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운동사 첫머리에 기록되는 전국노동조합전국평의회의 9월 총파업은 1946년 9월13일 서울의 철도국 경성공장의 투쟁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쌀을 달라”며 생존권 투쟁으로 해방 후 노동운동의 선봉에 섰던 철도노조가 최근에 들어 노조의 60년 역사 최대의 격변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1994년 연대파업, 2001년 철도노조 사상 첫 위원장 직선선거, 두 번의 총파업, 상급단체 변경 등의 변화를 거치며 20대 집행부가 올해 3월에, 서울지방본부는 5월에 출범했다. 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 소속 조합원은 7,000여명이고, 전임자는 22명이다. 서울 및 경기 지역을 관할하고 있고, 활동의 편의를 위해 5개 지구(청량리·성북, 수색, 서울·용산, 수원, 영등포)로 나뉘어 있다. 교육국에는 2명의 국장들이 전임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조합원들이 희망했던 ‘철도노동운동사’ 교육
서울지방본부는 임기 내 집행 사업을 계획하기 위해 ‘서울지방본부 교육사업 계획 수립을 위한 설문조사’를 통해 지부 간부들의 교육 요구를 분석하여 그 결과를 바탕으로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철도노조는 교육위원회를 구성하여 교육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서울지방본부에도 3명의 교육위원회 위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서울지방본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교육은 크게 간부들의 ‘실무교육’, 조합원의 ‘현장교육’, 간부와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소양교육’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소양교육이다. 철도노동운동사를 기획한 서울지방본부 교육위원회 김병구 위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소양교육은 설문조사 결과 가장 듣고 싶은 강좌로 뽑힌 ‘철도노동운동사’를 첫 번째 주제로 잡아 올 10월부터 3개 지구에서 매주 2시간 30분씩 5주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한 강좌는 1시간은 철도노조와 관련된 비디오 상영, 1시간 30분은 강의로 이루어졌다.
************************************************************************************* 강좌 1강 : 체제 전환기의 철도노동자의 과제와 전망 2강 : 철도노동자의 삶 3강 : 철도노동자의 88년 7·26 기관사 파업에서 94년 전지협 파업까지의 투쟁 4강 : 철도 민주노조 건설사 - 94년 파업이후부터 2000년 직선제 공투본 투쟁 5강 : 철도 민주노조 건설 - 1기 집행부의 역사적 과제 *************************************************************************************
1강과 2강은 외부 전문가들이 강의를 진행하며, 3강부터는 교육위원들이 담당을 한다. 이는 교육위원들이 15년 이상 철도노조에서 활동을 했던 경험과 체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바로 최근의 이야기를 운동사라는 이름으로 강의하기에는 부담스러울 듯 하다.
“교육위원회에 안건을 냈을 때는 오히려 쉽게 통과가 됐습니다. ‘그래, 하자’ 하는 분위기였죠. 그런데 지부장 회의에서 반대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하나는 이제 특별단체협상을 앞두고 조직력을 총동원하는 시기인데, 교육 내용이 시기와 맞지 않다라는 의견이었고, 다른 하나는 평가가 안 된 역사를 교육하면 조합이 분열할 수 있지 않느냐 라는 우려였습니다. 그래서 강의내용을 준비하면서 많은 부담이 됐지요.”
자기 노조 이야기를, 그것도 바로 몇 년 전의 이야기를 교육주제로 삼았다면 당연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교육을 기획한 의도는 무엇일까?
“우선 철도노조가 2004년 특단협을 앞두고 우리의 역사를 한번 되돌아보자는 겁니다. 긴 어용의 시간이 있었지만, 우리가 단결하고 강고한 투쟁을 했다는 역사를 되돌아보며 다시 한번 정신무장을 해보자는 거지요. 교육 소감 중에도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싸웠구나, 참 잘했구나,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또 하나는 우리의 옛 역사를 복원하자는 겁니다. 지금 철도노조 연혁을 보면 1947년 대한노총 시대부터 시작을 합니다. 일제 시대, 초창기 때부터 철도의 역사를 복원하고 싶습니다.”
 [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의 월례간부교육 - 출처: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
교육 평가 이뤄지지 못하는 아쉬움
여러 곡절들을 겪으면서 노동운동사 강좌가 결국에는 시작되었고, 마무리되고 있다. 물론 준비한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있다. 교육 참가자들이 전날 야근을 하고 강의에 참가하는지라 매우 피곤하고, 교육 시간상 토론시간이나 질의응답 시간을 배치하지 못해서 강의나 내용에 대한 평가가 모아지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강좌마다 15명에서 30명의 간부, 조합원들이 참석한다.
“우리 이야기니까 재밌어 해요. 비디오 상영할 때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아는 사람이거든요. 현장의 바로 내 이야기니까 친숙하면서도 신선한 거지요. 또 강의가 다루는 시대가 최근이니까 살아있는 사람들 이야기잖아요. 과거에 어용노조에서 활동했던 사람들도 강좌에 오는데, 솔직히 쑥스럽죠. 그래도 그 자체가 우리 노조의 역사이고 서로의 삶이니까, 이해하고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또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 좀더 구체적으로 철도 노동자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그렇게 되니까 처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강의도 내 관점이 아니라 조합원의 성장, 발전이라는 조합원의 관점에서 살피게 되더라구요. 이런 강좌가 계속되면 분파와 정파를 뛰어넘어 조합원의 입장에서 역사를 볼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강좌를 기획하고 시행하는 과정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교육위원회에서 기획안을 내면 전체 회의를 통해 사업으로 확정되고 교육국에서 집행과 조직을 맡는다. 교육이 시작되면 각자의 역할을 나눠 강의를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교육위원회 자체가 2001년부터 시행되어 아직 확고한 틀을 갖고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교육위원들이 직접 강의를 해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비슷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고, 강의 구조와 일정은 토론을 통해 확정했지만, 각자의 강의안에 대해선 합의를 하지 못했지요. 이번 강좌가 끝나면 그 성과를 이어받기 위해 평가회의를 좀 심도 깊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교육을 통해 도약의 발판을 만든다
이밖에도 교육 프로그램의 전국적인 확산, 강의 내 토론시간의 배치, 참가자 조직방법 등 여러 가지로 고민하며 평가할 것들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철도노동운동사 강좌가 가지는 미덕은 숨가쁘게 조합 활동을 한 간부들에게 한 발짝 물러서서 우리 노조를 되돌아보고 나의 활동을 성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철도노조 위원장을 직선제로 뽑는 투쟁을 하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민영화 반대 싸움도 벌써 3~4년에 접어들고 있지요. 참 오래 걸렸습니다. 이런 과정을 살펴보면서 장기적인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하다, 또 그것을 동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는 건설교통부, 청와대가 최종 투쟁의 대상이 되더라구요. 공공기관의 특징이기도 한데, 투쟁을 겪으면서 조합원과 간부들의 의식이 급격히 변합니다. 권력의 본질을 알게 되면서 정치의식도 성숙해 나가는 거지요. 또 우리가 많이 죽었어요. 산업재해 때문에, 노동운동탄압 때문에 참 많이 죽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철도노조 안에는 전투적인 기운들이 많이 남아있어요, 조합원들을 만나면 역동적이다, 꿈틀거린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직 그 힘의 근원을 찾지는 못했지만, 이번 강좌를 통해 확인한 겁니다”
철도노동운동사는 교육 강좌이지만, 그 과정은 조합의 조직원들이 자신의 활동, 경험을 되돌아보고, 서로 나누며, 평가하는 시간의 의미가 더 강하다. 잘한 싸움이든지, 패배한 투쟁이든지, 우리 노조의 역사를 배우며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과거를 발판으로 삼아 더 높게 도약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바로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노동운동사가 노동자에게 꼭 필요한 이유를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는 사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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