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은 점령군의 일원일 뿐”

노동사회

“한국군은 점령군의 일원일 뿐”

admin 0 3,025 2013.05.12 07:28

"사담 후세인 시절과의 차이? 아무 차이가 없다. 과거에는 후세인에 의한 대량살상과 대규모 묘지가 있었다면 오늘은 미군에 의한 일상적인 죽음이 있을 뿐."

바그다드 카다미아 지역의 종교지도자 라드 알사디는 이라크 전쟁 이후의 삶을 그렇게 한마디로 정리했다. 죽음과 구금과 실종이 일상화된 곳. 어쩌면 이라크의 오늘은 그렇게 정의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분명 전쟁은 끝났다. 그렇게도 이들을 억압하던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은 이라크 특별법정에 서는 운명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이라크인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아니 오늘도 이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하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기도를 드린다.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삶은 계속된다지만 그 삶은 어쩔 수 없이 참아낼 수밖에 없음에도 정말이지 쉽지만은 않다.

ejkang_01.jpg노인의 죽음, 아이의 침묵

"어, 오늘 사마라에 미군의 폭격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괜찮은 거야?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어떻게 그런 일이!"

전화 수화기를 들고 있던 세이크 아흐메드 야흐야 알 살렘 알 사마라이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급기야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린다. 자신의 형과 두 아들이 미군에 의해 감옥에 갇혀 있고, 조카 한 명은 미군이 물살 센 티그리스강에 강제로 뛰어들게 하는 바람에 헤쳐 나오지 못하고 일주일 후 시체로 발견됐다. 그의 형과 아들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그의 집을 찾았던 기자는 뜻밖의 비보에 그냥 발걸음을 돌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세이크 아흐메드가 장례식에 다녀온 후 들려준 이야기로는 저항세력과 미군의 교전이 간헐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사마라에서 그 날 어머니가 사시던 집 바로 옆에 폭격이 있었다고 한다. 연세가 여든이 넘은 어머니는 집 전체가 부르르 떨릴 만큼 커다란 폭격 소리가 들리자마자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그대로 눈을 감으셨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사담 후세인이 죽도록 싫었지만, 지금은 차라리 그가 돌아와서 우리를 다스려줬으면 좋겠어요. 그때는 적어도 이렇게 하루하루가 두려울 만큼 치안이 불안하지는 않았어요. 도대체 미국이 우리에게 가져다준다던 민주주의와 자유는 어디에 있는 건가요? 내 아들을 잡아가고 시어머니를 돌아가시게 만드는 이런 게 당신네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와 자유라면 나는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세이크 아흐메드의 부인 움 알리의 고통에 찬 하소연은 어쩌면 오늘 이라크에서 가장 쉽게,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일곱 살의 스바라는 벌써 3주 가까이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지난 6월 말, 주권이양 직후 바그다드 곳곳에서 벌어진 교전 중 아버지가 목숨을 잃은 이후부터다. 그 날 저녁 스바라의 가족이 사는 바그다드 중심부 하이파 거리에서는 무장세력과 미군 사이에 격렬한 교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스바라의 아버지는 무장세력도, 이라크 군이나 경찰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길을 지나다가 자신의 친구가 미군의 무차별 사격에 맞아 길거리에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미군은 친구를 길가로 끌어내고 있는 그에게도 사격을 가했고 스바라의 아버지는 친구와 함께 그대로 길 한가운데서 쓰러졌다. 사실 부상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빨리 병원으로 옮겨 응급치료만 해주었다면 두 사람 모두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 4시까지 계속된 교전 때문에 그들은 길 한가운데에서 밤새 피를 흘릴 수밖에 없었고 교전이 끝난 다음 사람들이 그들에게 다가갔을 때는 이미 출혈과다로 세상을 떠난 후였다. 잠에서 깨어나서 아버지를 찾다가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리에 그대로 정신을 잃었던 스바라는 이후 말을 하지 못하게 됐다. 스바라의 어머니는 남편도 없이 다섯 아이를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하냐며 지금도 눈물만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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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21   강은지 기자 ]

"우리 손으로 이라크 세우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다면…"

바그다드 아다미아 거리에 사는 아부알리브 씨에게는 아들이 다섯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곁에 남아있는 아들은 열두살 먹은 막내아들 하나뿐이다. 큰아들은 지난해 아부 하니파 모스크로 기도하러 가다가 미군 탱크의 사격에 죽음을 당했다. 보통 저항세력들이 많이 입는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한다. 둘째 아들은 몇 달 전 저항세력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미군에게 잡혀갔다. 얼마 전까지 악명 높은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 있다가 몇 주 전에 움카슬로 이송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특별한 조사나 심문 한번 받지 않았다고 한다.

미군은 둘째 아들을 잡아가면서 셋째와 넷째 아들도 형과 함께 저항세력에 가담했다면서 수배령을 내렸다. 이제 겨우 14살, 16살인 두 아이들은 그래서 그 이후로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숨어 다니고 있다. 언제 어디에서 미군이 들이닥칠지, 혹은 사방에 숨어있는 스파이(저항세력을 신고하면 엄청난 돈을 보상금으로 주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 사이에는 스파이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가 밀고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가족들도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한다.

"아들들이 진짜로 총을 들고 미군 점령에 반대하고 나선 저항세력이었다고 해도 저는 아이들의 뜻을 존중해 줄 겁니다. 점령을 끝장내고 우리의 손으로 이라크를 세우기 위해 싸우는 수밖에 없다면 싸워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그런 아부알리브 씨는 하나 남은 막내아들이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미군 탱크가 지나갈 때마다 돌을 던지고 야유를 보내고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했다.

ejkang_03.jpg여전히 지속되는 점령의 현실

지난 6월28일, 이라크 임시정부에 주권이 이양되면서 점령은 공식적으로는 끝이 났다. 비록 이 임시정부에 대한 많은 이들의 평가가 '사담 후세인 밑에서 수많은 이라크인들이 숨죽이고 고통받던 시절, 외국에 망명해 편하게 지내다가 후세인이 퇴진하고 나니까 이라크로 돌아와 정권을 잡은 기회주의자들'이라는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라크 군, 경찰이 도시 곳곳마다 배치되고 때로 교전의 맨 앞장에 서기도 하면서, 사람들은 영 마음에 안 드는 임시정부일지라도 적어도 외세가 자신들을 지배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6개월 정도 임시정부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준 다음, 마음에 안 들면 선거를 통해서 갈아치우면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들도 종종 들린다.

하지만 현실에서 점령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도 미군 헬기들이 엄청난 소음을 자랑하며 바그다드 상공을 활주하고, 제 마음대로 역주행을 일삼는 미군 탱크며 험비 차량들은 여전히 도시 곳곳에 엄청난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있다. 주권이양 이전 미군에 의해 잡혀간 이라크인들이 여전히 제대로 된 재판이나 조사 과정 없이 교도소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매일같이 저항세력 혐의로 내 형제가, 아들이, 이웃이 새롭게 잡혀간다.

사실상 무장세력과 미군 혹은 이라크 군, 경찰의 교전으로 인한 민간인들의 피해는 통계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한번 교전이 벌어지고 나면, 미군은 민가로 숨어든 무장세력을 색출한다는 이유로 사방에 무차별로 총질을 해대거나 아무 집이나 총을 겨누고 뛰어들어 다 부수고 젊은이들을 잡아가곤 한다. 눈앞에서 내 아들을 잡아가도 아무 말 못하고 울고만 있어야 하는 현실, 그것은 분명 이라크인들에게 여전한 '점령'의 현실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종전 선언 이후 15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은 전기도, 식수도 부족하고 실업률은 75%에 달하는 생활불안, 매일같이 계속되는 폭탄테러와 교전과 같은 치안불안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싸움에 이제 지쳐있다. 점령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하던 초기와는 달리, 이라크 내의 저항세력과 이라크 밖에서 들어온 테러리스트 그룹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라크 군, 경찰이나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차량폭탄테러 등에 대해 이들은 이제 "싸우려면 미군하고 싸워라, 왜 이라크인들을 대상으로 싸우는 거냐,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은 이라크인들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요르단 출신의 테러리스트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 등에 대해 "이라크를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너를 죽일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단체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얼마 전 있었던 김선일 씨의 처참한 죽음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은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가 한 짓이 아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이슬람은 민간인 참수와 같은 일들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를 죽인 것은 우리가 아니다. 무슬림도 아니다"라면서 함께 울어주고 함께 아파해 주었다.

"재건을 위해 온다고?"

하지만 이렇게 싸움과 죽음에 지쳐있다고 해도, 점령군 미군과 싸우는 이라크 내 저항세력과 이라크 군, 경찰,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아랍 테러리스트들을 구분하는 움직임이 보인다고 해도, 이들이 '점령'을, '점령군'을 용납한 것은 아니다. 한국군 추가파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었을 때 그들의 답은 대부분 여전히 적대적이다.

"재건을 위해서 온다고? 아니, 아무리 좋은 말을 갖다 붙인다고 해도 이라크에 오는 한국군은 점령군의 일원일 뿐이다. 어차피 이라크를 위해서 온다기보다는 미국을 도와주러 오는 것이 아닌가?"

"점령군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다 죽여버릴 것이다. 심지어 이라크인일지라도 점령군을 도와주는 스파이 짓을 하는 놈들은 똑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다."

김선일 씨 피랍 때 협상을 중재하고자 노력했었던 모흐센 압둘 하미드 이라크이슬람당 대표는 "한국인 한 명 참수당한 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다시 한번 충고하는데 지금 당장 추가파병 중단하고 한국군 전부 철수하라"라고 말한다. 그 충고를 지금이라도 우리는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