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계급성 성찰하기

노동사회

문화의 계급성 성찰하기

admin 0 3,504 2013.05.12 07:39

노동자와 그 가족은 노동자문화 또는 민중문화를 얼마나 즐기고 있을까? 지역에서 공연이 있을 때 온 가족이 함께 보러 가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노동가 테이프는 1년에 몇 개나 살까? 대략 1년에 10~20개정도 만들어지는 민중가요 테이프 중 노동조합에서 구입하여 무료로 나누어주면 모를까 스스로 자기 주머니를 털어 2개 이상 사는 노동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건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노동자의 문화생활이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가요도 많이 퍼졌고, 연극공연, 노래공연, 마당극공연 등 볼거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다. 

노동자들은 어떤 문화생활 누릴까?

하지만 대다수 노동자들은 여전히 대중문화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대중문화는 여러 가지 재미와 볼거리를 주지만 그 속에 녹아 들어있는 것은 노동자의 건강하고 올바른 의식 형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 많다. 단지 순간의 즐거움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풀게 할 뿐이다. 그 속에서 노동자들은 건강하게 문화적 욕구를 풀지 못 하고, 아무런 기준도 없이 말초적인 즐거움을 쫓아다니기 쉽다. 결국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올바르고 건강한 것인지를 판단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노동자는 회사와 집을 오가면서 주어진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대중문화의 품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하루 하루를 지내게 된다.

1990년 정부는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처음으로 중앙정부 조직에 문화부를 설치하였다. 이는 정부가 나서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문화공작을 펼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즉 군사정권 시절의 폭력적인 국민통합 전략 대신에 문화적인 공작과 공세를 통해 국민통합을 이루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는 2000년대 초반까지 시·군·구 단위에 문화센터(구민회관), 도서관, 박물관을 설치하여 국민들이 정부가 마련한 각종 프로그램에 즐기며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읍·면·동 단위에서는 동사무소를 복합 문화공간의 기능을 갖는 문화사랑방으로, 문화의 집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자본가들은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신경영전략’이라는 이름으로 기업문화전략 시행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기업이미지 일체화 작업, 가나안학교, 다물학교 등을 통한 각종 교육훈련, 사내 서클 지원, 체육대회, 문화행사 같은 각종 문화행사 개최 등 다양한 문화사업과 공세를 통하여 신경영전략이 내세우는 목표에 맞는 기업형 인간을 만들기 위해 문화적 작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경영이념에 잘 따르는 인간을 만드는 것, 더 나아가 스스로 기업의 경영이념을 실현하는데 나서는 노동자를 만드는 것이 기업문화전략의 목표인 것이다.  

기업 문화공세 앞에 무력한 노동조합운동

그런데 노동조합운동은 과연 이런 문화현실과 공세를 깨뜨릴 준비와 노력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노동조합운동 내에도 도려 내야할 잘못된 문화가 암세포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가족주의 및 유사 가족주의다. 아주 조그마한 서클 수준의 조직에서도 줄기차게 나타나는 가족주의적 연줄망은 보다 넓은 틀 속에서의 단결과 연대를 가로막아 왔다. 이러한 조직형식은 특정한 시기와 범위에서는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는 경직되고 무기력하며, 지배적인 권력관계에 의존하는 기회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또한 이러한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는 노동자들이 기업에 종속되도록 하는데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둘째는 노동물신주의다.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가 사회적 관계가 아닌 상품과 같은 물신화된 범주로 인식되는 문제이다. 자본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중심과 주변, 숙련과 미숙련, 본청과 하청, 남성과 여성 노동 등의 분리, 차별화를 통해 노동력 사용 비용을 절약하고자 한다. 남성 핵심 노동자층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조합 조직도 자본의 노동시장 분할 도식을 그대로 재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분리구조 속에서는 연대해야 할 노동자들 사이의 인격적 관계가 상품관계로 물신화되어 버린다. 더욱 큰 문제는 IMF 이후 줄곧 보아왔듯이, 집단적 정리해고 등 인력감축을 할 때 여성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 등 주변부 노동자들이 집중적으로 희생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부장제적 문화이다. 노동조합 사무실을 보라. 어디를 막론하고 조합원들하고 가장 가까이 있어야 할 위원장의 집무실이 가장 안쪽에, 사방이 막힌 채 삐까번쩍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조합원들이 들어가려면 뭔가 찝찝하고 위압감이 들게 돼있는 그 위원장실의 문턱 높이 만큼, 노조의 문화도 경직되고 위계화되어 있다. 아직도 노조 행사 때 위원장이 입장하면 기립박수를 치는 노조가 있고, 조합원게시판에 지도부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삭제하는 일이 다반사며, 지도부를 어버이처럼 떠 받들어야하는 가부장적 문화가 팽배한 것이 노조문화의 현실이 아닌가?

 지역 노동자문화센터를 만들자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가장 먼저 해야될 일은 전면적인 문화투쟁을 벌여나가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경영혁신 운동, 기업문화운동, 신경영전략 등의 이름으로 엄청난 이데올로기 공세를 퍼붓는 한편, 관리·감독자들의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노동자들을 개별적으로 통제하려고 한다. 이에 맞서 투쟁하여야 한다. 가정에서는 양성평등을 이루고 민주적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투쟁을 해야하고, 퇴근 후 사적인 영역으로 들어갔을 때도 대중문화와 끊임없는 투쟁을 해야한다. 

어디 그 뿐인가? 개인의 창조성과 개성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가부장적인 권위주의, 나와 내 가족, 우리 단위사업장, 우리 단체만 무사하면 된다는 가족이기주의, 끼리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자신들만의 철벽을 쌓아 가는 지연·혈연·학연 중심의 연고주의, 여성이라면 일단 깔보고 들어가는 남성우월주의 등에 근거한 모든 제약과 왜곡, 차별에 대항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 노동자문화센터를 만드는데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그래도 지역마다 한두 개씩은 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이 있었다. 풍물도 배우고, 노래도 배우고, 교육도 하고, 토론도 하고, 여러 가지 ‘음모’를 꾸미기도 하고, 노동의 힘겨움을 안주 삼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진하게 동지애를 나누곤 했던 그런 곳이, 지역마다 한두 군데는 있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공간이 봄 햇살에 눈 녹듯 하나둘 없어지더니 이제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 과거사가 되어버렸다. 

지역에 노동자문화센터 하나는 있어야 한다. 아니, 지금부터라도 잘 준비해서 꼭 만들어야 한다. 80년대 후반에만 해도 공단을 주름잡았던 청춘들이 흐르는 세월을 감당 못해 어느덧 머리에 서리가 내리는 지경이 되고 보니, 그때는 큰 문제 아니었던 것들이 이제는 족쇄로, 질곡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아닌가? 쉽게 풀릴 듯 하면서도 엉킨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았던 부부·고부간의 문제, 자녀교육, 먹을거리, 놀거리, 환경문제…, 이제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노동자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또한 노동자문화센터에서는 자기 혼자만 보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책, 음반, 각종 영상물 등을 가져와서 같이 보면서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문화센터에서의 다양한 문화활동을 통해 어린 시절, 아련한 기억 저편에 꿈으로만 남아있던 욕망을 끄집어내어 이제는 꿈이 아닌 현실에서, 가장 노동자적이고, 가장 건강하게 그 꿈을 이루어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건강한 사회 만드는 노동자 문화투쟁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과 노동은 끊임없이 대립하도록 운명적으로 위치 지워졌듯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문화 역시 끊임없이 투쟁할 수밖에 없다. 왜 각 계급은 자신의 문화를 사회의 중심 문화로 만들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가? 그것은 인간의 의식과 정서는 총칼로도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이 쌓여 만들어지는 ‘의식'과 ‘정서'를 휘어잡는데 문화적 방식말고 또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어떤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도 어렵지만 자신의 몸에 배여 있는 문화를 버리려고 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생활방식과 의식적 기초를 버리는 것은 한순간에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을 버리려고 시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의 모든 계급은 자신의 문화를 서서히, 결코 서두르지 않고 사회의 중심문화로 만드는 작업을 해나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돈과 권력으로 물적, 인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이러한 작업을 매우 쉽게 해나간다. 반면 노동자들은 자본과 정권의 정치적, 문화적 공세에 맞서면서 힘겹게 자신의 문화를 키워나가고 사회의 중심 문화로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한다. 이는 매우 지난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문화를 만들고 키워나가는 일을 포기할 때 노동자는 더 쉽게 자본의 요구에 순응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곧 집단으로서의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계급성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자본가에게 영원히 종속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힘겹더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