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다. 아니 '올인(all-in)' 대통령과 '막가파' 국회의원을 국민이 선택한 탓에 지난 2002년부터 벌써 2년 가까이 '정치의 계절'이 계속되고 있다. 4월15일 총선 결과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일 것까지 생각하면 '정치의 계절'은 앞으로도 한 동안 계속될 듯하다.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권할 만한 일이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삶에 밀착된 '우리들의 정치'보다는 자기 잇속만 차리는 정치꾼이 주연과 조연을 독차지하는 '그들만의 정치'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다보니 오랜 불황 속에 살기가 더 힘들어진 노동자, 농민, 서민들과 같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도시 빈민들은 점점 더 사지로 내몰리면서, 절망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세상에 대한 원망을 키우고 있는데 말이다.
[ 2월13일 이라크 추가 파병안이 통과된 후 조영길 국방부 장관이 본회의장 앞에서 국방위 소속인 이연숙 한라당 의원과 최명헌 민주당 의원을 만나 양손으로 악수를 하며 감사인사를 있다. - 출처:오마이뉴스 ]
선거, '그들만의 정치'에 빠져들게 하는 마약?
사람들을 이렇게 '그들만의 정치'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은 '선거'임이 명백하다. 사람들은 너무나 무기력하게도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서 '그들만의 정치'에 일희일비한다. 그렇게 한 차례 선거 '광풍'이 지나가면 또다시 다음 선거가 올 때까지 긴 고통의 시간을 침묵 속에서 감내할 것을 강요받는다. 그 안에서는 세상을 바꾸는 것을 꿈꾸던 노동자들조차 거수기로 전락할 뿐이다.
2002년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가? 그에 대한 답은 철저한 배신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각종 정책으로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고, 절망 속에서 분신을 선택한 노동자를 겨냥해 "민주화 시대에 분신이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는 망언으로 가슴에 못을 박았다. 최근에는 군대를 동원해 노동자의 파업을 진압했던 영국의 전 수상 마거릿 대처의 전기를 읽으며 '탄핵 정국' 이후를 구상하는 모습을 보여 눈총을 사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총선 승리로 더 '힘있는 대통령'이 될 경우 다가올 탄압이 심히 우려스런 대목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사정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선거는 미디어 조작된 이미지로 포장한 특정 정당과 후보를 추인하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미국과는 달리 비교적 이념과 정체성, 이해관계에 기반을 두고 유권자들이 선거에 임해 왔던 독일의 최근 변화는 그 단적인 예다. 2002년 독일 총선에서는 최초로 TV 토론이 이루어졌다. 막판 대역전극을 성사시켜 재선에 성공한 사회민주당의 슈뢰더는 노동자·서민을 위한 정책보다는 멋있는 용모와 화려한 언변을 앞세우고 상대 후보를 압도하는 TV 토론 덕을 톡톡히 봤다. 그 해 8월 '100년 만의 대홍수'를 현장에서 수습하는 슈뢰더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던 것도 재선에 큰 도움이 됐다. 재선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독일의 노동자들은 각종 사회복지를 축소하는 사민당에 대항해 새로운 좌파 정당을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미지와 현실의 간극은 이처럼 크다.
물론 선거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선거는 적어도 한 때는 세상을 바꾸는 무기였다. 단적으로 노동자가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산업화를 먼저 시작한 국가들에서 노동자들이 열심히 싸운 탓이다. 미국과 군부의 쿠데타에 의해 1973년 무너진 칠레의 아옌데 정권은 선거로 집권한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였다. 1987년 독재 정권에 맞서 온 국민이 들고일어나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냈을 때 바랬던 것도 바로 이처럼 세상을 바꾸는 선거였다. '우리들의 정치'를 만들기 위해서 쟁취해낸 무기가, '그들만의 정치'에 빠져들게 만드는 마약이 된 현실.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생각하는 날'을 통해 선거를 '희망의 날'로!
미국의 정치학자들이 선거 일주일 전에 하루를 정해 '딜리버레이션 데이(Deliberation Day)'로 삼자는 제안을 한 것도 이런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우리말로 '심의토론의 날'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이 날은 쉽게 말하면 선거에 대해서 노동자, 서민들과 같은 평범한 이웃들이 모여서 이것저것 따져보고 서로 얘기를 나눠보는 날이다. 잠시 미국의 정치학자들이 내놓은 계획에 맞춰서 '딜리버레이션 데이'를 구성해보자(임의로 여기서는 '딜리버레이션 데이'를 '생각하는 날'로 바꿨다).
노동자 구보 씨는 4월6일 직장 대신 근처 초등학교 강당으로 8시30분까지 향했다. 총선을 이틀 앞두고 열리는 '생각하는 날' 참가자로 추첨됐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좀 귀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직장이나 집에서 TV를 통해 지켜보는 것보다는 직접 참여하는 게 더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고, 수고비로 따로 나오는 20만원도 적지 않다는 생각에 통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9시가 되자 각 방송사는 일제히 생방송으로 각 정당 후보자간의 토론회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구보 씨는 미리 배정된 열다섯 명이 포함된 '가 조'에 배치 받아서 그들과 함께 토론회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한 주일 전에 여론조사를 통해 선정된 '이라크 파병', '자유무역협정(FTA)', '비정규직 문제'가 오늘의 토론 주제이다. 각 당에서 세 명의 후보자를 내보내 정당의 입장과 정책을 간단히 설명하고, 기자들로 구성된 패널들이 추가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는 방식이다.
토론회가 끝난 후, 구보 씨는 15분 동안 휴식시간을 갖고 같은 '가 조'에 배치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무작위로 추첨되다 보니 직업 구성이 매우 다양했다. 휴식 시간이 끝나자마자 점심을 먹을 때까지 한 사람씩 오후 대토론 때 같이 얘기해봤으면 하는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TV 토론이 전국적인 주제였다면 오후의 대토론 때는 지역적인 주제가 얘기된다. 구보 씨는 작년에 온 국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핵폐기물 처리장'을 지역에 유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면서 그에 대한 각 당과 후보의 입장을 들어봤으면 좋겠다는 발표를 했다. 모두 다 의견을 말하고 보니 중복되는 의견까지 포함해 10개 정도로 주제가 압축됐다. 그 중 3개를 표결로 정했다. 구보 씨가 말한 것도 5표의 지지를 얻어서 오후에 같이 얘기를 해보기로 했다.
오전 시간이 끝나고 두 시간에 걸친 점심시간이다. 점심시간이 이렇게 긴 이유는 주최측에서 그 시간 동안 '가 조'에 속한 사람들끼리 같이 식사를 하면서 오전에 이뤄진 토론에 대해서 비공식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끔 배려한 탓이다. 지역 국립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라고 자기를 소개한 김 씨와 마을 인근에서 유기농을 하는 이 씨는 최근에 체결된 '한·칠레 자우무역협정'에 대해서 식사 내내 격론을 벌였다. 이렇게 구보 씨 일행이 식사를 하는 동안 지역의 판사와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주최측에서는 각 조에서 올라온 주제들을 15개 정도로 압축한다.
오후에는 마을회관에 모인 10개의 조원 1백50명이 다 모여 대토론을 벌이는 시간이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각 정당을 대변할 수 있는 후보자나 지구당 위원장과 정당에서 추천한 당원들이 함께 참여해 문답(Q&A) 형식으로 진행된다. 주최측이 선별한 15개의 질문에 대해 각 당의 대표자들이 2분 내외로 답변을 하고, 토론이 진행됐다.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후 다시 '가 조' 사람들만 따로 모였다. 오늘의 마지막 토론이다. 오전과 마찬가지로 15명의 사람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오전의 TV 토론회와 대토론회에서 각 당의 답변에 대한 반응과 소감을 이야기했다. 구보 씨는 "세 당의 지역구 후보가 모두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를 반대한다고 했는데, 두 당의 경우 원자력 발전은 계속 확대한다고 하는 등 앞뒤가 안 맞아 신뢰가 안 간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 사람씩 의견을 말한 뒤 난상 토론이 간단하게 이뤄졌다.
구보 씨는 오후 6시가 돼서야 집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토론을 하는 동안 구보씨는 이번 총선에서 지지할 정당과 후보를 정하는 수확을 얻었다. 구보 씨가 내일 직장에 출근하자마자 직장이나 집에서 TV 토론과 대토론회를 시청했을 동료들이 분명히 이런저런 토론회 분위기를 물어볼 게 뻔하다. 구보 씨에게는 그들에게 아까 조 모임에서 오고갔던 얘기들을 전할 책임이 있다. 구보 씨는 오랜만에 참여한 토론에 상당히 피곤했지만 지역 사회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작은 기여를 한 것 같아 뿌듯했다.
민주주의 발전과 공공선에 기여이렇게 진행되는 '딜리버레이션 데이'는 어떤 효과를 낳을까?
우선 미디어 중심으로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주력해온 정당들을 다시 정책 중심의 선거운동으로 이끄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정당들은 '딜리버레이션 데이'를 계기로 전국과 지역의 이슈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데 신경을 쓰게 되고, 각 정당의 후보와 당원들에게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정당들이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정치에 무관심한 유권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도 생긴다.
'딜리버레이션 데이'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각 정당의 정책에 대해서 토론을 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공청회나 토론회와는 전혀 다른 효과를 낳게 된다. 일상생활 속에서 보통 자기와 유사한 이해관계나 사회·경제적 지반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 온 참가자들은 '딜리버레이션 데이'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각 정당의 정책을 다각도로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앞에서 살펴본 구보 씨의 예처럼 '딜리버레이션 데이'는 참가자들에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고양시켜, 민주주의 발전과 공공선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그들은 가정이나 직장에 돌아가서 자기 경험을 공유하면서 사회적으로 토론을 확산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의 '공적 토론'이 증가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딜리버레이션 데이'는 대부분의 선거가 전국적인 이슈 중심으로 이뤄지는 최근의 경향에 반해 지역적인 이슈가 확산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각 지역 주민들이 제기하는 질문들에 대해서 정당들은 준비를 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지역 공동체가 정치에 개입하는 효과로 나타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수년 동안 '딜리버레이션 데이'와 유사한 과정을 통한 사람들의 변화를 살펴보는 연구(Deliberative Poll)가 진행됐다. 연구 결과 '딜리버레이션 데이'를 통해 사람들은 앞에서 지적한 긍정적인 변화를 나타낸 것으로 확인됐다.
일상에서 '생각하는 날'을 도입해보자
물론 '딜리버레이션 데이'의 도입도 여러 가지 예상되는 문제가 있다. 상이한 사회·경제적 지반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대화는 상호이해보다는 충돌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처럼 이념이나 정책에 차이가 거의 없는 정당들이 난립하는 현실에서, '딜리버레이션 데이'는 또 다른 소모적인 정쟁의 공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크다. 토론에 익숙한 일부 참가자들이 특정한 지적 능력과 언변을 앞세워 다른 참가자들의 대화를 방해할 가능성도 크다. 돈과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큰 목소리를 내왔던 한국의 현실에서 '딜리버레이션 데이'가 힘이 센 사람이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는 공간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딜리버레이션 데이'와 같은 제안을 수용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일상에서 '딜리버레이션 데이'처럼 '참여 민주주의'를 북돋우는 여러 가지 제안들을 실천에 옮겨보자. 노동조합이나 지역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에 선거나 투표를 보완하는 '딜리버레이션 데이'를 도입해보는 것은 어떨까? 총선이나 대통령 선거와 같은 큰 선거를 앞두고 노동조합에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자체적으로 '딜리버레이션 데이'와 같은 행사를 개최하는 것도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기득권을 가진 부자, 정치인, 관료들은 항상 철저한 계산에 입각해서 정치적 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린다. 항상 미디어를 통해 유포되는 왜곡되거나 단편적인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과는 달리 그들은 다양한 수단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그에 따라 가장 효과적인 대응을 시도한다. 그런 그들에게 대항할 길은 딱 하나밖에 없다. 그들이 결코 알 수 없는 삶의 체험으로부터 나온 서민의 정보를 소통해 공동체의 판단 능력을 고양하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4·15 총선을 앞둔 지금 우리는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가? 더 이상 '그들만의 정치'에 우리의 삶을 내던지는 우를 범하지 말고 '우리들의 정치', '희망의 정치'를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