금을 12∼20% 정도 더 올리면 85%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종례처럼 전산업 평균정액임금의 50%를 요구하는 안을 확정했다. 한편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격차 완화를 위해서는 일자리만들기 사회협약을 근거로 하여 납품단가 현실화와 정치자금제공 근절을 제기해 나갈 것이다. 임금격차 완화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반드시 요구되는 국민적 과제로 노사관계 주체들의 합심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사용자측은 임금격차 완화를 위한 어떤 구체적 방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교섭에 응하지 말도록 지침을 내고 있다. 그리고 임금격차 완화를 기회로 오히려 대기업이나 정규직의 임금을 억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300인 이상 사업장 임금은 동결하고 300인 미만 사업장은 3.8%의 임금인상을 제시했는데, 이는 양대 노총이 근래 들어 요구율을 낮추는 것과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중앙노사간 임금가이드라인의 차이를 줄임으로써 임금교섭을 둘러싼 갈등의 완화가 가능한데 경총은 이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주5일제 쟁취와 취약노동자 보호강화
한국노총은 금년도 단협에서 주5일제와 취약계층 노동자 보호를 주요 목표로 내세웠다. 주5일제에 대해서는 이미 작년도에 노동조건 후퇴없는 순수 주5일제를 모든 산하노조들이 공동 임단투로 쟁취한다는 지침을 낸 바 있다. 산하조직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노총 조직의 70%가 노동조건 후퇴없는 순수 주5일제를 요구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일부 노조에서는 노동조건 후퇴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획득하고 있다. 그러나 법개정 내용대로 타결하는 곳들도 있어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각개격파 되거나 분산적으로 교섭하는 것을 최대한 피할 방침이며 적어도 6월의 피크기까지는 교섭을 진행시켜 노동자의 힘을 최대한 결집시킨 가운데 공동 임단투를 진행할 계획이다.
한편 금년도 단체협약 지침에서는 비정규직, 사내하청노동자, 장애인, 고령자, 이주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 보호를 위한 단협 요구를 제기한 바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운동 진영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노동운동이 정규직 노동운동, 귀족노동 운동 등으로 매도되고 있지만 실제 대부분의 노동조합들이 치열한 경쟁압력과 고용불안에 직면하여 조합원들의 권익을 지켜내는 것 자체가 험난한 과제가 되었다. 때문에 비조합원들과 서민대중에게 연대의 손길을 뻗치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다.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연대의식의 결여가 상당히 깊은 것이다. 물론 이것은 노동운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일반적 현상이다. 그러나 변명이 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이 지금까지처럼 연대의식을 발휘하지 못하면 정규직의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되어 고립화의 함정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고 진보적 사회운영의 추진력이 될 정치세력화도 몇 발자국 못나가게 된다. 아니 그 이전에 정규직 노동자 자신들의 이익도 지킬 수가 없게 된다.
노동의 인간화를 위한 단협 추진
비정규직과 실업자들을 매개로 한 노동시장의 압박은 결국 정규직 자신들의 노동조건 악화로 귀착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규직들은 스스로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도 차별철폐 투쟁을 전개하고 연대활동을 확대 강화해야 한다. 따라서 연대의식을 키워야한다는 자세부터 고취시키는 것이 중요한 전략지점이 될 것으로 본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지침을 낸 것이다.
또한 경쟁강화와 경영합리화로 날로 각박해지는 노동현장을 인간화시켜가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갈 방침이다. 이와 관련하여 작업장 수준의 노동자참여를 강화하고 작업장 감시체제를 일소시키기 위한 교섭방침을 수립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