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영화 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예술에 관한 시위이므로 꼭 필요하다” (배우 이성재)
“보수언론에서 편파보도를 그만 두어야 한다” (김태우)
“밥그릇 싸움으로 보지 말아 달라” (박중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해 뿌듯하다” (장혁)
“비가 와서 마음이 더욱 굳어진 것 같다” (김민선)
“스크린쿼터가 보존되는 것으로 알고 있겠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투쟁계획은 없다” (정진영)
“정부가 영화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유지나)
영화인 3천명, 거리로!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영화감독, 배우, 제작자, 스태프 등 영화인 3천여명이 영화제작을 멈추고 길거리로 나섰다. 지난 7월14일 서울 광화문네거리 정보통신부 건물 앞에서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진흥법 개정 촉구 및 한미투자협정 저지를 위한 대국민 보고대회’를 연 이들은 정부에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스크린 쿼터) 축소방침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 출처 : 스크린쿼터문화연대 ]
비가 간간이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이날 집회에는 안성기, 박해일, 김민선, 차승원, 장혁, 이은주 등 영화배우들이 참가했다. 김홍준, 임순례, 이현승, 박진표 감독과 영화제작자인 이태원(태흥영화사), 차승재(싸이더스), 심재명(명필름) 대표 등도 참석해 당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인원이 모인 모습이었다.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지키기 영화인 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인 배우 안성기씨는 이 자리에서 “한국영화 점유율이 많이 높아졌고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러나 점유율은 불안하고 경제발전이라는 말에는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하고 “몇 년 지나면 모르겠지만 지금 스크린쿼터 축소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참여자들은 주한 미대사관에 항의 서한을 전달했으며, 행사 후에는 명동성당까지 거리 행진을 펼쳤다.
일부에서는 영화인들의 ‘밥 그릇 지키기’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는 스크린쿼터 축소·폐지에 대한 논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면에 있는 다양한 ‘숨은 그림’을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스크린쿼터 싸움 뒤의 ‘숨은 그림들’
첫째는 스크린쿼터 문제로 ‘대리전’을 치루고 있는 한미투자협정에 관련된 문제다. 미국 측이 한국에 강하게 협정체결을 요구하는 가운데, 그 걸림돌 중 하나로 ‘스크린쿼터’를 들고 있다. 이는 스크린쿼터에 대한 문제제기가 실제 우리 영화시장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이를 명분으로 한미투자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우위를 점거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이도록 하는 부분이다. 이날 한 영화인은 “스크린쿼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개봉을 못하거나 상영에 불이익을 받은 헐리우드 영화가 있느냐”고 반문하며 이를 뒷받침했다.
또 다른 ‘숨은 그림’은 미국 측의 스크린쿼터 흔들기가 방송시장과 다양한 문화콘텐츠 판매를 위한 전초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방송계에서는 스크린 쿼터 문제가 미국 측의 의도대로 해결되면, 이후 이를 ‘전례’로 삼아 방송시장의 개방을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방송계 인사는 이와 관련해 “방송시장이 완전히 개방이 되고 난 다음에는 신문 등 미디어분야 전체의 개방을 요구할 것이고, 결국은 우리가 접하는 정보와 사건들이 우리가 아닌 미국의 시각과 이익을 반영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스크린쿼터 문제 뒤에 숨어 있는 좀 더 큰 숨은 그림은 ‘미국 중심의 세계화’와 ‘내정간섭’에 관한 싸움이라는 주장이다.
한국의 스크린쿼터는 이미 여러 국제영화제나 세계영화계에서 거대자본을 앞세운 할리우드로 상징되는 ‘골리앗’의 압력과 공세를 막아 낸 ‘다윗’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상태다. 스크린쿼터는 이미 한국이라는 한 나라의 영화보호를 위한 폐쇄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문화의 다양성과 고유성을 수호하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마도 미국에서는 이를 신자본주의 질서 하에 함락되지 않은 기이하고 귀찮은 성곽 중 하나로 보고 ‘공성’에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성을 함락하면, 그들은 이를 다른 제3세계 국가와의 협상이나 다른 산업분야의 침투에서 ‘전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출처 : 스크린쿼터문화연대 ]
“호랑이 새끼는 크기 전에 없애야 한다”
한 나라가 자국의 고유문화를 육성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은 국내문제 중에서도 가장 고유하고 민감한 사안이다. 그것은 이제 까지 국제사회가 직접적인 무력을 통한 군사 분쟁과 자본을 통한 경제전쟁 속에서도 지켜온 금도라고 볼 수 있다. 몽고나 로마제국도 피정복자에 대해 종교와 생활규범까지 지배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미국은 어쩌면 가장 위험한 제국이 되려는 시도를 하고 있고 그 증거가 한국의 스크린쿼터 폐지문제로 구체화 된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영화를 통해 전파되는 무의식과 취향의 전파에 관한 것이다. ‘한류’는 지금 중국과 일본, 동남아를 넘어 유럽과 북미지역으로 조금씩 영화를 발판으로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고 그 뒤를 TV드라마가 받쳐주고 있다. 할리우드는 20세기 내내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인류의 문화취향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고 21세기에도 그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미국은 크고 강하며 문제가 있지만 나름대로 자정작용을 통해 이를 해결하는 ‘좋은 사회’로 무의식중에 평가를 한다. 미국에 반대하는 집회에서조차 상대가 ‘미국’이기 때문에 더 실망하고 분노하는 마음이 한 자락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세계 각국에게서 그런 알 수 없는 좋은 느낌과 기대를 미약하지만 얻기 시작한 경쟁국(?)이 나타났다고 치자. 미국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시장은 충분하다! 얼마든지 함께 나눠도 좋아”일까 “호랑이 새끼는 크기 전에 미리 없애야 한다” 중 어느 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