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하는 노동자·투쟁하는 노동자, 사회복지노동자

노동사회

희생하는 노동자·투쟁하는 노동자, 사회복지노동자

admin 0 3,880 2013.05.12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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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공공연맹』 9월호에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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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수 관장의 퇴진과 민주적 운영을 요구하고 있는 정립회관 장애인들과 사회복지 노동자들. 정립회관 측은 곰두리봉사단이라는 단체를 끌어들여 노사간의 문제를 장애인 대 장애인의 싸움으로 만들려고 했다.    - 출처:서울경인지역사회복지노조 ]

최근 전국에 산재해있는 사회복지노동자들의 투쟁이 본격화되어 가고 있으며, 이 투쟁들은 노동조합의 전면파업과 장기투쟁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 기업별노동조합 형태인 사회복지노동조합은 조직규모 면에서 10~20명 내외의 조합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 어떤 조직들보다 치열하게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사회복지노동자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600여개의 이용시설(사회복지관, 노인·장애인복지관)과 노인·장애인·아동 등 1,400여개의 사회복지생활시설, 240여개의 자활후견기관, 1,300여개의 국·공립 보육시설 등을 포함하여 약 3,500여개의 사회복지 시설 및 기관이 존재하고 있다(보건복지부, 2001).

여기에서 종사하고 있는 사회복지노동자들은 사회복지생활시설의 경우 주당 평균 64.7시간, 이용시설의 경우 48.6시간으로, 전체 평균 주52.6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한국사회복지사 기초실태조사, 한국사회복지사협회, 2001). 또한 사회복지 생활시설노동자의 71.8%, 이용시설노동자의 60%가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는 연·월차 유급휴가, 생리휴가 등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고, 연장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등의 각종 수당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한국사회복지사협회, 2001).

이렇게 볼 때, 전체 사회복지노동자 중 2/3 이상이 주 평균 5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연·월차휴가 및 생리휴가 등을 사용하지 못하고, 연장근로수당·휴일근로수당·야간근로수당 등 근로기준법 상에 명시되어 있는 법정 수당을 지급받지 못하는 심각한 현실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사회복지노동자들은 항상적인 저임금 장시간 노동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확대와 민간위탁 구조에 따른 고용불안에까지 시달리고 있다.

무엇이 이들의 노동권 행사를 가로막는가

사회복지 현장의 노동조건은 다른 어느 분야의 노동조건보다도 열악한 실정이지만 현실적으로 사회복지현장의 노동자 조직률은 정체되어 있다. 이는 노동조합의 결성과 활동을 저해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장해요인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사회복지노동자의 ‘노동자성’에 대한 시각이 노동조합 결성을 저해하는 장해요인으로 작용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즉 복지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윤리성, 전문가주의, 비생산적 노동이라는 인식은 복지노동자들이 자신은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고만 인식하게 하며, 높은 봉사정신을 요구하여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은 상대적으로 위축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회복지노동의 공공성 혹은 사회적 성격을 개인의 시혜적이며 헌신적인 활동으로 규정짓게 하였다.

특히 1990년대 중후반 이후 강조되고 있는 ‘전문가주의’는 표면적으로는 중립성을 표방하고 있는 듯 하지만 실상은 복지노동자들에게 중산층의 의식, 즉 의사나 약사 혹은 변호사 등 기존 전문직에게 적용되고 있는 전문가주의 의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업종에 따른 전문성과 노동자들의 노동성이 결코 배타적인 개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독 사회복지현장에 퍼지고 있는 전문가주의는 노동조합활동에 있어 “우리가? 왜?”라는 의구심을 부추기고 있다.

둘째로 사회복지 노동현장의 특수성이 노동조합 활동을 전개하는데 몇 가지 한계를 갖게 한다. 규모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단위 사회복지현장의 종사자가 적게는 5명 내외에 불과한 경우도 있어, 조합활동을 전개할 경우 사용자의 개별적인 통제와 회유가 얼마든지 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또한 사회복지현장의 업무량이 과중하고 노동시간이 장시간이어서 노동조합 결성과 활동을 위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며 특히 생활시설의 노동자들은 더욱 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사회복지 노동조합의 결성과 활동에 있어 현실적으로 가장 큰 장해요인으로 작용되고 있는 것은 운영주체인 법인(시설장)의 탄압과 정부의 책임전가이다. 1987년 이후 결성이 된 홀트, 에바다, 남부장애인 노동조합과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부천장애인복지관 노동조합, 상애원 노동조합, 한시련 노동조합 등은 대부분 시설비리 및 비민주적 운영 그리고 사회적 약자의 복지권 및 인권 유린에 대응하기 위하여 설립된 것들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운영주체인 법인(시설장)은 직장폐쇄, 조합원 부당 징계, 전출, 해고, 사업운영권 반납 등 노동조합의 활동을 와해시키기 위한 탄압을 자행한 바 있다. 또한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복지노동자들의 사용자인 정부는 이러한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노사간에 풀어야할 문제라면서 적극적인 중재를 포기하거나 외면하는 상황이다.

장애인콜택시지부와 정립회관지부의 장기투쟁

현재 투쟁 중이거나 투쟁돌입을 예고하고 있는 사회복지노동조합 가운데 서울경인사회복지노동조합 장애인콜택시지부와 한국소아마비협회 정립회관지부의 투쟁사례를 통하여 사회복지노동조합의 장기투쟁 원인을 밝혀보고자 한다.

장애인콜택시는 장애인이동권연대의 투쟁에 밀려 서울시가 졸속적으로 서울특별시장애인콜택시 관리 및 운행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2003년 1월1일부로 도입하였다. 그러나 서울시가 마련한 조례에는 차량과 운행관리를 시설관리공단에 위탁을 주고, 다시 시설관리공단은 운전노동자들에게 재위탁을 주도록 하는 치명적인 독소조항을 담고 있었다. 또한 운전노동자들에게 1년 단위의 수탁자 겸 운전봉사원이라는 신분을 부여하여,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만들었다.

운전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수탁자협의회를 2003년 3월경 설립하였으나 공단 측은 수탁자협의회장을 2003년 6월30일부로 계약해지하였다. 이에 운전노동자들은 동년 8월 노동조합설립총회를 치르고 공단 측에 단체협상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으나 공단 측은 운전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부인하거나 단체협상을 체결할 권한이 자신들에게 없음을 주장하며 교섭을 회피하다가, 11월28일 조합간부 7명에 대해 계약해지를 통보하였다. 이후 장애인콜택시지부는 계약해지 결정을 내린 운전노동자 심사자료 공개와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현재까지 투쟁을 진행해오고 있다. 

한국소아마비협회 정립회관지부는 1990년 한국노총 소속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하였으나 휴면상태에 머무르고 있다가 지난 2000년 민주노총 공공연맹으로 상급단체를 변경하였으며, 2003년 1월 조직변경을 통해 서울경인사회복지노동조합의 지부로 가입하였다. 한국소아마비협회 정립회관 사측은 상급단체를 변경한 시점부터 조합원들에 대하여 승진누락과 징계를 남발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였고 교섭의 주체인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장이 교섭에 참여하지 않고 정립회관의 관장 또한 교섭권을 위임하는 등 노사간의 교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2003년 임금교섭에서도 교섭권의 문제가 있었으나 노조가 양보하여 교섭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사측은 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안까지 거부하여 협상이 결렬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립회관 운영규정상 2004년 6월30일로 정년 퇴직하여야 할 이완수 관장이 이사회의 변칙적인 연임결정으로 2년 간 임기가 연장되었고, 정립지부의 조합원과 시설을 이용하는 중증장애인들이 주축이 되어 ‘정립회관 민주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2004년 8월23일 현재 사무실 점거농성 63일을 맞이하고 있다.

투쟁했다하면 모두 장기화, 도대체 왜?

위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사회복지노동자들의 투쟁의 시작은 곧 장기투쟁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투쟁의 장기화는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가?

우선 노련한 노동조합 조직활동가들마저도 고개를 가로젓고 마는 사회복지시설의 낙후된 노사관계가 장기투쟁으로 가는 1차 요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사회복지시설의 사용자들은 사회복지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태도는 노동조합 결성 이후 임단협 진행에 있어 노동조합과의 교섭을 회피하거나 해태하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사용자들의 태도는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사적소유 의식과 조합설립 이전에 팽배해 있는 가부장적 질서체계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여진다. 즉 시설장을 비롯한 사회복지시설의 운영책임자들에게 있어 사회복지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왕국을 전복시키려는 불온한 세력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둘째, 대부분 사회복지시설이 사회복지사업법에 근거하여 지방자치단체와 법인간의 위탁관계가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사회복지노동자들이 중층적인 고용관계에 놓이게 되는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중층적인 고용관계(복지노동자-운영법인 및 시설-정부)는 문제발생의 원인과 해결을 둘러싸고 시설운영자와 정부간의 지루한 ‘책임 미루기’를 고착화시키고 근본적 문제해결을 위한 시도조차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고용관계 및 위·수탁 구조는 사회복지시설의 기득권세력들에게 노동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 활용되며, 노동자들 스스로도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보다는 체념하거나 포기하게 만드는 기제로 작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복지에 대한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이 장기투쟁의 또 다른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즉 사회복지현장은 봉사와 헌신을 기반으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하는 곳이며, 이러한 사회복지시설에서 노동조합의 투쟁은 용인되기 어렵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의식은 사회복지시설의 시설장 등에 의해서 확대 재생산되며, 사회복지노동자들의 투쟁을 고립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 사회복지시설의 투쟁은 임금 및 노동조건의 개선문제이든 민주적 운영을 확보하기 위한 문제이든 시작과 함께 장기투쟁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복지권 강화는 사회복지노동자들의 투쟁과 실천으로 

현재 한국의 사회복지노동현장이 맞닥뜨리고 있는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열악한 노동조건, 비민주적·비전문적 조직운영, 취약한 재정상황으로 인한 문제 등은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복지노동현장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사회복지노동현장의 제반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들의 복지권 옹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복지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문제해결의 대상이 되는 집단은 문제해결을 위한 보조금의 확대지원이나 시설의 민주적 운영을 책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조합의 결성과 활동은 결국 사회복지노동자 스스로 이루어야할 과제이며 복지노동자들의 결단과 이에 따르는 실천적 활동 속에서 구체화되고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사회복지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권 강화를 위한 투쟁을 전개해나가겠다는 결의와 각오로 이 글을 가름하고자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