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7일 낮 2시. 2,500여명의 시커멓게 그을린 건설플랜트노동자들이 강남대로를 가로막고 앉아 있었다. 따가운 햇볕에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에 깊은 주름을 가진 노동자들은 그들과는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금융사들이 들어선 으리으리한 포스코 건물 앞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포항지역건설노조, 전남동부지역건설노조, 여수지역건설노조 등 일용직 건설플랜트노조의 조합원들이다. 16일째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을 하고도 해결기미를 찾지 못하자, 대표적인 원청업체인 포스코가 나설 것을 촉구하며 2,500여명이 ‘집단 상경’한 것이다.
[ 7월27일 건설플랜트노조들의 강남대로 포스코센터 앞 집회 - 출처:플랜트노조협의회 ]
시꺼먼 아저씨들이 ‘집단 상경’한 이유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은 고용형태는 일용직이지만, 일반 건설일용직과는 달리 일정 기간동안 공장 설비(플랜트 설비)의 건설과 보수 등을 담당하는 ‘공사 계약직’ 노동자들이다. 미장, 용접, 배관, 전기공이라 하더라도 이들은 공단지역을 기반으로 상시적인 일자리를 공급받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포항제철, 여수산업단지 등 공단을 기반으로 한 곳에 모여 있기 때문에 비교적 노조가 조직을 빨리 확장 할 수 있었다.
현재 조직된 플랜트노조는 올해 공동임단협을 진행했던 여수지역건설노조, 포항지역건설노조, 전남동부지역건설노조와 지난 1월에 창립한 울산공단을 중심으로 한 울산플랜트건설노조 등 4개가 있다. 4개 노조 조합원을 모두 합치면 약 3만여명. 신생노조인 울산플랜트건설노조의 경우는 주로 SK의 하도급 업체들이 교섭대상이지만 아직까지 사용자단체가 구성돼 있지 않아 임단협 교섭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4개 지역건설노조들이 지난 5월 ‘전국플랜트건설노조협의회’를 설립했다. 올해는 아직 협의회 차원의 공동 임단협안을 마련하지 못했지만, 각각의 안으로 임단협 교섭을 하되 우선 시기를 맞추는 것으로 공동 임단협 투쟁의 첫 걸음을 땠다. 물론 공동의 요구는 있었다. 이들의 핵심 공동 요구는 전기, 용접, 기계 등 직종별 임금하한제(직종별로 최저단가를 설정하는 것)로 결정되던 임금을 단일한 ‘생활임금’(일당 12만원)으로 묶자는 것이다. 기존 직종별 임금하한제가 임금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경향이 있고, 어느 한 직종의 단종업체들이 담합해서 교섭에 나서지 않을 경우 임단협 타결에 애를 먹기도 했기 때문이다.
당시까지 받고 있던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일당은 7만8,500원. 일을 하지 못하는 우기와 동절기를 제외하고 따질 경우 연봉이 대략 1,700만원에 불과해 평균 46세를 넘긴 가장들이 생계를 책임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들의 요구는 임금을 인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업체들은 “원청업체인 포스코가 공사 실행단가가 지속적으로 삭감하고 있어서 어렵다”며 완강하게 ‘임금동결’을 주장하고 나섰다. 결국 노조가 광양·포항제철의 대부분 물량을 발주하고 있는 포스코에 공사 발주단가를 올려 달라고 요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실제 업체들이 포스코에 책임을 돌리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포스코는 매년 순이익 증가율이 60~70%에 달한다. 그런데 지난 98년 이전에는 설계가의 95%선에서 공사발주를 하던 것을, 현재는 설계가의 77%선에서 발주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시공업체인 포스코건설에서 공사금액에서 20% 이상을 삭감해 재산정하고, 또 삭감된 공사금액의 82%선에서 하도급을 주는 방식으로 저가도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속칭 ‘노가다꾼’들의 ‘집단 상경’은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최초의 공동임단협 타결!
그러나 ‘강남대로 상경투쟁’ 이후에도 집단 상경했던 3개 노조의 교섭상황은 모두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단지 여수지역건설노조만이 7월31일 조합원들이 여수시청을 점거한 채 15시간이 넘게 마라톤 협상을 지속한 끝에 임금을 제외한 단체협약에 잠정합의하고 현장에 복귀했다. 여수의 노사는 쟁점이 됐던 공휴일 유급화와 관련, 노조에서 제안했던 9개의 공휴일 중 7개 공휴일은 유급으로 하는 것으로 절충하면서 합의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업체들은 임금교섭을 재개하기는커녕 기존에 합의된 단체협약의 조인마저도 거부하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포스코 하청업체들을 상대로 하는 광양과 포항 노조의 상황은 더 나빴다. ‘강남대로 상경투쟁’ 당시 포스코의 계약담당 상무와 설비구매담당 상무, 포스코건설 사장이 자리한 면담에서 포스코 쪽이 “임금과 근로조건, 각종 후생복지시설은 물론, 저가도급, 덤핑낙찰 문제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단종업체들의 태도가 전혀 변화 없었던 것이다. 포스코가 노조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거나 혹은 단종업체들이 노조의 파업을 기회로 자기 이익을 차리고 노조의 기를 꺾으려는 것 둘 중에 하나였다.
결국 전남동부지역건설노조, 포항지역건설노조는 포스코와의 ‘2차 전면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8월5일 새벽 전남동부지역건설노조 조합원 1,200여명은 광양제철소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목인 태인동, 금호동 2개의 다리를 불시에 전면 봉쇄하고 물자반입을 완전히 막았다. 17일에는 포항제철 앞 형산강 다리를 점거하면서 극단적인 대치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 농성의 강제해산을 위해 30개 중대 경찰병력이 서울에서부터 지원되었고 헬리콥터까지 동원되는 등 공권력과의 마찰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8월19일 포항건설노조가 단종업체들과 가진 최종 교섭에서 기계공 일당 9만원(기존 7만8,500원) 전기공 8만3,000원(기존 7만4,000원) 임금인상에 전격 합의했다. 뒤를 이어 23일에 전남동부건설노조도 포항건설노조와 동일한 수준의 임금인상에 잠정합의했다. 또한 2차 파업 직전의 위기까지 갔던 여수지역건설노조도 이날 5% 인상된 일당 9만3,200원으로 인상하는데 최종 합의, 임단협 조인식을 갖고 쟁의행위를 완전히 접었다. 이로써 46일에 걸쳐서 진행됐던 플랜트노조들 최초의 공동임단협이 최종 마무리되었다.
거대 원청 포스코를 상대로 한 싸움의 값진 경험
이번 플랜트노조들의 임단협 교섭의 가장 큰 특징은 전국플랜트노조협의회 설립 원년인 올해 3개 플랜트노조 4,700명 조합원이 참여해 첫 대규모 공동임단협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교섭대상인 단종업체들 역시 전에 없이 강경한 태도로 교섭에 임했다. 사실 이번 합의는 이러한 갈등 속에서 노조가 임금인상 폭을 대폭 양보했기 때문에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노조들이 핵심 공동 요구로 제기했던, 직종별 임금하한제를 폐지하고 직종에 관계없이 단일한 ‘생활임금’으로 묶어보려 했던 시도는 여전히 과제로 남게 됐다. 일단 교섭 결과가 생활임금 수준(일당 12만원) 선에 미치지 못 했으며, 올해도 기계공과 전기공과의 임금 사이에 차등을 둔 채 타결을 봤던 것이다.
한편, 무더위 속에 파업이 길어지면서 노조가 주 발주처인 포스코를 상대로 진입로를 차단하거나 대규모 노숙농성을 하는 등 투쟁수위를 높이는 과정에서 이를 진압하려는 경찰과 물리적 마찰이 잦았다. 이 때문에 노조간부 20여명에게 체포영장이나 출두요구서가 발부됐는데,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도 여전히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번 플랜트노조협의회 차원의 첫 공동 임단협 교섭 성과는 큰 것으로 평가된다. 그 성과는 무엇보다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발주처인 초거대기업 포스코를 상대로 투쟁을 했다는데 있다. 플랜트노조협의회 백석근 의장은 “비록 형식적으로는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 하청업체인 단종업체들과 교섭을 하지만 저가발주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열쇠는 포스코가 쥐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며 “이번 공동파업을 통해 조합원들이 그런 한계를 명확히 깨닫고 포스코를 상대로 한 강도 높은 투쟁을 흔들림 없이 진행하면서 하청노동자들의 유일한 힘인 조직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 큰 성과다”고 말한다.지금 누가 ‘협박’하고 있는가
플랜트건설사업장의 경우는 원하청 구조가 비교적 단순한 편이지만, 아파트 등 일반 건축현장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만연해 있다. 이러한 하도급구조 때문에 공사비의 상당부문이 새 나가, 하청업체들은 산업안전에 쓸 돈을 빼돌리고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어 근로기준법 자체가 아주 죽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건설현장에서 매년 수백명이 산재로 죽는데, 그나마 사망이 아니면 사고는 은폐되고 만다. 이렇듯 기본적인 노동기본법조차 실종되었는데도 그 책임을 져야할 원청회사가 이를 방기하고 있어, 건설현장에서의 투쟁은 원하청 업체를 상대로 “기본적인 법을 지켜라”하고 요구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9월부터 검찰과 경찰은 지역건설노조들이 원청 시공업체들로부터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전임비를 지급받는 것이 ‘공갈협박’과 ‘금품갈취’라며 조사에 나섰다. 지난 2000년 10월 안산지역건설노조를 시작으로 지역건설노조들은 △근로기준법 준수 △산업안전 △노조활동 보장 △기타 복지시설 구비 △노조 전임비 지급 등을 내용으로 하는 단체협약을 원청 시공업체와 직접 체결해 왔다. 이렇게 활동하고 있는 지역건설노조는 전국에 9개가 있고, 이들 노조 산하에 39개 지부가 있으며, 단체협약을 체결한 현장은 300여개가 넘는다.
그런데 이 단체협약의 체결과정에서 노조가 “단협을 체결하지 않으면 산업안전법 위반 사항을 고발하겠다”고 한 것이 ‘공갈협박’이고 회사가 노조에 주는 전임비가 ‘금품갈취’라는 것이 검찰과 경찰의 논리다. 지금까지 지역건설노조에 대한 검찰수사와 관련해 수배자가 20여명에 이르며 대전, 천안, 경기 등에서 10여명이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지역건설노조들은 이 수사의 중단을 촉구하며 명동성당에서 현재까지 260일 이상을 천막농성하고 있다.
뭔가 달랐던 2004년 임단협
이러한 상황임에도 플랜트노조 뿐 아니라 일반 아파트나 대형 건물 등의 일반 건축현장에서 일하는 지역건설노동자들의 움직임도 올해는 ‘뭔가’ 달랐다. 대구에서는 지난 5월 골조업체에 고용된 철근 노동자 1,000여명이 집단으로 노조에 가입하고 파업을 한 끝에 ‘임금 1만원 인상’, ‘점심시간 1시간 보장’, ‘조합원 우선고용’ 등 대부분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철근 노동자들은 공사현장의 초기 골조건설 업무에 투입돼 1~2일 일하고 다른 현장으로 옮겨 다니기 때문에 지역에 대한 소속감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이처럼 결집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워낙 열악했던 처우에 대해서 불만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가장 크게 불만의 대상이 된 것은 일명 ‘스메끼리’ 관행으로서, 현장 종료 후에도 급여가 2개월 이상 지나야 나오는 만성적 임금체불 구조였다. 노조는 이러한 관행을 근절할 것을 적극 제기했다. 골조 단종업체들은 “단종업체 차원에서 이를 개선할만한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결국 파업 5일 만에 손을 들고 개선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대규모 아파트단지 공사현장인 용인동백지구에서는 지난 7월14일 지역건설노조로는 최초로 ‘유급주휴’를 요구하며 합법적인 쟁의조정 과정을 거쳐 파업에 들어갔다. 이 파업을 통해 노조는 원하청 실무교섭단 구성 등 원하청 교섭틀을 마련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최근 회사 쪽이 교섭을 거부하면서 다시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그러나 이처럼 일반 건설현장에서 일요휴무제나 임금인상을 요구로 노사협의틀을 구성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의미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지역일용건설노조가 원청 시공회사와 체결해온 단체협약은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준수하겠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하지만 용인동백지구는 직종별 최저임금을 노조와 협의해 정하고 이를 준수키로 하는 등 실질적인 건설일용노동자의 임단협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뜨거웠던 여름, 더 뜨거웠던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열기
지역건설노조들이나 플랜트건설노조들이나 모두 공통적인 요구는 더도 덜도 아닌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법 등 노동기본권을 지켜라”는 것이다. 거기에다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생활임금’을 달라는 것이 임금인상 요구 수준이다. 이렇게 ‘소박한’ 요구를 내건 파업이 40여일을 넘길 때까지 ‘귀족노조 파업’을 비난하던 어떤 언론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올해 임단협 체결을 위한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전남동부지역건설노조의 한 조합원은 이번 파업에 대해 “날품팔이라 불렸던 건설현장의 늙은 노동자였지만 노조를 통해서 그동안 인간대접을 받지 못했던 억울함을 분출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10여년만의 극심한 더위로 전 국토가 몸살을 앓은 올 여름, 이들 늙은 건설 노동자들은 제철소의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형산강, 태인동 다리에 드러누워 거대기업 포스코와 처절한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정당하고 소박한 노조활동에 대해서 공갈협박과 금품갈취라는 파렴치한 죄목을 갖다 부치는 파렴치한 공안세력, 건설자본과의 싸움이 있었다.
올해는 다른 여느 때보다도 많은 건설일용노동자들이 이러한 투쟁에 나섰다. 그것은 곧 이들이 오야지를 따라서 하루하루 막일을 하며 연명하던 ‘노가다’에서, 건설산업 분야의 숙련된 기술을 가진 노동자로서 자신의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고 찾아나가는 건설노동자로 거듭나는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