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식민지 전쟁이 결정적 파산 지점에 이르고 있다. ‘팔루자의 학살’ 이래 미국은 이라크의 민중을 상대로 하는 전면적인 학살 정책이 아니고서는 점령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으며, 이는 ‘이라크 해방’을 내세운 미국 부시 정권의 이라크 정책이 정치적?도덕적 근거를 완전히 상실해버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아메리카 제국주의는 파탄 지경에 몰리고 있고, 그에 동조한 노무현 정권의 침략동조 파병논리 역시 급속도로 붕괴하고 있는 중이다.
전쟁이 시작된 이래 미군 희생자가 700명에 이르렀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조차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할 정도다. 그 역시 ‘관리 불능’의 현실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으로 인기를 얻었다가 이라크 전쟁으로 망해가고 있다. 역시 칼로 선 자, 칼로 무너지는 법이다. 아메리카 제국주의는 지금 결정적 전환 국면에 봉착해있다.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선택이 아니라면 미국의 장래는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부시, 이라크 수렁에서 허우적대다부시의 재선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전쟁 지지 여론이 전쟁 초기 85%에서 지금은 35%까지 떨어졌고, 미국인의 절반 가량이 철군을 요구하는 판이다. 지난 1968년 베트남 전쟁 당시에도 전쟁지지 여론이 40% 이하로 내려가면서 결국 미국은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내부 동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는데, 부시 정권이 지금 바로 그러한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부시는 기자 회견을 통해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 억압에 짓눌린 국가를 해방시키는 나라이다. 민주주의의 적인 테러분자들을 계속해서 분쇄하겠다”며 강경 대응 기조를 바꿀 생각이 전혀 없음을 밝혔다. 영국의 블레어 총리 또한 공동발표를 통해 미국과 영국의 공조가 지속될 것임을 강조했다. 이들은 “이라크 사태를 이렇게 혼란에 빠뜨리는 소수의 극단주의자들과는 타협이 없다”는 식으로 이라크 민중들의 총체적인 저항을 일부의 저항처럼 축소?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사태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고 있고, 부시는 계속 궁지에 몰리고 있다.
한편, 워싱턴 정가에 대한 심층취재로 이름이 난 밥 우드워드는 새로운 책 『공격 계획(Plan of Attack)』에서 부시의 전쟁정책이 기만에 기초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유엔의 조사 결과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음에도 부시 정권이 조사 결과와는 전혀 관계없이 전쟁을 결정해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밥 우드워드는 콜린 파웰 국무장관이 이라크 침공계획을 사전에 전달받지 못하고 결정과정에서도 제외되었다는 이른바 ‘워싱턴 핵심세력 내 파웰 왕따론’을 주장했다. 외교적 해결의 여지를 완전히 무시한 채 전쟁으로 치달은 부시 정권의 추악한 속내를 폭로한 것이다.
재건특수 노리던 자본들도 철수 움직임
미국이 이라크에서 처한 곤경 가운데 특히 주목할 바는 이라크 민중들이나 게릴라의 공격으로 미국 주도 사업들이 중단되거나 철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벡텔(Bechtel Corp.)이나 딕 체니가 관여하고 있는 핼리버튼(Haliburton)의 계열사 켈로그 브라운 앤 루트(Kellog Brown & Root)사의 건설 사업 등이 안전 문제 때문에 더 이상 작업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60억달러 건설공사 자금도 유입이 중단되는 등 이른바 이라크 재건 프로젝트는 벽에 부딪히고 있다. 이라크 전후 복구와 재건을 명분으로 전쟁을 지지해왔던 미국의 대독점 자본이 그 부메랑 효과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한편, 이라크 내 미군 점령체제에 대한 격렬한 저항을 불러온 결정적 계기가 된 팔루자 학살은 네명의 미국 민간인 살해로 촉발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맥락을 미리 알고있어야 할 것이다.
팔루자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 이후 매우 강력하게 저항을 했던 지역으로서, 이 지역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미군 점령당국은 지난해부터 상당한 고강도의 통제와 진압을 거듭해왔다. 팔루자에서는 지난해 11월, 시위를 벌인 주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 후 저항세력 색출이라는 명목으로 이 지역 남성들을 대대적으로 체포·구금하면서 미군 점령당국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이 절정에 이르고 있던 참이었다. 게다가 6월 말로 새롭게 등장하게 될 이라크 정부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저항세력을 척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 때문에 미군 점령당국의 팔루자 주민들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었다. 미국 민간인 살해 사건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터진 것이다.팔루자 학살, 그 진상과 미국의 야만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이 미국 민간인들은 ‘비무장 민간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블랙워터 보안회사(Blackwater Security Consulting)’ 소속으로서 고강도의 군사작전을 대리하는 준 군사요원이었다. 블랙워터 보안회사는 전직 군인, 경찰, 정보원 등을 고용하여 위험도가 높거나 정부가 직접 개입하기 껄끄러운 일들을 수주 받아 행하는, 말하자면 국방부와 깊은 연계를 가진 ‘청부업체’이다. 일종의 용병 시스템인 것이다.
미국에는 이렇게 군 또는 국방부, 정보부, 경찰과 연결되어 위험하거나 또는 정부의 공식관여를 은폐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용병시스템을 운영하는 회사들이 존재한다. 이 회사들은 제3국의 친미정권 유지를 위해서 현지 군인 또는 경찰들의 훈련을 담당하는 활동을 해왔다. 따라서, 이라크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들의 활동은 이라크 민중들에게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이 회사 직원들이 이라크 민중들의 반격 대상이 된 것이다. 침략자에게 우호적인 식민지 민중을 기대한다면 모르겠거니와, 이들 준 군사요원들의 활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는 이라크 민중들의 이러한 행동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었다.
사태의 진상이 이럼에도 미국은 이 사건을 빌미로 F-15를 비롯한 전투기를 출격시키고 미사일을 퍼부어 팔루자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민간인 거주지역을 무차별 포격하여 야만적인 유혈사태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는 6월30일로 예정된 주권이양에 대해서 논란이 발생하자 미국은 이라크의 주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상황에 대처하겠다고 주장했다. 신생 이라크 정부에 대해서 미국의 식민지적 지배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굴러가게 되면 이라크 민중들의 항쟁은 더욱 격렬해질 것이다. 그에 따라 미국의 이라크 민중 학살 작전은 유례를 볼 수 없는 사태로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점령체제 종식을 근본적으로 요구하는 이라크 민중들의 저항을 미국은 도대체 무엇으로 해결 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에 대해서 민중들이 정치적으로 순종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게다가 그 ‘꼭두각시 정권’이 미국의 의도에 완전히 굴복하지 않을 경우에도 또한 간단치 않은 사태가 발생할 것을 뜻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자멸의 늪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파병신중론’은 기회주의 논리
노무현 정권과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바로 이 야만의 소용돌이 속으로 우리의 군을 국민적 의사도 분명하게 묻지 않은 채 계획대로 투입하겠다며 반민주적?반역사적?반평화적 의지를 고수할 것을 밝혔다. 반기문 외교통상장관은 한국인이 납치되고 희생되어도 파병을 고수할 것이라는 발언을 해, 노무현 정권의 이라크 침략전쟁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것인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한편 총선이 끝난 이후 열린우리당 일부에서 이라크 정국의 불안한 현실을 내세워 ‘신중론’ 내지는 ‘파병 연기론’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사태변화에 따라 파병을 결정하겠다 것으로 매우 기회주의적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이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역사의 진전 속에 제국의 침략전쟁에 가담하는 것을 포함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전범집단이 무방비의 민간인 학살을 ‘불가피한 상황의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는 것과 논리적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자주독립을 원하는 이라크 민중들의 가슴에 총구를 겨냥하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거듭 강조하건데, 열린우리당이 냉전수구세력으로 지목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적극적 공조로 이루어낸 이 전투병력 위주의 추가파병계획 추진은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있는 헌법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이는 헌정 파괴행위이다. 뿐만 아니라 이 나라를 침략전쟁에 동원되는 식민지 용병국가로 전락시킴으로써 평화와 관련된 국가 윤리기반을 파탄내는 행위이다.
서구 제국주의 지배사 꿰뚫어 봐야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제국의 분할지배와 특히 이라크에 대한 공동점령을 비밀리에 협약한 1916년 ‘사이쿠스-피코 협정(Sykes-Pikot Agreement)’이래, 이라크는 줄곧 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침탈로 인한 고통을 겪었다. 영국은 이 비밀 협정 이후 1917년에는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1918년에는 세계 최대 원유매장지인 모술을 점령했고, 1920년에는 ‘산 레모 조약(San Remo Treaty)'으로 이 지역에 대한 지배를 국제적으로 확정했다.
영국은 같은 해인 1920년 이라크를 신탁통치 하의 보호령으로 선포했다. 그리고 이라크인들의 격렬한 저항과 반제투쟁이 전개되자 대대적인 학살로 이를 진압했다. 그러나 1920년 반영투쟁은 우리의 1919년 3?1 민족항쟁과 마찬가지로 이라크 민중들의 역사의식 속에 강력하게 자리 잡은 사건으로, 오늘날 미 점령군에 대한 저항의 저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6월30일 주권이양에 제한을 두겠다는 행태는 1920년 영국의 신탁통치 상황과 동일한 것이다. 이에 대한 이라크 민중들의 반응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기 경악해 마지않을 사건으로서는 당시 영국의 전쟁부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이라크는 가스탄을 실은 공군과 4천명의 영국 육군, 그리고 1만명의 인도병력을 동원하면 쉽게 장악할 수 있다”고 공언하며, 이를 실천한답시고 이라크 민간거주 지역을 폭격하여 폐허로 만든 일이었다. 이 사건은 이라크 민중들에게 서구 제국주의의 악랄함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겨 놓았다.
이렇게 상황을 야만적으로 진압한 영국은 직접통치에 대한 저항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파이잘 1세를 이라크의 국왕으로 앉히고 보호령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하지만 이라크 내 저항은 끊이질 않았고 결국 1932년 파이잘을 그대로 둔 채 보호령을 철폐, 형식상의 독립을 부여했다. 그러나 1941년 민족주의 군부에 의해 파이잘이 정치적으로 제거되면서 영국은 이라크를 다시 침략, 파이잘을 재옹립 하는 등 이라크에 대한 식민지배의 기득권을 놓지 않았다.
2차대전 이후 중동의 지배권을 넘겨받은 미국은 영국 제국주의의 유산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그리고 보다 강력한 지배력을 발휘하여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이라크를 포함하여 중동지역 전체에 대한 식민 지배를 폭력적으로 유지, 강화하려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몰락
이번 이라크 침략도 지난 12년 동안 어린아이들 50여만명이 약품과 식량 부족으로 죽어가하는 등 살인적인 경제제재 속에서 이라크 국가역량이 최소화된 가운데 저질러졌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 이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과 점령체제 유지가 2차대전 시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과 본질이 다르지 않은, 인종주의와 폭력, 파괴에 기초한 야만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식민지 지배체제의 종말은 오고 있다. 1950~60년대의 격렬했던 제3세계 민족해방 투쟁이 1970년대 베트남 전쟁으로 그 절정에 달해 미국의 세계 패권에 일대 타격이 가해졌다면, 21세기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몰락은 이라크 민중들의 항쟁에서 명백하게 예고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세계사적 진전이 될 것이다. 전쟁을 통해 자본의 탐욕을 추구해온 체제의 궁극적인 패배가 모두에게 뚜렷이 인식되는 중대한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렇게 벌어지고 있는 지구촌의 비극적 현실 앞에서, 양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누구나 국가 경계선을 넘어서 연대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거대한 역사의 함성으로 그 구체적인 실체를 드러내야 할 것이다. 제국의 시대는 끝나야 하며, 진정한 인류 번영의 세계협력을 추구하는 노력이 이 시대의 대세가 되어야 한다.
“침략파병 절대 반대!”
그리고 그 시작의 열쇠는 제국의 전쟁을 실패로 만드는 일이다. ‘침략파병 절대 반대’를 통해, 이 시대의 세계사적 양심과 시대적 필연에 충실한 우리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에 실패한다면, 우리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주의의 식민지 주구(走狗)가 되어 이라크 민중들의 가슴에서 한 맺힌 피를 흘리게 하는 야만적인 범죄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침략파병의 논리를 정당화하면서 이 나라를 전범국가로 만들고 있는 노무현 정권을 비롯한 일체의 침략주의 추종세력에 대한 결연한 투쟁이야말로 제국주의의 사슬에서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먼저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인류 양심과 평화를 향한 세계사적 이정표를 세우는 위대한 헌신이 될 것이다. 평화와 진정한 해방을 향한 우리의 투쟁을 멈춰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