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정부는 비정규직과 이 땅 모든 노동자를 절망으로 몰아넣는가. 정부가 9월10일 발표하고, 9월11일 입법예고한 정부의 비정규 관련 법안은 지금도 절박한 상태인 비정규직을 더욱 확산하게 될 '최악'의 안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는 비정규직 사용을 규제하는 방향의 법안 마련을 추진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정부안은 파견업종의 전면 확대, 임시계약직(기간제)의 자유로운 사용, 특수고용노동자 등 노동권 외면, 실효성 없는 차별해소 방안 등 이 땅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화하는 엄청난' 개악안을 내놓았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의 비정규관련 법안은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의 공약에 비추어도 그 방향이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또한 780만 비정규직의 기대를 절망으로 바꾸게 할 뿐만 아니라, 정규직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의 고용을 위협하여 고용체계와 노동시장을 뒤흔들 심각한 내용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비정규직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을 내겠다고 공언하고, 심지어 노동운동을 '대기업 정규직' 이기주의로 매도하면서 비정규직을 위해서 활동하라는 '훈계'까지 해대던 노무현 정부가 어떻게 이런 개악안을 이처럼 당당하게 낼 수 있는지 정말 놀라울 뿐이다.
비정규직, 마음껏 사용해라?
정부안은 그야말로 '최악'의 안이다.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는 비정규직 사용을 규제하여 줄여나가도 모자랄 판에 비정규직을 마음껏 사용하도록 풀어놓고 있다. 정부 법안이 시행된다면 이젠 거의 모든 기업이 임시계약직과 파견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비정규직이 '예외적'인 고용이 아니라, 정규직이 '예외적'인 고용형태가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전체 노동자의 일상적 고용불안의 심화, 노동권의 약화와 노동조합의 무력화가 급속하게 진행될 것이다.
① 파견업종 전면 확대로 비정규직 확산
일단 파견업종 전면확대는 가장 눈에 띄는 개악안이다. 이전 법에서 금지해왔던 파견법 도입으로 중간착취가 합법화되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수많은 파견노동자가 나타난 바 있다. 도급을 위장한 불법파견도 횡행하고 있다. 정부안은 이러한 파견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부 소수 업종을 제외하고 파견업종을 무제한으로 확대하는 안(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 보호법안을 마련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이처럼 명백한 개악안을 낼 수 있는지 이해 할 수 없다. 파견기간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여 파견업종 전면 확대와 함께 사용자의 파견노동자 사용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정부가 파견 남용방안이라고 제시한 "3년간 파견직 사용 후 3개월 동안 사용 금지" 이른바 휴지기는 전혀 남용방안이 아니다. 오히려 임시계약직(기간제)의 자유로운 사용과 연동하여 '파견직(3년)→임시계약직(3개월)→파견직(3년)' 형태의 비정규직의 순환적 계속 사용을 유도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파견노동자의 가장 큰 문제가 사용업체의 사용자 책임 회피에 따른 파견노동자 노동3권 박탈임에 비추어볼 때 사용사업주의 노동법상 책임 강화나, 불법파견 시 직접고용 간주조항 등이 빠진 것도 커다란 문제이다.
정부안은 심지어 노사정위원회 공익안보다도 훨씬 후퇴한 것이다. 이는 파견을 자유롭게 사용하자는 사용자의 요구만이 대폭 수용되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노사정위 공익안은 "26개 업종 허용 등 현행 방식을 유지하고 그 업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별도의 노사참여기구를 설치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② 비정규직 사용의 제도화·전면화
파견법 개악안 보다 광범위하고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 바로 기간제(임시계약직)와 관련된 안이다. 노동부는 3년의 기간제한 안, 즉 임시직을 3년까지 사용하도록 하고, 3년 초과된 경우 해고제한 규정을 적용하겠다는 안을 제출하고 있다. 이 안으로 입법이 된다면 대부분의 기업들은 3년 기간 이내의 임시계약직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임시계약직이 예외적인 고용이 아니라, 일반적이고 압도적인 고용형태가 될 것이다. 결국 정부안은 임시직의 남용을 규제하는 방안이 아니라 3년 기한의 임시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일반화함으로써 우리 고용시장을 비정규직 중심으로 재편하게 될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게 될 방안인 것이다.
정부안에는 비정규직 억제, 또는 남용 방지의 핵심인 임시직(기간제) 사용의 사유제한이 빠져있다. 사용자가 임시직 비정규 노동자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이 비정규직 확산과 남용의 직접적인 원인이고 따라서 비정규직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경우에만 임시직을 사용하도록 규정해야 함에도 결국 제외되었다.
정부는 3년 지난 임시계약직에 대해서 해고를 제한하겠다는 것을 남용규제 방안이라고 내세우고 있으나, 이 법 조항에 대해 임시계약직을 3년 이상 고용할 사업주는 거의 없을 것이다. 3년이 되기 전에 임시직을 계약 해지하거나, 다른 임시직으로의 대체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파견도 자유롭게 사용하므로 기업측에서는 파견과 임시직의 사용을 '적절하게' 운영하여 비정규직 사용을 일반화하게 될 것이다.
③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권 외면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해서는 노사정위원회 논의로 다시 넘겨 아예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는 형식상은 개인사업주이지만 실제로는 특정 사업주에 종속되어 이를 위해 노동을 제공하는 명백한 노동자이다. 또한 노동조합을 만들고 단체교섭까지 체결하고 있는 등 실제적으로 노동자로서의 자격과 권리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이런 절박한 요구를 노사정위 논의를 핑계로 완전히 외면하고 있다.
정부가 내부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유사근로자로서의 일부 권리 인정' 방안은 결국 노동법상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고, 유사한 형태의 단결권과 교섭권의 제한적 인정 방안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현재 활동을 부정하고 권리를 박탈하는 방안이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권 부정은 직접적인 노동권 배제이지만, 임시직과 파견직의 일반화는 바로 노동권의 형해화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임시적인 고용에서 계속 고용의 칼자루는 자본측이 일방적으로 가지게 된다. 따라서 기업의 강력한 반노조정책 속에서 계약해지와 반복사용 거부 등을 무기로 노동조합 결성과 활동은 크게 제한받게 될 것이고, 이는 노동권의 심각한 약화로 귀결될 것이다.
④ 동일노동 동일임금 명문화 거부
차별해소와 관련해서도 핵심 사항인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명문화를 결국 수용하지 않았다. 다수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정규직과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단지 비정규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임금차별을 받고 있다. 정부는 두루뭉실한 차별금지원칙을 두고 실효성이 불분명한 차별시정기구의 도입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동일노동 동일임금 규정이 명문화되지 않는다면 차별을 판단할 기준과 근거가 없고 항상 약자인 비정규노동자들이 노동위원회 내의 구제기구에서 제대로 된 차별인정과 시정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나 부당노동행위에 대하여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정부안의 실효성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개악안을 철회하고 노동계와 협의 해야
심각한 비정규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는 비정규직 사용의 억제와, 부당한 차별의 철폐, 권리보장의 방향으로 법안이 추진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존재자체가 고용불안정성을 가지고 있는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확산의 문제이다. 기업측은 비정규직을 고용할만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경우에만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건비 삭감 해고용이 법률상 사용자책임 회피를 목적으로 비정규직을 무분별하게 확산시키고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 고용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는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경우에만 비정규직을 사용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화물지입차 기사,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 학습지교사, 보험모집인, 텔레마케터 등 이른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실제로는 한 기업에 종속되어 노동의 대가를 받고 있는 실질적인 노동자들임에도 사용자가 노동법 상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직접 고용하는 형태를 취하지 않고 노동자로 하여금 사업자등록을 하게 하고, 도급, 위탁 등의 형식으로 노동력을 이용함에 따라 비정규직으로서의 고용불안은 물론 아예 근로기준법과 노동관련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여 근로기준법과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한다.
시행 6년 동안 중간착취의 고착화, 불법파견과 이에 따른 파견노동자 고용불안과 차별, 무권리를 재생산해온 파견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또한 차별해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명문화가 절실하다.
정부안을 보며 배신감과 분노를 주체할 수 없다. 정부와 여당이 정말 이를 그대로 추진한다면 현 정부는 전체 노동자의 삶을 비정규직으로 몰아넣은 주역으로, 빈부격차와 사회불평등을 심화시킨 장본인으로 역사적인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의 비정규 개악안을 철회하고 노동계와의 협의와 토론을 거쳐 제대로 된 비정규 관련 법안을 낼 것을 마지막으로 통고한다.
정부가 얼마나 엄청난 일을 벌이고 있는지 각성하지 않으면 그 때는 준엄한 심판뿐이다. 김영삼 정부의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 때 노동계 총파업과 국민적 저항이 떠오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