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회 아테네올림픽이 지난 8월29일로 끝났다. 이번 올림픽은 고대올림픽의 발상지며 제1회 근대올림픽의 개최지인 그리스에서 열렸기에 더 큰 의의가 있었다. 하지만 흔히 ‘평화의 제전’으로 불리는 올림픽은 1세기를 넘는 역사 속에서 갈수록 ‘평화’보다는 국가나 민족 간에 스포츠를 통한 ‘대리전’의 성격을 지니게 된 것이 사실이다. 올림픽의 다양한 뒷이야기를 모아보았다.
올림픽 유치경쟁과 민주주의
이번 올림픽 개최지 아테네의 시민들은 ‘코카콜라’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지고 있어 올림픽의 단골파트너인 이 음료회사는 이번 올림픽에서 다른 어느 대회보다 소극적으로 홍보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는 아테네가 1996년에 개최지를 억울하게 빼앗겼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미국은 남부의 중심도시인 애틀랜타에서 1984년 L.A. ‘반쪽올림픽’ 개최 12년 만에 명예회복을 위한 올림픽을 열었다.
그런데 그 애틀랜타가 바로 코카콜라의 본사가 있는 도시이다. 따라서 지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유치와 운영에 물심양면으로 열심히 후원을 했던 코카콜라는 아테네 올림픽에서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코카콜라는 경기장 주변이나 야외의 공식행사장이 아닌 아테네 지하철을 중심으로 한 홍보에 열중해야 했다고 한다.
1988년 24회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의 군사정권은 ‘88올림픽’ 유치가 실패할 경우 입을 손실을 이야기하며 국민에게 압박을 가했다. 특히 개최지가 결정되기 전부터, 1992년은 유치경쟁이 더욱 치열할 것이고 1996년은 근대올림픽 1백년을 기념해 아테네에서 개최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면 21세기에나 겨우 도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그런데 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후 한국의 군사정권은 국제여론으로 인해 민주화 운동에 대해 계엄령 등 ‘초강수’를 쓰기 힘든 처지가 됐다. 실제 올림픽기간에는 미국 선수단의 오만과 잇따른 사고로 정서적인 ‘반미’의 단초를 제공했고 국민들은 동구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세계를 보는 시야를 넓이는 계기가 됐다. 이후 북한이 이에 맞대응 하는 ‘국제청년축전’까지 여는 바람에 ‘임수경 방북’ 등 남북관계 변화라는 군사정권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파급효과까지 이어졌다. 현재 세계의 이목은 ‘천안문사태’ 이후 개발독재를 강건하게 이어온 다음 번 하계올림픽 개최지인 중국의 베이징이 2008년 어떤 변화를 경험할지 주목하고 있다.
되살아난 ‘야외 수영’의 전통?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성공적으로 새로운 경기장들을 마련하겠다던 그리스 정부의 장담은 천장이 오픈 된 ‘첨단’ 수영장으로 인해 무너졌다. 이미 2~3년 전 그리스의 올림픽 준비가 너무 부실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한국이 다시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도 오갔다고 한다. 원래 아테네 수영장 설계는 강렬한 지중해의 햇볕을 천장이 막아주도록 한 것이었지만 건설이 점점 늦어지더니, 이번 올림픽에서는 결국 천장 공사를 마감하지 못하고 뜨거운 기온과 강한 햇볕에 개방된 상태에서 ‘야외경기’를 치러야 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선수는 시합 전후 대기 도중에 졸도하는 상태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선수들의 고생은 초기 올림픽 선수들에 비하면 양반으로 볼 수도 있다. 같은 아테네에서 열린 1회 대회에서 선수들은 바다에서 시합을 해야 했고 상어들의 공격에도 각자가 대비를 해야 했다. 2회 대회였던 파리 올림픽 때도 세느 강에서 경기가 열려 선수들은 유람선을 피해가며 경기를 해야 했다. 그리고 한편, 지난 1976년에 올림픽을 개최한 캐나다 몬트리올은 프랑스계 캐나다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보여주려 했으나 당시 무리한 투자로 인한 재정적자를 아직도 감당하지 못해 휘청거리고 있다.
출전을 위해 국적을 바꾼 선수들故 손기정 선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국기를 달고 출전하지 못한 비운의 영웅으로 올림픽 역사에 기록되고 있고 서구에서 만든 여러 스포츠 다큐멘터리에서도 그의 슬픔에 찬 질주가 언급이 되곤 한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자기 의지에 의한 ‘국적이동’이 심하게 나타났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서 훈련을 한 나라의 국기를 가슴에 달고 출전하지 못한 사연의 대부분은 ‘돈’과 ‘출전기회’ 때문으로 나눠진다.
돈 때문에 여권을 바꾼 선수들은 주로 아프리카 케냐 등 중·장거리 육상강국 선수들로, 오일달러의 여유가 있는 카타르 등 중동국가들에 매달 1천에서 7백 달러 정도의 평생 보수와 메달 획득 시 별도의 성공보수를 받기로 하고 유니폼의 국기를 바꿔 달았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성적이 크게 돋보인 선수는 드문 편이었다.
출전기회로 인한 국적변경은 특히, 개최국 그리스에서 ‘작품’이 만들어졌다. 국내에 변변한 야구문화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개최국이라 자동 진출한 야구 본선진출에 대비해 북미지역에 퍼져있는 그리스계 미국인, 캐나다인을 선수로 차출하는 과정에서 해프닝이 벌어졌던 것이다. 전체 주전선수 24명중 22명이 미국 메이저리그나 마이너리그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교포선수’로 구성 됐는데 그 중에서도 3루수를 맡은 클레이 벨링거는 메이저리그 출신이지만 할머니가 그리스 태생이라는 이유로 올림픽에 앞서 대회출전을 위해 그리스 국적을 취득했을 뿐, 그리스 말도 할 줄 모르고 이번 올림픽 출전으로 그리스를 처음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적을 바꾼 후 3년이 지난 후 국가대항전에 국가대표로 나설 수 있는 현재 규정 하에서 가장 신기한 국적변경은 일본의 유도영웅으로 유럽선수권에서도 우승한 우에마스 기요시가 이번 대회에 국적을 스페인으로 바꿔 출전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선수의 경제적 어려움, 명예욕에 참가국들이 스포츠를 국가홍보 수단이자 ‘대리전’으로 여기는 한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적이 ‘바뀌었던’ 손기정 선수가 조국을 잃은 서러움에 어두운 표정으로 시상대에 선 것은 1936년 8월9일이었다. 이후 꼭 56만인 1992년 8월9일에는 한국 마라토너 황영조가 손기정 선수가 그렇게 원했던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우승하는 감동의 순간을 이뤄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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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기가막혀
- 지금은 연극 연출가로 유명한 <아침이슬>의 가수 김민기 씨가 작곡해 양희은 씨가 부른 노래 <봉우리>는 1984년 올림픽 본선에서 패해 탈락한 후 쓸쓸히 귀국하는 대표선수들의 모습을 담은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주제가로 준비 된 것이었다고 한다.
- 마라톤 풀 코스는 1회 아테네대회 39.99km, 2회 파리대회 40.260km, 세인트루이스 3회 대회 39.909km이었다. 런던에서 열린 1908년 제4회 올림픽에서 국왕인 에드워드7세가 출발장면이 보고 싶다며 “출발을 윈저궁 내의 정원에서 하라”는 지시를 내려 잠정적으로 정해둔 42km에서 0.195km가 더 늘어난 42.195km로 확정됐다.
- 인간기관차로 불린 에밀 자토벡은 1952년 헬싱키 대회 마라톤에 출전하여 선두그룹을 형성하며 달리다가 “좀 더 빨리 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라고 주위 선수들에게 묻고는 혼자 앞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1976년 몬트리얼 올림픽에서 발데마르 키에르핀스키는 당시 동독대표로 출전해서 스타디움을 한바퀴 돌아 우승을 확정한 후 트랙을 한바퀴 더 돌아 2등으로 들어온 선수를 아슬아슬하게 추월까지 했다. 관중들은 발데마르가 승리를 자축하는 세레모니를 하는 것으로 알고 열광했다. 하지만 그는 시상식이 끝난 후 운동장을 한바퀴 돈 후 전광판에 주최측이 스타디움을 한바퀴 씩 돌아야 한다고 친절하게 ‘1’ 이라고 써 놓은 것을 보고 “한바퀴 더 돌라는 의미인줄 알고 또 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1980년 모스크바 대회에서도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 1980년과 84년의 ‘반쪽 올림픽’보다도 끔찍했던 ‘최악의 올림픽’으로 기억되는 제2회 파리올림픽에서는 연날리기까지 정식종목으로 채택해 쿠베르텡 남작을 경악케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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