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노조의 대등한 경영참여가 이뤄내는 것

노동사회

강한 노조의 대등한 경영참여가 이뤄내는 것

admin 0 4,765 2013.05.12 07:14

지난 6월 말, 독일의 대기업 지멘스(Siemens)사와 당회사의 작업장평의회(Gesammtbetriebsrat) 그리고 금속노조(IG Metall)는 사측이 헝가리로 회사이전을 하면서 직원 2만명을 감원하려던 계획을, 임금보전 없이 주당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높인다는 조건 하에 철회하는 내용의 노사합의에 도달했다.

그간 독일에서는 노동시간의 유연화 방안이 계속적으로 진행되어 왔으나, 노동시간의 증대는 언제나 임금보전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에 지멘스에서의 협약은 노동 측이 획기적인 양보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협약을 통해 노동 측은 그간 금기시 되었던, '임금보전 없는 노동시간 증대'에 동의한 점에서는 큰 양보를 하였지만, 다국적기업의 압력에 완전히 굴복하지 않고 다소 수세적이지만 경영참가의 전통적인 방식을 통해 생산지 이전을 저지해 내는 성과를 얻어냈다.

한편, 이 소식을 접한 직후에 필자는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일간지인 『한국경제신문』의 인터넷판을 통해, 지멘스의 노사합의에 대한 보도와 해석을 접했다('독일 지멘스 노사상생의 빅딜', '세계최강 독일 노조 실리위주로 전환- '강경노선 고집땐 공멸' 확산', 『한국경제신문』 2004년 6월25일). 『한국경제신문』은 우리나라 최대의 경제단체가 대주주로 있기 때문에 그 동안 한국 재계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해 온 신문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멘스 노사합의에 대해, 한 마디로 세계화 시대 독일의 전투적 노조도 기업의 어려움을 감안하여 실용적으로 노선을 바꾸고 있으니 한국의 강성 노조들도 보고 한수 배워야 한다는 뉘앙스의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독일에서 노사관계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는 『한국경제신문』의 이러한 해석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웠다. 『한국경제신문』의 해석은 독일의 노사관계 시스템과 지멘스 합의의 실상의 포괄적인 부분은 생략한 채 '노조가 양보했고, 그것이 곧 이성적이다'라고 하는 식으로 사안의 일면만 부각시키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것을 통해 노조의 경영참가의 관행의 쇠퇴와 불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점에서 왜곡의 소지가 있다.

주35시간에서 40시간으로, 놀라운 노사합의?

지멘스사가 기업의 작업장평의회 및 금속노조와 체결한 협약은 '고용, 경쟁력 및 혁신의 보장 및 발전에 대한 기본협약'이었다. 독일의 노조와 작업장평의회는 기본적으로 기업경쟁력의 증진과 경영혁신에 대해서 언제나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 왔다. 작업장평의회의 경영참가는 계속해서 경쟁력 강화와 혁신의 증진을 요구하는 것이었으며, 노동의 이해대표 단체들은 경쟁력과 혁신의 증진은 고용안정이 보장되었을 때 더욱 더 가능하다는 논리를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90년대 이후 여러 기업들에서 다양한 방식의 작업장 노사관계 개혁프로그램이 마련되었고, 그것은 회사가 경영위기에서 벗어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라고 하는 쓴 처방을 맛보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소위 '모든 일자리에는 얼굴이 있다'라고 하는 일반화된 모토는 고용안정을 소중히 생각하는 독일 노사의 입장을 잘 대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멘스사에서 체결된 협약은 기본적으로 독일 노동운동의 일관된 입장과 최근의 경향으로부터 크게 벗어나는 '놀라운 사건'이 아니었다. 지멘스로부터 다시금 확인되는 독일 노사관계의 이러한 관행은 오히려 90년대 중반 이후 정리해고제를 법제화하고 실행하기 위하여 사활을 걸고 매달려 온 한국의 사용자들의 태도에 비추어 보았을 때만이, 정말 놀라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지멘스사에서의 이번 협약은 하나의 보충협약이었다. 그것은 지난 3월에 독일의 작은 도시 포르츠하임에서 금속노조와 금속사용자단체간에 체결된 산별수준의 단체교섭 결과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한다는 전제에서 체결된 '예외적인 협약'으로서, 2년간 한시적으로 유효한 것이었다. 이 역시 최근 독일 노동운동의 기본적인 전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면모이다. 최근 독일의 노조는 최대한 개별 기업 외부에서 산별수준의 노사대표간에 체결된 단체협약을 준수하되, 일시적으로 개별 기업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여 만일 그것이 해당기업 내에서 고용안정을 증진시키고 경쟁력을 생산해 낼 수 있는 방안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산별수준에서 체결된 조항으로부터 다소 벗어나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는 원칙을 갖고 행동하고 있다.

이처럼 소위 '교섭의 하향화'와 '예외조항의 활성화'라고 하는 현상은 산별교섭의 원칙과 충돌하며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개별 기업의 경영상황에 대한 작업장평의회와 노조의 투명한 이해를 전제로 해서, 더불어 해당 기업 노동자들의 장기적인 이해인 고용안정을 증진시켜야 한다는 보편적인 원칙을 지키면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은 노동시간을 연장시키는 것일 수도 있고, 더욱 더 단축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합의와 소통 그리고 "이성의 승리"

이번에 지멘스에서의 협약 역시 이러한 최근의 관행의 연속선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지멘스사 사장이 협약의 체결 이후 "이성의 승리"라고 표현한 것은 그야말로 노사간에 상황을 인지하고 서로의 이해를 존중하는 '소통 이성의 승리'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소통이성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한국 기업에서의 관행과 비교하면 이는 참으로 생소한 노사관계의 모습이다. 특히 언제나 '경영상의 필요', '경영의 고유권한'을 역설하며, 기업의 장기적인 전략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노조를 배제시키고만 싶어하는 우리의 사용자들의 관행에 비추어 보았을 때는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멘스의 노사가 임금보전 없이 주4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연장하기로 한 것은 독일에서도 상당한 이데올로기적인 효과를 지닌다. 보수당인 기민당(CDU)과 기사당(CSU)의 수뇌들은 지멘스의 결정을 주35시간이라고 하는 독일의 특수한 길로부터 보편적인 수준으로 정상화된 것이라고 호평을 하고, 독일의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을 계속해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급 경제단체장들 역시 지멘스의 결정을 환영하는 논평을 내놓았다. 여당인 사민당의 정치가들 역시 맥락은 다소 다르지만 노사가 합의를 통해 결단을 내린 것을 존중하며, 지멘스의 결정을 현명한 방안이자 권장할 만한 것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노조는 합의 결정 이후 자신의 근본취지와 달리 지멘스에서의 협약체결이 지니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인 효과를 우려하면서, 이러한 추세가 결코 단체협약상의 노동시간 전반의 연장으로 이어지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굳건히 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의 과감한 왜곡

여기서 잠시 『한국경제신문』의 기사 내용을 살펴보겠다. 『한국경제신문』의 신동열 기자는 이번 합의를 보도하면서 지멘스 노동자들이 '임금상승 없는 노동시간 연장'에 합의한 것은 '강성노조로 유명한 독일에서 상생적 노사관계가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강경 노선 고수에 식상한 조합원들이 줄지어 노조를 탈퇴하고 있는 것도 노사상생 쪽으로 분위기를 유도해 가는 요인이다'는 등의 논평을 하였다.

이러한 기사를 통해 『한국경제신문』은 독일이 마치 한국과 마찬가지로 노사대립의 관행이 지배적인 나라인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은 제도상, 관행상으로 오랫동안 지구상의 그 어느 나라보다도 철저하게 사회통합적, 노사합의적 노사관계의 전통을 유지해 온 나라다. 특히 이번 합의야말로, 독일의 노사가 대립적 관행을 반복하다가 갑자기 합의주의를 채택한 것이 아니라, 심한 경제침체로 인하여 자칫 대립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주의의 오랜 전통을 재현해 냄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은 독일식 합의주의는 근본적으로 일본식의 '굴종적 합의주의'가 아니라 '대등적 합의주의'라는 점이다. 즉 그것은 노사간 대등한 힘의 균형을 추구하며, 상호이해의 근본적인 상충을 전제로 마련된 제도적인 기제들 위에서의 합의주의이다. 따라서 지멘스 합의의 성공이 강성노조 전투주의의 보편적 관행으로부터 이탈한 새로운 것인 양 보도하는 것은, 독일에서의 사건을 독일의 맥락에서가 아니라 한국의 맥락에서 바라보면서 취하는 이데올로기적 해석일 수 있다.

당일, 같은 지면을 통해 윤기설 기자는 더욱 과감하게 왜곡된 해석들을 서슴지 않고 내놓았다. '독일노조들은 고용안정만 보장된다면 임금인상 없이도 근로시간연장에 합의하고 있으며 노동관련법에 보장된 경영참여도 회사경영에 걸림돌이 될 경우 포기하고 있다', '상급단체 금속노사의 근로시간연장합의에 따라 개별사업장의 근무시간 연장도 줄을 잇고 있다', '또한 노조는 기업의 경쟁력강화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기업의 경쟁력경화를 위해선 근로시간연장뿐 아니라 임금삭감도 수용할 것을 다짐한 것이다 여기에 법적으로 보장된 경영참여에도 노조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의 고유권한인 경영에 깊숙이 관여해 봐야 오히려 투자결정에 걸림돌만 될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등의 논평은 사실과도 어긋나며, 이번 지멘스 합의와도 무관한 해석들이다.

지멘스에서 노사합의는 노동이 경영참가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아니라 '잘 되는 경영참가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확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리고 상급단체 노사가 근로시간의 연장을 합의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특수 개별사업장의 상황을 엄밀한 검토를 통해 이해한 이후에 상급단체간의 합의로부터 일정기간 벗어날 수 있도록 한 것일 뿐이다. 기업의 경쟁력에 (이제야)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식의 표현도 이미 70년대 이후부터 그룹노동의 도입, 노동의 인간화 전략, 고숙련과 기술혁신에 높은 의미를 두고 관여해 온 독일 노조의 수 십 년간의 노력을 생각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지적이다.

일방적 양보가 아니라, 강한 노조의 장기이해 관철

『한국경제신문』의 기사가 지니는 특히 큰 문제는 이번에 노사합의의 정치적 교환을 통해서 독일의 금속노조와 지멘스의 노동자들이 얻어낸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성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멘스의 합의는 독일의 관행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일종의 '양보교섭'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기본적인 틀은 경영참가의 제도와 관행을 통한 것이었고, 그 내용도 어느 정도 대등하고 섬세한 정치적 교환이었지 일방적인 양보가 아니었다. 이번 합의에서 주목할 점은 노조가 임금과 노동시간에서 다소 양보를 통해 기업의 해외이전이라고 하는 구조적인 변화요인 자체를 차단하면서 고용안정을 지켜냈다는 사실이다.

노동의 입장에서 이는 단기적 이해를 양보하면서 장기적인 이해를 수호한 것이다. 이는 노조가 힘이 약해지고 투쟁노선을 포기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이해를 관철시켜 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노사신뢰에 기반한 독일식 경영참가 관행의 산물이며 그러한 관행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지멘스의 노사합의를 보면서 한국의 노동조합에게 '경영참가를 포기하라'는 함의를 전달하고자 하는 시도는 상황을 완전히 거꾸로 해석하는 어불성설 그 자체라고 하겠다.

한국 자본주의의 규모가 커지고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다국적기업으로 변모하면서, 비용절감을 위해 해외이전의 필요를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독일의 조직노동과 기업 내부 노동의 이해대변체들이 강한 제도적 기반과 협상력을 통해 다국적 기업의 무분별한 해외이전 결정을 수세적이나마 제어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에 반하여, 한국에서 노동의 정치력은 독일에서처럼 강하게 제도화되고 성숙해 있지 못하다. 때문에 한국 노동자들은 대기업의 생산지 이전에 대해 적절한 제어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업이 해외로 생산이전을 한다고 할 때 한국의 기업별 노조가 이를 사전에 인지할 수 있는 공식적인 정보루트는 차단되어 있고,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정치력 역시 취약하다. 격한 투쟁을 지양하면서도 제도화된 교섭력의 자원을 통해서 자신들의 장기적인 이해를 관철시켜내는 독일의 노조와 달리, 한국의 노조는 취약한 제도적 기반에서 늘 기업 내부에서 '사활을 건 투쟁'을 해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지멘스의 노사합의는 오히려 한국의 노조에게 노조의 힘이 강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노조가 기업 경영에 어느 정도까지 전략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인지를 일깨워주는 사례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영참여가 노사관계와 기업경영의 안정 및 산업평화를 이룰 수 있으며, 세계화시대에 노사 모두의 합리적인 생존전략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상생하자면서 굴종 강요해서야

21세기에 접어들어 한국 노사관계가 변화와 상생의 길을 가야한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회적 합의주의 노사관계를 운영하는 대표적인 나라들 가운데 하나인 독일로부터 우리가 무언가 배우겠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독일의 대등적 합의주의의 관행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행여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굴종적 합의주의를 강요하겠다면, 그것은 상생의 길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오히려 또 하나의 갈등적 노사관계만을 부채질하는 것일 수 있으며, 우리가 독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참된 시사점은 아닐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