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승무원들은 철도공사의 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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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여승무원들이 담당한 KTX 승객서비스 업무에 관하여는, 철도유통은 실질적으로는 업무수행의 독자성이나 사업경영의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채 철도공사의 일개 사업부서로서 기능하거나 노무대행기관의 역할을 수행하였을 뿐이고, 오히려 철도공사가 KTX 여승무원들로부터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받고 임금수준을 포함한 제반 근로조건을 정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KTX 여승무원들과 철도공사 사이에는 직접 철도공사가 이들을 채용한 것과 같은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08카합3449 근로자지위보전 및 임금지급가처분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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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승무원들은 투쟁과정에서 과거 한 때 민주투사였다가 정권의 끈으로 철도공사 사장으로 입성한 ‘이철’(전 철도공사 사장)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는 사실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을 너무나도 성실하게 수행한 것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KTX지부) 조합원들이 제기한 “KTX 승무업무의 철도공사 자회사로의 위탁은 노동법 위반”이라는 주장에 대해 그동안 정권과 철도공사만 모르쇠로 일관했는데, 이는 바로 KTX 사례가 정권의 신자유주의 노동정책, 즉 ‘외주화를 통한 간접고용 확대’의 대표적 사례였기 때문이다. KTX 가처분 재판과정에서 철도공사가 KTX 승무사업 외주화의 배경이라고 스스로 밝힌 대목은 다음과 같다. 

고속철도의 개통을 위해서는 3,000여 명의 추가인력 투입이 요구되었지만 대규모 추가인력을 철도청 공무원으로 신규채용하는 것은 공무원의 수를 제한하려는 건설교통부의 기본입장에 배치되었고, 결국 건설교통부가 철도청에 승무원 정원을 부여해 주지 않아 KTX 승무원들을 모두 외주화하였다.

불법파견 알면서도 강행, “한 번 법대로 해보자!”

그런데 철도청(2005년 1월1일 철도공사로 전환)은 이미 승무업무를 외주화할 경우에는 불법파견에 해당된다는 노동부의 질의회신을 받은 상태였다.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실행을 위해 노동법을 과감하게 무시했던 것이다.

2006년 3월1일 380여 명의 승무원들이 파업에 들어가고, 그 해 5월19일에 파업 대열에 있던 280명의 승무원이 전원 정리해고됐다. 이후 철도공사는 계속해서 고소고발과 손해배상 청구, 2번에 걸친 직접고용(역무계약직)으로의 잠정합의 파기 등의 탄압을 가했고, 1,000일을 훌쩍 넘긴 장기 투쟁과 끝나지 않는 농성, 생계불안 등에 대한 절망까지 겹쳐 현재 투쟁대열에 남아있는 승무원은 34명이다. 이들은 지난 9월 오미선 지부장 등의 서울역 철탑 고공 농성을 마치면서, 소송기간이 길어지는 것과 소송기간 중에는 교섭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걱정하며 미루어왔던 법적투쟁으로 전환하였다.

이미 지난 2007년 12월20일 민세원 당시 KTX지부장에 대한 업무방해 형사사건(서울중앙지방법원 2007고단2912 판결)과 2008년 4월8일 승무원들에 대한 업무방해금지가처분 항고사건(서울고등법원 2006라1737 결정)에서, 법원은 철도공사가 위장도급의 형식으로 근로자를 사용하기 위해 자회사인 철도유통을 이용하였고, 철도공사가 승무원들을 직접 채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한다고 판단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두 사건에서 KTX지부는 철도공사의 업무방해 주장에 대해 노조법상 정당한 조합활동이었다고 주장했는데, 법원은 노조법상의 정당성 요건 중 ‘주체’요건에 대해 그와 같이 판단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철도공사는 이 법원의 판단이 근로계약관계의 구속력이 없는 것이라며 법원의 판단을 무시했다.

위장근로관계 혹은 불법파견을 문제 삼으면서 모기업 혹은 원청기업 등의 실질적 사용자책임을 묻는 소송형식은 통상 ‘근로자지위확인 및 임금지급청구’소송이다. 11월26일자로 34명의 조합원들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한 소송(2008가합118219)도 이와 같은 소송이다. 그런데 본안재판이 확정되기까지는 대법원까지를 전제로 한다면 최소 2년에서 3년이 걸리는데, 이미 해고 이후 2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조합원들에게 그와 같은 기다림은 또 다른 고통일 수가 있었다. 이에 승무원들은 본안재판의 확정 판결이 날 때까지 잠정적으로 근로관계를 인정하는 구속력이 있는 ‘근로자지위보전 및 임금지급’ 가처분을 2008년 10월1일에 냈다.

위장도급 시에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성립

승무원들은 철도공사와 철도유통이 체결한 KTX 승무업무위탁이 적법한 도급이 아니라 ‘위장’도급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①위장근로관계에 따른 직접근로관계의 존재 주장, ②불법파견에 따른 직접근로관계의 존재 주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번 가처분 결정을 포함하여 3번에 걸친 근로계약관계 인정에서 법원은 모두 첫 번째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대법원 판례가 있다. ‘인사이트코리아 판결’로 알려진 ‘대법원 2003. 9. 23. 2003두3420 판결’은 인사이트코리아가 형식상으로는 독립 법인으로 운영되어 왔지만, 실질적으로는 SK의 자회사인 인플러스가 인사이트코리아 주식의 100%를 소유하는 등 모자(母子)회사의 관계로서 SK가 사실상의 결정권을 행사해 온 사실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이를 바탕으로 “SK가 위장도급의 형식으로 근로자를 사용하기 위하여 인사이트코리아라는 법인격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고, 실질적으로는 SK가 원고들을 비롯한 근로자들을 직접 채용한 것과 마찬가지로서 참가인과 원고들 사이에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대법원의 위장도급법리는 최근 ‘용인기업 사건’(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5다75088 판결)에서 모자회사가 아닌 원·하청 관계의 두 회사 간에까지 그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이 위장도급법리는 수급인(도급을 받아 도급인에게 근로를 제공하는 회사) 근로자가 도급인에게 노무를 제공했고 도급인(도급을 주고 수급인으로부터 근로를 제공받는 회사)이 그 노동자로부터 노무를 제공받았다는 사실 자체로부터 근로계약이 성립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급인이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될 만한 사용자로서의 실체를 갖추고 있지 못한 경우, 근로자와 도급인 모두 서로 사이의 근로계약 체결에 관해 묵시적으로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보고 근로계약관계의 성립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근로계약관계가 객관적 의사표시 이론에 입각해 있다 할지라도 ‘객관적 의미와 명백히 모순되는 의사표시’에 있어서는 다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급인과 근로자의 형식상 근로계약을 존중하여 근로자와 실제 사용자 간의 고용관계 성립을 부정하기보다는,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규범적’인 의사표시의 해석을 통해 사회적 실체에 맞는 법률관계의 형성을 용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대법원은 엄격한 요건하에 도급인과 근로자 간의 직접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한 것이다.

“철도공사가 승무원들 직접 채용한 것과 같다”

이번 가처분 재판부도 “적어도 KTX 여승무원들이 담당한 KTX 승객서비스 업무에 관하여는 철도유통이 실질적으로는 업무수행의 독자성이나 사업경영의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철도공사의 일개 사업부서로서 기능하거나 노무대행기관의 역할을 수행하였을 뿐이고, 오히려 KTX 여승무원들과 철도공사 사이에는 직접 철도공사가 여승무원들을 채용한 것과 같은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함으로써 대법원의 ‘위장도급 법리에 따른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성립’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철도유통은 철도공사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자회사이고 당시 임원도 모두 철도공사의 사장이나 감사, 이사 등을 지냈거나 겸직하고 있어서 사실상 철도공사가 KTX 승무업무에 관한 정책 등을 결정한 점, ②승무원의 채용, 교육, 평가 등에서 철도공사가 모든 권한을 행사한 점, ③철도공사가 사실상 승무원의 임금을 결정했고 4대 보험 및 철도유통의 세금과 이윤까지 보장한 점, ④승무업무와 관련된 무전기 등 각종 장비를 철도공사가 무료로 제공하는 등 철도유통이 아무런 물적 시설이 없었다는 점, ⑤철도유통의 승무원업무를 철도공사의 또 다른 자회사인 ‘KTX 관광레저’로 이관하는 것을 모회사인 철도공사가 주도적으로 결정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이에 따라 “신청인들이 철도유통에서 KTX 관광레저로의 형식적인 소속변경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행된 이 사건 해고는 정당한 이유 없는 부당해고로 무효”라고 판시했다.

장기투쟁 등 떠밀더니, 이젠 계약기간 끝났다고?

그 동안 KTX 승무원 문제는 간접고용에 따른 철도공사의 사용자 책임 인정여부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국한되어 쌍방 간의 주장이 오고갔다. 그리고 철도공사가 요구한 법원의 판단도 사실 이 부분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가처분 재판이 진행되자 철도공사는 “위장도급에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승무원들의 근로계약은 1년의 기간제 계약이었으므로 이미 근로계약기간이 종료되어 소송상 다툴 실익이 없다”는 주장까지 하였다. ‘위장도급에 따른 도급인과 수급인 근로자와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의 성립’과, ‘성립된 근로계약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라는 것은 다른 문제인데, 아직 이에 대해 명시적인 판례는 찾기 힘들다. 대법원에서 현대미포조선과 용인기업 근로자 간에 위장도급이 인정되어 부산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된 용인기업 사건도 현재 구체적인 근로계약 내용이 무엇인지가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대개 위장도급이 인정되면 근로자가 도급인 사업장에서 시행 중인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따라 도급인의 정규근로자와 동일한 임금을 청구하는 등 근로조건에 있어 도급인의 정규직 근로자와 차별을 받을 이유가 없는 점, △일단 도급인과의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했으므로 단체협약 적용에 따른 규범적 효력도 당연히 주장할 수 있다는 점,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용자는 남녀의 성 등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해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는 규정의 취지 등을 감안하여 위장도급에 따른 구체적인 근로계약의 내용을 정해야 할 것이다.

한편 불법파견에도 구 파견법상 ‘2년 계속 고용 시 고용간주 규정’(구 파견법상 제6조제3항)이 적용되는지 여부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08. 9. 18. 선고 2007두22320)은 이 고용간주 규정이 불법파견의 경우에도 적용됨을 밝히면서, “그 근로관계의 기간은 기한의 정함이 있는 것으로 볼 만한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기한의 정함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판시한 바가 있다. 

이와 관련해 가처분의 재판부는 “KTX 승객서비스 업무는 전문적 소양이 요구되는 상시적·계속적 고객 대면 업무라 할 것이고(이 점 때문에 KTX 여승무원들의 채용 이래 지속적인 교육훈련과 평가가 실시된 것이라 하겠다), 기록에 의하면 KTX 여승무원들의 의사에 반하여 계약갱신 거부사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나아가 KTX 승객서비스 업무가 KTX 관광레저로 이양되는 과정에서 기존 철도유통에서 근무하던 KTX 여승무원 101명이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등 현재 총 136명의 KTX 여승무원들이 관광레저의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등의 사정을 고려하면, 이 사건 해고가 없었더라면 신청인들의 고용관계도 KTX 관광레저 소속의 KTX 여승무원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현재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을 것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므로, 34명의 여승무원들과 철도공사 사이의 근로관계가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철도공사, 소송 장기화로 시간 끌지 말고 결단 내려야

이번 가처분 결정은 정부가 공공부문에서의 신규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경영합리화의 미명 아래 초노동법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무리한 외주화의 문제점을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또한 그동안 노동부가 이 사건과 관련해 2번의 진정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불법파견을 확인하고도 최종적으로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적법도급이라고 결론내림으로써 이 사건이 장기화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한편 재판부는 2008년 10월15일 이후부터 매달 일정액(해고 당시 임금상당액)을 지급할 것을 청구한 임금지급가처분에 대해서도 2008년 12월15일 이후부터 본안판결 확정 때까지 매달 청구액을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이 사건이 이미 2년 6개월이 넘도록 철도공사의 책임방기로 해결되지 않았고, 본안판결 확정 시까지 아직도 장기간의 시간이 남아 있음을 고려한 매우 적극적인 결정이었다. 만약 철도공사가 임금지급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강제집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철도공사는 일단 임금을 지급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철도공사는 이번 가처분 결정이 구속력 있는 민사재판임에도 본안소송이 확정될 때까지 계속 다투겠다는 태도다. 그러나 위장도급을 인정하기에 충분한 자료가 이미 제출되어 법원의 공식적인 판단을 3번이나 받은 상황에서, 이후 본안소송에서도 위장도급 인정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철도공사의 태도는 사법제도의 남용이라 할 만한 본안소송의 장기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승무원들의 투쟁 의지를 꺾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모든 과정에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노동정책 강화 과정에서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노동법 위반에 대한 책임소재 공백으로 나타나는, 사전적이고 실효성 있는 권력감시와 통제 메커니즘의 부재라는 한국의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철도공사는 승무원들이 스스로 포기하리라 믿으면서 교섭에 따른 문제해결을 장기간 거부해오다 결국 “법원의 최종 판결에 따르겠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그 정도의 변명이 포기할 줄 모르는 승무원들의 법적투쟁을 그만 두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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