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에 설립된 미도파 노동조합은 회사가 부도나고 롯데쇼핑으로 인수되면서, 2002년 롯데미도파노동조합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그리고 현재 김만성 위원장을 주축으로 6대 집행부 체제를 맞고 있다. 전체조합원은 370명이고, 그중 여성 조합원의 비율이 60% 정도로 서비스업종의 전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롯데미도파 노조의 일상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롯데미도파노조 사무국장 최병희 동지를 만나 들어보았다.
노조의 힘 확인한 ‘크리스마스 투쟁’
회사의 부도와 워크아웃, 롯데쇼핑으로의 인수과정은 조합원의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고용불안, 직급·시스템·연봉 등의 변화로 한 달에 10명~14명씩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솔직히 매장(포스)에 있으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습니다. 모든 일이 업무화, 제도화, 시스템화되어서 지시가 아니면 어떤 일도 할 수 없고, 모든 지시는 반드시 그대로 따라야합니다. 사고를 키우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작업환경이 아니라 인간을 기계로 만들겠다는 거죠.”
근속연수 짧기로 소문난 서비스업계에서 평균 근속연수 8.6년을 자랑하는 롯데미도파노조로서도 힘든 시기였다. 롯데쇼핑으로 인수되면서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투쟁하고 단체협약 승계를 위해 노력했다.
[ 2002년 롯데의 미도파 합병과정에서 일어난 고용안정 투쟁 - 출처:롯데미도파노동조합 ]
“2002년 12월 27일 총파업하자고 조합원 찬반투표까지 다 했습니다. 그리고는 25일 새벽에 잠정합의를 봤지요. 그전에 조합원 중식 집회를 가졌습니다. 백화점인데, 매장에서 직원들이 싹 빠져나가면 당황하지 않겠습니까? 처음에는 공개적으로 무슨 요일에 중식집회가 있으니 12시부터 1시까지 정문으로 나와라 하고 소집했습니다. 이걸 세 차례 정도 반복하니까 간부들도 조합원들도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어떤 날은 상근간부들끼리 비밀리에 계획을 세워서 조합원에게 30분전에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오늘 중식집회 있다고 알리는 방식으로 하기도 했죠. 그래도 다 모였습니다. 이게 엄청난 거죠. 사측도 뒤로 자빠지고, 우리도 모여놓고 너무 놀랬습니다. 이런 힘이 우리에게 있었구나 하구요.”
전국 백화점 영업사상 최초로 크리스마스 때 쉴 뻔하다가 극적인 노사 협상 타결로 영업을 하게 된 것도 이러한 조직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조합원이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도 문화행사 같은 거 많이 했지요. 하지만 회사가 바뀌면서 노조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투쟁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그러다가 우리는 모이는 게 투쟁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일상활동을 더 강화하자. 어렵고 힘들 때 기댈 곳은 조합뿐이다, 이런 생각을 갖게 하자. 그리고 열심히 하니까 결국 노동조합을 신뢰하게 되더라구요. 노동조합 활동 폭도 넓어졌습니다. 또 결과적으로 회사가 노조에게 압력을 느끼게 됐습니다.”
일상활동의 기본, “모두 다 같이 모여서”
롯데미도파는 노조 주최의 행사가 많다. 1년에 두 차례씩 영화관을 통째로 빌려 모든 조합원들이 버스를 대절해서 영화를 보러 간다. 매번 200명 정도의 조합원이 참석하고 있다. 그리고 두 달에 한번씩 문화탐방을 진행한다. 작년 여름 진행했던 ‘한탄강 래프팅’은 큰 호응을 얻었다. 가을엔 가족 등산대회를 연다. 10월엔 팀별로 가요제를 연다. 처음엔 노동가요를 중심으로 하다가 요즘은 대중가요와 섞어서 조합원들이 준비한다. 근처 노원구 주민들도 구경 올 정도로 큰 행사이다. 연말엔 조합 주최의 일일호프를 열어 수익금으로 지역 독거노인, 불우사우를 돕는 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 이런 행사에는 입점업체 파견 직원들도 같이 참여하고 있다.
“모이는 게 투쟁이다, 모여서 얼굴보고 활동하고 이야기 나누고 하는 모든 것이 투쟁이다, 이게 바로 노조의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에서 하는 일의 기본은 ‘모두 다같이 모여서’입니다.”
노동조합이 하는 일상활동은 활발한 교육활동으로 이어진다. 노조 현안이 있을 때마다 전 조합원을 모아 교육을 한다. 올해에도 4·15 총선 전에 ‘노동자 정치세력화’ 특강을 하고, ‘주5일제 현안 해설’ 등 2차례의 노동교실을 열었다.
롯데미도파노조는 1990년부터 일년에 두 차례 상·하반기로 나눠 상집, 대의원 수련회를 연다. 2박 3일씩 갖는 이 수련회에서는 강의도 듣고 토론도 한다. 노조의 사업계획, 예산, 노조 활동 방향, 임단협안도 이 때 토론하며 간부들의 조직활동,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올해에는 특히 간부들끼리 서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참여교육을 배치하여 조별로 이행했다. 그 효과는 현장에서 나타났다.
“대의원 수련회 기간에도 보면 친한 대의원들끼리만 같이 밥 먹으러 가잖아요. 이래선 안되겠다 해서 조별로 묶었습니다. 같이 토론하고 활동하도록 했더니, 금방 친해지더라구요. 간부들끼리 화합, 친목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친해지는 게 바로 조직의 힘이거든요.”
“잘 지내시죠? 몸살 걸리지 않았는지... (대의원)수련회를 갔다와서 그런지 식당이나 매장에서 여러분들을 더 자주 만나는 것 같네요. 제가 1조라서 그런지 1조에 계셨던 분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띄네요. 근데 기관실에 계시는 분은 아직 얼굴도 못 봤어요. 얼굴 좀 보여주세요... *^.^* ”
- 조합 게시판에서
[ 매년 10월에 열리는 노동조합 주최의 가요제. 근처 주민들도 참여할 정도로 큰 행사다. - 출처:롯데미도파노동조합 ]
임단협 시기 힘 발휘하는 일상교육의 효과
이러한 현장 간부 역량강화 프로그램의 효과는 노조의 힘이 가장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임단협 시기에 나타난다. 임단협안이 나오기까지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임단투에 들어가기 전, 대의원들은 직급별 간담회를 개최한다. 이 곳에서 현안을 설명하고, 요구사항을 수렴한다. 이 의견들은 수련회 기간동안 대의원 조별 토론을 통해 몇 가지의 요구로 집약된다. 이것이 집행부 1차 요구안이 된다. 그럼 다시 이 1차 요구안을 가지고 간담회를 연다. 그러면 1차 요구안에 다시 조합원의 의견을 덧붙여져서 2차 요구안이 만들어진다. 이 2차 요구안은 ‘상집 교섭수련회’를 통해 가확정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을 대의원대회에서 최종 승인하여 회사와 교섭에 들어가는 것이다.
“롯데로 회사가 바뀌면서 직급이 많이 늘었습니다. 이러면서 직급별 갈등도 많이 생겼지요. 언뜻 노·노 갈등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노동조합에서 일상적으로 대의원, 상집들이 직급별 간담회를 많이 엽니다. 의견들을 들어보고 조합 활동에 수렴하는 거죠. 그리고 여러 직급이 섞여 있는 팀별로 저녁 회식을 자주 열어줍니다. 16개쯤 되는 팀별로 회식하면 조합 간부들이 들어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여러 갈등들을 조절하고 조율합니다.”
일상적인 간담회와 팀회식을 노조에서 주도하니 임단협 시기엔 힘이 모일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 사무실에 걸려있는 상집·대의원 수련회 조별 토론결과를 보면 임단협안이 얼마나 현장의 목소리를 세세하게 대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단결은 마주보고 호흡하는 곳에서 나온다
힘든 시기일수록 노동조합의 일상활동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조합원의 일상에 파고들고, 함께 호흡하며, 모여서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게 하는 일상활동은 그 형태가 어떠하든지 노조의 호흡이며 생명이다. 노동조합의 힘은 바로 조합원의 단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루 웬 종일 포스 앞에 서서 근무하고 집으로 발길을 옮기면 피곤에 나도 모르게 잠이 들던 나! 대의원이라는 감투 덕에 대학로에서 시청까지 행진하는 5·1절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은 내가 모르는 세상이었다. 어디서 왔는지 어림잡아 한 몇 백만은 되었을 것이다. 푸른 하늘 위로 울려 퍼지는 노동자의 함성과 노동가요. 그곳은 내가 아닌 우리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는 내가 모르는 다른 세상이었다.”
- 롯데미도파노조 창립16주년 기념행사 ‘어느 대의원의 회고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