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금융노조의 단협안은 2000년 산별 전환이후 가장 많은 고민 속에서 추진되고 결정되었다.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올해 임단협에 대한 방향과 추진계획을 의결한 이후, 연초부터 준비한 단협개정안은 현장 조합원의 의견수렴을 위한 지부간부회의와 별도 특별위원회(태스크 포스팀) 가동을 통하여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의 산별교섭을 통하여 산별 공동단협의 틀이 마련된 상태에서, 매년 증가하고 있는 현장조합원의 욕구와 노동운동의 대의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핵심과제를 설정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았다.
교섭을 둘러싼 조건
세계경제가 회복하면서 국내경기도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내수부진으로 인한 국내경기의 장기적 침체 속에서 노동여건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특히 정부와 언론은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서 정규직 노동조합에게 책임을 묻고 공세를 가하며, 정규직 임금억제를 요구하고 있었다. 또 노동자 내부의 정규·비정규직 사이의 현격한 임금격차는 새로운 노노간의 갈등요인이 되면서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올 노사관계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하였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금융노조는 대기업 노조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총자본과 언론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돌파하는 동시에 고용안정 및 노조의 경영참가, 신규채용을 통한 인력구조 개선 및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통한 노동연대의 실현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 2004년 7월 29일 금융 노사의 임단협 조인식 - 출처: 금융노조 ]
2004년 금융노조 임단투의 성과
2004년도 임단협의 성과는 첫째, 무엇보다 산별교섭의 안정화 기틀을 마련하였다는 점이다. 금융노조는 2000년 산별 전환 이후 모두 다섯 차례의 산별교섭을 진행하여 왔다. 그러나 법적인 사용자단체가 구성되어 있지 않아 2002년까지는 사용자측의 간사은행이 교섭대표의 역할을 하였다. 2003년부터는 은행연합회장이 사용자측 교섭 대표 역할을 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사용자들의 통제가 쉽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현재 연합회는 사용자단체 구성의 전 단계로서 역할을 실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의 경우 전체 사업장 사용자가 참석하는 전체교섭인 첫 상견례와 조인식을 제외하면, 7인 중앙교섭위원 중심의 교섭으로 예년보다 좀더 안정된 교섭형태를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이번 교섭에서는 '금융산업 노사간담회'를 연2회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이것이 향후 금융정책 및 제도, 또는 긴급한 문제를 산별 단위에서 논의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산별 중앙단위의 노사협의기구가 발전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둘째, 임금 가이드라인 파괴로 정부투자기관의 노사자율적 임금협상을 추진하였다는 점이다. 금융노조 산하 많은 조직들이 정부의 예산지침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산별 임금교섭에서 항상 걸림돌이 되어왔다. 특히 올해 정부투자기관 임금가이드라인은 3.0%로 국책기관 사용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 교섭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총액기준 3.8 %로 합의하였고, 이는 국책은행 및 기관들이 임금가이드라인에 의한 한계를 돌파하였다는 의미가 있다.
셋째, 금융노조는 산별교섭 이후 처음으로 비정규직의 임금 및 처우개선 등 비정규직 문제를 단체협상을 통하여 해결하였다. 노동계가 연초에 주요 쟁점으로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내세웠으나 실제적으로는 실효를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 금융노조의 비정규직에 관한 교섭성과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제도 도입, 비정규직의 근로조건 개선, 업무능력 향상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훈련기회 부여, 비정규직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5년 전(1999년 6월) 비율의 준수, 여성 비정규직원의 출산휴가 사용 시 불이익금지 등을 명문화하였다.
넷째, 임금피크제를 통한 정년연장을 추진하였다. 경제위기 이후 상시적 구조조정, 고령화사회의 급진전 등으로 금융사업장에서도 노동자의 고용안정문제는 단체협상의 최대 이슈로 부각되었다. 이에 금융노조는 정년연장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여 그 결과를 단체협상에서 요구하고 교섭에 활용하였다. 현재 금융산업 노동자의 정년은 58세이나 대부분 정년이전에 퇴직을 하는 현실을 감안하여 고용연장이 가능할 경우 임금피크제를 수용할 수 있음을 전제로 정년연장을 추진하였다.
다섯째,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른 근로조건 저하를 최소화하였다. 금융노조는 지난 2002년 7월부터 주5일 노동을 실시하여 왔다.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근로시간 및 휴일과 관련한 기존 단협의 제반 정리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쟁점은 임금보전 문제였다. 휴가일수는 개정법 취지를 수용하되, 노동자의 임금 등 기존 권한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논의하여 휴가일수를 조정하고, 월차는 12일에 해당하는 금액을 매년 산정하여 보전받고, 연차는 기존 단협과 개정 근로기준법이 차이가 날 경우 차이일수에 해당하는 금액을 매년 퇴직 시까지 보전하기로 하였다. 생리휴가는 무급으로 하되 생리휴가를 사용하더라도 임금의 저하를 주지 않도록 하였다.
여섯째, 보육시설 설치, 복지법인 설립, 조합재정자립기금 적립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직장보육시설은 향후 지속적으로 설치 운영하되, 우선 2004년에 2개소를 설치 운영하기로 하였다. 또한 사용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위하여 노조가 설립하는 사회복지법인에 5억원의 출연금을 지원하고, 성금을 지정기탁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조합재정자립기금 출연은 노동계 전체의 문제이므로, 현재의 노사정 차원의 논의추이를 보면서 어느 일방이 논의를 요구할 경우 언제든 회의를 속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일곱째, 산별 단체교섭 기간, 시기, 횟수 등 교섭형태의 합리화를 추진하였다. 산별 중앙교섭은 매년 3∼5월에 시작하여 3∼4개월의 교섭기간을 거쳐 5∼10월에 종결되고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하여 교섭개시는 늦어지는 경향이 있으나, 매년 교섭기간은 축소되고 있다. 교섭횟수는 평균 15∼20회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축소되고 있다.
2004년 금융노조 임단투의 한계와 문제점
2004년도 임단협의 문제점과 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용자단체의 구성과 대표의 역할강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난해에 이어 2004년에도 은행연합회가 사용자 대표로 협상에 임하였다. 은행연합회는 법적인 사용자단체가 아니므로 각 사업장의 위임을 받아 대표권을 갖고 교섭에 참여했다. 그러나 명실상부한 교섭대표로서의 역할보다는 중개자 역할을 하는 한계를 보였다. 산별조직의 확대로 은행연합회의 회원사가 아닌 기관이 늘어나면서 사용자들이 연합회로 교섭권을 위임하는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즉 그 대책은 바로 사용자단체의 구성이며, 이는 노사는 물론 노동관련 법개정 등을 통하여 근본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사항이다. 사용자들도 산별교섭과 관련하여 지급까지 취해온 기피전략을 지양하고 진정한 의미의 산별교섭이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노조의 산별교섭 요구에 대한 소극적인 회피전략보다 적극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 등 사용자측 교섭력 증진에 대한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 산별 중앙교섭과 지부 보충협약 등 이중적 교섭구조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부족과 중앙교섭에 대한 현장조합원의 관심과 참여부족이 심화되고 있다. 산별 중앙교섭이 계속되고 있지만 대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사용자측의 기업별교섭 회귀성향 또한 만만찮다. 즉 사업장 차원에서 산별 중앙교섭보다도 더 좋은 조건으로 협상에 임할 수 있다는 주장과 중앙교섭 이후 결국 보충협약을 해야하므로 오히려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차원의 중앙교섭이든 산업별차원의 중앙교섭이든 그 이후 각 사업장의 특성을 고려한 사업장 차원의 보충교섭은 당연한 사항임을 사용자측도 인식을 해야 할 것이다.
단, 교섭 내용의 중복을 노사가 합리적 기준에 의해 조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또한 금융노조는 현장을 감안하여 임단협안을 기초할 때부터 지부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으나, 조합원의 복지후생 측면에서 벗어나 운동성과 정치·제도적인 노력을 기울이면서 현장조합원의 산별교섭 내용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가 매년 저하되고, 간부 중심의 협상에 치우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별교섭의 체계, 내용, 방법 등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금융노조에서는 '산별 발전방안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그러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으나 아직 일반 조합원에게까지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조합원의 투쟁력을 무기로 활용하지 못하고 교섭중심의 임단협 진행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4년 만에 치러진 쟁의행위 찬반 투표의 가결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미미하여 올해 역시 투쟁 없는 교섭위원 중심의 교섭이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금융사업장에서 임금을 중심으로 한 파업투쟁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IMF 이후 수 차례의 '절박한 생존권투쟁'을 경험한 이후 임단협 결렬에 의한 투쟁은 일종의 '배부른 투정'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따라서 향후에는 상황변화를 고려한 다양한 전술의 쟁의방법, 각 사업장의 현안 집중투쟁 등으로 새로운 투쟁방법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측면은 사용자들의 저항이 심했던 '경영참여' 관련 조항을 심도 있게 추진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고, 또한 비정규문제에서도 근로조건 개선에 치중하고 조직화에는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한 한계를 노출하였다. 임단협 협상기간동안 전 지부 대의원들이 참여하는 통합대의원 대회 등에 비정규직 조합원의 동참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조직화의 계기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계기를 활용하지 못하고, 비정규직 조직화사업에 박차를 가하지 못한 점은 특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 2004년 7월 12일 금융노조 한미은행지부의 파업해산집회 - 출처: 금융노조 ]
아쉬움으로 남는 '비정규직 조직화'와 '노조 경영참여'
올해 임단협은 초반부터 어려움에 부딪혔다. 초기 금융노조는 노사정위원회에서 진행된 '일자리협약' 이후, 산별 차원의 실효성 있는 사회적 협약을 위하여 정규직 임금인상 자제를 대가로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경영참가, 신규채용을 일괄 타결 짓는 방향으로 추진하였다. 그러나 조합원 설득과정에서, '일차적 책임이 있는 정부 및 사용자의 역할과 지원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IMF 당시처럼 일방적으로 노동조합이 양보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피해의식으로 인하여 의결단계에서 부결되었다. 그리고 산별 차원의 사회적 대타협 방식에서 기존의 교섭방식으로의 방향전환, 4월의 한국노총 차원의 총선투쟁 지원, 5월의 금융노조 위원장의 노총위원장에 출마지원, 6월 한미은행지부 파업지원 등으로 교섭분위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7월에 임금 및 단체협약에 대한 전 조합원의 쟁의행위 투표를 4년만에 실시하여 63,346명(85%)이 투표에 참가하였고, 71%의 찬성으로 파업을 가결하여 교섭을 압박하는 집중교섭을 실시하였다. 또 매주 2회 이상 7인 교섭을 추진하여 총 11차례의 대표교섭과 4차례의 실무교섭을 통해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작년보다 좀더 안정화된 산별 교섭, 비록 임금피크제라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59세로의 정년연장, 비정규직에 대한 산별 단위의 임금결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제도도입 등 차별해소를 위한 내용과 산별 중앙단위 노사간담회, 근로기준법 개정관련 임금보전 및 토요일 유급화와 생리휴가 시 임금저하 금지 등은 이번 교섭의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용자 단체가 부재함에 따른 문제와 요구안 수렴 시 현장의견 반영 부족, 간부들의 참여 미흡, 교섭중심의 임단협 진행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또 다시 지적되는 문제들이었다. 또한 비정규관련 교섭에서 근로조건 개선을 했을지라도 비정규 조직화와 연계하지 못하였다는 점과 투쟁이 조직되지 않아 사측의 저항이 심한 노조의 경우 경영참여에 관한 사항을 내년 과제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반성적인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