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의 창의성 인정하지 않으면 자활사업성공은 어렵다

노동사회

민간의 창의성 인정하지 않으면 자활사업성공은 어렵다

admin 0 4,256 2013.05.12 06:02

자활후견기관은 정부가 97년 IMF로 인한 대량실업사태, 불안정한 고용의 확대, 급격한 구조조정, 만성실업의 증가 및 빈곤의 심화, 빈부격차의 확대 등의 문제 해결책 중 하나로 빈민지역에서 시험되고 있던 "협동조합 방식의 생산자 공동체운동"을 제도화하면서 생겨났다. 1996년 5개 자활지원센터의 시범운영으로 시작하여,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과 함께 급속히 증가하여 2004년 8월 현재 232개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시민사회단체, 종교법인, 학교법인 등에서 위탁받아 저소득층 무료간병, 청소, 저소득층 무료집수리, 폐자원 재활용, 음식물재활용, 외식 등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협동조합 방식의 생산자 공동체운동

그러나 민간의 창의성과 유연성에 정부의 재정적, 제도적 지원이 결합되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 던 처음의 희망은 제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정부의 정책변화들을 지켜보면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또한 이번 복지부의 행정조치 계획에 나타난 정부의 실업·빈곤정책에 대한 정책부재 및 방향설정의 혼선과 오류에 대해 자활후견기관 노동자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지난 7월23일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감사원의 재무감사결과에 따른 자활후견기관 조치계획」이라는 문서가 사전공지 없이 게시되었다. 감사원은 3월23일부터 4월3일까지 보건복지부 재무감사를 실시한 결과 중 하나로 기관효율성이 떨어지는 기관에 대해 행정조치를 취할 것을 통보하였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15개의 후견기관을 지정을 취소하거나 통폐합하고 11개 기관에 대해 주의 및 경고 조치를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감사원과 복지부의 지적사항과 그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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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부 민관대학 부족과 안일한 탁상행정은 자활인들의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출처: 자활노조 ]

감사원의 탁상행정이 자활사업 망친다

자활후견기관은 정부(중앙정부/시/군/구)로부터 일 년 예산으로 8천만원∼1억5천만원의 예산을 지원 받고 있다. 이 예산은 실무자 인건비와 기관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비용, 사무실 임대료, 세금 및 사무비용 및 자활공동체 지원비용, 교육비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것을 기관운영비라고 한다. 또한 후견기관 역할 중의 하나인 자활근로사업의 수행을 위하여 지자체(군/구)와의 계약을 통해 예산을 확보하여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예산은 지자체에서 기관운영비와는 별도로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따라서 자활사업에 의지가 있는 지자체는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여 후견기관에 지급하지만, 그렇지 않은 지자체는 후견기관에서 필요하다고 신청한 예산을 반 이상 줄여 지급하기도 한다. 이 예산은 자활근로사업에 참여하시는 주민들의 급여와 사업단 홍보비, 교육비, 회의비 등으로 사용되는데, 이 비용을 감사원은 '목적사업비'라고 표현하였다.

감사원의 의견에 의하면 기관운영비를 자활근로사업비(목적사업비)보다 많이 쓴 것이 문제라는 것인데, 자활근로사업비(목적사업비)는 후견기관에서 그 액수를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고 적음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돈을 주지 않은 지자체를 문책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사원과 복지부는 후견기관에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장에서는 서로가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때 공고해지는 민과 관의 협력관계가 깨졌음을, 나아가 관이 민을 통제하려 함을 확연히 알게 되었다.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은 지자체와 그러한 불량 지자체의 책임을 묻지 않는 복지부에 대해서는 어떠한 조처를 취해야 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자활공동체를 3년 간 미구성한 기관은 사업을 하지 않은 기관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보건복지부 자활사업 지침을 보면 후견기관 사업으로 △자활의욕 고취를 위한 교육, △자활을 위한 정보제공·상담·직업교육 및 취업알선, △생업을 위한 자금융자 알선, △자영창업 지원 및 기술·경영지도, △자활공동체의 설립·운영지원, △기타 자활을 위한 각종 사업 여섯 가지를 명시하고 있다.

자활후견기관의 사업 중 자활공동체의 설립 및 운영지원은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후견기관은 자활공동체 지원사업 뿐 아니라 사회적 일자리형 자활근로사업(복지간병, 집수리, 폐자원, 음식물 재활용, 장애통합교육보조원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 등을 활발히 벌여왔고, 모든 자활사업의 목적이 '자활공동체 설립'이 아니라 참여주민의 욕구와 능력에 따라 다양하게 마련되어야 함을 주장해 왔다. 즉 모든 자활사업의 목표가 '자활공동체의 설립'은 아닌 것이다. 복지부 역시 이러한 부분을 인정하여 입장의 변화를 보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감사결과 "자활공동체를 3년 동안 구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후견기관 지정을 취소하겠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자활공동체의 구성에 대해서도 현장의 노동자들은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자활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동체원의 수입이 안정적으로 보장될 만큼의 매출이 있어야 하고 이는 기술력이나 영업력, 자본력 등이 높지 않은 주민들이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민간기업들의 로비를 뚫어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 개선방안들은 하나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정해진 기한 안에 공동체 설립 실적을 요구하는 정부는 과연 자활사업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감사원과 복지부는 후견기관의 다른 사업과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나 인정없이 "3년 간 자활공동체를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후견기관이 그 동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며 지정을 취소하겠다고 하는 식으로 탁상행정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자활사업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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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린트토너 작업을 하고 있는 자활노동자들 ]

효율성과 경쟁의 잣대 들이대는 정부에 맞서

지난 7월23일 공개된 조치계획은 정부가 사회안전망인 사회복지, 실업정책에조차 실적 중심, 경쟁논리를 도입하고자 하는 시발점이다. 복지부는 2003년에 후견기관 평가를 통해 우수기관을 선정하여 3천만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하였고 (대부분의 기관은 이러한 조치가 후견기관간의 연대를 저해하는 것으로 보고 인센티브를 거부하였다), 올해는 효율성과 실적이 없는 기관은 아예 운영을 중단시키겠다는 발상을 한 것이며, 이를 매년 지속하겠다는 어이없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행정조치 철회를 위해 노동조합은 해당기관(26개) 투쟁본부, 협회 비상대책위원회와 공동으로 투쟁을 진행하였다. 7월30일 감사원 앞 집회를 시작으로 하여, 복지부 앞 집회, 주민교육, 노숙투쟁, 삭발식, 단식농성, 차량시위, 거리 선전전, 종묘 집회,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의 구성 등 실무자 중심에서 참여 주민과 함께 하는 집회로, 전국의 조합원과 실무자들로 확대되는 투쟁으로, 자활의 문제가 아닌 빈곤과 실업의 문제로 이슈화시키는 투쟁을 진행하였다. 8월 초 협회 비상대책위원회가 본격 가동됨에 따라 노동조합은 협회와 함께 복지부를 압박하면서 협상진행과정을 이끌었고, 3차례에 걸친 복지부와의 협상결과 8월 말로 예정되어 있던 지정취소 계획을 철회시켜내었다.

복지부와의 협상결과는 △3년 간 자활공동체를 미구성한 기관에 대해서는 2004년 말까지 기간을 유예하고 제도개선 노력을 병행하는 것으로 한다 △목적사업비가 부족하여 지정취소 대상이 된 기관에 대해서는 2005년 전면 시행되는 규모별 지원과 연계하는 것으로 하며 징벌적 성격의 예산삭감 입장은 철회한다 △목적사업비를 적게 배정한 지자체에 대해서 경고, 주의조치를 내린다 △복지부 자활지원과 과장이 현 사태와 관련하여 왜곡한 부분이 있으며 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것 등이었다.

올바른 자활정책 수립을 위한 투쟁

이번 투쟁을 통해 자활현장에서는 자활사업에서의 원칙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다시 세워내는 과정을 투쟁 속에서 겪었으며, 서로의 연대가 가지는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실무자들만의 노동조합이 아니라 주민과 함께 할 때만이 서로 성장하고 승리할 수 있음을 경험하였으며, 내부 안에서의 열띤 토론과 고민뿐만 아니라 동시에 시민사회단체를 움직여내고 자활의 중요성과 방향에 대한 목소리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고, 앞으로의 과제를 풀어 가는 것이 승리까지의 과정보다 더욱 길고 힘들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민간의 창의성과 유연성이 보장되도록 지원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오히려 민간기관을 실적과 성과로 옥죄어 오는 현실, 정부의 빈곤관련 예산 편성책임을 민간에 전가하여 그 기관 실무자와 주민의 노동할 권리를 빼앗는 현실을 넘어서고 우리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을 지원하는 자활정책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투쟁을 안과 밖에서 더욱 힘있게 전개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