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를 통한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 시도와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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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5년 11월,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적용위원회 전문가위원회에서는 처음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논의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성노예제(sexual slavery)로 규정하고, ILO 29호 강제노동금지조약 위반이라는 판단을 내렸으며, 일본 정부가 빠른 시일 안에 이에 대한 보상책을 마련할 것을 희망한다고 하였다. 이 결정은 1996년 3월, 전문가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발표되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에 또 하나의 새로운 전환점이 만들어진 것이다. 

1990년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36개 여성단체가 모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를 결성한 뒤 아시아 및 세계 여성들과 연대해 왔다. 특히 1992년에 처음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유엔인권소위원회에 제기하면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국제사회에 더 널리 알려졌다. 이때부터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세계 여성들이 함께 해결해야 할 여성인권 문제로 부각되었다. 단지 반세기 전 한국과 일본과의 사이에서만 일어났던 일이 아니었다.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전쟁 중 여성에 대한 폭력문제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 

ILO 29호 조약과 일본군‘위안부’ 문제 제기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강제노동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결하려고 한 것은 또 다른 시도였다. ILO는 유엔보다 수 십년 일찍 설립되어 세계의 노동질서를 만들고 지키는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노동조합이 주체인 유엔의 인권전문기구이다. 따라서 비노동조합 기구인 정대협이 ILO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조직이 주체가 되어야 했다. 이러한 ILO에서의 활동을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이해하는 관점과 지지기반은 국제노동조합이라는 조직으로 확대되게 되었다.

그 뒤 10년이 지났다. 민주노총·한국노총이라는 두 노총 국제국이 매년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주요한 해결과제로 삼은 지 10년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 뚜렷한 성과는 거둬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해방 60주년인 2005년을 맞이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ILO에 제기하게 된 것은 바로 ILO 조약 중 29호 조약, 강제노동금지에 관한 조약이다. 이 조약은 ILO의 기본 조약 중에서도 노동분야를 넘어 기본적인 인권보장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쳐온 가장 중요한 조약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ILO는 1930년에 이 조약을 채택하였는데, 제1조와 11조에서 여성에 대한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으며, 14와 15조에서 강제노동에 대한 보상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또한 25조에서는 강제노동을 강행한 책임자를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일본정부는 강제노동조약을 1932년 11월21일 조약 제10호로 비준했으며, 효력이 발생한 것은 1933년 11월21일부터다. 이 강제노동조약은 일단 효력이 발생하면 그때부터 10년간 조약의 폐기를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이 1932년 이 조약을 비준함으로서 1944년 11월21일까지는 어떠한 경우에도 그 효력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점에 착안해서 정대협은 1995년에 한국노총과(이 당시는 민주노총이 결성되기 이전이어서 한국노총 단독으로 했다) 함께 ILO에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심포지엄 개최, ILO 관련 조약 검토 등 공동대응을 해나갔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한국노총은 ILO 이사회에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제기하였다. 

ILO에 문제제기를 할 때는 두 가지 통로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ILO 이사회를 통해서다. ILO 헌장 24조는 노동자나 사용자조직이, ILO 조약을 비준한 나라가 이를 준수하지 않은 것을 제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어떤 한 사안을 이사회에 접수하면 이사회는 이것을 받아 접수 가능한 것인지를 판단한 뒤, 이 문제를 조사할 위원회를 노사정 삼자로 구성한다. 이 위원회는 문제를 조사하고 해당 정부와도 접촉한 뒤 보고서를 검토하는데, 이때 해당 정부에게 대표를 보낼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한국노총이 택한 방식이 바로 이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준적용위원회 전문가위원회(이하 전문가위원회)를 통한 문제제기이다. 이것은 ILO 조약이 잘 준수되고 있는가를 감독하는 공식 기구다. 전문가위원회는 20명의 노동법 전문가로 구성되어 조약 및 권고의 이행 상황에 관해 제기된 문제들을 나라별로 검토한 뒤 보고서를 발간한다. 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은 노동조합만이 할 수 있다. 위원회는 관계된 정부에 제기된 문제들을 보내 그에 대한 각 정부의 의견을 제출토록 한 뒤, 11~12월에 이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위원회를 열고 다음 해 3월에 보고서를 발간한다. 이 보고서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법적 판단이 수록되어 있어, 그 자체로서도 판례적인 의의와 기능을 가지며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 한국노총 주최로 열린 633차(2004년 11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출처:한국노총 ]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ILO 전문가위원회의 입장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한국에서만 제기한 것이 아니다. 일본 오사카의 특수영어교사노조도 한국노총과 같은 해인 1995년에 문제제기를 했는데, 그 통로는 바로 전문가위원회였다. 이사회가 한국노총이 제기한 문제를 지연시키는 바람에 전문가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먼저 다루게 되었다. 그 뒤 한국노총도 전문가위원회로 방향을 잡아, 지금까지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전문가위원회를 통해 진전되어 왔다.

1996년 6월, ILO 총회에서 처음으로 한국노총이 노동자그룹 회의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기준적용위원회의 주요 논의 안건으로 채택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처음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ILO 총회에서 다뤄진 것이다. 이에 대해 벨기에, 네덜란드, 중국, 뉴질랜드, 파키스탄, 싱가폴, 인도네시아 노총 등이 지지를 보냈지만 결국 노동자회의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30여개의 주요 안건으로 선정하는데 실패했다. 이 회의에서는, 96년 총회에서는 채택하지는 않겠지만, 일본 정부가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97년 총회에서는 다루도록 하겠다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노동자그룹 대표는 총회 기준적용위원회에서 이 내용을 발표했고, 보고서에 수록되었다. 이것이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다뤄진 첫 ILO 총회였다. 그 뒤 지금까지 매년 ILO 총회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ILO 총회 기준적용위원회 주요 의제로 채택하도록 하는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위원회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자행된 소위 ‘위안부’라고 불리는 성노예와 산업노예 문제에 대해 협약적용문제를 많이 논의해 왔다. 이 쟁점들은 위원회의 사전 보고에서 상세하게 검토되어 왔으므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진다. … 위원회는 일찍이 피해자들이 점점 노령화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을 표명한 적이 있다. 논쟁에 대하여 다른 권위 있는 기관들과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공식적인 견해를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일본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하여 염려를 표명해 왔다. 위원회는 이러한 피해자들의 요구에 대해 앞으로 일본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다시 한번 바란다.” 

이것은 2005년 3월에 발표된 전문가위원회 보고서내용 중 일본의 29호 조약위반과 관련된 내용이다. 1996년 전문가위원회 보고서에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수록된 뒤로 2005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1997년, 1999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보고서들에서 여러 차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전문가위원회의 판단이 수록되었다. 이를 위해 한국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매년 ILO 전문가위원회에 의견서를 제출해 왔다.  

특히 1999년 3월에 출판된 전문가위원회의 보고서는 일본 정부에게 아주 강력한 권고를 했다. 이 보고서는 일본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보상에 대신한다고 주장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 피해자 다수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고령이므로 일본 정부가 시급히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전문가위원회의 이런 법적 판단은 사실상 노동법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판단 그 자체로 완결적인 권위를 갖는 것이다. 

정대협과 한국 두 노총의 노력은 드디어 2001년 총회에서 한 단계 높은 성과를 만들어 냈다. 큰 진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총회 기준적용위원회 노동자그룹회의에서 이미 국제자유노련(ICFTU)에서 만든 주요 안건 리스트를 변경하여 일본의 강제노동조약 위반문제를 포함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1995년 이 문제로 ILO에 접근한지 6년만의 대승리였다. 그러나 사용자 회의에서 부결되어 주요 안건에 포함되는 것은 끝내 좌절되고 말았다. 

2003년 총회에서도 기준적용위원회 노동자그룹 회의에서는 일본의 협약 29호 조약 위반을 의제로 선정하였다. 그러나 사용자그룹과의 협의과정에서 또 다시 탈락되었다. 여전히 일본정부의 반대 때문이었다. 연이어 2년째 노동자그룹의 결정에 대해 반대함으로써 노동자그룹의 의견을 무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자그룹은 의장명의로 사용자그룹과 일본정부에게 항의편지를 보냈다. 

2005년 6월 ILO 총회를 향하여

2004년 6월, 92차 ILO총회에 정대협의 신혜수 공동대표와 윤미향 사무총장, 한국노총의 강충호 국장, 민주노총의 이창근 부장이 참석하여 공동전략을 폈다. 그러나 이번에는 ICFTU의 예비목록에도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빠져있었다. 2003년 총회에서 노동자그룹 의장이 사용자그룹 의장과 일본 정부에게 항의서한까지 보내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했음에도 노동자그룹 내에서 정하는 주요 안건 예비목록에서조차 제외한 것이다.  

대신에 ILO 총회 기준적용위원회의 최종 보고서에 개별 논의안건과 관련한 노동자그룹의 모두 발언이 실렸다. 이 발언은 “[노동자 위원들은] 일본에 관한 검토 내용에 대해 실망스러워 한다. 전문가위원회가 내년 본 위원회가 이 건의 전개 과정에 대해 (일본 정부의 완전하고 솔직한 협력을 통해)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준비해 줄 것을 요청한다??는 것이었다. 

ILO 총회가 끝난 뒤 한국은 평가모임을 갖고, 2005년을 해방 60주년, ILO 총회 제기 10주년이라는 의미있는 해로 보고, 제93차 ILO 총회를 준비하기 위해 사전 활동을 철저히 해나가기로 하였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정대협,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4개 단체가 ‘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노동사례에 대한 제93차 ILO총회 공동대책위원회’(약칭: 제93차 ILO총회 공대위)를  결성하고 활동해왔다. 그리고 유엔과 ILO에 제출할 100만인 국제연대서명운동을 함께 추진하였다. 이 서명운동을 통해 세계 각국 노총과 인권단체 등에 제93차 ILO 총회에서는 반드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기준적용위원회 의제로 채택되어야 한다는 공대위의 의지를 표명하였다. 그리고 양대 노총은  ILO 이사회 기간에 맞춰서 지난 3월 14~19일, 스위스 제네바로 실무대표를 보내 노동자그룹 의장을 통해 20만명의 서명용지를 전달하고,  ILO 사무차장을 만나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ILO의 관심과 지원을 요청하였다. 

오는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93차 ILO 총회가 열린다. 이번에는 일본군‘위안부’ 생존자도 함께 가기로 했다. 노동조합 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에 행동에 제한은 있겠지만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전 분위기를 만들고, 전후 60주년이라는 세계사적 의미에 초점을 맞추고 기자회견 및 증언대회 등의 활동을 하며 사전에 여론을 환기시킬 것이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노력할 것이다. ILO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의와 명예가 회복되길 바라며

현재,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은 70대 후반부터 90대 초반의 고령의 나이이고, 대부분이 일본군‘위안부’ 후유증과 싸우며 생의 마지막 노년기를 보내고 있다. 2005년 들어 벌써 다섯 명이 사망하였고, 사망률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국내에는 이제 122명의 생존자가 남아있을 뿐이다. 

우리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60년이 되는 2005년 안에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정의를 회복시켜 주기를 기대한다. 유엔과 ILO 기준적용위원회 전문가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실시할 수 있도록 법적·행정적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오는 4월 유엔인권위원회와 6월 ILO 총회, 7월 갈등분쟁예방국제회의, 유엔총회 등 국제회의 일정을 통해 국제 인권단체, 각국의 노동조합들과 연대해 나갈 것이다. 

아울러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일본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절대로 될 수 없다는 뜻을 강력하게 펴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 운동을 통해 세계의 수많은 시민들이 평화와 인권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나갈 것이다. 2005년은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유엔·ILO 전문가위원회 등 국제기구가 권고하고 노력해 온 대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정의와 명예가 회복이 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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