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시대의 노동운동, 갈 길이 멀다

노동사회

양극화 시대의 노동운동, 갈 길이 멀다

admin 0 3,208 2013.05.12 06:11

민주노총은 상반기 투쟁을 마무리하고 하반기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2월 신임 집행부가 출범한 이후 탄핵정국, 총선, 임단협, 파병반대 투쟁을 거쳤으며 8월 통일투쟁을 마무리하고 하반기 투쟁에 착수하고 있다. 상반기 투쟁에서 민주노총은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으나 아쉬움과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여기에서는 임단협을 중심으로 상반기 투쟁을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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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총력투쟁 2차 결의대회가 열린 지난 6월 29일 광화문 수도권결의대회   - 출처: 노동과세계 ]

산별교섭 제도화의 진전

2004년 상반기 투쟁에서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산별교섭이다. 병원, 금속산업에서 사용자 단체 구성과 산별협약이 임금과 노동조건을 규율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산별교섭 제도화가 진전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보건의료노동조합에서 사용자 단체 구성을 둘러싼 진통을 거듭한 끝에 핵심쟁점에 대한 노사합의를 이끌어 내었으며 금속산업에서도 최저임금, 손배가압류 등 중요 쟁점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산별협약을 둘러싼 논란이 남아 있으며 금속의 경우 핵심사업장이 포괄되지 못하는 등 극복하여야 할 과제도 적지 않게 드러났다.

산별교섭 확보는 민주노총의 핵심적인 과제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40% 정도가 산별노조에 소속되어 있으나 산별교섭은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2004년 금속과 보건의 산별교섭 성과는 이런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노동운동 내외에서 산별교섭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을 깨고 주요 산업에서 산별교섭이 확보되었다. 이는 특히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노동조합의 현장 조직력이 위협받고 있으며 사용자들이 산별교섭을 기피하고 있는 현실의 어려움을 딛고 쟁취한 것이다. 2004년 산별교섭의 성과를 올바르게 평가하고 보완하여야 할 부분을 점검하여, 2005년 산별교섭을 준비하는 것이 민주노총의 과제로 남아 있다.

구체화된 비정규직 요구

다음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꼽을 수 있다. 보건과 금속에서 산업별 최저임금이 타결되었으며 일부 자동차와 병원 등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개선을 위한 교섭이 이루어지는 등 2004년 임단협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쟁점화 되었다. 정규직과의 차별철폐, 균등 대우, 비정규직 임금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사용제한 등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부분적인 해결방안이 임단협에서 제시되었다. 2004년 임단협 투쟁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구호수준을 넘어서 임단협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다뤄지는데 성공한 경우가 나타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요구와 투쟁이 현장에서 조직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앙단위의 제도개선 투쟁과 함께 현장에서 임단협 투쟁에서 비정규직 관련사항을 포함하도록 한 민주노총의 지침이 일정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규직 노동조합의 임단협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전면적으로 제기되기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는 실정이며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현장의 임단협으로 해결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권리보장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산별단위의 교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다루는 것은 물론이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 투쟁이 전개되어야 하며, 이는 민주노총이 당면하고 있는 최대 과제이다.

하반기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노동권 확보를 위한 제도개선 투쟁에 집중할 계획이다. 아울러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구조를 차단하고 차별을 낳고 있는 경제구조의 양극화와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 분배를 강조하는 경제정책과 조세개혁, 사회보장 획기적인 확대 등을 추진할 것이다. 또한 하청 및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 원·하청간의 불공정 거래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어야 하며 중소사업장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을 현실화시키고 정부정책을 대기업 재벌 중심의 경제정책에서 탈피하도록 하는 민주노총의 투쟁과 교섭이 배치되어야 한다. 한편, 올해 최저임금투쟁은 민주노총 조합원이 조직적으로 결합하면서 최저임금 투쟁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고 평가된다.

본래 취지 실종된 노동시간 단축

2004년 임단협에서 최대의 쟁점은 노동시간단축이었다. 10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부문, 금융보험업에서 주5일제가 도입되면서 본격적인 주5일제 시대가 시작되었다. 병원과 지하철 등 공공부문에서 노동시간단축을 둘러싼 대규모 투쟁이 벌어졌으나 상당수 사업장에서 주5일제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노사간의 갈등은 예상보다 적었다. 그러나 병원과 지하철 등에서 정부와 사용자들이 노동시간단축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았음이 확인되었다.

노동시간단축에 따른 인력충원이 불가피한 사업장에서 인력충원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 더욱이 자본은 노동시간단축을 단순히 비용증가로만 접근하고 있어 노동시간단축의 근본취지가 퇴색되고 있다. 노동시간단축 교섭에서 "주5일제냐 주40시간제이냐"가 쟁점이 되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병원노사교섭에서 병원 사용자들은 평일 하루 7시간을 일하고 토요일에 출근하여 일하는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줄이겠다는 안을 들고 나왔다. 주6일 40시간 노동을 한다면 노동시간단축의 본래적인 취지가 실종된다.

뿐만 아니라 노동시간단축은 실노동시간 단축이 되어야 함에도 실노동시간 단축으로 연결되지 못하였다. 노동시간단축에도 불구하고 실노동시간이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가 많다. 노동시간단축이 분배교섭으로 전락하면서 실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나누기와 여가의 확대로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취지가 무색해진 측면이 있다.

또한 노동시간단축이 대기업노동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비정규직과 중소사업장에서는 노동시간단축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자간의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투쟁과 교섭이 배치되지 못하였다. 노동시간단축과 관련한 법으로 인하여 한계가 있지만 노동시간단축 투쟁전선을 전국적으로 구축하여 적용시기와 실노동시간 단축, 교대제 변화 등을 크게 쟁점화시키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분배교섭을 넘어서, 사회공헌기금 요구

민주노총이 2004년 임단협에서 제기한 노동연대기금(사회공헌기금)은 노동운동이 분배교섭을 넘어서는 새로운 제안을 하였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04년 임단협에서 현대자동차의 울산지역발전기금, 완성차의 자동차 발전기금, 병원에서 보건연대기금을 조성하기로 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된다.

비정규직의 확산과 노동자 내부의 차별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자기 역할을 위한 기금조성이 민주노총에서 임단협 지침으로 결정되었으나 결정시기가 너무 늦게 이루어지는 등의 한계로 2004년은 시범적인 모범을 만들어 내고 2005년 이후에 본격적인 기금 조성을 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보건의료와 자동차에서 나름대로 산업의 특성에 맞게 기금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사회적 쟁점화에 성공하였다.

차별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연대에 노동이 의미 있는 제안을 하였다는 평가도 있지만 연대기금에 대한 반대입장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비정규직과 차별문제는 정부와 자본이 만들어 낸 결과이기 때문에 제도를 개혁하고 정부의 정책을 변경하여야 하는 문제이다. 정권과 자본에 대해 이러한 요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 한편에서 노동자들 스스로 차별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노동연대기금은 의미가 있으며 노동이 조성하는 기금의 규모에 따라서 향후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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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인원충원을 요구했던 궤도연대의 파업은 고임금 '귀족노조'의 이기적 파업이라는 언론의 덧씌우기 속에서 무력하게 3일만에 끝나고 말았다. 21일 새벽4시 지축차량기지에 집결한 궤도공투본 조합원들  - 출처: 매일노동뉴스 ]


 

사회적 명분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

최근 정부는 노사자율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현안 사업장에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노사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하철 등 몇몇 사업장에 직권중재가 발동되고 LG 칼텍스에 경찰력을 투입하는 등 정부는 여전히 구시대적인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한편에서는 구시대의 유물인 직권중재를 적용하여 노사자율에 의한 교섭을 봉쇄하고 노사정간의 대화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또한 정부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노동조합 내부 문제에 개입하려는 듯한 발언으로 노정간의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과의 대화를 언급하고 있는 정부의 진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용자 또한 당면한 노사관계를 스스로 해결하려하기 보다는 직권중재와 정부의 강경한 노동정책에 의지하려는 태도를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 몇몇 사업장에서 사용자측의 의도가 관철된 것을 빌미로 노동조합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2004년 임단협 투쟁 과정에 일부 노동조합은 탄압에 맞설 충분한 준비 부족과 효과적인 전술구사에 실패하면서 투쟁을 중단하기도 하였다. 경제 양극화와 내수의 심각한 불황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본과 여론의 공세를 헤치며 투쟁하여야 하는 노동조합으로서는 어느 때보다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였으며 민주노총과 연맹과의 긴밀한 전술 공유가 요구되었다. 노사자율의 분위기가 확대될수록 노동조합의 투쟁은 사회적인 명분과 철저한 준비, 그리고 효과적인 전술을 갖추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갈 길이 멀다

2004년 상반기 임단협 투쟁은 산별교섭, 비정규직, 노동연대기금의 쟁점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우리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비정규직 문제에 정규직 노동조합들이 과거보다는 전향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04년 민주노총의 상반기 임단협에서 성과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우리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여야 하는 과제와는 여전히 먼 거리에 있다. 민주노총은 노동운동의 성과를 계승 발전시키면서 내부 혁신으로 민주노조운동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변화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투쟁과 교섭전술을 적극적으로 동원하여 2004년 하반기와 2005년을 준비하여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