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사태로 세상이 시끄럽다. 일각에서는 '의회에 의한 쿠데타'니, '제2의 6월 항쟁'이 운운되고, 탄핵을 주도한 보수 3당은 역풍에 움츠러들었다. 민주노동당 내외 일부 인사들 또한 동요하고 있으며 "노동자계급은 항상 일반민주주의의 확대에 기여해 왔다", "친미수구세력의 음모" 등 온갖 주장이 난무했다. 그러나 원래 호들갑이라고 하는 것은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나 떠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총선을 진보정당 원내진출의 계기로 삼아야 하는 갈 길 바쁜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이러한 호들갑이 정당한 것인지 곱씹어 보아야 한다.
 [ 정책으로 승부하는 민주노동당이 3월25일 당사에서 교육 관련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출처:오마이뉴스 ]
호들갑 떨 필요 없다
민주노동당의 대응 전략을 언급하기 전에 이번 사태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봐야 한다. 온갖 충격적 표현이 언급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의 본질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첫째, 이번 탄핵 사태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87년 체제가 만든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잘 작동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탄핵은 헌법이 정한 절차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며 절차에 관해 몇 가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과거의 날치기와 같은 중대한 절차상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가 합헌이냐 위헌이냐는 논쟁은 헌법재판소가 판단할 문제이기는 하나, 역설적으로 탄핵이 헌법이 정한 절차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안착되었다는 반증이다. 즉, 87년 이후 성립된 체제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고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탄핵에 준하는 위기에 처하면 대개의 국가들은 상당한 무력충돌이나 극심한 경제혼란을 겪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대규모의 시위가 있긴 했지만 무력충돌은 없었다. 주가가 잠시 떨어지기는 했으나 경제지표도 곧 회복되었다.
둘째, 민심은 탄핵을 비판하기는 하나 노무현이 국정을 잘 수행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탄핵 반대여론이 70%에 이르지만 노무현도 잘못했다는 여론도 그에 육박한다. 다 잘못했고, 탄핵을 한 쪽이 더 잘못했다는 정도이지, 그것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절대적 지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현재 40%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열린우리당이 선거에서 정말로 압도적 지지를 받을까하는 것은 현행 선거제도 하에서는 두고봐야 할 부분이다. 대다수의 민중들은 현재 보수정치에 대해서 냉소를 보내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니 하면서 흥분하는 세력들은 인터넷을 주요 활동무대로 하는 노무현 지지자와 여기에 동요하는 일부 사람들에 불과하다.
실제로 이번 탄핵이 철저하게 선거전략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민중들은 탄핵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탄핵이 의결되기 직전, 열린우리당이 국회의장의 중재 제의를 거절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노무현 정부가 탄핵을 유도했다는 정황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선택이 오판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선택이 한나라당의 경우 지지자 응집 효과와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남은 기간 어떠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지만 한나라당이 참패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셋째,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예상과는 달리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탄핵 다음날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가장 낮게 나온 것이 3%이고, 가장 높게 나온 것이 7.6%였다. 이는 작년과 연초의 민주노동당 지지율과 크게 차이 나지 않으며, 실제로 지지율 하락은 크게 잡아 2%을 넘지 않거나 그대로 유지되었다. 심지어 3월15일 방영된 MBC 여론조사에 의하면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5.8%로 5.4%인 민주당을 앞서기까지 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민주노동당의 고난에 찬 활동, 노무현 정권의 실정, 정몽준 학습효과 등의 요인으로 당의 지지자들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일화가 보여주듯이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 세원테크 이해남 지회장 등의 죽음, 한·칠레자유무역협정 통과, 두 차례 파병 등 채 1년이 되지 않은 기간 동안 벌어진 일들이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을 더 이상 흔들리지 않도록 학습시킨 것이다.
 [ 민주노동당은 3월22일 '민생 3대 의제 정책토론'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출처: 오마이뉴스 ]
'민생안정 진보세력'과 '과격무책임 보수세력'의 한판대결
탄핵의 본질이 위와 같다면 민주노동당의 대응 또한 분명하다. 첫째, 탄핵의 책임은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에 똑같이 있다는 점이다. 탄핵사태는 민생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선거에서의 승리만을 추구하는 보수정치의 무능과 무책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에 대한 명확한 비판이 있어야 한다.
둘째, 탄핵사유가 경미하기 때문에 민생안정을 위해 헌법재판소는 탄핵재판을 빠른 시일 내에 진행하고 이를 기각하여 민생안정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총선 이후 국회에 들어가 탄핵을 취소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탄핵취소에 대해서는 의결 정족수 규정이 없으므로 헌법에 따라 일반의결정족수인 재적과반수 출석과 출석과반수의 찬성으로 취소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의석 수를 얼마나 차지할 지는 미지수이나, 몇 안 되는 의석이라고 하더라도 취소를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이러한 기본 입장 속에서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사이비 보수와 사이비 개혁을 넘어 다수의 노동자, 농민,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으로서 이들의 민생과 생존권을 최우선적 과제로 하여 우리가 기존에 하던 활동을 전개하여야 한다. 탄핵이라는 보수정치권의 놀음에 휩쓸릴 필요 없다.
탄핵과 무관하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며, 한·칠레자유무역협정 타결로 인해 농민들의 삶은 여전히 불안하다. 가압류, 손해배상소송,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등으로 노동자들의 삶 또한 어느 때보다 힘들며, 이라크에 파병될 우리 젊은이들과 이라크 민중의 생명은 여전히 위태롭고 카드 빚과 사채업자들의 횡포에 많은 사람들이 자살의 기로에 서 있다.
진정한 진보정당이라면 당연히 이들에 대한 민생안정을 위해 최우선적 노력을 하여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평소에 하던 대로 자유무역협정의 부당성과 우리농업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주장하고, 노동자들의 삶의 안정을 위해 민주노동당이 주요기조로 제시한 완전고용을 뒷받침하는 각종 제도적 대안, 예산상 조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대시켜야 한다. 또, 생명을 위해 이라크파병을 철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카드 빚과 사채업자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이들의 보호를 위한 각종 조치를 취하고 신용회복법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한마디로 이번 선거는 '민생안정 진보세력'과 '과격무책임 보수세력'과의 한판 대결일 뿐이다. 흔들리는 것은 정국이나 민중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마음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민중의 생존과 안정을 위해 우리의 길을 가자. 그것이 민주노동당이 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