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산업의 도급구조와 노동시장의 계층성

노동사회

자동차산업의 도급구조와 노동시장의 계층성

admin 0 9,139 2013.05.12 07:08

외환위기 이후 노동자들의 생활이 피폐해진 것은 이제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 그 노동자도 하나의 주체가 아니라 정규직·비정규직, 사내하청·사외하청, 고임금·저임금 등으로 분화되어 고용의 질 및 소득의 수준과 안정성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노동시장의 계층성’이란 입장에서 조명하고 그 원인을 추적하기 위하여 자동차산업의 사례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격차 확대의 원인으로서 도급구조를 통한 지불능력의 압박을 상정해볼 수 있기 때문에 1장에서는 자동차산업의 도급구조에 대해 알아보고, 그를 통하여 지불능력 격차의 정도와 요인을 살펴보았다. 이를 토대로 2장에서는 고용의 변화, 3장에서는 임금 격차의 실태를 알아본 후 4장에서 노사관계와의 관련성 및 노동운동의 대응방향을 도출해보고자 한다.

1. 자동차산업의 도급구조 변화와 노동자 계층 분화

자동차는 2만여개의 부품과 소재가 결합되어 생산되기 때문에 종합산업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광범한 기업간 생산네트워크를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네트워크는 도급구조를 특징으로 하는데, 이는 다시 사외도급과 사내도급으로 나누어진다. 사외도급은 전통적 부품조달체계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1차 하청업체가 다시 2, 3차 하청업체로부터 조달받는 중층적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사내하청으로 불리기도 하는 사내도급은 한 공장 내에서 생산라인의 일부를 위탁생산하는 형태로서, 자동차산업 내 비정규직의 일반적인 존재 양식이며, 불법파견 혹은 위장도급의 소지를 안고 있기도 하다.

사외도급의 경우, 우리나라 자동차부품산업은 다수 소규모 업체들의 특정 완성차업체 전속적 단층조달구조와 주로 계열사들로 구성되는 대규모 업체들로 구분되면서 수직계열화를 기본으로 하여 발전되어 왔다. 이는 기계산업이 먼저 발달한 구미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는 완성차 조립기술이 먼저 발전하고 점차적으로 부품을 국산화하면서 부품소재산업이 발달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환위기를 전후로 한 자동차산업의 급격한 구조재편에 따라 국내 생산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현대자동차그룹(현대, 기아자동차)의 수요독점적 지위가 강화되었으며,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계열사 체제가 성립되었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비해 복수업체에 대한 중층적 거래가 증가하고 120여개사에서 외국인이 50% 이상의 지분을 획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그룹의 시장지배력이 증대되어 중소 부품업체들의 완성차업체 종속적 거래특성은 오히려 더욱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더욱이 플랫폼 통합(차량 성능 관련 부품을 공유하면서 차체 외관을 차별화하여 다양한 모델 공급)과 모듈화(여러 부품을 조립하여 덩어리로 납품), 외주화, 전자조달 등의 경영기법이 확산되면서 부품업체들의 구조조정이 급격히 진행되고 상호 경쟁이 심화되어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간 지불능력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내도급의 경우 완성차 공장 내의 사내하청은 이미 1990년대 초중반에도 광범하게 존재했다. 외환위기와 현대 및 대우자동차의 정리해고 사태를 겪으면서 크게 줄어들었던 사내하청은 경기가 회복되면서 다시 급속히 증가하여 현대자동차의 경우 그 규모가 1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외환위기 이후 주목할 만한 변화는 부품업체들에서도 사내하청을 널리 활용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그림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노동시장에서 사외도급(횡축)과 사내도급(종축)이 중첩되면서 계층성이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

chosj_01.gif

요컨대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고 고용이 거의 보장된 완성차업체 및 부품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과는 달리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소규모이거나 2, 3차인 부품업체 노동자들은 임금수준 및 고용보장 정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일부 사내하청 노동자 및 2, 3차 부품업체 노동자들은 거의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림1]의 한계노동자). 

이렇게 노동자간 분화가 심화되는 것은 도급구조를 통하여 기업들의 지불능력 격차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그림2]에서 보듯이 외환위기 전후의 매출총이익률을 비교해보면 완성차업체는 상승하고 부품대기업은 하락하였다. 매출총이익률은 매출액에서 매출원가를 공제하여 도출되는데, 제조업에서 매출원가의 대부분은 제조원가이기 때문에 완성차업체의 매출총이익률 상승은 부품업체들에 대한 납품단가 압박이 심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부품대기업의 매출총이익률이 하락한 것은 제조원가가 일정하다면 납품단가 인하로 인하여 매출액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chosj_02.gif

이러한 비용에 대한 압박이 지불능력의 격차로 나타났을 것인 바, 이를 알아보기 위하여 [그림3]과 같이 완성차업체를 100으로 하여 1인당 부가가치의 규모별 상대치를 도출하였다. 그 결과 1인당 부가가치 격차가 1994년 이후 크게 확대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완성차와 부품업체간 자본장비율의 격차가 확대되어 부가가치 생산성의 차이가 확대된 데다가, 납품 단가 인하 등으로 부품업체들의 부가가치 창출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chosj_03.gif

chosj_04.gif

이렇게 하청업체들의 부가가치 창출 능력이 떨어진 가운데, 노동소득분배율, 즉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인건비의 비중은 어떻게 변동했는가를 살펴보자. [그림4]에서 보듯이 외환위기 이전에 비하여 자동차산업 전부문의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하였다. 이는 완성차업체의 경우는 고임금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으로 지불능력이 상승하였거나 고임금 정규직 노동자를 적게 유지하였음을 의미한다. 한편 하청업체와의 지불능력 격차 확대 과정에서 노동소득분배율마저 하락한 것은 부품산업에서 인건비 압박이 매우 심했을 것임을 시사하는 결과이다. 이러한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 혹은 인건비의 절감은 고용의 감소, 혹은 임금의 상대적 하락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하에서 보듯이 노동시장 계층화가 심화되면서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2. 고용의 변화

자동차와 연관된 노동자들은 유리, 섬유, 철강, 화학 등 여러 산업에 걸치지만, 일단 표준산업분류 D34(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에 속하는 완성차와 자동차 전문부품업체들만 포함했을 경우 노동자수는 외환위기 이전 22만명 수준에서 1999년 20만명 미만으로 줄어들었다가 최근에 다시 늘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과거 최고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자동차 생산량이 외환위기 이전에 비하여 더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표1]에 나타난 바와 같이 총고용의 감소 속에서 산업 전체의 종합 생산성은 외환위기 이후 한 단계 상승하였다.

chosj_05.gif

그렇다면 부문별로는 고용의 구성이 어떻게 변화하였을까? [그림5]에서 볼 수 있듯이 완성차부문의 고용은 계속 감소한 반면 부품산업의 고용은 빠르게 회복되어 왔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모듈화, 외주화 등이 널리 확산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음 [그림6]이 보여주는 것은 외환위기 이후 부품부문 중에서도 100인 미만의 고용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는 2차 하청으로의 외주화와 더불어 사내하청(일반적으로 100인 미만)의 확산을 반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해서 생산네트워크에서 하층 부문으로 작업량이 집적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chosj_06.gif
chosj_07.gif

3. 임금격차

자동차산업 내 원하청기업간, 기업규모간 임금격차는 노동계 내의 오랜 숙제이면서 여전히 풀리지 않고 오히려 심화되는 과제이다. [표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동차산업의 규모간 임금격차는 제조업보다 더 큰데, 표본에서 현대자동차 등이 누락되어 실제로는 이보다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시계열로 보아도 외환위기 이전보다 격차가 확대되고 있으며, 시간당 임금의 격차는 총임금보다 더욱 큰 것으로 확인되었다. 임금구성상으로 보면 초과급여와 특별급여의 격차가 정액급여보다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업규모가 클수록 잔업이나 교대근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고정 상여금 혹은 연말 성과급이 기업에 따라 차별적으로 지급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chosj_08.gif

이렇게 자동차산업내 기업규모간 임금격차가 큰 한 가지 요인은 기업규모가 작을수록 저근속, 저학력, 여성 노동자 비중이 크게 나타나는 등 인적자본의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음 [그림7]은 기업규모가 클수록 상승하는 연령-임금곡선을 나타내며, 이것은 이들 기업에서 안정적 내부노동시장이 발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이다. 역으로 부품 소기업의 연령-임금 곡선이 거의 평평한 것, 오히려 고연령층에서 감소하는 것은 이들 사업장의 임금이 단순직무급적 요소에 따라 지급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노동이동이 매우 활발히 이루어지고 직장의 안정성은 낮음을 나타낸다. 결국 대기업 중심의 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 중심의 2차 노동시장이 구분되면서 임금격차가 구조화되어 있는 것이다.

chosj_09.gif

이제 연령, 학력, 성별 등 인적자본 특성과 교대제 여부, 노조 유무 등 사업체 특성 등을 통계적으로 충분히 감안한 이후 기업규모에 따른 순수한 임금격차를 추정해보면 2002년의 경우 100인 미만 사업장에 비하여 1,000인 이상 사업장의 순임금은 50%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러한 기업규모에 따른 순임금격차는 외환위기 이후 확대되었음을 나타냈다. 

이처럼 임금격차가 확대된 요인을 찾아보면 자동차산업의 경우 단가결정시에 임률이 기업간, 품목간에 차별적으로 반영되고, 모델의 생산주기 동안에는 부품업체의 임금인상에도 불구하고 그 임률이 고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태가 [표3]에 요약되어 있다. 자동차부품업체의 일반관리비, 이윤 등은 가공비에 연동되며 가공비는 임률에 비례하며 결정되는데, 임률은 1차 하청업체 간에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3차 하청의 경우 4,500원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정례적, 혹은 불규칙적으로 단가인하(CR; Cost Reduction)를 요구받는데, 이는 생산성 향상의 성과와 무관하게 예를 들어 상반기 3%, 하반기 5% 등으로 강제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부품하도급업체들의 지불능력은 크게 제약될 수밖에 없다. 

chosj_10.gif

이상의 내용이 주로 사외도급과 관련되어 있다면 자동차산업 비정규직의 일반적 형태인 사내도급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얼마나 될까? [표4]는 한국노동연구원의 인사노무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로서 자동차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의 75% 정도 임금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상대적으로 비용보다 높은 생산성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비정규직 비중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chosj_11.gif

4. 노동시장 계층성과 노사관계

이상에서 외환위기 이후 도급구조의 수직적 특성이 더욱 강화되면서, 그리고 사외도급 이외에 사내도급 역시 광범하게 확산되면서 노동시장의 계층성이 심화되고, 특히 임금과 고용안정 수준이 낮은 하층으로 작업량이 집적되어 왔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노동자 내부의 격차 확대는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분할지배를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양적 성장의 패러다임 하에서 효율적으로 자원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따라서 하도급업체들의 역량이 피폐해지지 않는 한, 다시 말해서 동태적 효율성이 고갈되거나 사회적 통합성이 붕괴되지 않는 한 이러한 노동시장의 계층성을 바꿀 유인이 없다. 결국 노동시장의 계층성을 치유하고 인적 자원이 중심이 되는 질적 생산방식을 구현하는 힘은 노동조합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별로 분산된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 운동과 취약한 상급단체의 지도력으로 인하여 이러한 계층성 심화에 대한 연대 원리의 실천은 미약하였다. 다시 말해서 기업별 교섭체제 하에서 노동조합 운동은 노동시장의 계층화를 암묵적으로 방조하거나, 저지하는 데 실패하였다.

단기 수익성 위주의 경영전략과 비용 압박의 결과 이제 부품기업들은 장기 성장 잠재력을 나타내는 연구개발 투자조차 소홀히 하게 되었음을 확인하였다. 향후 중국과 차별화되는 고부가가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평적 생산네트워크의 특성을 강화하여 자체적인 혁신 능력을 갖출 것이 요망된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질적 경쟁력 강화와 노동시장의 계층성 치유, 노사관계의 파편화와 대립성 완화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산별노조의 확립을 장기 과제로 추진하는 한편 단기적으로는 업종별·지역별 노사정협의회와 같은 사회적 대화 기구를 통하여 자본 운동의 장기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부의 정책 지원을 이끌어내며, 무엇보다 노동자 내부의 분절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음을 각인해야 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